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사업 분리 호도하지 말라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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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사업 분리 호도하지 말라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한국 농업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농협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농협 개혁을 위해서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도 이미 10여 년 전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농협의 신(信)·경(經) 분리는 아직까지 검토 중이다.
그동안 농협법은 1994년(문민정부), 99년(국민의 정부), 2004년(참여정부) 등 정권을 바꿔가며 세 차례나 개정됐다. 그 핵심은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 문제였다. 그때마다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신.경 분리 반대론자들의 끈질긴 저항이 계속됐다. 이들은 신·경 분리 자체의 당위성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되자, 신·경 분리의 전제조건과 시기.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실질적으로 신·경 분리를 막아왔다.
현행 농협법 부칙 제12조는 ‘중앙회의 신용사업 및 경제사업을 효율적으로 분리하기 위하여‘ 중앙회의 자본금 확충 방안 등 세부 추진계획을 중앙회가 수립해 1년 이내(올 6월 30일)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이 법 제정 당시부터 지적된 대로 신·경 분리에 반대하는 중앙회더러 신·경 분리 추진계획을 내놓으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1년 뒤 농협중앙회가 자본금 확충 등 전제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의 말대로 중앙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 신·경 분리를 하지 않고 농협 개혁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중앙회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분리를 추진한다면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무시했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당시에 우려했던 사태가 바로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7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고, 이를 자력으로 조달하려면 약 15년이 소요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신·경 분리를 하고 싶으면 정부가 이 돈을 부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리를 못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신·경 분리를 거부하는 ‘신·경 분리 추진계획‘인 셈이다. 당황한 농림부는 농협의 자본금 계산법이 틀렸을지 모르니, 농림부가 발주한 금융연구원의 연구결과가 나오는 11월까지 기다려 보자며 허둥대고 있다.
그러나 농협의 보고서는 그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우선 신·경 분리를 한다고 해서 사업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본금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까지 필요 자본금의 절반만 가지고 부실경영을 해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사업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4조4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만성적 적자의 원인이 신용사업 중심의 중앙회 사업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또 신용사업에 3조4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자본금 부족 문제의 근본 원인이 은행업무 중심의 신용사업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가 마치 문제의 본질이 자본금 부족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그것을 과대 포장하는 것은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농협의 신·경 분리 문제가 이토록 꼬인 데는 농림부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농림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농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연 신·경 분리를 추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국민이 이 정부에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말로만 개혁을 시끄럽게 외치고 무엇 하나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는 사실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2006년 7월 4일자에 실린 시론입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한국 농업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농협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농협 개혁을 위해서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도 이미 10여 년 전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농협의 신(信)·경(經) 분리는 아직까지 검토 중이다.
그동안 농협법은 1994년(문민정부), 99년(국민의 정부), 2004년(참여정부) 등 정권을 바꿔가며 세 차례나 개정됐다. 그 핵심은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 문제였다. 그때마다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신.경 분리 반대론자들의 끈질긴 저항이 계속됐다. 이들은 신·경 분리 자체의 당위성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되자, 신·경 분리의 전제조건과 시기.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실질적으로 신·경 분리를 막아왔다.
현행 농협법 부칙 제12조는 ‘중앙회의 신용사업 및 경제사업을 효율적으로 분리하기 위하여‘ 중앙회의 자본금 확충 방안 등 세부 추진계획을 중앙회가 수립해 1년 이내(올 6월 30일)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이 법 제정 당시부터 지적된 대로 신·경 분리에 반대하는 중앙회더러 신·경 분리 추진계획을 내놓으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1년 뒤 농협중앙회가 자본금 확충 등 전제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의 말대로 중앙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 신·경 분리를 하지 않고 농협 개혁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중앙회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분리를 추진한다면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무시했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당시에 우려했던 사태가 바로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7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고, 이를 자력으로 조달하려면 약 15년이 소요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신·경 분리를 하고 싶으면 정부가 이 돈을 부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리를 못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신·경 분리를 거부하는 ‘신·경 분리 추진계획‘인 셈이다. 당황한 농림부는 농협의 자본금 계산법이 틀렸을지 모르니, 농림부가 발주한 금융연구원의 연구결과가 나오는 11월까지 기다려 보자며 허둥대고 있다.
그러나 농협의 보고서는 그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우선 신·경 분리를 한다고 해서 사업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본금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까지 필요 자본금의 절반만 가지고 부실경영을 해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사업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4조4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만성적 적자의 원인이 신용사업 중심의 중앙회 사업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또 신용사업에 3조4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자본금 부족 문제의 근본 원인이 은행업무 중심의 신용사업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가 마치 문제의 본질이 자본금 부족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그것을 과대 포장하는 것은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농협의 신·경 분리 문제가 이토록 꼬인 데는 농림부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농림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농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연 신·경 분리를 추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국민이 이 정부에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말로만 개혁을 시끄럽게 외치고 무엇 하나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는 사실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2006년 7월 4일자에 실린 시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