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왕어촌계를 이끄는‘협동의 힘’ | 허승욱 단국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14
- 조회 545
중왕어촌계를 이끄는‘협동의 힘’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중왕어촌계는 가로림만을 마주하고 있는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에 있다. 101가구에 270여 명이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터전이다. 그곳에 가면, 들물과 날물이 쉼 없이 오가며 만들어 낸 갯벌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몇 척의 어선이 기우뚱 쓰러진 채로 들물을 기다리고, 날물을 맞은 사람들은 어지간히도 분주하다. 갯벌과 사람 그리고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지금이 한창인 굴을 따고 항구로 나르기도 하며, 감태가 자라는 곳도 손질하느라 바쁘다. 물론 낙지 잡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들물과 날물의 차가 세고, 깊고 넒은 갯벌은 이 곳 낙지가 단연코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낙지는 제철이 없어 밀국낙지(어린 낙지)부터 철마다 각기 다른 맛을 선사할뿐더러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 하지 않는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일 년 열두 달 낙지를 잡는다.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네 명의 고수가 있단다. 다른 분들이 일찍이 낙지를 잡으러 나갈 때 이분들은 유유자적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로 한껏 여유를 즐긴다. 때가 되면 서서히 나가 웬만큼 한다하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절정의 삽질’을 하는데, 갯벌을 업는 족족 낙지가 딸려 나온단다. 이 고수들의 노하우는 한마디로 ‘때를 잘 알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설레발을 쳐봐야 때가 아닌데 많은 낙지가 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포수는 쫓지 않고 길목을 지킨다는 말처럼 물 때 싸움, 그들의 지혜로 세상을 배운다. 낙지만 잡아서 한 해 8500만원 소득을 올리는 분도 있다고 하니 진짜 대단하다. 느닷없이 이 갯벌에서 얼마나 많은 낙지가 날까하는 의문이 든다. 여러분, 중왕어촌계 갯벌에서 나는 낙지가 1년에 몇 마리나 될까요? 정답은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4년마다 직접선거로 계장 선출
이런 아름답고 사람 사는 재미 쏠쏠한 그들의 조직, 중왕어촌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박현규 계장이다. 과장 아래 계장이 아니다. 4년마다 계원들의 직접선거로 뽑는 명실상부한 어촌계의 대표다. 연임 제한도 없단다. 최고로 오래한 분이 얼마나 하셨냐고 물으니, 인근에 20년 하신 계장님도 계신단다. 어촌계장의 세계에서는 사십 중반의 밀국낙지급이나 다름없는 박현규 계장에게 20년 기록을 깨보라 농을 던지니 연신 손사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소통과 합의의 정신 뿌리내려
어촌계? 궁금하다. 아니 생소하다. 서해안 머드축제니 김, 새우젓 같은 거 말고는 딱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이런 어촌계를 나는 다시 보자 말하고 싶다.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생활권 단위, 마을자치조직의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서산에만 200여 개의 어촌계가 있고, 충남에는 2000여 개가 넘는 어촌계가 있다. 50여 가구 정도 되는 작은 어촌계에서 수백가구가 넘는 큰 어촌계도 있다. 공동어업구역을 기반으로 존립하는 것이 어촌계이기 때문에 그들은 오랜 갈등과 해결의 노하우를 온 몸으로 익히며 투쟁하고 이겨내 왔다. 그 과정은 적잖은 고통, 그리고 다툼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역할을 다해가며 어촌계라는 어마어마한 개미집을 지어 냈다. 그 힘과 마음가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소통과 합의였다고 생각한다. 소통과 합의가 상실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되짚어야 할 시대정신과도 같다. 어촌계의 모든 일은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데, 다소간의 주판싸움은 있더라도 모두 합의해 결정되면 자신의 이해는 두 번째다. 계에서 결정한 규율을 따르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칙을 받는데, 이의는 없다. 아흔이 넘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나 마을로 갓 돌아온 삼십이 넘은 이의 이야기도 한 그릇에서 버무려진다. 계원들은 신참내기 계장에게 호통도 치지만, 두세 배의 더 큰 박수도 친다. 박현규 계장이 신바람 나게 전국을 갈고 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협동이다.
진정한 협동 실현 ‘좋은 모델’
중왕어촌계의 갯벌은 얼마 안돼 보이지만, 7km가 넘는다.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많은 생태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그곳에 우리가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낙지만 1년에 20만 마리다.
