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터뷰3. 행복을 찾는 청년 화훼인 김은숙
- 작성일2017/01/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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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인터뷰3. 행복을 찾는 청년 화훼인 김은숙
행복을 찾는 청년 화훼인 김은숙(24)
은숙씨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남대학교 원예학과 4학년 김은숙입니다. 고등학교때 배운 토피어리를 시작으로 현재는 토피어리 강사활동과 농장디자인 동문회 사무국의 보좌관(부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장디자인동문회를 줄여서 ‘농디동문회’라고 부르는데요. 귀농귀촌과 관련하여 관심이 증가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정원, 지역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자신이 일구어갈 농장을 직접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과정을 ㈜마을디자인 이라는 회사에 위탁하여 교육을 합니다. 현재는 졸업생들이 800여명이 넘고 농업관계자, 귀농귀촌자, 임업분야, 심화과정 등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820여명정도 되는 졸업생들과 친목교류하며 함께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자고 해서 생긴 것이 농디동문회입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재무국, 사무국, 기획국, 교육국, 회장단, 고문, 지부별(서울, 경기, 충청, 전북, 전남제주, 영남)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으며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주제를 정해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문회가 출범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큰 성과는 없지만 임원진들이 동문들에게 좋은 가교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디동문회가 대한민국의 농업계를 이끌어갈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저 또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그룹 ‘꽃담이야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이 모임을 통해 꽃과 관련된 선진지를 방문하러 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좋은건 작은 공부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화훼산업의 비전, 현 실태파악, 정원관련 등등의 짧지만 영향력이 강한 학습을 합니다. 그 모임에서는 총무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 화훼를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수원농생고에 재학하던 시절, 입학 초기에는 농업이 무엇인지, 식물, 화훼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한 선생님께서 토피어리 체험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조그마한 곰돌이 얼굴에 심겨진 장미허브가 성장하는 것도 좋고,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좀 더 특별한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토피어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선생님이 진로 선택을 하는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기에 제가 원예를 관심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원예에 대한 확신을 가져 원예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결심 한 후, 근처 화원 사장님을 찾아가 무보수로 2주에 한 번씩 실습하고 싶다고 무작정 졸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지만 용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중학교로 돌아가도 농고에 진학하고 싶을 만큼 농고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큽니다. 사실 진학하고 나서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 못해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가끔 원예시간에 다 같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잡초를 제거하러 나가기도 하고 한번은 친구와 함께 경진대회 선수를 뽑기 위해 화훼장식 소재를 결정해서 선생님께 소재 목록과 주제를 전달해 드린 후 평가도 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FFK(Future Famers of Korea)경진대회 준비하는 동안 학교가 끝나면 수원역까지 걸어 다니기도 하고 4-H캠프도 가는 등 참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업계 특성화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재학하던 당시만 해도 약 80여개였는데 지금은 60여개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농업계 고교의 운영현황이 좋지 않다 보니 일반 인문계고와 혼용하여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하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농고 졸업 후 농대를 진학해 본 제 경험으로는 물론 대학수업이 더욱 깊이는 있지만 얼마나 참된 농업교육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교시절 때보다 느끼기 어려워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농에 대한 본질을 알리는 농업 기초교육이 더욱 강화되었으면 합니다.
<처음 만들었던 볼토피어리>
은숙생각
http://blog.naver.com/topiagn/220651467428
http://blog.naver.com/topiagn/220665546011
http://blog.naver.com/topiagn/220665531976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3때 선생님께서 토피어리를 오랫동안 해 오신 분이 대학로에 계시다고 얘기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도 무작정 혜화역에 있는 토피어리 로드샵(토피가든)을 찾아갔습니다. 사장님께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요청하셔서 다시 그것들을 준비하여 방문했고, 다행히 사장님께서 허락해주셔서 주말마다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습을 해온 토피가든이 국립서울과학관으로 이전하면서 방학 기간에는 체험강사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2-3주는 선생님들 수업보조를 하다가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현장실습을 시작한지 3주 만에 체험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떨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처음에는 누군가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진행 방식이나 아이들의 답변에 올바르게 답변하는 법이나, 말투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습기간동안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방식을 잘 보고 들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겠구나,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등 혼자 속으로 출퇴근길에 생각해 보고 실제로 제가 체험을 진행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천번 그려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3주 만에 저도 강사로서 제대로 수업을 진행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저는 수능이 끝난 후, 방학 때마다 서울과학관에서 체험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5년 8월 이후에는 서울과학관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정말 토피어리가 좋아서, 수태가 좋아서 단순히 조그마한 볼 토피어리를 만들어본 게 시작이 돼서 22살까지 알차게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 학기 중 보다 오히려 방학이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방학때에는 체험활동이 끝나면 조경스케치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밤 10시였는데 정말 기절해서 자고 눈 뜨면 출근하고를 반복했습니다. 체력적으론 힘들었지만 점점 제가 한 가지씩 발전하는 모습과 느리고 더디지만 성장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조경스케치>
고등학교 때 토피어리강사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프리저브드플라워에 관심을 두고 배우고 있습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란 시들지 않도록 생화를 가공한 것을 말하는 데 한국에서는 보존화라고도 합니다. 탈수, 탈색, 표백, 착색 등의 과정을 거치면 생화의 느낌 그대로를 보존하면서도 길게는 3년까지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꽃입니다.
