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년의 農夫들-유기농업의 원류‘중·한·일’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 작성일2020/03/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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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년의 農夫들-유기농업의 원류‘중·한·일’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때는 바야흐로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호시절이다. 성묘를 일찌감치 마친 이번 추석 연휴기간은 책 읽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었다. 오래 전부터 독서대상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서도 완독을 미뤄왔던 책들을 뽑아 들었다.
그 첫 번째가 미국 농무성(USDA)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H. 킹 (1848-1911) 박사의 1909년 중국 한국 일본 유기농업 견문기(見聞記)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당시 문명화된 서양인에게는 미개하게 보였을지 모를 동양 3국의 농업 농촌 농민들의 실상을 전문적인 안목으로 조사 기록한 이 책은 저자가 귀국하여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남에 따라 그 미망인이 유고를 정리하여 2004년에야 빛을 보았다. 우리 말 번역은 동아일보의 한 여성기자(곽민영)가 2006년 도서출판 ‘들녘’에서 펴내었다.
원제를 이 칼럼 제목으로 단 이유는 한 마디로 100여년 전의 동양 3국 약 5억명의 생활상과 4천여년을 이어 온 식량·농업기술 지혜는 킹 박사에게 ‘경이(wonders)와 찬탄’의 대상이었으며, 이 견문기를 읽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를 만나게 한 불후의 명저이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 한국 일본을 시찰한 이후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근대화와 현대화의 시련을 겪으면서 어느덧 무심결에 서구사회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과 더불어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겹쳐져 “서양식은 우월하고 동양식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적 판단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사실이었다(곽민영의 번역후기).”
청년시기 미국서 교육받은 필자 역시 미국은 무조건 옳고 미국 방식은 모두 선진적인 반면 우리 것은 낡았고 후진적이라고 믿어 온 면이 적지 않았다. 실제 광대한 농토에 기계화와 화학농법으로 대량생산체제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 농업과 영농법을 한없이 부러워했으며, 그것이 우리 농업 현대화의 길이라고 모두들 예찬해 왔잖은가! 지금 이 순간도 우리나라 학계와 관료사회 일각에서는 ‘현대 첨단 바이오 기술농법’이라는 이름하에 태연히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을 거스르며 종국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까지 해치는 고식적(姑息的)인 산업·수출·개발론의 노예의식 소유자들이 득실대고 있다.
‘경이로운’ 동양3국의 공생 농업
그에 반하여, 킹 국장은 4천여년의 긴 세월동안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수억명의 인구를 부양해 왔으면서도 고스란히 자연자원을 보전해 온 당시 미개국(?) 동아시아인들이 참으로 도덕적이고 지적이라며 그들의 토착화된 농업 기술과 지혜를 매일 어디를 가든 보고 배우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땅에서 태어난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그 위대함에 놀랐으며, 정규 교육시설과 제도가 불비함에도 땅(흙)과 물과 하늘(기후)과 사람이 자연과 공생하는 지혜를 터득한 질 좋은 농업생산성을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면서 화학·기계농법으로 찌들기 시작한 미국식 반환경적인 농법이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나)는 2, 3천년 아니 4천년이 지난 후에도 어떻게 한결같이 적은 땅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변함없이 먹여 살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라고 동양 3국의 농업연수 시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 해답이 책 제목 그대로 ‘4천여년 동양 3국 농부’들의 유기농업이었다. 생태적인 농업시스템으로서 콩 돌려짓기와 간작, 윤작, 자원순환, 쌀(벼)농사와 조, 보리, 밀, 옥수수 농사를 경영하며 유축농업(有畜農業)과 거미줄 같은 관개와 배수로로 지력을 높이고 양잠과 차(茶)재배, 공동체 문화를 효율적으로 가능케 하는 생산계층의 모범적인 생활태도에 감탄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땅을 먹을거리와 땔감과 옷감을 생산하는데 남김없이 쓴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가축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거나 입을 수 없는 모든 것은 땔감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과 연료, 옷감에서 나온 배설물과 잔여물 쓰레기(wastes)는 다시 모두 땅으로 돌아간다. 