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에 누가 가냘픈 민초(民草)들을 울리는가!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 작성일2020/03/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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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에 누가 가냘픈 민초(民草)들을 울리는가!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며칠 후면 한(恨) 많고 설움 많던 계사년이 저물어 간다. 풀뿌리 백성(民草)들의 가슴엔 한이 넘치다 못해 냉기(冷氣)가 역연하다. 이 땅 위에서 제일 힘없고 가냘픈 농민이라는 이름의 백성들은 마치 고립무원의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이제 울부짖을 힘마저 빠졌는지 애꿎은 생명을 팽개치려 하는 민초들의 행렬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차별받는 복면녀-귀농녀의 인권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작년 말 대선 막바지 서울의 한 사설 오피스텔에서 ‘댓글’ 달기 공무(?)에 열중하다가 야당측이 현장을 덮치자 쇠문을 꼭 닫아 걸고 경찰의 퇴로 마련 도움마저 마다하며 흔적지우기에 골몰했던 그 복면녀(국정원의 여직원 김하영씨) 사건때 참으로 감동스러운 인간애가 연출되었다. 마지막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나온 여성후보 박근혜 현 대통령께서 “가녀린 여인의 인권”이 그렇게 짓밟혀도 되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이란 잘못은 뒤로 밀려나고 오로지 여성후보님의 섬세한 인권배려 품새가 돋보였다.
복면녀 사건이 터진지 꼭 1년 지난 12월13일, 밀양시 단장면 96번 송전탑 765KV 건설현장 인근의 동화전 마을 ‘황토방’에서 6년차 귀농녀인 부산 출신 권아무개(53) 여인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다. 다행히 주민들에게 일찍 발견되어 생명은 건졌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전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게 남긴 유서에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해주십시오. 내 땅에 내 마음대로 가(서 농사도 짓)지 못하는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한겨레, 2013. 12.14).
그런데 가녀린 복면녀의 인권에 대하여는 그렇게 자상하시던 ‘그 분’께서, 과문인지 모르지만, 밀양의 귀농녀에게는 아직 따뜻한 말씀이 한마디도 없다고 한다. 도회지 공무원 복면녀의 인권과 시골 오지 귀농녀의 인권에 무게차이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고, 외교와 민생 챙기기에 올인하다 보니 깜빡 잊어서도 아닐게다. 아마도 안행부인지 농림부인지 산업통상부인지 담당 장관 또는 참모 중에 건의 한 번 올리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게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아랫사람 공직자들이 밉고 야속하다.
윗분에 무조건 충성하는 좀비들
말이야 바로 하자면, 박근혜 정권 고위직 인사 때부터 이미 예정된 정치 부재, 민생 부재, 민권 부재, 남북평화 부재 현상의 하나에 불과하다. 자기가 지켜야 할 국민에게 잘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챙겨줄 윗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몇 배 이득이 된다는 동물적 생존본능에 능한 사람들만 골라 뽑다보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윗분의 입장에서는 그런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 요긴할 때가 더 많다. 필자도 “잠시 해봐서 아는데” 어렸을 때부터 인문·사회학적 대동(大同) 정신이 박히지 않은 사람, 또는 과학·기술 관료일수록 상관에게만은 맹목적 충성심이 강하다. 최근 전국적인 원전비리 사건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정치·법률·경영경제학을 선진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 온 각료일수록 흔히 소관행정분야에서 사람(민초)를 놓치고 효율과 성장론에만 몰입하는 로봇 같은 멘탈리티가 많다. 따뜻한 심장보다는 냉철한 두뇌가 너무 빛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농촌·농 민 행정에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FTA 대책비를 대기업 토마토 온실농사에 지원하고, 천문학적 국민혈세의 간척농지를 식품대기업들에게 분양하고, 유통현대화 자금은 초거대 재벌회사에 지원하며, 수출농업 한다고 또는 6차 산업한다고 또 다른 기업회사나 봐주는 것이 과거 농정 아니던가. 우리 농산물, 농민이 빠진 한식세계화 사업, 시군 유통센터 투자, 그 부실 4대강 사업, 또 요즘엔 ‘창조경제’를 한답시고 시범지구 운영을 통해 시행착오 없이 국가 100년 대계로 추진하여야 할 ‘6차산업’ 육성책을 대뜸 1,000개로 벌여 돈을 쳐 발라 놓고 MB정권 때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이 정권이 끝날 무렵 누가 그 낭비에 책임을 질 것인가.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농촌현장
지금 전국의 3농 현장을 둘러보라. 예년 같으면 평년작에 불과한데도 풍년이 들었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쌀값 하락에 생산농민들만 골탕을 먹어 관청 앞에 나락더미 쌓아 놓고 한숨만 가쁘게 쉬고 있다. 정부의 쌀 목표가격 인상을 8년이나 기다렸는데도 가마당 고작 5,603원만 올리겠다니, 오죽하면 엄동설한에 1만여 농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몰려와 울부짖었을까. 한·중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한·호주 FTA 협상이 소문도 없이 뚝딱 밀실에서 타결되었으며 이어 뉴질랜드, 캐나다와의 협상도 곧 타결될 모양이다. 웬걸 한 술 더 떠, 무관세 수입개방의 종결판인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한국도 참여하겠단다.