화훼 가공에 대해 공부하던 중 한중일 프리저브드플라워와 관련된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하여 두분의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태안꽃축제 강항식회장님과 농촌진흥청 송정섭 박사님이었습니다. 두 분과 꾸준히 연락을 하며 제 진로와 관련해 많은 상담을 받았습니다.
강항식 회장님을 통해 원예에 대한 꿈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고 ㈜아다람농업회사법인에서 시들지 않는 꽃 프리저브드 플라워와 대형토피어리제작을 위한 방법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송정섭 박사님께서는 제 인생의 계획표를 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제가 정리한 것을 토대로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정말 힘들 때 포기하고자 할 때 저의 발전가능성을 알아봐주시고 꾸준히 연락을 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송정섭박사님을 따라 꽃담이야기에서 전국에 꽃을 사랑하시는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디자인 박영선대표님을 만나 농장디자인 수업을 이수한 후 전국의 농장디자인졸업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농장디자인 동문회 사무국의 보좌관(부국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원예를 하자고 결심했을 때는 원예가 좋아서 움직였고 원예 산업이 더욱 발전 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제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원예를 하는 식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은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과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저는 굳이 어느 회사에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기보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할 때가 행복한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국내 원예 산업의 발전을 위해 활동을 해왔다면 지금은 어떤 것을 해야 제가 행복한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제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안현수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후 스케이팅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행복함을 주는 나라에 정착하고 싶고 지금은 그 곳을 네덜란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디자인하는 것에서 사람들이 참 김은숙답다고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을 주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들은 네덜란드를 가기위한 것들이고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은 분야에 확신을 갖고 계신 모든 분들이 꼭 한국뿐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있어 행복함을 주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뿌리는 내리는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아직 확신을 가질 만큼의 매력적인 일이 무엇인지 못 찾거나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굳이 나는 월급 얼마를 받고 몇 살에 결혼하고 집을 언제 사고 이런 계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그래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무슨 일을 하고자 했을 때 만족감을 느꼈는가를 한번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제가 일을 하면서 행복한 곳, 조경학과 도시계획, 디자인을 공부함에 있어 행복감을 주는 곳이 어디인가, 그곳을 가기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김은숙이라는 화훼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은숙씨와 같이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사실 18살부터 화훼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왔고, 관계로 인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상처가 제겐 큰 후유증으로 남아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종종 원예활동을 끝내고나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오늘도 잘 버텼다 하면서요. 그래도 정말 깊이 있게 좋아하기에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제게 0순위는 화훼였으니까 그만큼 상처의 깊이도 깊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유지하는 지속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주는 행복감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제게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응원해주시는 좋은 분들이 주변에 계셨기 때문에 더더욱 일어서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앞에도 꼭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직 없거나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행복하게 해주는 지를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원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정말 사소했던 내 주먹만 한 화분을 만들어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느끼는 일을 찾았다면 여러분들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안내자들이 있는 모임에 참여해 보셨으면 합니다. 모임에 참여해보면 좀 더 큰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광범위하게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지성작가의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라는 책에서 하고싶다. 궁금하다. 이게 뭐지? 하는 등의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그냥 취미로라도 한번 해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제게 부채질을 해주셨던 좋은 스승님과 함께 제 옆에 두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마 꿈부터 써봐』,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이 두 권과 수원농생고의 정현주 선생님께서 제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게 가장 큰 부채질을 해주셨습니다. 아직 여러분께 부채질을 제대로 해주시는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책으로, 혹은 직접 찾아 가기 위해 노력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은숙 블로그 : http://blog.naver.com/topiagn
작성 김은숙/편집 지역재단
행복을 찾는 청년 화훼인 김은숙(24)