이 배설물과 잔여물들을 적당한 기간 잘 보관하고 작업을 하여 거름(肥料)으로 쓰기에 좋은 상태로 만든다. 오랜 세월 축적된 자연순환농법으로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루어진다. 하루의 노동이 조금이라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비가 오거나 땡볕이 쏟아져도 때를 놓치거나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이 적어도 이들에겐 ‘불가침의 원칙’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 등 서구인들이 소중한 비료가 되는 각종 배설물과 부산물 그리고 오물을 그냥 버리고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과 심지어 화학처리까지 동원하면서 소중한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는가 하면, 강과 바다와 환경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이른바 문명사회의 모순을 개탄한다. 땅을 파괴하고 삶의 방식을 해치는 서구화=근대화의 병폐를 질타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낭비적인 오물생산자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그 자신까지도 황폐화시킨다. 그 파괴의 빗자루는 세대를 거치며 통제력을 잃었고, 모든 생명의 토대가 되는 땅의 비옥함을 빼앗아가 앞으로 수백년 정도 밖에 생명농업과 공동체가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킹 박사의 사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을 필두로 한 지구촌 곳곳의 식량·농업 생산부문에서 보이고 있는 정체현상을 미리 내다 본 토양전문가다운 킹 국장의 진단과 예측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생태계 망치는 서구식 농법 질타
그토록 동양 3국의 농부들이 현대적인 농기계나 화학적 농자재가 없이도 4천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려온 사실에 그는 주목한다. 농업환경 및 기후조건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의 지혜와 영농기술, 유기농업의 비법이 땅과 물을 최대한 이용할 뿐, 더 빼앗아 오지도 더 남겨두지도 않는 공생(共生)의 농법에 있음을 터득한다. 특히 킹 박사는 동양의 인분(人糞) 활용법에 대해 ‘문명화된 인류가 가장 주목해야 할 기술’이라고 평가하면서 엄청난 수량의 화학물질을 쏟아 붓는데도 땅이 비옥하지 못하고, 오히려 100년 이상 농사를 지탱시키기 힘든 서구식 농법의 취약성에 대한 해결책을 인분활용법에서 찾는다.
역자 곽민영 기자가 킹 박사의 유작을 번역 출간하게 된 계기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농부 G. 제킨스(똥 살리기, 땅 살리기의 저자)를 만나 당시 세상을 뜨겁게 달군 똥 건강 열풍에 대해 취재하면서 100여년 전 한국을 다녀간 미 농무성 토양관리 전문가 프랭클린 킹 국장의 이 책을 보고 인분퇴비법을 독학했다는 대답에서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책, “4천여년의 농부들, 중국 한국 일본의 유기농업”은 우리나라에 관해서는 17章 중 단 한 장 “만주와 한국” 편에 불과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유기농업은 중국과 일본 농법의 일환으로 취급된 느낌이다. 당시 한국은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경찰 및 행정권을 장악하고 한일합방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이라 실질적으로 일제치하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에 오래 체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편은 단지 단오명절 풍경, 흰 옷 입은 여인들, 밀밭, 콩 농사, 벼농업 이야기, 풋거름 만들기, 양잠, 황소(한우), 다랑이 논, 용두레, 삼 재배농업 등을 관찰한 수삼일간의 여행기록에 불과하지만, 사진과 설명서들을 페이지마다 곳곳에 자세히 배치하여 당시의 농법과 생활상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유기농업은 ‘오래된’ 미래 농법
확실한 사실은 유기농업이 그동안 학계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① 서구에서 먼저 시작한 것(1924년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이 아니라, 4천여년 전 부터 우리 조상들이 경영해 왔고, ② 세계 최고 인구 밀집지역인 동양 3국의 식량, 의류, 의료, 연료를 부양해 왔으며, ③ 지속가능한 자연순환농법으로 생산성도 계속 높이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 친자연적인 농업기술과 생활관습을 뿌리내려 왔으며, ④ 서구식 농법과 서구식 문명이 바야흐로 인류의 건강과 생명, 자연생태계의 부조화와 질 저하 또는 건강 위험 등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 끝으로 ⑤ 유기농업이 생물학적인 과학기술과 접목하면서 앞으로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며 자연과 사람을 공생시키는 ‘오래된 우리의 미래 농법’이라는 사실이다. 지면의 제약 상 다음 기회에 추석연휴에 탐독한 J. Fuhrman 박사의 “살기위해 먹는다(2011)”와 칼 웨버의 “식품기업이 지배하는 세상(2009)” 이야기를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식 식습관과 병리현상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할까 한다.
