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극복에는 도시·농촌이 따로 없다 | 전희식 장수군 농민 /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 작성일2020/03/05 14:54
- 조회 413
가뭄 극복에는 도시·농촌이 따로 없다
| 전희식 장수군 농민 /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잔뜩 흐린 날 해거름에 물 호스를 연결해서 들깨 모종을 옮겼지만 다음날 다 말라 죽었다. 발걸음마다 먼지만 풀풀 날린다. 콩도 그렇고 고추랑 채소잎사귀도 하얗게 말라 바스라진다.
농촌은 도시민의 식량 창고
하루 세 번이나 논에 물을 보러 다니던 동네 아저씨는 오늘부터 밤샘에 들어간다고 한다. 물꼬에 손대는 놈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충혈 된 눈을 비빈다. 아주 심각하다. 이미 이웃 간의 물싸움도 시작되고 있다. 윗집에서 냇물을 끌어 올려 축사에 물을 뿌리자 아랫집 논 주인이 올라와서 냇물 함부로 끌어간다고 삿대질을 한다.
곧 추수가 시작 될 양파는 자라지 못해 밤송이만 하고 마늘통은 눈에 띄게 작다. 생육의 절정기에 다다른 감자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다.
가뭄은 곡식이 안 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더위가 같이 오다보니 산불이 빈번하고 병충해도 극심하다. 과수도 매한가지다. 이러다 문득 장마와 태풍이 몰려오면 올 농사는 이대로 주저 않는 게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도시민은 무관할까? 천만이다. 가뭄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바로 도시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영향을 받는다. 가뭄은 농사짓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뭄이 계속될수록 날씨는 더 무더워질 것이고 그러면 냉방기 사용량도 급증하게 돼 있다. 바로 이것이다. 가뭄은 상상하기도 싫은 광범위한 정전사태를 몰고 올 수도 있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가뭄 극복에 나서야 할 이유다.
그런데 올 가뭄은 유별나다. 국지적인 소나기와 우박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가뭄피해가 일어나는 동시에 물난리가 일어나는 식이다.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는 끊임없이 지구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기 때문에 지구 한쪽에 가뭄이 길면 다른 쪽에서는 홍수가 나는 법이다. 겨울에 한파가 심하면 여름에는 혹서가 오기 마련이듯이 더 이상 가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도 가뭄 해소 노력 필요
가뭄극복 노력은 두 갈래의 방향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긴급대응문제다. 수리시설을 점검하고 양수기를 다 동원해서 당장 갈라지는 논에 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농촌지역 지자체만이 아니고 중·대도시의 지방정부도 나서야한다. 양수기 보내기, 농촌 일손돕기를 시혜 차원이 아니라 도시민의 식량창고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당장 수돗물 한 방울도 아껴야 논과 밭으로 흘러 갈 물이 더 생겨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대적인 절수운동으로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된다면 이 또한 큰 소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두 번째 대응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 가뭄 대책은 중·장기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가뭄이나 폭우, 한파와 혹서는 이제 일상이 됐다고 봐야 한다. 유럽에는 기후변화대응 식품(탈 석유 자연재배 농산물), 기후변화대응 에너지 시스템(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매스 등), 기후변화대응 도시 등 ‘기후변화대응’이라는 말이 즐비하다.
평년 강수량의 37%밖에 안 되는 지금의 가뭄도 지구차원의 기후변화 산물이라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모든 개발성장 정책, 석유화학 농법, 에너지 시설 등을 과감히 줄이거나 없애가지 않고서는 모든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 될 것이다.
논과 밭이 쩍쩍 갈라지는데 4대강의 물은 철철 넘치는 현실. 물은 많지만 수위가 높아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물을 가두는데 30조를 퍼 붓는 토목공사가 기후변화를 촉진시켰다고 보면 된다.
기후변화 대응책 마련 시급
저수지에 물이 차 본적이 없는데도 농어촌공사가 저수지 둑을 더 높인다고 자행한 자연파괴 역시 기후변화를 촉진한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날씨와 기후에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하겠다고 시도하는 빌딩농업 역시 기후변화의 악역을 맡게 될 게 뻔하다.
