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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산물 수입제한조치 철폐되면 | 정영일 지역재단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4 18:12
    • 조회 413
    농산물 수입제한조치 철폐되면
    정영일 | 지역재단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농산물 관세와 수입할당제 등 모든 국경조치가 전면 철폐될 경우 국내 농업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영향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이와 같이 극단적이며 대담한 가상 시나리오의 시산 결과가 최근 일본 농림수산성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토지 조건의 극심한 제약 아래 안팎으로 강력한 개방 압력을 받고 있는 이웃 일본의 분석 결과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농정에 대해서도 매우 유용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경제개혁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경제재정자문회의 EPA(경제제휴협정)·농업작업반에 2월26일 제출한 ‘국경조치를 철폐할 경우 국내농업 등에 미치는 영향(시산)’이라는 추정 결과는 우리 농업과 농산물 가공업뿐 아니라 국민생활과 경제 전반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고도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PA는 특정 국가 간 인력·상품·자본의 역내 이동의 자유화 내지 원활화를 위한 대내외 규제 철폐나 각종 경제제도의 조화 등 폭넓은 경제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협정을 가리킨다. 

    이 시산 결과에 따르면 일본 농산물 시장의 상실로 농업총산출액의 약 42%에 해당하는 약 3조6,000억엔의 농업 생산액이 감소할 것이며, 외국산 제품의 수입 증가로 농산물 가공품 생산액 감소 또한 약 2조1,000억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일본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농업생산활동에 소요되는 농자재 및 농기계 제조업과 수송업 등 관련 서비스 산업의 생산액 감소가 GDP(국내총생산)의 1.8%에 이르는 약 9조엔에 이르며, 전체 취업자의 5.5%에 달하는 약 375만명이 취업 기회를 상실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열량기준으로 본 일본의 식료자급률이 현재 40% 수준에서 농가의 자가소비분과 일부 특수용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쌀 수요가 외국산으로 대체되는 최악의 경우 12%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치명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농산물가격 하락에 상당하는 차액보상과 농산물 가공품의 국내외 생산비 격차를 보전해줄 보완대책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국경조치로부터 재정지원으로의 농정 전환에 따르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적정 규모의 국내 농업생산활동을 유지함으로써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식료 자급률 달성과 홍수 방지, 지하수 함양, 토양침식 방지, 농촌지역사회 유지 등 농업·농촌이 지니는 다원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다.

    국내 농업생산의 대폭축소는 제한된 농지와 농업용수 등 생산기반의 황폐화를 가져오고 효율적인 농업생산을 담당할 전문인력 확보 및 기술 축적을 어렵게 만들어 국민생활에 불가결한 안정적 식료 공급 능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국제시장에서의 식료 조달 교섭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우리나라도 UR(우루과이라운드), 한·칠레 FTA, DDA(도하개발아젠다), 2004년 쌀협상, 한·미 FTA 등 시장 개방 협상 때마다 다양한 전제와 가정을 토대로 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예상되는 파급효과를 추정하고 보완대책을 수립하는 임기응변적인 작업을 반복해 오고 있다. 

    당면 최대 현안인 한·미 FTA에 뒤이어 연쇄적으로 닥쳐올 다자 간 및 양자 간 통상교섭이 국내 농업 및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관해 이제는 보다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냉철한 분석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2007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