미국 정부는 한국이 TPP에 참여하려면 먼저 비협상 항목인 4개 선결사항을 해결하고 협상에 임하라고 전가의 보도(傳家之寶刀)를 꺼내 들었다. 그중의 한 개가 여축없이 농업문제이다. 한·미 FTA 협상 때도 4개 선결조항 중에 광우병 의심 쇠고기의 전면 개방을 요구하여 재미를 본 미국이 이번에는 유기농산물과 유기농 식품을 사전 현장검사 없이 완전 무관세 개방하라는 요구이다. 미국의 유기농 인증 검증시스템이 IFOAM(국제유기농연맹) 회원국가 중 워낙 광대한 땅이다 보니 허술한 것은 정평이 나 있는데 우리나라 더러 무조건 그걸 인정하고 수입하라는 것이다.
쌀 자급은 80%대, 보리자급률 22.5%, 밀 1.1%, 옥수수 0.8%, 콩류 자급률 6.4%, 전체 곡물자급률이 22.6%인데, 정부만 믿고 콩 생산량을 조금 늘렸더니 콩 값이 우루루 쾅 폭락하여 애꿎은 농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똥값이 된 배추밭을 엊그제 갈아엎었는데 고추 값마저 반값 이하로 뚝 떨어져 팔 곳도 막막하다. 그동안 고추 생산기반은 18년 새 반토막이 났다. 앞으로 한·중 FTA가 타결되면 중국산 배추, 무, 마늘, 고추로 연명할 신세이다. 그런데도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적 비축농산물 중 국산은 5.8%에 불과한데 반하여, 수입농산물이 94.2%나 된다. 비축시설 예산들여 수입산만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처 조사에 따르면 그중 국내산 콩의 비축비중은 놀라지 마시라. 빵(0)%이다. 서울교육청은 학교급식 중 친환경 유기농산물의 사용비중을 축소하고 급식시장을 업자들과의 가격경쟁에 맡기려는 ‘학교급식 식재료 구매방법’ 개악안을 만들었다. 국방부에서는 군대급식용 국산우유 납품량을 줄이기 위해 250㎖ 우유팩을 200㎖ 크기로 낮추라고 요구하여 낙농업에 종사하는 축산농민들이 추운 날씨인데도 국방부 앞에 가서 통사정을 하고 있다. TPP에 가입하면 쌀시장의 완전개방 문제는 ‘묻지마라 갑자생’이고 무관세 쇠고기·돼 지고기 등 축산물 시장의 완전 오프닝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의 시간문제이다. 그런데 명색이 농정기관 최고책임자란 분들이 김장쇼나 하고 누구를 위한 무슨 행사인지 테이프 컷팅이나 하며 돌아다니는가.
농림 관료들 무능이 절반의 책임
필자의 농정 참여 경험상 단호히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앞에서 말한 재정(돈), 제도(급식, 납품 등), 수입, 시장개방 문제 등은 농림관료의 무능에 그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윗분의 심기만 살피고 내리시는 말씀만 수첩에 받아쓰려 해서는 아무도 생색 안나고 보잘 것 없게 보이는 농업·농촌·농 민 문제를 챙겨줄리 없다. 주어진 자리에서 3농을 살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 확신과 철학을 가지고 일신의 안위와 이해를 떠나 자기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한다. 주춤 주춤 머뭇거리다가는 ‘농림축산식품 수입부’로 전락하거나 기획재정부의 일개 국 또는 과 단위로 농정 위상이 위축되기 십상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행정풍토이다. 선임자들이 어떻게 얻어낸 친환경 유기농 직불제이며, 우유 군납확대이며, 수입개방 피해대책인지 통찰하고 학습해야 한다. 임기 중에 지속적인 유기농 직불제 하나라도 얻어내지 못하겠거든, 콩값 안정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겠거든, 축산업 붕괴를 막지 못하겠거든, 농어촌 초중학교 폐교 조치를 완화시키지 못하겠거든, 제주로부터 전국에 번져가는 재선충을 박멸하지 못하겠거든, 아, 차라리 물러서는 것만 같지 못하다. 대통령이든, 장관직이든. 민초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하는 정부는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글은 2013년 12월23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며칠 후면 한(恨) 많고 설움 많던 계사년이 저물어 간다. 풀뿌리 백성(民草)들의 가슴엔 한이 넘치다 못해 냉기(冷氣)가 역연하다. 이 땅 위에서 제일 힘없고 가냘픈 농민이라는 이름의 백성들은 마치 고립무원의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이제 울부짖을 힘마저 빠졌는지 애꿎은 생명을 팽개치려 하는 민초들의 행렬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차별받는 복면녀-귀농녀의 인권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작년 말 대선 막바지 서울의 한 사설 오피스텔에서 ‘댓글’ 달기 공무(?)에 열중하다가 야당측이 현장을 덮치자 쇠문을 꼭 닫아 걸고 경찰의 퇴로 마련 도움마저 마다하며 흔적지우기에 골몰했던 그 복면녀(국정원의 여직원 김하영씨) 사건때 참으로 감동스러운 인간애가 연출되었다. 마지막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나온 여성후보 박근혜 현 대통령께서 “가녀린 여인의 인권”이 그렇게 짓밟혀도 되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이란 잘못은 뒤로 밀려나고 오로지 여성후보님의 섬세한 인권배려 품새가 돋보였다.