이 글은 2013년 9월2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때는 바야흐로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호시절이다. 성묘를 일찌감치 마친 이번 추석 연휴기간은 책 읽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었다. 오래 전부터 독서대상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서도 완독을 미뤄왔던 책들을 뽑아 들었다.
그 첫 번째가 미국 농무성(USDA)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H. 킹 (1848-1911) 박사의 1909년 중국 한국 일본 유기농업 견문기(見聞記)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당시 문명화된 서양인에게는 미개하게 보였을지 모를 동양 3국의 농업 농촌 농민들의 실상을 전문적인 안목으로 조사 기록한 이 책은 저자가 귀국하여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남에 따라 그 미망인이 유고를 정리하여 2004년에야 빛을 보았다. 우리 말 번역은 동아일보의 한 여성기자(곽민영)가 2006년 도서출판 ‘들녘’에서 펴내었다.
원제를 이 칼럼 제목으로 단 이유는 한 마디로 100여년 전의 동양 3국 약 5억명의 생활상과 4천여년을 이어 온 식량·농업기술 지혜는 킹 박사에게 ‘경이(wonders)와 찬탄’의 대상이었으며, 이 견문기를 읽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를 만나게 한 불후의 명저이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 한국 일본을 시찰한 이후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근대화와 현대화의 시련을 겪으면서 어느덧 무심결에 서구사회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과 더불어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겹쳐져 “서양식은 우월하고 동양식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적 판단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사실이었다(곽민영의 번역후기).”
청년시기 미국서 교육받은 필자 역시 미국은 무조건 옳고 미국 방식은 모두 선진적인 반면 우리 것은 낡았고 후진적이라고 믿어 온 면이 적지 않았다. 실제 광대한 농토에 기계화와 화학농법으로 대량생산체제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 농업과 영농법을 한없이 부러워했으며, 그것이 우리 농업 현대화의 길이라고 모두들 예찬해 왔잖은가! 지금 이 순간도 우리나라 학계와 관료사회 일각에서는 ‘현대 첨단 바이오 기술농법’이라는 이름하에 태연히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을 거스르며 종국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까지 해치는 고식적(姑息的)인 산업·수출·개발론의 노예의식 소유자들이 득실대고 있다.
‘경이로운’ 동양3국의 공생 농업
그에 반하여, 킹 국장은 4천여년의 긴 세월동안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수억명의 인구를 부양해 왔으면서도 고스란히 자연자원을 보전해 온 당시 미개국(?) 동아시아인들이 참으로 도덕적이고 지적이라며 그들의 토착화된 농업 기술과 지혜를 매일 어디를 가든 보고 배우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땅에서 태어난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그 위대함에 놀랐으며, 정규 교육시설과 제도가 불비함에도 땅(흙)과 물과 하늘(기후)과 사람이 자연과 공생하는 지혜를 터득한 질 좋은 농업생산성을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면서 화학·기계농법으로 찌들기 시작한 미국식 반환경적인 농법이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나)는 2, 3천년 아니 4천년이 지난 후에도 어떻게 한결같이 적은 땅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변함없이 먹여 살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라고 동양 3국의 농업연수 시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 해답이 책 제목 그대로 ‘4천여년 동양 3국 농부’들의 유기농업이었다. 생태적인 농업시스템으로서 콩 돌려짓기와 간작, 윤작, 자원순환, 쌀(벼)농사와 조, 보리, 밀, 옥수수 농사를 경영하며 유축농업(有畜農業)과 거미줄 같은 관개와 배수로로 지력을 높이고 양잠과 차(茶)재배, 공동체 문화를 효율적으로 가능케 하는 생산계층의 모범적인 생활태도에 감탄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땅을 먹을거리와 땔감과 옷감을 생산하는데 남김없이 쓴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가축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거나 입을 수 없는 모든 것은 땔감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과 연료, 옷감에서 나온 배설물과 잔여물 쓰레기(wastes)는 다시 모두 땅으로 돌아간다. 이 배설물과 잔여물들을 적당한 기간 잘 보관하고 작업을 하여 거름(肥料)으로 쓰기에 좋은 상태로 만든다. 오랜 세월 축적된 자연순환농법으로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루어진다. 