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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혁신'

    박진도의 부탄이야기 5
    • 작성일2015/11/16 11:59
    • 조회 591
    박진도의 부탄이야기 5

    *한겨레 21 제1086호에 연재된 박진도 이사장님의 글입니다. 

    국민의 30% 지금은 공부 중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과 건강한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재정의 4분의 1을 무상 교육·의료에 지출…
    무상 복지의 질을 높이는 과제 남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의식주의 결핍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지금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만약 그들에게 적절한 교육 기회와 건강한 생활이 보장된다면 그들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난한 나라’ 부탄이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독보적이다. 특히 “교육은 국가의 모든 정책에서 우선순위 1위”(현 국왕)이다.

    높은 문맹률 낮추기 위한 노력

    왕추크는 부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인 공무원 10년차다. 그는 동쪽 끝 타시강 종카그에서 기획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데, 월 2만3천눌트룸(약 41만원)의 봉급을 받는다. 별도로 주택수당을 받지만, 이 돈으로 전업주부인 아내 및 두 딸(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과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장래에 대해서도 별 걱정이 없다. 아이들 교육은 공부만 잘하면 나라에서 유학까지 보내주고, 아프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왕추크는 정부의 무상교육으로 대학까지 졸업했다.
    풀바는 관광 가이드다. 관광회사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다가 지금은 자기 차로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생활한다. 작은 호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4학년·6학년인 두 딸이 있다. 풀바는 부탄어(종카) 성적이 나빠 10학년 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공립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자비로 인도의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자기 딸들이 공부를 잘해서 반드시 공립학교에 가서 대학까지 무상으로 다니기를 원한다.
    부탄의 교육은 1950년대까지는 사찰 교육 중심이었고, 근대 학교교육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따라서 부탄 성인들의 문맹률은 매우 높다. 2014년 현재 15살 이상 부탄 국민 가운데 문맹인 사람의 비중은 45%(남자 34%, 여자 55%)에 이른다. 부탄 정부는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교육 기회를 제공해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8년 제정된 부탄 헌법 제9조는 “국가는 모든 어린이에게 10학년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기술적·전문적 교육을 일반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실력에 따라 고등교육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무교육 결과, 초등학교 순입학률은 1988년 25%에서 2014년에는 98.7%로 급속히 늘어나, 오늘날에는 모든 어린이가 학교를 다닌다. 상급학교 진학률도 높다. 6학년의 92%, 8학년의 88%, 10학년의 71%가 상급학교에 간다. 이처럼 단기간에 진학률이 높아진 것은 세계식량계획(WFP)과 부탄 정부가 학교 급식과 기숙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부탄 초·중·고 학생의 약 31%가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다(기숙사생 21%와 당일 급식 10%). 교사는 전체 공무원의 34%에 해당할 만큼 충분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초·중·고 모두 평균 20명 수준이고,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30명 내외다.



    해외 유학도 국가에서 무상으로

    부탄의 교육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1차(primary), 2차(secondary), 3차(tertiary) 교육으로 되어 있다. 1차 교육은 6~12살을 대상으로 한 7년 과정의 초등교육으로 이루어진다. 2차 교육은 13~18살을 대상으로 각 2년씩 3개 과정(lower, middle, higher secondary school)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12년 과정을 마치면 초급대학 이상의 3차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 시스템 이외에 부탄 정부는 3~5살을 위한 유아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학교교육 이외에 직업훈련, 사찰에서는 동자승을 상대로 한 정규교육 등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을 대상으로 비정규 교육도 하고 있다. 놀랍게도 2015년 현재 부탄 국민의 약 30%가 유치원부터 대학, 직업학교 등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부탄의 공교육 시스템은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원한다고 해서 다 무상 공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예비과정부터 매 학년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상급학년으로 그리고 상급학교로 올라갈 수 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상급학교와 상급학년으로 갈수록 진학에 필요한 점수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공립학교 진학률은 점차 낮아진다.
    공립학교에 진학을 못하면,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사립학교(11학년 이상)에 가든지 직업학교로 가야 한다.
    부탄 부모들의 교육열은 매우 높다. 가능하면 자식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어 한다. 2014년 현재 부탄 내 3차 교육기관에서 총 1만1089명이 공부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8676명(78.2%)은 정부 지원을 받고 2413명(21.8%)은 자비로 학업을 하고 있다. 부탄은 상대적으로 해외 유학생이 많은 나라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때 해외 유학을 가는 아이도 꽤 있다. 공립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거나, 집안에 여유가 있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유학을 간다.
    내가 만난 부탄 개발은행의 여직원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도로 유학을 가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을 마쳤고, 호텔 사장의 아들과 연구소장의 딸은 인도의 명문 고등학교에 유학 중이다. 특히 대학생의 유학이 많다. 부탄에는 사립대학이 하나뿐이고, 3차 교육의 수요에 비해 교육기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부탄의 3차 교육기관 해외 유학생은 총 3674명으로 그 가운데 국비 장학생이 895명, 자비 유학생이 2779명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유학 뒤에 자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탄 정부는 헌법 정신에 따라 10학년까지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0학년 이후에는 시험을 거쳐 우수한 학생들에 한해 무상으로 대학 교육을 해주거나 해외 유학까지 보내고 있다.

