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역량강화, 왜 필요한가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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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역량강화, 왜 필요한가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최근 중앙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사업의 대상지역 선정을 위한 현지심사에 참여해 몇몇 지역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각 지역마다 많은 노력을 해서 사업제안서를 만들고, 현장설명과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준비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적인 재원이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로서는 20억~3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정책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자체, 정책사업 유치 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느낀 아쉬운 점은 ‘우리에게 돈만 지원해 주면 목적에 맞춰 잘 쓰겠다. 선정만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정된 사업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갖췄는가는 말하지 않고, 사업비만 주면 알아서 잘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사업의 취지나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지역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 자금이 들어가면 그 돈은 지역발전을 위한 약이 되는 게 아니라 지역을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 독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에서는 외부사업을 유치하려는 노력 보다 먼저 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 즉, 지역의 추진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 정책사업이 우선적으로 배정돼야 한다.
추진 역량 갖추기 우선돼야
물론, 제도적인 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공모제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공모방식에 의한 사업비 배정은 필연적으로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현행 공모제방식은 마치 ‘미인대회’ 방식과 같아서 성형과 진한 화장술 덕분에 미인대회의 왕관을 차지했다 하더라고 화장을 지우고 나면 자신의 부모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심사에 참여할 당시의 상황과 심사가 끝난 후의 모습이 너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외부사업을 유치했다고 하더라도 자금을 배정받고 실제 사업을 시행하는 단계에 이르면 지역의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그동안 무수히 보아 왔다. 이러한 경향은 사업비의 규모가 클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현행 공모제방식은 현장심사를 철저히 하든지 아니면 사업의 선정권한 자체를 지역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의 사정은 중앙보다는 지역에서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책임도 제대로 물어야 한다. 지역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주체적인 역량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은 이를 위한 수업료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사업의 지원규모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지역은 사업추진 역량이나 준비는 잘돼 있는데 지역실정에 비해 자금지원규모가 너무 큰 경우가 있었다. 과거, 우리는 과다한 보조사업의 폐해를 경험한 적이 많다. 자신의 역량은 한가마의 쌀 밖에 짊어질 수 없는데, 공짜(보조)로 준다고 하니까 두가마의 쌀을 짊어지고 가다가 쌀가마의 무게에 눌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압사당하고 마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과소화·고령화로 인해 스스로 지역발전을 추동할 형편이 못되는 농촌의 지역 현실을 고려한다면 최저한(national minium)의 삶을 위한 국가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러한 지원이 지역의 다양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정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지원규모를 다양화함으로써 지역의 실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자신의 역량에 맞춰 적절하게 사업량을 조정할 수 있고, 이것이 사업의 성공적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업규모를 지역실정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규모를 다양화한다면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정책사업의 성공가능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현행 공모제 방식 개선 필요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다양한 정책사업을 지역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가령 지역일자리 창출사업을 본다면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 여성가족부의 농촌여성일자리사업 등 각 부처별로 다양한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내용상으로는 유사하지만 시행부처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단위에서도 해당 실과소별로 각 사업이 독자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각 부처에 대응해 지자체까지 부서별로 칸막이가 고착화돼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각 사업의 통합적 추진이 불가능하지만, 종합행정을 추구하는 지자체 단위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통합적 추진이 가능하고, 전북 완주나 진안처럼 실제로 지방행정을 이렇게 시행하고 있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통합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재원의 효과를 높인다면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중앙정부에서는 지역단위에서의 통합적 추진을 촉진하기 위한 선진사례를 발굴·확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적절한 가이드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서 지방정부의 의지를 추동할 수 있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현 단계에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4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최근 중앙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사업의 대상지역 선정을 위한 현지심사에 참여해 몇몇 지역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각 지역마다 많은 노력을 해서 사업제안서를 만들고, 현장설명과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준비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적인 재원이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로서는 20억~3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정책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자체, 정책사업 유치 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느낀 아쉬운 점은 ‘우리에게 돈만 지원해 주면 목적에 맞춰 잘 쓰겠다. 선정만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정된 사업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갖췄는가는 말하지 않고, 사업비만 주면 알아서 잘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사업의 취지나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지역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 자금이 들어가면 그 돈은 지역발전을 위한 약이 되는 게 아니라 지역을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 독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에서는 외부사업을 유치하려는 노력 보다 먼저 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 즉, 지역의 추진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 정책사업이 우선적으로 배정돼야 한다.
추진 역량 갖추기 우선돼야
물론, 제도적인 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공모제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공모방식에 의한 사업비 배정은 필연적으로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현행 공모제방식은 마치 ‘미인대회’ 방식과 같아서 성형과 진한 화장술 덕분에 미인대회의 왕관을 차지했다 하더라고 화장을 지우고 나면 자신의 부모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심사에 참여할 당시의 상황과 심사가 끝난 후의 모습이 너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외부사업을 유치했다고 하더라도 자금을 배정받고 실제 사업을 시행하는 단계에 이르면 지역의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그동안 무수히 보아 왔다. 이러한 경향은 사업비의 규모가 클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현행 공모제방식은 현장심사를 철저히 하든지 아니면 사업의 선정권한 자체를 지역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의 사정은 중앙보다는 지역에서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책임도 제대로 물어야 한다. 지역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주체적인 역량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은 이를 위한 수업료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사업의 지원규모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지역은 사업추진 역량이나 준비는 잘돼 있는데 지역실정에 비해 자금지원규모가 너무 큰 경우가 있었다. 과거, 우리는 과다한 보조사업의 폐해를 경험한 적이 많다. 자신의 역량은 한가마의 쌀 밖에 짊어질 수 없는데, 공짜(보조)로 준다고 하니까 두가마의 쌀을 짊어지고 가다가 쌀가마의 무게에 눌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압사당하고 마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과소화·고령화로 인해 스스로 지역발전을 추동할 형편이 못되는 농촌의 지역 현실을 고려한다면 최저한(national minium)의 삶을 위한 국가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러한 지원이 지역의 다양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정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지원규모를 다양화함으로써 지역의 실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자신의 역량에 맞춰 적절하게 사업량을 조정할 수 있고, 이것이 사업의 성공적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업규모를 지역실정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규모를 다양화한다면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정책사업의 성공가능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현행 공모제 방식 개선 필요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다양한 정책사업을 지역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가령 지역일자리 창출사업을 본다면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 여성가족부의 농촌여성일자리사업 등 각 부처별로 다양한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내용상으로는 유사하지만 시행부처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단위에서도 해당 실과소별로 각 사업이 독자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각 부처에 대응해 지자체까지 부서별로 칸막이가 고착화돼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각 사업의 통합적 추진이 불가능하지만, 종합행정을 추구하는 지자체 단위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통합적 추진이 가능하고, 전북 완주나 진안처럼 실제로 지방행정을 이렇게 시행하고 있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통합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재원의 효과를 높인다면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중앙정부에서는 지역단위에서의 통합적 추진을 촉진하기 위한 선진사례를 발굴·확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적절한 가이드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서 지방정부의 의지를 추동할 수 있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현 단계에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6월 제244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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