이 글은 2014년 1월 1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중왕어촌계는 가로림만을 마주하고 있는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에 있다. 101가구에 270여 명이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터전이다. 그곳에 가면, 들물과 날물이 쉼 없이 오가며 만들어 낸 갯벌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몇 척의 어선이 기우뚱 쓰러진 채로 들물을 기다리고, 날물을 맞은 사람들은 어지간히도 분주하다. 갯벌과 사람 그리고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지금이 한창인 굴을 따고 항구로 나르기도 하며, 감태가 자라는 곳도 손질하느라 바쁘다. 물론 낙지 잡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들물과 날물의 차가 세고, 깊고 넒은 갯벌은 이 곳 낙지가 단연코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낙지는 제철이 없어 밀국낙지(어린 낙지)부터 철마다 각기 다른 맛을 선사할뿐더러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 하지 않는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일 년 열두 달 낙지를 잡는다.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네 명의 고수가 있단다. 다른 분들이 일찍이 낙지를 잡으러 나갈 때 이분들은 유유자적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로 한껏 여유를 즐긴다. 때가 되면 서서히 나가 웬만큼 한다하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절정의 삽질’을 하는데, 갯벌을 업는 족족 낙지가 딸려 나온단다. 이 고수들의 노하우는 한마디로 ‘때를 잘 알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설레발을 쳐봐야 때가 아닌데 많은 낙지가 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포수는 쫓지 않고 길목을 지킨다는 말처럼 물 때 싸움, 그들의 지혜로 세상을 배운다. 낙지만 잡아서 한 해 8500만원 소득을 올리는 분도 있다고 하니 진짜 대단하다. 느닷없이 이 갯벌에서 얼마나 많은 낙지가 날까하는 의문이 든다. 여러분, 중왕어촌계 갯벌에서 나는 낙지가 1년에 몇 마리나 될까요? 정답은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4년마다 직접선거로 계장 선출
이런 아름답고 사람 사는 재미 쏠쏠한 그들의 조직, 중왕어촌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박현규 계장이다. 과장 아래 계장이 아니다. 4년마다 계원들의 직접선거로 뽑는 명실상부한 어촌계의 대표다. 연임 제한도 없단다. 최고로 오래한 분이 얼마나 하셨냐고 물으니, 인근에 20년 하신 계장님도 계신단다. 어촌계장의 세계에서는 사십 중반의 밀국낙지급이나 다름없는 박현규 계장에게 20년 기록을 깨보라 농을 던지니 연신 손사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소통과 합의의 정신 뿌리내려
어촌계? 궁금하다. 아니 생소하다. 서해안 머드축제니 김, 새우젓 같은 거 말고는 딱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이런 어촌계를 나는 다시 보자 말하고 싶다.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생활권 단위, 마을자치조직의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서산에만 200여 개의 어촌계가 있고, 충남에는 2000여 개가 넘는 어촌계가 있다. 50여 가구 정도 되는 작은 어촌계에서 수백가구가 넘는 큰 어촌계도 있다. 공동어업구역을 기반으로 존립하는 것이 어촌계이기 때문에 그들은 오랜 갈등과 해결의 노하우를 온 몸으로 익히며 투쟁하고 이겨내 왔다. 그 과정은 적잖은 고통, 그리고 다툼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역할을 다해가며 어촌계라는 어마어마한 개미집을 지어 냈다. 그 힘과 마음가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소통과 합의였다고 생각한다. 소통과 합의가 상실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되짚어야 할 시대정신과도 같다. 어촌계의 모든 일은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데, 다소간의 주판싸움은 있더라도 모두 합의해 결정되면 자신의 이해는 두 번째다. 계에서 결정한 규율을 따르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칙을 받는데, 이의는 없다. 아흔이 넘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나 마을로 갓 돌아온 삼십이 넘은 이의 이야기도 한 그릇에서 버무려진다. 계원들은 신참내기 계장에게 호통도 치지만, 두세 배의 더 큰 박수도 친다. 박현규 계장이 신바람 나게 전국을 갈고 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협동이다.
진정한 협동 실현 ‘좋은 모델’
중왕어촌계의 갯벌은 얼마 안돼 보이지만, 7km가 넘는다.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많은 생태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그곳에 우리가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낙지만 1년에 20만 마리다.
이 글은 2014년 1월 1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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