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운동에 대한 추억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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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운동에 대한 추억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국민의 정부’ 시절 제정·공표된 소비자협동조합법(1999년 2월 제정)에 기반하여 새롭게 재출범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일명 ‘생협’)이 12년이 지난 2011년 말 현재 3대 연합체 산하에만도 약 56만여 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간 매출액이 6000억원대를 돌파하였다. 생협법 제정 이전 20년 가까이 임의조직으로 근근히 연명해 오던 ‘한살림’과 ‘생협중앙회’ 시절에 비하여 문자 그대로 ‘눈을 씻고 다시 보자(刮目相對)’할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거의 비슷한 시점에 선포된 정부의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언에 따른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실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들로부터 생협만큼 신뢰를 받는 유통기관이 없다할 만큼 그 활동이 눈부시다.
신뢰받는 유통기관으로 성장
그 단적인 증거가 2010년 초가을 시중 대형마트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배추 한포기가 1만5000원까지 치솟았을 때 생협 점포에서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포기당 1500원에서 2000원에 거래되었다. 생협 매장의 배추는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동이 났었다. 친환경 농산물이라 더 비싸면 비싸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생산농민들이 생협 소비자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행동으로 표시한 것이다. 보통 때 수확철 생산량이 몰려 가격이 폭락할 때도, 품질과 안전성을 믿고 지속 생산을 독려하기 위하여 소비자조합원들이 적정 생산비와 이문이 보장되는 가격에 구매해준데 대한 생산자 농민들의 보은의 표시였다.
생협은 주주 자본가가 따로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주의 이익을 따로 계상할 필요도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신뢰와 공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가 핵심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특징인 유통 이윤을 따로 떼지 않는다. 직거래유통에 따른 직접 비용을 반영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합의한 수수료만 내면 된다. 따라서 유통마진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유통비용 중 인건비 비중도 대단히 낮다. 소비자조합원들의 자원봉사와 봉사수준의 급여체제이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말 뿐인 일반 협동조합과는 크게 차별되는 대목이다. 친환경 생산농민들은 생협이라는 팔 곳이 있어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하고, 소비자조합원들은 생협이라는 안전한 식품구매처가 있어 행복하고 만족해한다.
이렇듯 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없어도 법정 생협사업이 쑥쑥 자라나 이제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희망 제1번지가 되고 있다.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은 일찍부터 생협을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 운동이라고 하여 ‘COOPS(Cooperatives)’라고 부른다. 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롯치텔 7대 원칙도 영국의 롯치텔 노동자들의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생협법 제정됐지만 빗장 여전
이렇게 착하고 긴요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운동이 한동안 법률적인 뒷받침이 없어 표류되고 지리멸렬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 농촌경제연구원장 김동희 박사와 농업기술자협회의 정장섭 선생 등과 함께 생협법 초안을 만들어 정부기관을 찾아다닐 때 싸늘했던 당국자들의 반응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고 싶지 않다. 우리가 만든 생협법 초안은 담당국장의 서랍 속에 20여 년간 잠자고 있었다. 슈퍼마켓과 수퍼체인협회 등 소매업체와 제조업체들의 극심한 훼방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다만 경실련과 정농회가 합작하여 “경실련·정농 생협”을 조직하여 그 책임자 자리를 맡고 나서부터 필자가 겪었던 고통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런 법적인 뒷받침이 없는 임의조직이다 보니 서울시 당국, 가락동 도매시장 상인들, 그리고 세무당국으로부터 푸대접과 박해, 심지어 점포 습격을 받고 개점휴업까지 하였다. 1년간 실적을 결산해 보니 1억2000여만원의 순 적자와 농민들에게 밀린 농산물 대금이 겁 없이 늘어났다. 게다가 이사장 개인 명의(생협은 임의단체임)로 농협과 개인에게 4000여만원 가까운 신규 부채까지 생겨났다. 다른 생협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들 고전을 면치 못하고 부침을 반복해 왔다.
