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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애그플레이션시대, 위험한 MB농정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前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15:10
    • 조회 454
    애그플레이션시대, 위험한 MB농정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前 농림부 장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네가지 유형의 지휘관론을 피력한 바 있다. ① 두뇌(지식)가 명석하고 부지런한 지휘관, ②두뇌가 명석하고 게으른 지휘관, ③ 두뇌가 부족하나 부지런한 지휘관, ④ 두뇌가 부족하고 게으른 지휘관이다. 이 넷중에서 두뇌가 부족한데도 대단히 부지런한 제③ 유형의 지휘관이 군대나 한 조직을 통솔할 때 자칫 그 부하들을 대량 살상에 이르게 하거나 대형 사고를 낸다고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군(軍) 통수권과 최종 통치권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부여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어떤 유형의 지휘관이냐에 따라 국민의 생존권과 국태민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단 북한군 병사가 초소문을 노크하고 귀순한 사건에 대한 최고 지휘관들의 오판이 빚은 일파만파의 해프닝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5천만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식량과 농업문제에 관한한 최고 지도자단의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정책 판단이 얼마나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것인지 MB정권 5년의 치세가 입증한다.

    식량·농업정책 판단 근시안적

    지난 7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속칭 ‘영일대군’으로 불렸던 그의 친형과 측근의 비리 구속 사태를 계기로 재임 중 여섯 번째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그러면서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겠다는 뜻)의 각오로 임기 말까지 성심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소수 축산인들에게 손해가 될지 모르지만 국민 소비자들은 값싼 양질의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수 있게 돼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오판한 것이 그의 대국민 사과의 첫 작품이었다.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 초대된 기쁨에 도취하여 그만 대미 쇠고기 수입조건 협상에서 광우병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아 국제거래가 없는 30개월령 이상의 모든 쇠고기와 광우병 위험물질(SRM)까지 덜컹 완전 수입개방에 합의해줌으로써 뜻밖에 취임 초 3개월여 동안 범국민적인 촛불시위 사태를 겪어야 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국가의 의무, 즉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국가는 마땅히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한다는 철학이 토건(토목·건설) 인생의 사전엔 없었던 모양이다.
    먹거리 문제에 관한 한 MB 정권은 이상할 정도로 사대주의 일변도였다. 60여개국과의 동시다발 또는 잇따른 FTA 협상으로 가족농 중심의 우리나라 식량·농업 부문은 비명횡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우리 농축산물은 나쁘고 비싸며 외국 것은 무조건 좋고 싸다는 편향된 가치관이, 그리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들여 올 수 있다는 얄팍한 장사 속이 그로 하여금 같은 주제로 두 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도 구제역 사태에 임해서는 무능한 늦장 대처로 350만두의 소, 돼지를 생매장하고 A1 조류인프루엔자 사태로 무수한 닭, 오리들을 잇달아 생매장하였다.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을 생축(生畜)의 아비규환 터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고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 사과, 배 등 채소류와 청과물을 자연재해와 농정실패로부터 온전히 지켜 낸 것도 아니다. 최근의 심상치 않은 김장배추 파동 조짐을 단순히 이상기후 탓만이라고 둘러대기엔 그동안의 정부 대응책이 너무 즉자적(卽自的)이고 근시안적이었다. 뻔히 3-4개월 후면 가격폭락이 예상되는데도 당장 무관세 또는 할당관세 수입을 마구잡이로 남발함으로써 장기적인 생산기반의 안정성을 깨뜨려 버린 것이다. 지금 돼지고기와 쇠고기 가격이 반토막으로 폭락한 것 역시 땜질식 물가정책 때문이다. MB 가라사대, 농축산물 품목별로 책임관제를 실시하여 직을 걸고 그 가격을 안정시키라고 지시했으니 담당 공직자들은 무관세 할당관세로 수입촉진 현상만 호도했을 뿐이다. 생산기반의 붕괴, 농민들의 생산의욕 감퇴는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가격이 폭락하면 행정적인 문책을 받지 않지만, 폭등할 경우 인사행정에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즉자적, 근시안적 무관세 수입을 남발하는 정책 담당자들을 나무랄 순 없다. 그 결과 ‘고기로 상추를 싸 먹는’ 웃지못할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식량주권 상실 남의 일 아냐

    그것도 쌀, 보리, 콩, 밀, 옥수수 등 식량(곡물) 자급률의 참담한 성취도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게 한다. 이 정부가 수립했던 곡물자급률 목표치 32%를 달성하려면 경지면적은 최소 175만2000㏊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농지가 투기화되어 각종 비농업용으로 전용돼 2011년 현재 169만8000㏊만 남아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근 20만㏊가 골프장, 호텔, 리조트, 공장 등 도시산업용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이상기후 효과까지 겹쳐 2011년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2.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지난해 쌀 자급률 역시 역대 최저치인 83%로 떨어졌다. 올해 추수 예상치는 그보다 더 낮은 80% 이하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대체 장차 이 나라의 식량주권과 자주권, 그리고 국민의 생존권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과거 구 소련과 동구권, 아랍권이 식량주권을 잃고 나라와 민족이 분열되고 붕괴되기에 이르렀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농산물시장의 완전 개방을 불러온 WTO 협정에 이어 60개에 가까운 무관세 자유무역(FTA) 협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싼 외국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안심이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돈을 주고 자유로이 수입해다 먹을 수 있는 태평성대(?)가 얼마나 지속될런지 작금의 범지구적 이상기후 현상과 곡물수출국들의 작황이 심상치 않다.

    ‘사이후이’ 허망하게 끝나지 않길

    이제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의 농업사정이 곧 바로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존권의 문제로 자자손손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명색이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에 식량을 23%도 자급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은 그나마 민관이 합의하여 식량·농업 지키기에 일체감을 형성하고 일조유사시의 국가적 긴급대처 계획도 튼튼히 세워 놓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75%인데도 수많은 아사자와 영양실조자를 내며 근근이 밖에서 식량을 빌어먹고 있는 북한을 이웃형제로 두고 있다. 세계 곡물수급사정은 점점 이상기후 등으로 빠듯해지고 있는데다가 가축사료 용도의 급격한 증가, 사람 대신 자동차를 먹여 굴리는 에탄올 대체석유 제조용으로 곡물들이 빠져나가고 있어 세계곡물시장의 장기 전망은 대단히 어둡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농업, 농촌, 농민, 식량문제 해결에 부지런히 애쓰며 뛰어 다니는, 제③ 유형 지도자의 ‘사이후이’가 허망하게 끝나지 않기만을 학수고대한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10월 247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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