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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을 깨야?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前 농림부 장관, 지역재단 고문 
    • 작성일2020/03/05 11:49
    • 조회 443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을 깨야?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前 농림부 장관, 지역재단 고문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을 캐치프레이스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전국의 농어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기대를 모으며 출범한지가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李정권이 농림분야에서 첫 번째로 안겨준 우리 농어민들의 실망은 이 정부 초대 경제수장인 기획재정부 장관이 “농업이란 말은 이제 그만하자! 농민문제는 복지차원에서 풀면된다.”라고 농업포기 정책방향이 처음으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밝혀지면서부터 시작하었다.
    농업문제는 정부정책에서 끝내고 농민들에게는 생활보조금이나 대주면 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께서 미국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만나기 하루 전 서울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개방 협상과정에서 한국측 협상대표가 갑자기 새벽 2시에 ‘광우병 의심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와 부산물(위험물질 포함)의 수입개방에 전격 합의해주었다.

    ‘소수 축산농민들에게는 안됐지만 소비자들은 반길 것’이라는 안이한 정책판단이 근 3개월간의 촛불시위라는 사회적 대재앙을 불러들인 것이다. 청소년, 유모차 등 남녀노소가 전국적인 촛불시위를 이어 갔다. 깜짝 놀란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하였고 어렵사리 다시 미국과 재협상한 끝에 30개월령 이하의 쇠고기와 일부 위험 부산물의 수입개방으로 수정되었다.
    국가가 단 한명의 국민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운 것이다. 현 정부의 농어업 인식에 실망 두 번째 장면은 지난해 말 한·미 합동 서해포격훈련과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의 훈련참여 보은(?)인지는 몰라도, 바로 속개된 한미 FTA 추가재협상에서 미국이 문제 삼은 자동차 개방조건을 대폭 양보하고 추가적인 후속조치로 머잖아 수입쇠고기에 대한 연령제한 조치가 풀리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미국 쪽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한미 FTA로 인해 우리나라 농축산업은 천문학적인 피해가 예상되어 문자그대로 풍전등화격인데도, 협상의 주역을 맡은 통상교섭본부장은 얼토당토 않게 우리나라 농민들을 폄하하는 폭탄발언을 했다.
    재협상 이후 국내에서 개최된 어느 세미나에서 그 분은 “다방 농민들의 모랄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문제이다. 정부가 투자했더니 엉뚱한대로 새더라.” “이제 우리(정부)가 (농업을 위해) 할 수 있는 한계에 오지 않았냐는게 저의 솔직한 고백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오죽했으면 수많은 농민들이 엄동설한임에도 서울에 올라와 통상교섭본부장의 망언을 규탄하며 사퇴를 요구하였다. 알고보니 그동안 FTA가 좋다고 정부가 선전홍보하는데 백억원 넘게 써놓고도 번역비용이 적어서 한-EU, 한미 FTA 협정문 번역을 수백군데나 잘못한 장본인이 우리나라 농업에 희망이 없는 것이 ‘다방농민’들 탓이라고 되려 큰소리를 친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산야엔 구제역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전국의 농민들과 국민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단군이래 최대의 대재앙이라 부를 만큼 350만두에 가까운 소, 돼지들과 600여만 마리의 닭, 오리들이 꽁꽁 얼어붙은 땅 속에 파묻혀 있다. 그것도 상당수 생매장하느라 문자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농민들은 애지중지 기르던 생축을 묻거나 지키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반죽음 상태였다. 외지에 나간 아들 딸 손주들의 설날 귀성을 자제 시켰을 정도였다. 동네 밖 출입은커녕 이웃간 방문마저 삼가 왔다. 일선의 공직자들은 혹한에 살처분 매몰하느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감내하고 실제 죽어 갔다. 하늘이 내린 저주가 아닌지 천벌이 두려워 위령제라도 올려야 하지 않나 조신(操身)하고 있다. 다방농민·도덕적 해이 운운 웬말 이 와중에 이 나라의 경제총수라는 장관은 느닷없이 축산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서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다.”라며, “보상비 360억원을 네 형제가 나눠서 받은 경우도 있다.

    지금 현실 보상을 무작정해주기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구제역이 농민 탓인양 말했다. 방역 당국도 인정한 엄연한 관재(官災)를 가리켜 축산농민 탓을 하다니 이 정부의 고위 실세들에겐 “다방농민”만 보이는가 보다. 그렇다면 정부의 축산기술연구센터들 마저 경북과 강원도에서 구제역 감염을 막지 못해 10억원이 넘는 씨 숫소들을 살처분한 주제에 그것도 ‘다방농민’ 때문이란 말인가. 구제역 방비를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검역기구 정비와 장비 인력 확보 등 예산조치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다. 이 나라 여당의 국회 사령탑이라는 양반은 우리나라에 축산업이 맞지 않는다라고 폭언을 했다. 축산없는 경종농업이 어디 있는지 모든 육류고기를 수입에 의존하자는 말인지, 대안도 대책도 없는 무책임한 말을 하부로 하다니. 한술 더 떠서 전직 농림장관이란 여당의 최고위원께서는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로 유기질 비료를 만들어 쓰자고 친히 실험까지 했다. 이 모두가 ‘돈 버는 농업, 살 맛나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언행들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후보시절, 그 분은 우리나라 유기농업 발상지 중의 하나인 팔당지역 유기농가를 방문해 경운기도 몰고 쌈채소로 점심까지 드시면서 유기농업이 우리나라 농업의 살길이라고 하시더니 지금 그 유기농민들을 4대강 자전거 길과 녹색공원을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고 정부가 앞장 서 몰아내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 유기농업 예찬론을 다시 피력하시다니 말 따로 정책 행동 따로가 도를 넘고 있다. 명색이 환경부장관이란 사람이 국회증언에서 유기농업이 일반농사 보다 수질을 더 오염시킨다고 하고, 당시의 농림부 장관은 그 말이 맞다고 태평스럽게 맞장구 쳤다. 차기대권을 꿈구는 모 지사는 팜프렛 TV 광고까지 동원하여 유기농업이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펴서 세계 유기농학계에 웃음거리가 되더니 최근 슬그머니 팔당 농민들에게 사과하는 사태를 빚었다. 대통령이 좋아할 말이라면 폭론 폭설을 마음대로 주장해도 괜찮다는지 그 속내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옛말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일랑 깨지 말라”고 했는데 이들 현, 전직 고관들은 높은 곳의 한 분을 제외하곤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민심·천심 거슬러 재앙 올까 걱정 이 정권의 농업, 농민 모욕 언행이 이렇듯 도(度)를 넘고 지나쳐 자칫 민심(民心)과 천심(天心)을 거스려 더 큰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아직 1년반이 남아 있어 더욱 걱정이 된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3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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