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의‘주상복합’ | 허승욱 단국대교수
- 작성일2020/03/05 16:00
- 조회 482
소설가 박범신의‘주상복합’
| 허승욱 단국대교수
논산에 살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강의를 듣는다. 듣고 싶었던 강의를, 그것도 맨 앞에 앉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생경한 것인지 알는지 모르겠다. 산과 바다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의 강의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주상복합’이다. 하고자하는 얘기의 머리글을 모아놓은 것인데, 강의의 무질서를 피하고자하는 그의 창조적 상상력과 지혜가 돋보인다.
지금 농민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
주상복합의 ‘주’는 주인이다. 그를 만난 곳, 황산벌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동학농민의 땀과 피가 베인 곳, 오랜 생산과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 들판이 있는 곳이었다. 석양 들녘이 너무 아름답다. 그는 가을 들녘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했다. 모든 곡식과 과일이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 색이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신의 선물이라고 했다. 땅은 신이 주는 선물을 가꾸어 내는 곳이며, 그런 땅을 지배하는 자가 바로 농민이라 했다. 그는 애당초 농민이고, 어부였던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내가 이 땅 위에서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땅을 지배하는 자, 뜨거운 사랑으로 진정한 주인이어야 한다는 그 말에 가슴이 벅차게 열린다. 그런데 이 땅의 주인들이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한 몇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주상복합의 ‘상’은 상상력이다. 이 시대 농부가 가져야 할 새로운 무기는 습관적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상상력이라 말한다. 커피가 단순히 먹거리 그 자체였다면 이토록 우리 생활에 한 부분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커피는 먹거리에 문화를 심었다. 박범신은 ‘슈베르트를 듣고 자란 딸기’를 이야기했고, ‘박범신 딸기’도 나와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논산의 딸기에 문화와 상상력을 입히라는 그의 주문은 많은 이들의 귀를 열고 있었다.
상상력은 또한 복합적인 요소이며, 융합과 복합의 가치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말한다. 주상복합의 ‘복’은 복합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주린 배 졸라매고 야수처럼 이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주머니도 제법 넉넉해졌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1차 산업과 3차 산업, 도시와 농촌, 농업과 문화 할 것 없이 경계를 구분치 않는 다양한 결합으로 새로운 융·복합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 이 어려움의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열릴 수 있다.
새로운 융·복합 가치 창출해야
주상복합의 ‘합’은 합의라 하였다. 부탄이란 나라의 국민소득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세계 최고로 행복하다는 나라에서 모든 복지에 관한 것은 마을 공동체에서 결정되고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초고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경제적 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부동심을 잃지 않는 합의라고 하였다. 서로 정한 약속과 실천이 우리 마을을 행복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 이젠 우리들의 합의를 위해 서로의 마음과 입을 열어야 한다.
농민이여, 책을 읽고 꿈을 가져라
마지막으로 그는 주상복합을 이룰 수 있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것은 책을 읽으라는, 아니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기와 상관도 없고 쓸모도 없는 책이나 신문, 뭐든 할 것 없이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 일 년만 읽어보라고 했다. 일 년 후엔 변해도 단단히 변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호언했다. 종이 위에 박힌 문자가 있고 난 후에야 영화의 시나리오도 있고, 그 아름다운 노랫말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 ‘은교’가 수백만을 사로잡은 영화가 된 것처럼 고인이 된 김광석의 노랫말이 어느 촌부의 눈시울을 젖게 하듯 말이다. 문자가 문화를 지배하는 본원의 힘이듯이 농업과 농촌을 혁신하는 근본적인 힘은 땅을 지배하는 농민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진짜 농민은 책을 읽고 꿈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고언에 무한한 힘과 애정을 느낀다.
이 글은 2013년 10월14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허승욱 단국대교수
논산에 살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강의를 듣는다. 듣고 싶었던 강의를, 그것도 맨 앞에 앉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생경한 것인지 알는지 모르겠다. 산과 바다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의 강의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주상복합’이다. 하고자하는 얘기의 머리글을 모아놓은 것인데, 강의의 무질서를 피하고자하는 그의 창조적 상상력과 지혜가 돋보인다.
지금 농민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
주상복합의 ‘주’는 주인이다. 그를 만난 곳, 황산벌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동학농민의 땀과 피가 베인 곳, 오랜 생산과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 들판이 있는 곳이었다. 석양 들녘이 너무 아름답다. 그는 가을 들녘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했다. 모든 곡식과 과일이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 색이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신의 선물이라고 했다. 땅은 신이 주는 선물을 가꾸어 내는 곳이며, 그런 땅을 지배하는 자가 바로 농민이라 했다. 그는 애당초 농민이고, 어부였던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내가 이 땅 위에서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땅을 지배하는 자, 뜨거운 사랑으로 진정한 주인이어야 한다는 그 말에 가슴이 벅차게 열린다. 그런데 이 땅의 주인들이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한 몇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주상복합의 ‘상’은 상상력이다. 이 시대 농부가 가져야 할 새로운 무기는 습관적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상상력이라 말한다. 커피가 단순히 먹거리 그 자체였다면 이토록 우리 생활에 한 부분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커피는 먹거리에 문화를 심었다. 박범신은 ‘슈베르트를 듣고 자란 딸기’를 이야기했고, ‘박범신 딸기’도 나와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논산의 딸기에 문화와 상상력을 입히라는 그의 주문은 많은 이들의 귀를 열고 있었다.
상상력은 또한 복합적인 요소이며, 융합과 복합의 가치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말한다. 주상복합의 ‘복’은 복합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주린 배 졸라매고 야수처럼 이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주머니도 제법 넉넉해졌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1차 산업과 3차 산업, 도시와 농촌, 농업과 문화 할 것 없이 경계를 구분치 않는 다양한 결합으로 새로운 융·복합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 이 어려움의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열릴 수 있다.
새로운 융·복합 가치 창출해야
주상복합의 ‘합’은 합의라 하였다. 부탄이란 나라의 국민소득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세계 최고로 행복하다는 나라에서 모든 복지에 관한 것은 마을 공동체에서 결정되고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초고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경제적 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부동심을 잃지 않는 합의라고 하였다. 서로 정한 약속과 실천이 우리 마을을 행복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 이젠 우리들의 합의를 위해 서로의 마음과 입을 열어야 한다.
농민이여, 책을 읽고 꿈을 가져라
마지막으로 그는 주상복합을 이룰 수 있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것은 책을 읽으라는, 아니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기와 상관도 없고 쓸모도 없는 책이나 신문, 뭐든 할 것 없이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 일 년만 읽어보라고 했다. 일 년 후엔 변해도 단단히 변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호언했다. 종이 위에 박힌 문자가 있고 난 후에야 영화의 시나리오도 있고, 그 아름다운 노랫말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 ‘은교’가 수백만을 사로잡은 영화가 된 것처럼 고인이 된 김광석의 노랫말이 어느 촌부의 눈시울을 젖게 하듯 말이다. 문자가 문화를 지배하는 본원의 힘이듯이 농업과 농촌을 혁신하는 근본적인 힘은 땅을 지배하는 농민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진짜 농민은 책을 읽고 꿈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고언에 무한한 힘과 애정을 느낀다.
이 글은 2013년 10월14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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