그러던 중 1998년 2월25일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였다. 어마지두에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발령을 받은 다음날인 3월5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첫 번째 국무회의가 열렸다. ‘오늘은 첫 회의라 특별한 안건이 없으니 국무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IMF 위기를 극복할 것이며 치솟는 서민물가를 안정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기 부처의 업무에 관계없이 장관들의 개인 소견을 개진해 보라’고 하신다. 내 차례가 왔다. 20년 가까이 뛰어 다녔던 좌절된 생협운동이 생각났다. 당장 갚아야 할 생협 빚 생각도 떠올랐다.
“저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도국, 중진국, 선진국을 막론하고 시장경제 국가 중에 생협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자를 위한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중소기업 협동조합법은 있음에도 정작 협동조합 운동의 효시격인 소비자협동조합법이 없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익 향상에 실효성이 떨어지고 특히 친환경 유기농식품의 직거래가 어렵습니다. 기존의 생협단체들 모두가 임의조직이므로 행정·재정상 혜택은커녕 감시와 억압마저 받고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들도 잘 믿으려 않습니다. 물가안정 차원과 친환경 농산물의 직거래 촉진 차원에서 생협법이 조속히 제정 공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관부처는 어디요?” “예, 재경부(옛 경제기획원) 소관사항입니다만 농림부가 주도하지 못한다는 조문은 없습니다”라는 문답이 오갔다. 재경부장관 차례가 되자 “우리 부가 주관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끝을 맺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재경부 담당국장이 농림부장관실로 필자를 찾아 왔다. 대뜸 “생협법을 제정할 수 없는(소매업계의 저항)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왜 우리(부서)를 괴롭히십니까”라고 항의하며 대든다. 화가 났으나 참았다. 답변은 우리 부 담당국장을 시켜 당신네 장관에게 직접 하도록 하겠다며 물리쳤다. 그리고 한달 후쯤 열린 국무회의에서 다른 안건을 심의하다가 갑자기 대통령께서 “지난번 논의했던 소비자생협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거요?”라고 물었다. 해당 장관은 태연히 “아직 검토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20년 묵은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 엉겁결에 그만 “20년간 저렇게 검토만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좌중의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다. 대통령의 안색이 변했다. 총리님 표정 역시 굳어졌다. 발언권도 얻지 않고 덥석 고함을 친 필자의 무례한 돌출행동에 대하여 정작 화를 내고 반격하여야 할 재경부장관이 벌떡 일어섰다. “즉시 법제정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분위기를 일신 시켰다. 그리하여 생협 법조문이 그해 가을 완성되었다. 농림부의 의견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어 만족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큰 복병이 나타났다. 국민의 정부 때 IMF 위기극복 차원에서 총리실 산하에 새로 생긴 규제개혁위원회(기업체 회장이 의장)에서 모든 법률안과 행정법규 제도에 대해 국회에 제출하기 전 최종 심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의장님과 모여대 법률학교수 심의위원이 유통업체 편을 들며 제동을 걸었다. 주무부서도 아닌 농림부 직원들만 생협법을 옹호하고 방어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생협중앙회를 설립한다는 조항과 정부의 재정지원 조항이 잘려 나가고, 생협 매장은 친환경 농축산품목만 취급하도록 취급품목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또 생협조합원에 한해서만 생협 매장을 이용하도록 하고 제한적으로 비조합원 소비자들에게는 홍보기간 중에만 총매출의 5% 한도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후자의 일부 독소조항은 2010년 약간 개선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생협의 성장 발전에 발목을 묶어 놓고 있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산자·소비자 ‘큰 등불’ 확신
그런데도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생협은 갈수록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바야흐로 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착한 조합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중 ‘아이쿱’ 같은 생협은 너무 잘나가 단시일내에 사업규모와 범위가 대기업처럼 성장하였다. 자칫 일부 일반 협동조합처럼 관료화와 대기업화되어 착한 생산자농민과 소비자로부터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일 정도이다.