은숙씨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남대학교 원예학과 4학년 김은숙입니다. 고등학교때 배운 토피어리를 시작으로 현재는 토피어리 강사활동과 농장디자인 동문회 사무국의 보좌관(부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장디자인동문회를 줄여서 ‘농디동문회’라고 부르는데요. 귀농귀촌과 관련하여 관심이 증가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정원, 지역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자신이 일구어갈 농장을 직접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과정을 ㈜마을디자인 이라는 회사에 위탁하여 교육을 합니다. 현재는 졸업생들이 800여명이 넘고 농업관계자, 귀농귀촌자, 임업분야, 심화과정 등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820여명정도 되는 졸업생들과 친목교류하며 함께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자고 해서 생긴 것이 농디동문회입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재무국, 사무국, 기획국, 교육국, 회장단, 고문, 지부별(서울, 경기, 충청, 전북, 전남제주, 영남)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으며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주제를 정해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문회가 출범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큰 성과는 없지만 임원진들이 동문들에게 좋은 가교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디동문회가 대한민국의 농업계를 이끌어갈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저 또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그룹 ‘꽃담이야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이 모임을 통해 꽃과 관련된 선진지를 방문하러 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좋은건 작은 공부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화훼산업의 비전, 현 실태파악, 정원관련 등등의 짧지만 영향력이 강한 학습을 합니다. 그 모임에서는 총무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 화훼를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수원농생고에 재학하던 시절, 입학 초기에는 농업이 무엇인지, 식물, 화훼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한 선생님께서 토피어리 체험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조그마한 곰돌이 얼굴에 심겨진 장미허브가 성장하는 것도 좋고,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좀 더 특별한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토피어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선생님이 진로 선택을 하는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기에 제가 원예를 관심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원예에 대한 확신을 가져 원예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결심 한 후, 근처 화원 사장님을 찾아가 무보수로 2주에 한 번씩 실습하고 싶다고 무작정 졸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지만 용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중학교로 돌아가도 농고에 진학하고 싶을 만큼 농고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큽니다. 사실 진학하고 나서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 못해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가끔 원예시간에 다 같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잡초를 제거하러 나가기도 하고 한번은 친구와 함께 경진대회 선수를 뽑기 위해 화훼장식 소재를 결정해서 선생님께 소재 목록과 주제를 전달해 드린 후 평가도 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FFK(Future Famers of Korea)경진대회 준비하는 동안 학교가 끝나면 수원역까지 걸어 다니기도 하고 4-H캠프도 가는 등 참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업계 특성화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재학하던 당시만 해도 약 80여개였는데 지금은 60여개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농업계 고교의 운영현황이 좋지 않다 보니 일반 인문계고와 혼용하여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하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농고 졸업 후 농대를 진학해 본 제 경험으로는 물론 대학수업이 더욱 깊이는 있지만 얼마나 참된 농업교육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교시절 때보다 느끼기 어려워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농에 대한 본질을 알리는 농업 기초교육이 더욱 강화되었으면 합니다.
<처음 만들었던 볼토피어리>
은숙생각
http://blog.naver.com/topiagn/220651467428
http://blog.naver.com/topiagn/220665546011
http://blog.naver.com/topiagn/220665531976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3때 선생님께서 토피어리를 오랫동안 해 오신 분이 대학로에 계시다고 얘기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도 무작정 혜화역에 있는 토피어리 로드샵(토피가든)을 찾아갔습니다. 사장님께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요청하셔서 다시 그것들을 준비하여 방문했고, 다행히 사장님께서 허락해주셔서 주말마다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습을 해온 토피가든이 국립서울과학관으로 이전하면서 방학 기간에는 체험강사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2-3주는 선생님들 수업보조를 하다가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현장실습을 시작한지 3주 만에 체험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떨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처음에는 누군가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진행 방식이나 아이들의 답변에 올바르게 답변하는 법이나, 말투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습기간동안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방식을 잘 보고 들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겠구나,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등 혼자 속으로 출퇴근길에 생각해 보고 실제로 제가 체험을 진행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천번 그려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3주 만에 저도 강사로서 제대로 수업을 진행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저는 수능이 끝난 후, 방학 때마다 서울과학관에서 체험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5년 8월 이후에는 서울과학관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정말 토피어리가 좋아서, 수태가 좋아서 단순히 조그마한 볼 토피어리를 만들어본 게 시작이 돼서 22살까지 알차게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 학기 중 보다 오히려 방학이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방학때에는 체험활동이 끝나면 조경스케치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밤 10시였는데 정말 기절해서 자고 눈 뜨면 출근하고를 반복했습니다. 체력적으론 힘들었지만 점점 제가 한 가지씩 발전하는 모습과 느리고 더디지만 성장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조경스케치>
고등학교 때 토피어리강사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프리저브드플라워에 관심을 두고 배우고 있습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란 시들지 않도록 생화를 가공한 것을 말하는 데 한국에서는 보존화라고도 합니다. 탈수, 탈색, 표백, 착색 등의 과정을 거치면 생화의 느낌 그대로를 보존하면서도 길게는 3년까지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꽃입니다.
