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동학농민혁명이 필요하다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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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동학농민혁명이 필요하다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갑오년은 농업인들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해이다. 120년 전인 1894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갑오년 새해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새 세상을 꿈꾸며 궐기했던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의 열정이 뜨겁게 타올랐던 고창, 부안, 정읍, 김제, 완주 일대의 동학혁명 유적지를 다녀왔다.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 연 횃불
백성이 농민이고 농민이 백성이었던 시절 조선농민들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봉건 왕조에 맞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정월 고부항쟁을 시작으로 3월에는 무장에 집결해 ‘포고문’을 선포했으며 백산대회를 열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4월에는 관군과의 황토현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 여세를 몰아 전주성을 함락했다. 동학혁명군은 27개조항의 ‘폐정개혁(弊政改革)’을 요구하고 전라 53개주에 ‘집강소’라는 자율적 협치기구를 설치해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조정은 동학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이것을 빌미로 조선에 침입한 일본군은 조정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은 동학군 진압에 나섰고, 그해 11월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웅대한 꿈은 막을 내렸다.
동학혁명은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승리한 ‘백성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은 잠자는 농민을 깨워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 세상을 여는 정신혁명이었으며 국민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은 지난 120년 동안 조선말에는 개화, 개혁운동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자주, 독립투쟁으로, 1954년 갑오년 이후에는 산업화와 자유, 민주, 평등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이끄는 꺼지지 않는 변화와 개혁의 횃불이 됐다. 그 밑바탕에는 ‘동학사상’이 있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34년 전인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억압받는 백성에게 새로운 희망과 봉건질서에 저항하는 혁명 사상을 심었다. ‘천주’를 마음에 모시면 신분, 빈부, 적서(嫡庶), 남녀구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수행을 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사상은 당시로서는 사실상 신분제철폐를 외치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최시형의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들불이 되어 백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다. 천대받는 농삿꾼도 사람으로 존중받는 평등세상이 열린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은 구원의 메시지였다. 동학사상은 34년 세월이 지나면서 백성의 신앙이 됐고 호남, 충청, 영남의 3남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
전봉준은 동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에 대해 동학이 가르치는 하늘을 공경하고 마음을 바르게 지키는 ‘경천수심(敬天守心)’과 어떤 일이든 근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란 ‘대체정심(大體正心)’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른 마음을 지키고 생활 속에서 바름을 실천해 기를 바르게 한다는 ‘수심정기(守心正氣)’는 동학의 자기수양법이었다. 전봉준은 더 나아가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일치(協同一致)’해 결당한다면 간악한 관리들을 없애고 보국안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봉준은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협동을 통한 바른 실천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50년 전인 1844년, 영국의 로치데일에서는 28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작하는 선구자적인 일의 근본적 의미를 ‘공정(公正, equitable)’이란 말로 표현했다. 바르고 공평(평등)하게, 정당하게 일하겠다는 실천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로치데일 사람들은 ‘품질과 양을 속이지 않고 순정품만 공급한다는 원칙’을 조합규약으로 정했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바른 협동조합이 자신과 지역사회를 바꾸자 로치데일은 지역이름을 떠나 바른 협동조합의 정신과 실천을 상징하는 세계 최초의 성공한 바른 협동조합모델이 됐다. 바른 마음을 가진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바른 실천을 위한 협동조합결성은 전봉준이 꿈꾸었던 동학혁명과 정신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일치해 새 세상을 열자는 전봉준의 동학혁명사상과 ‘로치데일 정신’의 근본이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농업인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농협
1948년 대한민국정부 출범 이후 지난 66년간 우리는 농업과 농촌과 농민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농협’에 두고 농협이 이를 실천해 주기를 바라며 ‘농협 키우기’에 힘을 모았다. 국민도 ‘농민을 위해 농협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협을 도왔고 정부도 지원했다. 농업인, 국민, 정부의 도움과 농협동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농협은 마침내 세계 5대 협동조합으로 우뚝 섰지만 ‘농업인을 위해 일한다’는 본래의 이상과 정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농업인의 농협’으로 바로 세워야
“가진 것은 돈밖에 없다”는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다기 보다 농업인 위에 군림한 오만하고 부패한 농협이 됐으며, 돈으로 정치를 사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 됐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바른 농협을 만들기 위해 헌신한 선배들의 역사도 전통도 모르고,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정체성과 근본을 모르는 임직원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농협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에 여념이 없는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의 패거리구조를 혁파하지 않는 한 농업인이 주인이 되는 농협은 요원하다. 임직원들로부터 농협을 되찾아 근본이 바로선 농업인의 농협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인들이 ‘제2의 동학농민혁명’의 각오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2015년 3월에 있을 전국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농협을 되찾는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농업인에게 갑오년 새해가 농협개혁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단과 도전의 시간이 되기 바란다.
