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향적 농정틀 만들자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4 15:50
- 조회 414
미래 지향적 농정틀 만들자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농업·농촌에 갖가지 좌절을 안겨주었던 병술년을 뒤로 하고 정해년에는 우리 농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국내외 전문기관들의 내년 경제 전망은 한결같이 성장 잠재력의 저하와 국제수지 흑자의 감소 내지 적자전환과 같은 위험경보를 담고 있으며, 심지어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능가하는 장기 불황을 우려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언제나 그러하듯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수반하는 법이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와 노력에 도전하는 개인이나 사회만이 성공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정해년의 복돼지꿈이 실현되려면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투철한 각오와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UR(우루과이라운드) 이후 10여년에 걸쳐 역대 정부는 농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실로 방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한 농업·농촌 대책들을 추구해 왔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급변하는 여건에 비해 대응노력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탓이다. 정해년 새해는 한국 농업·농촌의 위기를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바꾸기 위한 농정혁신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관련 당사자 모두의 분발이 요구된다. 여기에서는 미래지향적 농정틀을 마련함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몇가지 과제를 제시해 두고자 한다.
먼저 우리 농정은 종래의 생산자 중심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자·식품산업·납세자를 포함하는 ‘국민의 농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농정의 대상범위는 농업정책뿐 아니라 농촌·식료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모두 포괄하고 농촌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제·문화·환경 관련 활동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둘째로, 농업정책의 목표는 경쟁력 강화나 구조조정과 같은 구태의연한 과제가 아니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영농체계의 확립과 WTO체제에 걸맞은 소득보전 및 경영안정 시책의 도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경종과 축산을 포함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영농방식은 이미 사회적 정당성을 상실한 지 오래며, 주로 소득보전 수단으로 인식되어 나열식으로 확대되어 온 각종 직불제는 WTO 허용 보조기준에 따른 재정비를 전제로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쌀 수매제 폐지와 함께 도입된 쌀 소득보전직불금 가운데 변동직불금은 WTO의 감축대상 보조금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재정운영 면에서도 불안정성이 높아 보다 합리적인 제도로의 개편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 농촌 지역사회의 안정적 유지와 농업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농촌정책은 다수의 관련부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주민 간의 역할 분담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 아래서는 농촌정책 분야에 관한 중앙정부 내의 총괄조정 기능이 미약해서 유사사업의 중복으로 인한 자원 낭비가 많다. 따라서 효율적인 농촌정책의 수행을 위해서는 총괄조정 기능이 강화되고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
넷째로, 국민의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식품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료정책은 농정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설정 추진되어야 한다. 농림부의 최근 움직임도 ‘농식품’ 정책에 그치고 있어 국민의 식생활에 대한 관점이 빠져 있다. 미국 농무부 예산의 절반 이상이 학교급식과 푸드스탬프 등 농산물 소비기반 확보에 놓여있는 데서 보듯이 농산물 생산에서 최종 소비에 이르는 과정의 일관성 있는 관리가 이루어질 때 ‘식료의 안정공급’이라는 농정의 기본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정 추진체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서는 일관성을 지닌 중장기 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나 덴마크 농업회의소의 기능에서 보듯이 선진국의 경우는 각종 이해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이 정책 형성과정에 적절히 반영돼 정책의 현장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정부와 민간이 농정의 파트너로서 대등한 참여와 책임을 분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성숙한 모습의 선진농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자세 못지 않게 농협을 포함한 관련 농민단체들의 대승적 관점에서의 노력이 절실한 과제라고 하겠다.
* 농민신문 2007년 1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농업·농촌에 갖가지 좌절을 안겨주었던 병술년을 뒤로 하고 정해년에는 우리 농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국내외 전문기관들의 내년 경제 전망은 한결같이 성장 잠재력의 저하와 국제수지 흑자의 감소 내지 적자전환과 같은 위험경보를 담고 있으며, 심지어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능가하는 장기 불황을 우려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언제나 그러하듯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수반하는 법이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와 노력에 도전하는 개인이나 사회만이 성공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정해년의 복돼지꿈이 실현되려면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투철한 각오와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UR(우루과이라운드) 이후 10여년에 걸쳐 역대 정부는 농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실로 방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한 농업·농촌 대책들을 추구해 왔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급변하는 여건에 비해 대응노력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탓이다. 정해년 새해는 한국 농업·농촌의 위기를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바꾸기 위한 농정혁신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관련 당사자 모두의 분발이 요구된다. 여기에서는 미래지향적 농정틀을 마련함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몇가지 과제를 제시해 두고자 한다.
먼저 우리 농정은 종래의 생산자 중심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자·식품산업·납세자를 포함하는 ‘국민의 농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농정의 대상범위는 농업정책뿐 아니라 농촌·식료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모두 포괄하고 농촌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제·문화·환경 관련 활동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둘째로, 농업정책의 목표는 경쟁력 강화나 구조조정과 같은 구태의연한 과제가 아니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영농체계의 확립과 WTO체제에 걸맞은 소득보전 및 경영안정 시책의 도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경종과 축산을 포함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영농방식은 이미 사회적 정당성을 상실한 지 오래며, 주로 소득보전 수단으로 인식되어 나열식으로 확대되어 온 각종 직불제는 WTO 허용 보조기준에 따른 재정비를 전제로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쌀 수매제 폐지와 함께 도입된 쌀 소득보전직불금 가운데 변동직불금은 WTO의 감축대상 보조금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재정운영 면에서도 불안정성이 높아 보다 합리적인 제도로의 개편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 농촌 지역사회의 안정적 유지와 농업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농촌정책은 다수의 관련부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주민 간의 역할 분담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 아래서는 농촌정책 분야에 관한 중앙정부 내의 총괄조정 기능이 미약해서 유사사업의 중복으로 인한 자원 낭비가 많다. 따라서 효율적인 농촌정책의 수행을 위해서는 총괄조정 기능이 강화되고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
넷째로, 국민의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식품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료정책은 농정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설정 추진되어야 한다. 농림부의 최근 움직임도 ‘농식품’ 정책에 그치고 있어 국민의 식생활에 대한 관점이 빠져 있다. 미국 농무부 예산의 절반 이상이 학교급식과 푸드스탬프 등 농산물 소비기반 확보에 놓여있는 데서 보듯이 농산물 생산에서 최종 소비에 이르는 과정의 일관성 있는 관리가 이루어질 때 ‘식료의 안정공급’이라는 농정의 기본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정 추진체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서는 일관성을 지닌 중장기 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나 덴마크 농업회의소의 기능에서 보듯이 선진국의 경우는 각종 이해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이 정책 형성과정에 적절히 반영돼 정책의 현장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정부와 민간이 농정의 파트너로서 대등한 참여와 책임을 분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성숙한 모습의 선진농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자세 못지 않게 농협을 포함한 관련 농민단체들의 대승적 관점에서의 노력이 절실한 과제라고 하겠다.
* 농민신문 2007년 1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