정부기구 다음으로 규모가 제일 큰 기관이며 민간 은행인 농업협동조합 조직이 지주회사체제로 바꿔짐에 따라 가뜩이나 협동조합 운동 본래의 정신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이때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분명 우리 시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큰 등불임에 틀림없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3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국민의 정부’ 시절 제정·공표된 소비자협동조합법(1999년 2월 제정)에 기반하여 새롭게 재출범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일명 ‘생협’)이 12년이 지난 2011년 말 현재 3대 연합체 산하에만도 약 56만여 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간 매출액이 6000억원대를 돌파하였다. 생협법 제정 이전 20년 가까이 임의조직으로 근근히 연명해 오던 ‘한살림’과 ‘생협중앙회’ 시절에 비하여 문자 그대로 ‘눈을 씻고 다시 보자(刮目相對)’할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거의 비슷한 시점에 선포된 정부의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언에 따른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실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들로부터 생협만큼 신뢰를 받는 유통기관이 없다할 만큼 그 활동이 눈부시다.
신뢰받는 유통기관으로 성장
그 단적인 증거가 2010년 초가을 시중 대형마트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배추 한포기가 1만5000원까지 치솟았을 때 생협 점포에서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포기당 1500원에서 2000원에 거래되었다. 생협 매장의 배추는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동이 났었다. 친환경 농산물이라 더 비싸면 비싸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생산농민들이 생협 소비자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행동으로 표시한 것이다. 보통 때 수확철 생산량이 몰려 가격이 폭락할 때도, 품질과 안전성을 믿고 지속 생산을 독려하기 위하여 소비자조합원들이 적정 생산비와 이문이 보장되는 가격에 구매해준데 대한 생산자 농민들의 보은의 표시였다.
생협은 주주 자본가가 따로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주의 이익을 따로 계상할 필요도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신뢰와 공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가 핵심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특징인 유통 이윤을 따로 떼지 않는다. 직거래유통에 따른 직접 비용을 반영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합의한 수수료만 내면 된다. 따라서 유통마진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유통비용 중 인건비 비중도 대단히 낮다. 소비자조합원들의 자원봉사와 봉사수준의 급여체제이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말 뿐인 일반 협동조합과는 크게 차별되는 대목이다. 친환경 생산농민들은 생협이라는 팔 곳이 있어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하고, 소비자조합원들은 생협이라는 안전한 식품구매처가 있어 행복하고 만족해한다.
이렇듯 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없어도 법정 생협사업이 쑥쑥 자라나 이제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희망 제1번지가 되고 있다.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은 일찍부터 생협을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 운동이라고 하여 ‘COOPS(Cooperatives)’라고 부른다. 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롯치텔 7대 원칙도 영국의 롯치텔 노동자들의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생협법 제정됐지만 빗장 여전
이렇게 착하고 긴요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운동이 한동안 법률적인 뒷받침이 없어 표류되고 지리멸렬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 농촌경제연구원장 김동희 박사와 농업기술자협회의 정장섭 선생 등과 함께 생협법 초안을 만들어 정부기관을 찾아다닐 때 싸늘했던 당국자들의 반응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고 싶지 않다. 우리가 만든 생협법 초안은 담당국장의 서랍 속에 20여 년간 잠자고 있었다. 슈퍼마켓과 수퍼체인협회 등 소매업체와 제조업체들의 극심한 훼방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다만 경실련과 정농회가 합작하여 “경실련·정농 생협”을 조직하여 그 책임자 자리를 맡고 나서부터 필자가 겪었던 고통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런 법적인 뒷받침이 없는 임의조직이다 보니 서울시 당국, 가락동 도매시장 상인들, 그리고 세무당국으로부터 푸대접과 박해, 심지어 점포 습격을 받고 개점휴업까지 하였다. 1년간 실적을 결산해 보니 1억2000여만원의 순 적자와 농민들에게 밀린 농산물 대금이 겁 없이 늘어났다. 게다가 이사장 개인 명의(생협은 임의단체임)로 농협과 개인에게 4000여만원 가까운 신규 부채까지 생겨났다. 다른 생협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들 고전을 면치 못하고 부침을 반복해 왔다.