복면녀 사건이 터진지 꼭 1년 지난 12월13일, 밀양시 단장면 96번 송전탑 765KV 건설현장 인근의 동화전 마을 ‘황토방’에서 6년차 귀농녀인 부산 출신 권아무개(53) 여인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다. 다행히 주민들에게 일찍 발견되어 생명은 건졌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전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게 남긴 유서에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해주십시오. 내 땅에 내 마음대로 가(서 농사도 짓)지 못하는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한겨레, 2013. 12.14).
그런데 가녀린 복면녀의 인권에 대하여는 그렇게 자상하시던 ‘그 분’께서, 과문인지 모르지만, 밀양의 귀농녀에게는 아직 따뜻한 말씀이 한마디도 없다고 한다. 도회지 공무원 복면녀의 인권과 시골 오지 귀농녀의 인권에 무게차이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고, 외교와 민생 챙기기에 올인하다 보니 깜빡 잊어서도 아닐게다. 아마도 안행부인지 농림부인지 산업통상부인지 담당 장관 또는 참모 중에 건의 한 번 올리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게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아랫사람 공직자들이 밉고 야속하다.
윗분에 무조건 충성하는 좀비들
말이야 바로 하자면, 박근혜 정권 고위직 인사 때부터 이미 예정된 정치 부재, 민생 부재, 민권 부재, 남북평화 부재 현상의 하나에 불과하다. 자기가 지켜야 할 국민에게 잘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챙겨줄 윗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몇 배 이득이 된다는 동물적 생존본능에 능한 사람들만 골라 뽑다보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윗분의 입장에서는 그런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 요긴할 때가 더 많다. 필자도 “잠시 해봐서 아는데” 어렸을 때부터 인문·사회학적 대동(大同) 정신이 박히지 않은 사람, 또는 과학·기술 관료일수록 상관에게만은 맹목적 충성심이 강하다. 최근 전국적인 원전비리 사건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정치·법률·경영경제학을 선진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 온 각료일수록 흔히 소관행정분야에서 사람(민초)를 놓치고 효율과 성장론에만 몰입하는 로봇 같은 멘탈리티가 많다. 따뜻한 심장보다는 냉철한 두뇌가 너무 빛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농촌·농 민 행정에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FTA 대책비를 대기업 토마토 온실농사에 지원하고, 천문학적 국민혈세의 간척농지를 식품대기업들에게 분양하고, 유통현대화 자금은 초거대 재벌회사에 지원하며, 수출농업 한다고 또는 6차 산업한다고 또 다른 기업회사나 봐주는 것이 과거 농정 아니던가. 우리 농산물, 농민이 빠진 한식세계화 사업, 시군 유통센터 투자, 그 부실 4대강 사업, 또 요즘엔 ‘창조경제’를 한답시고 시범지구 운영을 통해 시행착오 없이 국가 100년 대계로 추진하여야 할 ‘6차산업’ 육성책을 대뜸 1,000개로 벌여 돈을 쳐 발라 놓고 MB정권 때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이 정권이 끝날 무렵 누가 그 낭비에 책임을 질 것인가.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농촌현장
지금 전국의 3농 현장을 둘러보라. 예년 같으면 평년작에 불과한데도 풍년이 들었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쌀값 하락에 생산농민들만 골탕을 먹어 관청 앞에 나락더미 쌓아 놓고 한숨만 가쁘게 쉬고 있다. 정부의 쌀 목표가격 인상을 8년이나 기다렸는데도 가마당 고작 5,603원만 올리겠다니, 오죽하면 엄동설한에 1만여 농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몰려와 울부짖었을까. 한·중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한·호주 FTA 협상이 소문도 없이 뚝딱 밀실에서 타결되었으며 이어 뉴질랜드, 캐나다와의 협상도 곧 타결될 모양이다. 웬걸 한 술 더 떠, 무관세 수입개방의 종결판인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한국도 참여하겠단다.