하루의 노동이 조금이라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비가 오거나 땡볕이 쏟아져도 때를 놓치거나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이 적어도 이들에겐 ‘불가침의 원칙’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 등 서구인들이 소중한 비료가 되는 각종 배설물과 부산물 그리고 오물을 그냥 버리고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과 심지어 화학처리까지 동원하면서 소중한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는가 하면, 강과 바다와 환경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이른바 문명사회의 모순을 개탄한다. 땅을 파괴하고 삶의 방식을 해치는 서구화=근대화의 병폐를 질타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낭비적인 오물생산자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그 자신까지도 황폐화시킨다. 그 파괴의 빗자루는 세대를 거치며 통제력을 잃었고, 모든 생명의 토대가 되는 땅의 비옥함을 빼앗아가 앞으로 수백년 정도 밖에 생명농업과 공동체가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킹 박사의 사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을 필두로 한 지구촌 곳곳의 식량·농업 생산부문에서 보이고 있는 정체현상을 미리 내다 본 토양전문가다운 킹 국장의 진단과 예측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생태계 망치는 서구식 농법 질타
그토록 동양 3국의 농부들이 현대적인 농기계나 화학적 농자재가 없이도 4천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려온 사실에 그는 주목한다. 농업환경 및 기후조건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의 지혜와 영농기술, 유기농업의 비법이 땅과 물을 최대한 이용할 뿐, 더 빼앗아 오지도 더 남겨두지도 않는 공생(共生)의 농법에 있음을 터득한다. 특히 킹 박사는 동양의 인분(人糞) 활용법에 대해 ‘문명화된 인류가 가장 주목해야 할 기술’이라고 평가하면서 엄청난 수량의 화학물질을 쏟아 붓는데도 땅이 비옥하지 못하고, 오히려 100년 이상 농사를 지탱시키기 힘든 서구식 농법의 취약성에 대한 해결책을 인분활용법에서 찾는다.
역자 곽민영 기자가 킹 박사의 유작을 번역 출간하게 된 계기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농부 G. 제킨스(똥 살리기, 땅 살리기의 저자)를 만나 당시 세상을 뜨겁게 달군 똥 건강 열풍에 대해 취재하면서 100여년 전 한국을 다녀간 미 농무성 토양관리 전문가 프랭클린 킹 국장의 이 책을 보고 인분퇴비법을 독학했다는 대답에서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책, “4천여년의 농부들, 중국 한국 일본의 유기농업”은 우리나라에 관해서는 17章 중 단 한 장 “만주와 한국” 편에 불과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유기농업은 중국과 일본 농법의 일환으로 취급된 느낌이다. 당시 한국은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경찰 및 행정권을 장악하고 한일합방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이라 실질적으로 일제치하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에 오래 체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편은 단지 단오명절 풍경, 흰 옷 입은 여인들, 밀밭, 콩 농사, 벼농업 이야기, 풋거름 만들기, 양잠, 황소(한우), 다랑이 논, 용두레, 삼 재배농업 등을 관찰한 수삼일간의 여행기록에 불과하지만, 사진과 설명서들을 페이지마다 곳곳에 자세히 배치하여 당시의 농법과 생활상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유기농업은 ‘오래된’ 미래 농법
확실한 사실은 유기농업이 그동안 학계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① 서구에서 먼저 시작한 것(1924년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이 아니라, 4천여년 전 부터 우리 조상들이 경영해 왔고, ② 세계 최고 인구 밀집지역인 동양 3국의 식량, 의류, 의료, 연료를 부양해 왔으며, ③ 지속가능한 자연순환농법으로 생산성도 계속 높이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 친자연적인 농업기술과 생활관습을 뿌리내려 왔으며, ④ 서구식 농법과 서구식 문명이 바야흐로 인류의 건강과 생명, 자연생태계의 부조화와 질 저하 또는 건강 위험 등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 끝으로 ⑤ 유기농업이 생물학적인 과학기술과 접목하면서 앞으로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며 자연과 사람을 공생시키는 ‘오래된 우리의 미래 농법’이라는 사실이다. 지면의 제약 상 다음 기회에 추석연휴에 탐독한 J. Fuhrman 박사의 “살기위해 먹는다(2011)”와 칼 웨버의 “식품기업이 지배하는 세상(2009)” 이야기를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식 식습관과 병리현상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할까 한다.
이 글은 2013년 9월2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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