기후변화 대응책이야말로 진정한 가뭄 극복의 길이 될 것이다. 양수기로 퍼 올린다고 한정 없이 물이 나와 주는 것은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4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전희식 장수군 농민 /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잔뜩 흐린 날 해거름에 물 호스를 연결해서 들깨 모종을 옮겼지만 다음날 다 말라 죽었다. 발걸음마다 먼지만 풀풀 날린다. 콩도 그렇고 고추랑 채소잎사귀도 하얗게 말라 바스라진다.
농촌은 도시민의 식량 창고
하루 세 번이나 논에 물을 보러 다니던 동네 아저씨는 오늘부터 밤샘에 들어간다고 한다. 물꼬에 손대는 놈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충혈 된 눈을 비빈다. 아주 심각하다. 이미 이웃 간의 물싸움도 시작되고 있다. 윗집에서 냇물을 끌어 올려 축사에 물을 뿌리자 아랫집 논 주인이 올라와서 냇물 함부로 끌어간다고 삿대질을 한다.
곧 추수가 시작 될 양파는 자라지 못해 밤송이만 하고 마늘통은 눈에 띄게 작다. 생육의 절정기에 다다른 감자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다.
가뭄은 곡식이 안 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더위가 같이 오다보니 산불이 빈번하고 병충해도 극심하다. 과수도 매한가지다. 이러다 문득 장마와 태풍이 몰려오면 올 농사는 이대로 주저 않는 게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도시민은 무관할까? 천만이다. 가뭄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바로 도시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영향을 받는다. 가뭄은 농사짓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뭄이 계속될수록 날씨는 더 무더워질 것이고 그러면 냉방기 사용량도 급증하게 돼 있다. 바로 이것이다. 가뭄은 상상하기도 싫은 광범위한 정전사태를 몰고 올 수도 있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가뭄 극복에 나서야 할 이유다.
그런데 올 가뭄은 유별나다. 국지적인 소나기와 우박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가뭄피해가 일어나는 동시에 물난리가 일어나는 식이다.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는 끊임없이 지구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기 때문에 지구 한쪽에 가뭄이 길면 다른 쪽에서는 홍수가 나는 법이다. 겨울에 한파가 심하면 여름에는 혹서가 오기 마련이듯이 더 이상 가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도 가뭄 해소 노력 필요
가뭄극복 노력은 두 갈래의 방향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긴급대응문제다. 수리시설을 점검하고 양수기를 다 동원해서 당장 갈라지는 논에 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농촌지역 지자체만이 아니고 중·대도시의 지방정부도 나서야한다. 양수기 보내기, 농촌 일손돕기를 시혜 차원이 아니라 도시민의 식량창고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당장 수돗물 한 방울도 아껴야 논과 밭으로 흘러 갈 물이 더 생겨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대적인 절수운동으로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된다면 이 또한 큰 소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두 번째 대응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 가뭄 대책은 중·장기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가뭄이나 폭우, 한파와 혹서는 이제 일상이 됐다고 봐야 한다. 유럽에는 기후변화대응 식품(탈 석유 자연재배 농산물), 기후변화대응 에너지 시스템(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매스 등), 기후변화대응 도시 등 ‘기후변화대응’이라는 말이 즐비하다.
평년 강수량의 37%밖에 안 되는 지금의 가뭄도 지구차원의 기후변화 산물이라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모든 개발성장 정책, 석유화학 농법, 에너지 시설 등을 과감히 줄이거나 없애가지 않고서는 모든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 될 것이다.
논과 밭이 쩍쩍 갈라지는데 4대강의 물은 철철 넘치는 현실. 물은 많지만 수위가 높아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물을 가두는데 30조를 퍼 붓는 토목공사가 기후변화를 촉진시켰다고 보면 된다.
기후변화 대응책 마련 시급
저수지에 물이 차 본적이 없는데도 농어촌공사가 저수지 둑을 더 높인다고 자행한 자연파괴 역시 기후변화를 촉진한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날씨와 기후에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하겠다고 시도하는 빌딩농업 역시 기후변화의 악역을 맡게 될 게 뻔하다.
기후변화 대응책이야말로 진정한 가뭄 극복의 길이 될 것이다. 양수기로 퍼 올린다고 한정 없이 물이 나와 주는 것은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4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첨부파일1 전희식.jpg (용량 : 28.4K / 다운로드수 :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