그러던 중 1998년 2월25일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였다. 어마지두에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발령을 받은 다음날인 3월5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첫 번째 국무회의가 열렸다. ‘오늘은 첫 회의라 특별한 안건이 없으니 국무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IMF 위기를 극복할 것이며 치솟는 서민물가를 안정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기 부처의 업무에 관계없이 장관들의 개인 소견을 개진해 보라’고 하신다. 내 차례가 왔다. 20년 가까이 뛰어 다녔던 좌절된 생협운동이 생각났다. 당장 갚아야 할 생협 빚 생각도 떠올랐다.
“저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도국, 중진국, 선진국을 막론하고 시장경제 국가 중에 생협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자를 위한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중소기업 협동조합법은 있음에도 정작 협동조합 운동의 효시격인 소비자협동조합법이 없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익 향상에 실효성이 떨어지고 특히 친환경 유기농식품의 직거래가 어렵습니다. 기존의 생협단체들 모두가 임의조직이므로 행정·재정상 혜택은커녕 감시와 억압마저 받고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들도 잘 믿으려 않습니다. 물가안정 차원과 친환경 농산물의 직거래 촉진 차원에서 생협법이 조속히 제정 공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관부처는 어디요?” “예, 재경부(옛 경제기획원) 소관사항입니다만 농림부가 주도하지 못한다는 조문은 없습니다”라는 문답이 오갔다. 재경부장관 차례가 되자 “우리 부가 주관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끝을 맺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재경부 담당국장이 농림부장관실로 필자를 찾아 왔다. 대뜸 “생협법을 제정할 수 없는(소매업계의 저항)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왜 우리(부서)를 괴롭히십니까”라고 항의하며 대든다. 화가 났으나 참았다. 답변은 우리 부 담당국장을 시켜 당신네 장관에게 직접 하도록 하겠다며 물리쳤다. 그리고 한달 후쯤 열린 국무회의에서 다른 안건을 심의하다가 갑자기 대통령께서 “지난번 논의했던 소비자생협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거요?”라고 물었다. 해당 장관은 태연히 “아직 검토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20년 묵은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 엉겁결에 그만 “20년간 저렇게 검토만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좌중의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다. 대통령의 안색이 변했다. 총리님 표정 역시 굳어졌다. 발언권도 얻지 않고 덥석 고함을 친 필자의 무례한 돌출행동에 대하여 정작 화를 내고 반격하여야 할 재경부장관이 벌떡 일어섰다. “즉시 법제정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분위기를 일신 시켰다. 그리하여 생협 법조문이 그해 가을 완성되었다. 농림부의 의견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어 만족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큰 복병이 나타났다. 국민의 정부 때 IMF 위기극복 차원에서 총리실 산하에 새로 생긴 규제개혁위원회(기업체 회장이 의장)에서 모든 법률안과 행정법규 제도에 대해 국회에 제출하기 전 최종 심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의장님과 모여대 법률학교수 심의위원이 유통업체 편을 들며 제동을 걸었다. 주무부서도 아닌 농림부 직원들만 생협법을 옹호하고 방어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생협중앙회를 설립한다는 조항과 정부의 재정지원 조항이 잘려 나가고, 생협 매장은 친환경 농축산품목만 취급하도록 취급품목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또 생협조합원에 한해서만 생협 매장을 이용하도록 하고 제한적으로 비조합원 소비자들에게는 홍보기간 중에만 총매출의 5% 한도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후자의 일부 독소조항은 2010년 약간 개선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생협의 성장 발전에 발목을 묶어 놓고 있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산자·소비자 ‘큰 등불’ 확신
그런데도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생협은 갈수록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바야흐로 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착한 조합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중 ‘아이쿱’ 같은 생협은 너무 잘나가 단시일내에 사업규모와 범위가 대기업처럼 성장하였다. 자칫 일부 일반 협동조합처럼 관료화와 대기업화되어 착한 생산자농민과 소비자로부터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일 정도이다.
정부기구 다음으로 규모가 제일 큰 기관이며 민간 은행인 농업협동조합 조직이 지주회사체제로 바꿔짐에 따라 가뜩이나 협동조합 운동 본래의 정신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이때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분명 우리 시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큰 등불임에 틀림없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3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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