이 글은 2014년 2월 3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갑오년은 농업인들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해이다. 120년 전인 1894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갑오년 새해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새 세상을 꿈꾸며 궐기했던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의 열정이 뜨겁게 타올랐던 고창, 부안, 정읍, 김제, 완주 일대의 동학혁명 유적지를 다녀왔다.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 연 횃불
백성이 농민이고 농민이 백성이었던 시절 조선농민들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봉건 왕조에 맞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정월 고부항쟁을 시작으로 3월에는 무장에 집결해 ‘포고문’을 선포했으며 백산대회를 열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4월에는 관군과의 황토현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 여세를 몰아 전주성을 함락했다. 동학혁명군은 27개조항의 ‘폐정개혁(弊政改革)’을 요구하고 전라 53개주에 ‘집강소’라는 자율적 협치기구를 설치해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조정은 동학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이것을 빌미로 조선에 침입한 일본군은 조정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은 동학군 진압에 나섰고, 그해 11월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웅대한 꿈은 막을 내렸다.
동학혁명은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승리한 ‘백성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은 잠자는 농민을 깨워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 세상을 여는 정신혁명이었으며 국민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은 지난 120년 동안 조선말에는 개화, 개혁운동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자주, 독립투쟁으로, 1954년 갑오년 이후에는 산업화와 자유, 민주, 평등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이끄는 꺼지지 않는 변화와 개혁의 횃불이 됐다. 그 밑바탕에는 ‘동학사상’이 있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34년 전인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억압받는 백성에게 새로운 희망과 봉건질서에 저항하는 혁명 사상을 심었다. ‘천주’를 마음에 모시면 신분, 빈부, 적서(嫡庶), 남녀구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수행을 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사상은 당시로서는 사실상 신분제철폐를 외치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최시형의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들불이 되어 백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다. 천대받는 농삿꾼도 사람으로 존중받는 평등세상이 열린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은 구원의 메시지였다. 동학사상은 34년 세월이 지나면서 백성의 신앙이 됐고 호남, 충청, 영남의 3남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
전봉준은 동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에 대해 동학이 가르치는 하늘을 공경하고 마음을 바르게 지키는 ‘경천수심(敬天守心)’과 어떤 일이든 근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란 ‘대체정심(大體正心)’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른 마음을 지키고 생활 속에서 바름을 실천해 기를 바르게 한다는 ‘수심정기(守心正氣)’는 동학의 자기수양법이었다. 전봉준은 더 나아가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일치(協同一致)’해 결당한다면 간악한 관리들을 없애고 보국안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봉준은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협동을 통한 바른 실천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50년 전인 1844년, 영국의 로치데일에서는 28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작하는 선구자적인 일의 근본적 의미를 ‘공정(公正, equitable)’이란 말로 표현했다. 바르고 공평(평등)하게, 정당하게 일하겠다는 실천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로치데일 사람들은 ‘품질과 양을 속이지 않고 순정품만 공급한다는 원칙’을 조합규약으로 정했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바른 협동조합이 자신과 지역사회를 바꾸자 로치데일은 지역이름을 떠나 바른 협동조합의 정신과 실천을 상징하는 세계 최초의 성공한 바른 협동조합모델이 됐다. 바른 마음을 가진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바른 실천을 위한 협동조합결성은 전봉준이 꿈꾸었던 동학혁명과 정신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일치해 새 세상을 열자는 전봉준의 동학혁명사상과 ‘로치데일 정신’의 근본이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농업인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농협
1948년 대한민국정부 출범 이후 지난 66년간 우리는 농업과 농촌과 농민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농협’에 두고 농협이 이를 실천해 주기를 바라며 ‘농협 키우기’에 힘을 모았다. 국민도 ‘농민을 위해 농협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협을 도왔고 정부도 지원했다. 농업인, 국민, 정부의 도움과 농협동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농협은 마침내 세계 5대 협동조합으로 우뚝 섰지만 ‘농업인을 위해 일한다’는 본래의 이상과 정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농업인의 농협’으로 바로 세워야
“가진 것은 돈밖에 없다”는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다기 보다 농업인 위에 군림한 오만하고 부패한 농협이 됐으며, 돈으로 정치를 사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 됐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바른 농협을 만들기 위해 헌신한 선배들의 역사도 전통도 모르고,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정체성과 근본을 모르는 임직원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농협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에 여념이 없는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의 패거리구조를 혁파하지 않는 한 농업인이 주인이 되는 농협은 요원하다. 임직원들로부터 농협을 되찾아 근본이 바로선 농업인의 농협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인들이 ‘제2의 동학농민혁명’의 각오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2015년 3월에 있을 전국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농협을 되찾는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농업인에게 갑오년 새해가 농협개혁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단과 도전의 시간이 되기 바란다.
이 글은 2014년 2월 3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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