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농민 | 허승욱 단국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5:57
- 조회 471
진짜 농민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우리는 늘 이야기 한다. 농업정책은 농업인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 역시 농업인이라고…. 당연하다. 결국 모든 문제의 꼭짓점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농민인가? 진짜 농민 말이다.
농업인=농업이 생업인 사람
농업인은 말 그대로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예전에 익숙하던 농민이라 부르다가 먹거리 생산에 대한 긍지와 사회적 지위를 보다 높게 한다는 의미에서 농업인이라는 전문직업인 냄새가 나도록 호칭이 바뀐 지 꽤 오래다. 간호원이 간호사로 되고,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실제 알맹이는 그렇지 않는데 말로만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친근감이 좀 떨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농민이든 농사꾼이든 말 한마디 바꾸는 일보다 땅을 일구고 지키는 사람들이 진정 존경받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농업인이란 농업 등에 종사하는 개인을 말한다. 농지법에서는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면 농업인이라고 정하고 있다. △1000㎡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지에 330㎡ 이상의 고정식 온실, 버섯재배사, 비닐하우스 등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사람 △대가축 2두, 중가축 10두, 소가축 100두, 가금 1000수 또는 꿀벌 10군 이상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업경영으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사람.
그런데 농업인을 단지 법적 조항 몇 가지로만 정의하는 것은 정말 기계적인 구분이다. ‘취미 삼아 도시텃밭에서 고추를 재배해 200만원 정도의 부수입을 얻은 사람’을 농업인이라 할 수 있을까?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추 키워 먹는 이를 농업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농산물 생산을 한다고 해서 모두 농업인이라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농산물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돼지똥 냄새를 온 마을에 풍기며 마을 초입에서 몇 천 두의 돼지를 키우는 사람은 농업인일까? 수 백 ha가 넘는 대규모 농지를 경영하는 사람, 모두 농업인일까? 그리고 어찌어찌 만든 농지원부가 있다고 모두 농업인일까? 법적으로 그들은 모두 농업인이다. 땅은 많은데 농사를 직접 짓지 않는 사람들은 농업인일까? 아닐까? 당연히 농업인이 아니다. 땅만 갖고 있다고 해서 농업인이라면 부재지주인 서울사람들도 모두 농업인이기 때문이다.
기껏 농사지어도 빚뿐인 현실
누가 진짜 농민인가? 우리 농민이 걸머진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최고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농업소득은 겨우 1/3 정도에 불과하다. 농사 지어봐야 남는 것은 없고, 늘어나는 것은 빚이다. 그렇다고 평생 해오던 것을 하루아침에 접을 수도 없으니 공공근로나 식당 서빙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짜 농민’을 지켜야 하는 이유
농민은 농촌과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도시의 베란다가 농촌이 아니듯이 농촌 곳곳을 갈고 다니는 수집상들을 농민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농촌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이라는 공간은 농업과 관련된 사회·문화·경 제가 날줄과 씨줄처럼 하나로 엮어지는 곳이다. 농촌이라는 지역은 단순히 생활과 산업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장맛을 지키고 이어주는 보물창고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농민이며, 묵묵히 돈 안 되는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농민이다.
이 글은 2013년9월12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우리는 늘 이야기 한다. 농업정책은 농업인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 역시 농업인이라고…. 당연하다. 결국 모든 문제의 꼭짓점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농민인가? 진짜 농민 말이다.
농업인=농업이 생업인 사람
농업인은 말 그대로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예전에 익숙하던 농민이라 부르다가 먹거리 생산에 대한 긍지와 사회적 지위를 보다 높게 한다는 의미에서 농업인이라는 전문직업인 냄새가 나도록 호칭이 바뀐 지 꽤 오래다. 간호원이 간호사로 되고,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실제 알맹이는 그렇지 않는데 말로만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친근감이 좀 떨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농민이든 농사꾼이든 말 한마디 바꾸는 일보다 땅을 일구고 지키는 사람들이 진정 존경받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농업인이란 농업 등에 종사하는 개인을 말한다. 농지법에서는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면 농업인이라고 정하고 있다. △1000㎡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지에 330㎡ 이상의 고정식 온실, 버섯재배사, 비닐하우스 등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사람 △대가축 2두, 중가축 10두, 소가축 100두, 가금 1000수 또는 꿀벌 10군 이상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업경영으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사람.
그런데 농업인을 단지 법적 조항 몇 가지로만 정의하는 것은 정말 기계적인 구분이다. ‘취미 삼아 도시텃밭에서 고추를 재배해 200만원 정도의 부수입을 얻은 사람’을 농업인이라 할 수 있을까?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추 키워 먹는 이를 농업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농산물 생산을 한다고 해서 모두 농업인이라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농산물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돼지똥 냄새를 온 마을에 풍기며 마을 초입에서 몇 천 두의 돼지를 키우는 사람은 농업인일까? 수 백 ha가 넘는 대규모 농지를 경영하는 사람, 모두 농업인일까? 그리고 어찌어찌 만든 농지원부가 있다고 모두 농업인일까? 법적으로 그들은 모두 농업인이다. 땅은 많은데 농사를 직접 짓지 않는 사람들은 농업인일까? 아닐까? 당연히 농업인이 아니다. 땅만 갖고 있다고 해서 농업인이라면 부재지주인 서울사람들도 모두 농업인이기 때문이다.
기껏 농사지어도 빚뿐인 현실
누가 진짜 농민인가? 우리 농민이 걸머진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최고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농업소득은 겨우 1/3 정도에 불과하다. 농사 지어봐야 남는 것은 없고, 늘어나는 것은 빚이다. 그렇다고 평생 해오던 것을 하루아침에 접을 수도 없으니 공공근로나 식당 서빙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짜 농민’을 지켜야 하는 이유
농민은 농촌과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도시의 베란다가 농촌이 아니듯이 농촌 곳곳을 갈고 다니는 수집상들을 농민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농촌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이라는 공간은 농업과 관련된 사회·문화·경 제가 날줄과 씨줄처럼 하나로 엮어지는 곳이다. 농촌이라는 지역은 단순히 생활과 산업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장맛을 지키고 이어주는 보물창고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농민이며, 묵묵히 돈 안 되는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농민이다.
이 글은 2013년9월12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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