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5:18
- 조회 433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끝났다.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51.6%의 지지를 보냈다. 사상 첫 과반득표의 정권이 탄생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48.4%는 여전히 새로운 정권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정권을 구성하기 위해 인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5년의 청사진을 만들어 갈 것이다. 새로운 정권의 농정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고 희망해야 할까?
새 정부, MB농정 과오 반복 않길
당선자 측의 선거공약으로 미뤄 보면 MB정부의 농정흐름과 큰 차이가 없을 듯도 보인다. 그러나 ‘돈 버는 농업’, ‘경쟁력 제일주의 농정’을 표방한 MB농정에 대한 현장농민들의 평가가 100점 만점에 31.4점에 불과했다(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MB정권 5년간 가구당 농업소득은 1181만원에서 1009만원으로 줄어들었으며,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11.7배에 달해 도시(4.5배)에 비해 농촌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정부의 지원과 그 혜택이 소수의 상위농가에게 집중된 반면 다수의 소농과 빈농들은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MB정권의 농정기조는 당선자가 강조한 ‘국민대통합’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해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책의 성과가 소수에 집중되는 농정이 대통합정신에 일치할리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 중심 농정기조서 탈피
새 정부에서는 우선 농정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소수의 상위농가 중심의 경쟁력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철회돼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주체 간 경쟁은 불가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농업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원초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시장’이나 ‘경쟁력’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신정부에서는 MB정권의 우(愚)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농정의 기조를 ‘경쟁력 중심’에서 ‘지속가능성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경쟁력 중심의 논리만을 강요한다면 결국은 우리 농업의 왜소화와 왜곡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 농촌의 과소화와 황폐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 농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농지와 사람(농민)이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968년 231만8000㏊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2011년에는 169만8000㏊(논 96만㏊, 밭 73만8000㏊)로 줄어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경지면적은 162만4000㏊, 2022년에는 158만㏊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농식품부에서는 2020년 식량자급률목표와 국제곡물가격 등을 감안한 농지소요면적은 160만㏊ 안팎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향후 10여년이 가기 전에 농지부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농민은 어떤가. 2010년 306만8000명이던 농가인구는 작년에 296만5000명으로 1년 사이에 3.4%나 급감했으며, 2002년 400만명 선이 무너진 이후 10년 만에 300만명 선이 붕괴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령화이다. 2011년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36.2%에 달했다. 이는 도시지역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이며, 농업경영주의 고령화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농지가 적정수준 이하로 줄어들고 농민의 질적·양적 급감은 결국 우리 농업의 지속성을 약화시키고 경쟁력 제고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농지제도를 재정립하고 농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보장과 복지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소농구조 하에서 미국이나 호주, 일부 유럽국가와 같은 규모화 중심의 경쟁력 강화는 불가능하며, 그러한 정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농업의 개방화와 대규모 농민축출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경쟁력 확보는 지금까지와 같은 개별농가 중심의 규모화가 아니라 소농의 조직화를 통한 규모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는 정책은 농촌의 양극화를 막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농촌복지정책이나 다름없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나아가야
최근 2~3년간 한반도는 104년만의 가뭄, 55년만의 한파, 18년만의 폭설, 3년 연속 태풍으로 인해 흉년이 지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작황부진으로 인해 2000년 이후 식량부족과 국제곡물가격 급등현상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식량위기는 방글라데시, 멕시코, 이집트 등 30여개국의 폭동을 초래했으며, 지난해는 중동을 휩쓴 ‘자스민 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22.6%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제고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애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신정부의 농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명확해졌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튼튼히 하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농정패러다임을 요구하며, 또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12월 249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끝났다.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51.6%의 지지를 보냈다. 사상 첫 과반득표의 정권이 탄생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48.4%는 여전히 새로운 정권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정권을 구성하기 위해 인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5년의 청사진을 만들어 갈 것이다. 새로운 정권의 농정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고 희망해야 할까?
새 정부, MB농정 과오 반복 않길
당선자 측의 선거공약으로 미뤄 보면 MB정부의 농정흐름과 큰 차이가 없을 듯도 보인다. 그러나 ‘돈 버는 농업’, ‘경쟁력 제일주의 농정’을 표방한 MB농정에 대한 현장농민들의 평가가 100점 만점에 31.4점에 불과했다(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MB정권 5년간 가구당 농업소득은 1181만원에서 1009만원으로 줄어들었으며,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11.7배에 달해 도시(4.5배)에 비해 농촌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정부의 지원과 그 혜택이 소수의 상위농가에게 집중된 반면 다수의 소농과 빈농들은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MB정권의 농정기조는 당선자가 강조한 ‘국민대통합’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해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책의 성과가 소수에 집중되는 농정이 대통합정신에 일치할리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 중심 농정기조서 탈피
새 정부에서는 우선 농정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소수의 상위농가 중심의 경쟁력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철회돼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주체 간 경쟁은 불가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농업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원초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시장’이나 ‘경쟁력’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신정부에서는 MB정권의 우(愚)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농정의 기조를 ‘경쟁력 중심’에서 ‘지속가능성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경쟁력 중심의 논리만을 강요한다면 결국은 우리 농업의 왜소화와 왜곡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 농촌의 과소화와 황폐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 농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농지와 사람(농민)이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968년 231만8000㏊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2011년에는 169만8000㏊(논 96만㏊, 밭 73만8000㏊)로 줄어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경지면적은 162만4000㏊, 2022년에는 158만㏊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농식품부에서는 2020년 식량자급률목표와 국제곡물가격 등을 감안한 농지소요면적은 160만㏊ 안팎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향후 10여년이 가기 전에 농지부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농민은 어떤가. 2010년 306만8000명이던 농가인구는 작년에 296만5000명으로 1년 사이에 3.4%나 급감했으며, 2002년 400만명 선이 무너진 이후 10년 만에 300만명 선이 붕괴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령화이다. 2011년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36.2%에 달했다. 이는 도시지역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이며, 농업경영주의 고령화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농지가 적정수준 이하로 줄어들고 농민의 질적·양적 급감은 결국 우리 농업의 지속성을 약화시키고 경쟁력 제고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농지제도를 재정립하고 농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보장과 복지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소농구조 하에서 미국이나 호주, 일부 유럽국가와 같은 규모화 중심의 경쟁력 강화는 불가능하며, 그러한 정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농업의 개방화와 대규모 농민축출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경쟁력 확보는 지금까지와 같은 개별농가 중심의 규모화가 아니라 소농의 조직화를 통한 규모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는 정책은 농촌의 양극화를 막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농촌복지정책이나 다름없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나아가야
최근 2~3년간 한반도는 104년만의 가뭄, 55년만의 한파, 18년만의 폭설, 3년 연속 태풍으로 인해 흉년이 지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작황부진으로 인해 2000년 이후 식량부족과 국제곡물가격 급등현상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식량위기는 방글라데시, 멕시코, 이집트 등 30여개국의 폭동을 초래했으며, 지난해는 중동을 휩쓴 ‘자스민 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22.6%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제고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애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신정부의 농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명확해졌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튼튼히 하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농정패러다임을 요구하며, 또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12월 249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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