    가장 좋은 대학이 벽촌에 있는 이유는?

    부탄은 남녀 간 교육 성평등 지수가 매우 높다. 초등학교와 10학년까지는 여학생 수가 남학생을 능가하고(만학을 하는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으므로), 12학년까지는 남녀 학생 수에 차이가 없다. 다만, 대학 과정에서는 여학생 수가 남학생보다 적은데 그래도 여학생이 남학생의 81%에 달한다. 따라서 부탄에서는 적어도 공부를 잘하는데 돈이 없어서 혹은 남녀 차별로 인해 대학을 가지 못하는 남학생이나 여학생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부탄 교육의 또 하나 좋은 점은 공교육의 경우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고 사교육이 없다는 것이다(사립의 경우 돈을 받고 방과 후 수업을 하기도 한다). 농촌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부모들의 교육열이 낮아서 도시보다 학업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농하지는 않는다. 전국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사용하고 교사들은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3~4년마다 전근을 가기 때문에 수준에 차이가 없다. 부탄에서는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업이지만 교직은 행정직에 비해 인기가 적다. 동쪽 끝 타시앙체 종카그의 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는 도르지는 20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아이들이 마약을 하고 골치를 썩여 최근 행정직으로 전환했다.
    부탄에는 9개의 대학(팀푸의 사립대학 1개 포함)이 있는데 특성에 따라 전국에 흩어져 있다. 가장 좋은 대학인 셰룹체대학은 부탄의 동쪽 끝 타시강 종카그의 시골 마을에 있다. 이 대학은 타시강 시내에서도 22km 떨어진 벽촌에 1968년 고등 2차 학교로 설립됐다가 1983년에 최초의 대학(college)으로 승격했다. 총리, 장관, 기업가 등을 배출한 명문 대학이기 때문에 멀리 서부 지역에서 유학 오는 학생이 절반을 넘는다. 일체의 학비가 무료일 뿐 아니라, 1600명의 재학생이 거의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본인이 기숙사를 원하지 않으면 월 1500눌트룸(약 3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왜 이 오지에 최초의 대학을 설립했는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셰룹체대학의 교수들은 매우 젊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교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실력 있는 중년 교수들 중 일부는 사립대학이나 공기업 등으로 떠난다. 교수들은 일주일에 12시간, 40주 정도를 강의하는데, 경제학과의 경우 학생 300명에 6명의 교수들이 한 학급에 80~90명씩 가르치기 때문에 강의 부담이 적지 않다. 반면 봉급은 일반 공무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부족한 전공교수를 충당하기 위해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고 있다. 외국인 교수는 부탄 교수에 비해 최소한 2~3배 높은 급료를 받는다. 내가 만난 경제학과 교수는 인도 사람이었다.