화훼 가공에 대해 공부하던 중 한중일 프리저브드플라워와 관련된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하여 두분의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태안꽃축제 강항식회장님과 농촌진흥청 송정섭 박사님이었습니다. 두 분과 꾸준히 연락을 하며 제 진로와 관련해 많은 상담을 받았습니다.
강항식 회장님을 통해 원예에 대한 꿈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고 ㈜아다람농업회사법인에서 시들지 않는 꽃 프리저브드 플라워와 대형토피어리제작을 위한 방법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송정섭 박사님께서는 제 인생의 계획표를 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제가 정리한 것을 토대로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정말 힘들 때 포기하고자 할 때 저의 발전가능성을 알아봐주시고 꾸준히 연락을 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송정섭박사님을 따라 꽃담이야기에서 전국에 꽃을 사랑하시는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디자인 박영선대표님을 만나 농장디자인 수업을 이수한 후 전국의 농장디자인졸업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농장디자인 동문회 사무국의 보좌관(부국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원예를 하자고 결심했을 때는 원예가 좋아서 움직였고 원예 산업이 더욱 발전 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제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원예를 하는 식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은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과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저는 굳이 어느 회사에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기보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할 때가 행복한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국내 원예 산업의 발전을 위해 활동을 해왔다면 지금은 어떤 것을 해야 제가 행복한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제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안현수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후 스케이팅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행복함을 주는 나라에 정착하고 싶고 지금은 그 곳을 네덜란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디자인하는 것에서 사람들이 참 김은숙답다고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을 주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들은 네덜란드를 가기위한 것들이고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은 분야에 확신을 갖고 계신 모든 분들이 꼭 한국뿐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있어 행복함을 주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뿌리는 내리는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아직 확신을 가질 만큼의 매력적인 일이 무엇인지 못 찾거나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굳이 나는 월급 얼마를 받고 몇 살에 결혼하고 집을 언제 사고 이런 계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그래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무슨 일을 하고자 했을 때 만족감을 느꼈는가를 한번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제가 일을 하면서 행복한 곳, 조경학과 도시계획, 디자인을 공부함에 있어 행복감을 주는 곳이 어디인가, 그곳을 가기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김은숙이라는 화훼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은숙씨와 같이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사실 18살부터 화훼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왔고, 관계로 인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상처가 제겐 큰 후유증으로 남아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종종 원예활동을 끝내고나면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오늘도 잘 버텼다 하면서요. 그래도 정말 깊이 있게 좋아하기에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제게 0순위는 화훼였으니까 그만큼 상처의 깊이도 깊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유지하는 지속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주는 행복감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제게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응원해주시는 좋은 분들이 주변에 계셨기 때문에 더더욱 일어서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앞에도 꼭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직 없거나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행복하게 해주는 지를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원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정말 사소했던 내 주먹만 한 화분을 만들어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느끼는 일을 찾았다면 여러분들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안내자들이 있는 모임에 참여해 보셨으면 합니다. 모임에 참여해보면 좀 더 큰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광범위하게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지성작가의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라는 책에서 하고싶다. 궁금하다. 이게 뭐지? 하는 등의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그냥 취미로라도 한번 해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제게 부채질을 해주셨던 좋은 스승님과 함께 제 옆에 두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마 꿈부터 써봐』,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이 두 권과 수원농생고의 정현주 선생님께서 제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게 가장 큰 부채질을 해주셨습니다. 아직 여러분께 부채질을 제대로 해주시는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책으로, 혹은 직접 찾아 가기 위해 노력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은숙 블로그 : http://blog.naver.com/topiagn
작성 김은숙/편집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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