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로 전략한 농협개혁위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0:46
- 조회 387
‘들러리‘로 전략한 농협개혁위
| 윤석원 중앙대 교수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때마다 속으로는 과연 얼마나 기여할 것이며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 것인지, 혹시 들러리는 아닐지 하는 우려를 늘 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것은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며 배우기도 하고,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을 내놓고 논의하다보면 정말 좋은 정책 대안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지난해 12월에 구성된 정부의 농협개혁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할 때도 행여나 들러리나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나 농협에 의해 수없이 많은 농협개혁위원회가 있어 왔으나 결국 되는 것 없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 대통령의 가락시장 발언 이후 농식품부 장관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농협개혁을 단행할 수 있도록 그야 말로 실현가능한 안을 도출해 줄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장관 약속 믿고 동참
그래서 농협개혁위원회는 농민단체, 농협조합장, 농협중앙회, 전문가, 학자 등 일반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수십차례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다. 때로는 위원들끼리 고성이 오가고, 밤늦도록 토론을 해 나가면서 이번에는 그래도 뭔가 제대로 된 안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무엇보다 주요 농민단체 대표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3월 농협개혁위원회의 개혁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안은 다양한 객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농협개혁을 현실적으로 그나마 담아 낼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농식품부가 그 안을 중심으로 농협개혁안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고, 사석에서도 여러 번 확인되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28일 정부가 내 놓은 농협개혁입법안은 농협개혁위원회안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면 끝나는 여느 자문위원회와는 달리 정부는 농협개혁위원회 위원들로 하여금 지방순회 설명회에 까지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만큼 농협개혁위원회의 안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는 암묵적 신호라 판단되었고 정부의 의지를 믿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부의 들러리는 아닌가보다고 생각했었다.
지방순회까지 하며 개혁안 설명도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결국 나락으로 처참하게 떨어지고 말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에 크게 흠이 가고 말았다. 그간의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농식품부의 농협개혁에 대한 인식과 개혁 방향이 분명히 처음과는 달라졌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었다면 이를 위원회에 알리고 다시 논의하게 하는 것이 옳고 그것이 적어도 자문위원들에 대한 예의이다. 지난 8월 이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두 세차례씩 열던 위원회를 8월 이후 지난 10월까지 한번도 열지 않았고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쑥 내 놓은 농협개혁입법안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안이었으니 허탈함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농협개혁위원들을 철저히 우롱하였다.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는 친구간의 신의도, 믿음도 아랑곳하지 않는 시정잡배들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는 정부가 농협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여기 저기 다니며 기회 있을때 마다 농협개혁위원회안을 소개하기도 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농협개혁만큼은 이번 정부가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이 결국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순진하게도 이번에는 뭔가 되는가 싶어 순진하게도 믿었던 것이 죄라면 죄가 되고 말았다.
신뢰·신의깨고 무슨일을 하겠나
그동안 수많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보았지만 이번 농협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이렇게 후회스럽고 황당하기는 처음이다. 문제는 어떤 개인의 참담함이 아니라 전농, 한농연 등 농민단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인내하며 참여한 위원회를 이렇게 무참하게 내팽개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발상부터가 참기 어렵고 유감이다. 더 나아가 과연 정부는 이러한 자세로 어떻게 거버넌스 농정을 펼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심히 걱정이 된다. 세상의 무슨 일이든 신뢰와 신의가 깨어지면 되는 일이 없고, 매주로 콩을 쑨다해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 윤석원 중앙대 교수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때마다 속으로는 과연 얼마나 기여할 것이며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 것인지, 혹시 들러리는 아닐지 하는 우려를 늘 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것은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며 배우기도 하고,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을 내놓고 논의하다보면 정말 좋은 정책 대안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지난해 12월에 구성된 정부의 농협개혁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할 때도 행여나 들러리나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나 농협에 의해 수없이 많은 농협개혁위원회가 있어 왔으나 결국 되는 것 없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 대통령의 가락시장 발언 이후 농식품부 장관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농협개혁을 단행할 수 있도록 그야 말로 실현가능한 안을 도출해 줄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장관 약속 믿고 동참
그래서 농협개혁위원회는 농민단체, 농협조합장, 농협중앙회, 전문가, 학자 등 일반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수십차례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다. 때로는 위원들끼리 고성이 오가고, 밤늦도록 토론을 해 나가면서 이번에는 그래도 뭔가 제대로 된 안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무엇보다 주요 농민단체 대표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3월 농협개혁위원회의 개혁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안은 다양한 객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농협개혁을 현실적으로 그나마 담아 낼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농식품부가 그 안을 중심으로 농협개혁안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고, 사석에서도 여러 번 확인되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28일 정부가 내 놓은 농협개혁입법안은 농협개혁위원회안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면 끝나는 여느 자문위원회와는 달리 정부는 농협개혁위원회 위원들로 하여금 지방순회 설명회에 까지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만큼 농협개혁위원회의 안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는 암묵적 신호라 판단되었고 정부의 의지를 믿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부의 들러리는 아닌가보다고 생각했었다.
지방순회까지 하며 개혁안 설명도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결국 나락으로 처참하게 떨어지고 말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에 크게 흠이 가고 말았다. 그간의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농식품부의 농협개혁에 대한 인식과 개혁 방향이 분명히 처음과는 달라졌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었다면 이를 위원회에 알리고 다시 논의하게 하는 것이 옳고 그것이 적어도 자문위원들에 대한 예의이다. 지난 8월 이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두 세차례씩 열던 위원회를 8월 이후 지난 10월까지 한번도 열지 않았고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쑥 내 놓은 농협개혁입법안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안이었으니 허탈함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농협개혁위원들을 철저히 우롱하였다.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는 친구간의 신의도, 믿음도 아랑곳하지 않는 시정잡배들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는 정부가 농협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여기 저기 다니며 기회 있을때 마다 농협개혁위원회안을 소개하기도 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농협개혁만큼은 이번 정부가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이 결국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순진하게도 이번에는 뭔가 되는가 싶어 순진하게도 믿었던 것이 죄라면 죄가 되고 말았다.
신뢰·신의깨고 무슨일을 하겠나
그동안 수많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보았지만 이번 농협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이렇게 후회스럽고 황당하기는 처음이다. 문제는 어떤 개인의 참담함이 아니라 전농, 한농연 등 농민단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인내하며 참여한 위원회를 이렇게 무참하게 내팽개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발상부터가 참기 어렵고 유감이다. 더 나아가 과연 정부는 이러한 자세로 어떻게 거버넌스 농정을 펼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심히 걱정이 된다. 세상의 무슨 일이든 신뢰와 신의가 깨어지면 되는 일이 없고, 매주로 콩을 쑨다해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