    의료 모두 공짜, 예외가 있다면…

    부탄은 무상교육과 함께 모든 의료가 무상이다. 부탄 헌법 제9조는 “국가는 근대 의학과 전통 의학 모두에서 기본적인 공공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질병이나 장애 혹은 부족이 발생한 경우에 안전장치(security)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탄의 의료서비스 체계는 3단계로 되어 있다.
    1차 의료서비스는 동네의 진료소와 읍·면 단위의 기초 보건소에서, 2차 의료서비스는 20개 종카그에 하나씩 있는 병원에서, 그리고 3차 의료서비스는 전국에 3개 있는 종합병원(지역 혹은 국가)에서 담당한다. 부탄 정부는 적어도 90% 이상의 국민이 걸어서 3시간 이내에 동네 진료소나 기초 보건소 그리고 종카그의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차 의료서비스부터 3차 의료서비스까지 모두 무상이다. 입원할 경우 환자에게 식사를 제공하지만 간병은 가족이 책임진다. 1차 보건소, 2차 병원 그리고 지역의 종합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수도 팀푸에 있는 국가종합병원(National Referral Hospital)으로 이송되는데 그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국가가 지불한다. 그리고 부탄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인도 등 해외로 보내기도 하는데 그 비용도 국가가 지불한다.
    부탄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알아보기 위해 감기를 빙자해서 팀푸의 국가종합병원을 찾았다. 나는 감기 증세라 가정의의 진단을 받았다. 방글라데시에서 공부하고 온 2년차 젊은 여의사가 진찰을 했다. 간단한 감기이니 약을 먹고 쉬면 나을 거라며 아프면 다시 오란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아침 시간을 피해 낮 12시10분에 갔는데, 의사 만나는 데 40분간 줄을 서서 기다려 1~2분간 진찰받고 약 타는 데 10분이 걸렸다.
    정말 모두 공짜지만 예외가 있다. 기다리기 싫으면 오후 4~7시에 특진을 받을 수 있는데 500눌트룸(약 9천원)을 지불해야 하고, 무상인 6인실 병실이 싫으면 1인실을 택할 수 있는데 2500~3천눌트룸(약 5만~6만원)을 지불하면 된다. 병원 쪽의 호의로 병원 투어를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시설과 의료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팀푸 국가종합병원은 인도와 일본 정부의 도움으로 350병상의 현대적 시설에 12개 진료과를 운영하고 있다.
    동쪽을 여행하는 도중에 몽가르의 지역 종합병원도 들러보았다. 몽가르 병원은 오래된 병원인데 2008년 인도로부터 건축비와 의료장비로 5억3700만눌트룸(약 100억원)을 지원받아 신축했다. 몽가르 병원은 부탄의 3개 종합병원 중 하나로 부탄 동쪽 지방의 3차 진료기관을 담당하고 있다. 150개 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핵자기공명장치(MRI)와 전산단순촬영술(CT) 설비를 제외하면 부탄의 국가종합병원과 시설에 차이가 없다. 미숙아 분만실도 6개를 갖추고 있었다. 몽가르 병원에는 18명의 의사가 7개 진료과를 담당하고 80명의 간호사가 돕고 있다. 입원 환자의 간병을 위해 1명의 보호자를 허용하는데, 음식은 환자에게 나오는 것을 나누어 먹는다.
    의사들은 부탄에 의과대학이 없었기 때문에 인도나 스리랑카 등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하고 돌아와 의무복무를 한다. 그러나 의무복무 뒤 해외로 나가는 의사는 거의 없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외국인 의사를 고용하고 있는데, 현재 쿠바 의사 4명과 버마(미얀마) 의사 1명이 일하고 있다. 의사들은 일반 공무원 수준의 월급에 약간의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외국인 의사가 월 1500달러를 받는 반면 부탄 의사는 월 300~400달러와 사택을 제공받는다. 보통 15분 정도 기다리면 의사를 만날 수 있으나, 전문의는 30분~1시간가량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부탄의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사들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무상의료의 장점은 환자 입장에서는 무상이고 과잉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의사들이 환자 진료와 수입이 연동되지 않아서 열심히 하지 않고, 환자들이 병원의 고마움을 잘 모른다는 거다. 실제 부탄의 무상의료 서비스는 지형적 어려움, 의사 부족, 증가하는 지출 등으로 인해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탄 전체에 의사가 185명(그 가운데 외국인 의사가 37명)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 5만 명이 넘는 타시강 종카그에는 3개의 2차 병원에 8명의 의사밖에 없다.
    개인병원은 부탄 전체에 하나밖에 없는데, 내과 진료를 한다. 나는 심한 식중독으로 개인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팀푸 국가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의학박사다. 예약을 하고 가니 의사를 만나기가 용이했고 매우 친절했다. 진찰비는 팀푸 병원의 특진비에 해당하는 500눌트룸, 그리고 약값으로 130눌트룸을 청구했다. 이틀 뒤 허리가 아파 재방문하니 진찰비는 없고 식중독과 허리 통증 약값으로 180눌트룸을 청구했다. 부탄 정부는 개인병원 면허를 억제하고 있는데, 실제로 수요도 많지 않다고 한다. 무상의료 시스템이 나름대로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탄 전체에 의사 185명

    부탄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교육과 의료의 질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당하고 있다. 2015년 예산안을 보면 부탄 정부는 교육에 93억눌트룸, 의료에 39억눌트룸 등 총재정지출(455억눌트룸)의 26%에 해당하는 132억눌트룸을 사용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의 질을 높여가면서 무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부탄의 과제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