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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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2005년 신활력사업사업이 시작된 이후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역량강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각종 주민교육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중앙정부의 정책 사업을 배정받기하기 위해서는 관련교육을 이수해야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곧 사업유치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행정은 물론이고 주민들까지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정책자금은 눈먼 돈이고,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다’라는 시절과 비교한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없다.
올바른 지도자 선택의 중요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참가는 귀찮게 여기면서 ‘사업만 주면 잘할 수 있다’고 배짱을 부리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다. 최근, 경북 어느 지역에서의 경험이다. 해당 지자체로부터 주민교육과 마을사업컨설팅을 의뢰받고, 마을을 순회하면서 주민교육을 시행하던 중 어느 분이 ‘돈만 주면 되지 왜 바쁜 우리를 자꾸 오라 가라 괴롭히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나은 농촌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애써 왔는데, 내가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니! 왜 이러한 불만이 생겨났을까.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 때문은 아닐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무시한 채, 사업선정권자의 자의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정책 사업을 배정해 온 과거의 잘못된 악습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과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객관적인 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결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주민 길들이기 식의 정책을 추진한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일부 행정 관료와 주민들은 서로 공범이 돼 정상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자기의 잇속만 챙겨 온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 이제 그러한 비정상적인 인식을 정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고, 공익을 사익에 우선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장밋빛 공약’ 냉철히 판단을
바야흐로 선거의 시절이다. 과거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간다’는 광고카피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올림픽에서 불공정한 판정으로 억울함을 겪은 스포츠선수가 TV에 나와서 ‘10년보다 더 긴 1초’를 상기하면서 ‘1초 동안의 선택(=투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홍보하는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다. 모두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라 이해된다. 모두가 저 마다 장밋빛 공약을 내걸고 있다.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어디에서 그 많은 재원을 충당할 것인지, 혹시 숨겨둔 억만금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우리가 그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돈만 주면 그만’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송대(宋代)의 화두집(話頭集)으로서 선종(禪宗)을 대표하는 벽암록(碧巖錄)에 나온 것으로서, 제자가 묻고 스승이 답하는 것을 제자가 ‘줄()’하면 스승이 ‘탁(啄)’한다는 의미로서 쓰였지만, 항간에는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할 때 새끼가 안에서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대해 두꺼운 껍질을 톡톡 쪼는 신호(?)를 보내면 밖에서 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탁탁 쪼는 행위(啄)가 동시에 일어날 때 비로소 두꺼운 알이 깨지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는 의미로서, 어떤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합심해야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정당한 세상 만드는 기회로
후보자가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는지 헛된 신호를 보내는지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소중한 달걀만 깨뜨리고 말 것이다. 제대로 된 농촌개발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또다시 ‘돈만 주는 세상’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당한 역량을 가진 지역과 사람에게 제대로 된 정책이 배정되고, 그 정책이 지역 활성화와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정상이 비정상을 이기고 노력한자가 그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줄탁동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11월 248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2005년 신활력사업사업이 시작된 이후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역량강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각종 주민교육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중앙정부의 정책 사업을 배정받기하기 위해서는 관련교육을 이수해야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곧 사업유치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행정은 물론이고 주민들까지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정책자금은 눈먼 돈이고,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다’라는 시절과 비교한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없다.
올바른 지도자 선택의 중요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참가는 귀찮게 여기면서 ‘사업만 주면 잘할 수 있다’고 배짱을 부리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다. 최근, 경북 어느 지역에서의 경험이다. 해당 지자체로부터 주민교육과 마을사업컨설팅을 의뢰받고, 마을을 순회하면서 주민교육을 시행하던 중 어느 분이 ‘돈만 주면 되지 왜 바쁜 우리를 자꾸 오라 가라 괴롭히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나은 농촌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애써 왔는데, 내가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니! 왜 이러한 불만이 생겨났을까.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 때문은 아닐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무시한 채, 사업선정권자의 자의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정책 사업을 배정해 온 과거의 잘못된 악습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과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객관적인 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결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주민 길들이기 식의 정책을 추진한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일부 행정 관료와 주민들은 서로 공범이 돼 정상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자기의 잇속만 챙겨 온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 이제 그러한 비정상적인 인식을 정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고, 공익을 사익에 우선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장밋빛 공약’ 냉철히 판단을
바야흐로 선거의 시절이다. 과거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간다’는 광고카피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올림픽에서 불공정한 판정으로 억울함을 겪은 스포츠선수가 TV에 나와서 ‘10년보다 더 긴 1초’를 상기하면서 ‘1초 동안의 선택(=투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홍보하는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다. 모두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라 이해된다. 모두가 저 마다 장밋빛 공약을 내걸고 있다.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어디에서 그 많은 재원을 충당할 것인지, 혹시 숨겨둔 억만금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우리가 그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돈만 주면 그만’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송대(宋代)의 화두집(話頭集)으로서 선종(禪宗)을 대표하는 벽암록(碧巖錄)에 나온 것으로서, 제자가 묻고 스승이 답하는 것을 제자가 ‘줄()’하면 스승이 ‘탁(啄)’한다는 의미로서 쓰였지만, 항간에는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할 때 새끼가 안에서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대해 두꺼운 껍질을 톡톡 쪼는 신호(?)를 보내면 밖에서 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탁탁 쪼는 행위(啄)가 동시에 일어날 때 비로소 두꺼운 알이 깨지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는 의미로서, 어떤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합심해야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정당한 세상 만드는 기회로
후보자가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는지 헛된 신호를 보내는지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소중한 달걀만 깨뜨리고 말 것이다. 제대로 된 농촌개발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또다시 ‘돈만 주는 세상’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당한 역량을 가진 지역과 사람에게 제대로 된 정책이 배정되고, 그 정책이 지역 활성화와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정상이 비정상을 이기고 노력한자가 그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줄탁동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11월 248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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