미국 정부는 한국이 TPP에 참여하려면 먼저 비협상 항목인 4개 선결사항을 해결하고 협상에 임하라고 전가의 보도(傳家之寶刀)를 꺼내 들었다. 그중의 한 개가 여축없이 농업문제이다. 한·미 FTA 협상 때도 4개 선결조항 중에 광우병 의심 쇠고기의 전면 개방을 요구하여 재미를 본 미국이 이번에는 유기농산물과 유기농 식품을 사전 현장검사 없이 완전 무관세 개방하라는 요구이다. 미국의 유기농 인증 검증시스템이 IFOAM(국제유기농연맹) 회원국가 중 워낙 광대한 땅이다 보니 허술한 것은 정평이 나 있는데 우리나라 더러 무조건 그걸 인정하고 수입하라는 것이다.
쌀 자급은 80%대, 보리자급률 22.5%, 밀 1.1%, 옥수수 0.8%, 콩류 자급률 6.4%, 전체 곡물자급률이 22.6%인데, 정부만 믿고 콩 생산량을 조금 늘렸더니 콩 값이 우루루 쾅 폭락하여 애꿎은 농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똥값이 된 배추밭을 엊그제 갈아엎었는데 고추 값마저 반값 이하로 뚝 떨어져 팔 곳도 막막하다. 그동안 고추 생산기반은 18년 새 반토막이 났다. 앞으로 한·중 FTA가 타결되면 중국산 배추, 무, 마늘, 고추로 연명할 신세이다. 그런데도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적 비축농산물 중 국산은 5.8%에 불과한데 반하여, 수입농산물이 94.2%나 된다. 비축시설 예산들여 수입산만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처 조사에 따르면 그중 국내산 콩의 비축비중은 놀라지 마시라. 빵(0)%이다. 서울교육청은 학교급식 중 친환경 유기농산물의 사용비중을 축소하고 급식시장을 업자들과의 가격경쟁에 맡기려는 ‘학교급식 식재료 구매방법’ 개악안을 만들었다. 국방부에서는 군대급식용 국산우유 납품량을 줄이기 위해 250㎖ 우유팩을 200㎖ 크기로 낮추라고 요구하여 낙농업에 종사하는 축산농민들이 추운 날씨인데도 국방부 앞에 가서 통사정을 하고 있다. TPP에 가입하면 쌀시장의 완전개방 문제는 ‘묻지마라 갑자생’이고 무관세 쇠고기·돼 지고기 등 축산물 시장의 완전 오프닝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의 시간문제이다. 그런데 명색이 농정기관 최고책임자란 분들이 김장쇼나 하고 누구를 위한 무슨 행사인지 테이프 컷팅이나 하며 돌아다니는가.
농림 관료들 무능이 절반의 책임
필자의 농정 참여 경험상 단호히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앞에서 말한 재정(돈), 제도(급식, 납품 등), 수입, 시장개방 문제 등은 농림관료의 무능에 그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윗분의 심기만 살피고 내리시는 말씀만 수첩에 받아쓰려 해서는 아무도 생색 안나고 보잘 것 없게 보이는 농업·농촌·농 민 문제를 챙겨줄리 없다. 주어진 자리에서 3농을 살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 확신과 철학을 가지고 일신의 안위와 이해를 떠나 자기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한다. 주춤 주춤 머뭇거리다가는 ‘농림축산식품 수입부’로 전락하거나 기획재정부의 일개 국 또는 과 단위로 농정 위상이 위축되기 십상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행정풍토이다. 선임자들이 어떻게 얻어낸 친환경 유기농 직불제이며, 우유 군납확대이며, 수입개방 피해대책인지 통찰하고 학습해야 한다. 임기 중에 지속적인 유기농 직불제 하나라도 얻어내지 못하겠거든, 콩값 안정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겠거든, 축산업 붕괴를 막지 못하겠거든, 농어촌 초중학교 폐교 조치를 완화시키지 못하겠거든, 제주로부터 전국에 번져가는 재선충을 박멸하지 못하겠거든, 아, 차라리 물러서는 것만 같지 못하다. 대통령이든, 장관직이든. 민초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하는 정부는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글은 2013년 12월23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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