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농업·농촌정책의 혁신 과제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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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농업·농촌정책의 혁신 과제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향후 5년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면 신정부의 농업·농촌정책은 어떻게 될까. 인수위 활동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도 신정부 5년의 농정방향은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공약으로 제시한 ‘행복한 농어촌 7대과제·30개약속’도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그동안 드러난 것은 새 정부 농정철학과 기조가 아니라 농림축산부로의 명칭 개정, 식품안전업무 일원화 등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농업계와의 갈등만 초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정부의 농정기조는 어떻게 돼야 할까?
지속가능한 농정 패러다임으로
첫째,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소수 상층농 중심의 경쟁력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변경돼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주체 간 경쟁은 불가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농업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원초적 토대이기 때문에 시장이나 경쟁력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인식이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는 농정의 패러다임을 경쟁력 중심에서 지속가능성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농민 소득보장·복지정책 절실
둘째, 농지제도를 재정립해야 한다. 농업이 지속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농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968년 231만8000㏊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2011년에는 169만8000㏊로 줄어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7년 경지면적이 162만4000㏊, 2022년에는 158만㏊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는데,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2020년 식량자급률 목표와 국제곡물가격 등을 감안한 농지소요면적은 160만㏊ 안팎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때문에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향후 10여년이 가기 전에 농지부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농업을 영위하고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농민)정책이 필요하다. 2010년 306만8000명이던 농가인구는 작년에 296만5000명으로 1년 사이에 3.4%나 급감했으며, 2002년 400만명선이 무너진 이후 10년 만에 300만명선마저 붕괴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령화다. 2011년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36.2%에 달했다. 이는 도시지역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이다. 그러므로 농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보장과 복지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넷째, 소농과 가족농 보호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와 같은 소농구조 하에서 미국이나 호주 등과 같은 규모화 중심의 경쟁력 강화는 불가능하며 그런 정책이 성공해도 농업의 개방화와 대규모 농민축출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경쟁력 확보는 지금까지와 같은 개별농가 중심의 규모화가 아니라 소농의 조직화를 통한 규모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는 정책은 농촌의 양극화를 막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농촌복지정책이나 다름없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식량안보를 위한 식량자급률 제고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2~3년간 한반도는 104년만의 가뭄, 55년만의 한파, 18년만의 폭설, 3년 연속 태풍 등으로 인해 흉년이 지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작황부진으로 인해 2000년 이후 식량부족과 국제곡물가격 급등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2.6%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제적인 애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여섯째,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농촌공동체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농촌은 식량생산 공간인 동시에 경관과 환경, 전통문화의 보전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정에서 농촌인구가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농촌공동체는 붕괴됐고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와 과소화는 농촌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의 붕괴는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정책이 긴급하다.
일곱째, 협동조합의 개혁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주적인 결사체이자 경영체이다. 그러나 240만명의 조합원과 170조원의 자산을 가진 우리나라의 농협은 세계에서 10번째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조합원의 조합이 아니라 임직원의 조합’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MB정부 들어 중앙회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으로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됐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협동조합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서 조합원을 위한 조합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식량안보 확보, 도·농 공생 모색을
여덟째, 농정추진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농정추진체계란 농정이 흘러가는 통로를 말한다. 따라서 이 통로가 자칫 막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놓이게 되면 아무리 좋은 농업 정책이라도 의도했던 대로 흘러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농정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 방향은 분권화와 지역화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지역특성에 맞는 농정이 수립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중앙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신정부의 농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튼튼히 하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키면서 농민의 생활권을 보장할 수 있는 농정,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농정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3월 250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향후 5년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면 신정부의 농업·농촌정책은 어떻게 될까. 인수위 활동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도 신정부 5년의 농정방향은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공약으로 제시한 ‘행복한 농어촌 7대과제·30개약속’도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그동안 드러난 것은 새 정부 농정철학과 기조가 아니라 농림축산부로의 명칭 개정, 식품안전업무 일원화 등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농업계와의 갈등만 초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정부의 농정기조는 어떻게 돼야 할까?
지속가능한 농정 패러다임으로
첫째,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소수 상층농 중심의 경쟁력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변경돼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주체 간 경쟁은 불가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농업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원초적 토대이기 때문에 시장이나 경쟁력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인식이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는 농정의 패러다임을 경쟁력 중심에서 지속가능성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농민 소득보장·복지정책 절실
둘째, 농지제도를 재정립해야 한다. 농업이 지속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농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1968년 231만8000㏊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2011년에는 169만8000㏊로 줄어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7년 경지면적이 162만4000㏊, 2022년에는 158만㏊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는데,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2020년 식량자급률 목표와 국제곡물가격 등을 감안한 농지소요면적은 160만㏊ 안팎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때문에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향후 10여년이 가기 전에 농지부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농업을 영위하고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농민)정책이 필요하다. 2010년 306만8000명이던 농가인구는 작년에 296만5000명으로 1년 사이에 3.4%나 급감했으며, 2002년 400만명선이 무너진 이후 10년 만에 300만명선마저 붕괴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령화다. 2011년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36.2%에 달했다. 이는 도시지역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이다. 그러므로 농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보장과 복지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넷째, 소농과 가족농 보호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와 같은 소농구조 하에서 미국이나 호주 등과 같은 규모화 중심의 경쟁력 강화는 불가능하며 그런 정책이 성공해도 농업의 개방화와 대규모 농민축출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경쟁력 확보는 지금까지와 같은 개별농가 중심의 규모화가 아니라 소농의 조직화를 통한 규모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는 정책은 농촌의 양극화를 막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농촌복지정책이나 다름없다.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식량안보를 위한 식량자급률 제고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2~3년간 한반도는 104년만의 가뭄, 55년만의 한파, 18년만의 폭설, 3년 연속 태풍 등으로 인해 흉년이 지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작황부진으로 인해 2000년 이후 식량부족과 국제곡물가격 급등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2.6%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제적인 애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여섯째,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농촌공동체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농촌은 식량생산 공간인 동시에 경관과 환경, 전통문화의 보전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정에서 농촌인구가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농촌공동체는 붕괴됐고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와 과소화는 농촌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의 붕괴는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정책이 긴급하다.
일곱째, 협동조합의 개혁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주적인 결사체이자 경영체이다. 그러나 240만명의 조합원과 170조원의 자산을 가진 우리나라의 농협은 세계에서 10번째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조합원의 조합이 아니라 임직원의 조합’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MB정부 들어 중앙회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으로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됐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협동조합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서 조합원을 위한 조합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식량안보 확보, 도·농 공생 모색을
여덟째, 농정추진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농정추진체계란 농정이 흘러가는 통로를 말한다. 따라서 이 통로가 자칫 막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놓이게 되면 아무리 좋은 농업 정책이라도 의도했던 대로 흘러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농정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 방향은 분권화와 지역화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지역특성에 맞는 농정이 수립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중앙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신정부의 농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튼튼히 하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키면서 농민의 생활권을 보장할 수 있는 농정,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농정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3월 250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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