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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진짜 농정 | 허승욱 단국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21
    • 조회 846
    진짜 농정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김원중이 부른 노래 ‘직녀에게’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가 좋다. 별 이유도 없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견우와 직녀처럼 긴 이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논의·반성 사라진 오늘날의 농정

    사전적인 의미로 이별이란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서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돌고 도는 농업에 어찌 비유할 수 있겠냐 하겠지만, 모든 존재하는 것은 수없는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다르지 않다. 관계들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많은 이별과 너무나 익숙하게 살고 있다. 아니, 너무 익숙해져서 서로 이별해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종과 축산이 그렇고 도시와 농촌도 그렇다. 산지와 소비지가 그렇고 바다와 육지가 등을 맞대고 이별한 채 따로국밥인지 오래다. 이별이란 원래 하나였던 것이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통합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농업부문에서 통합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별에 대한 논의와 반성이 선행돼야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의 본질적인 문제해결은 둘째문제고 방역초소 세우기에 급급한 것이 오늘날의 농정이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잘 가르친다고 해서 모두 선생님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축산의 축(畜)자는 검을 현(玄) 아래에 밭 전(田)자가 있다. 축산이란 본디 밭을 검게 만드는, 다시 말해 밭을 기름지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논과 밭이 그리고 가축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의존하는 농업을 수천 년 동안 지속해 왔다. 그러나 급증하는 식품 수요는 비료, 농약, 항생제 같은 비농업적이며 인공적인 투입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시켰다. 사실 공업과 농업이 분간이 잘 안되고, 공장과 농장이 또한 그렇다. 축산과 경종이 서로 딴 집 살림을 하고 있으니, 가축분뇨는 논밭의 소중한 자원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폐기물이 돼 버렸다.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은 둘째 치고, 악취로 민원이 되기 일쑤이며, 동네 경관도 한 방에 보내버리는 골칫덩어리가 돼버린 것이다. 어르신들이 그러신다. “예전엔 학교서 똥이 마려우면, 죽기살기로 달려가 내 밭에 가서 누었어!”

    농업은 기업·대형마트에 종속

    경종과 축산만이 둘로 나뉜 것이 아니다. 계열화(integration)는 효율적 생산방식이라는 탈을 쓴 채 농업과 생산의 주인인 농민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저 알려주는 대로 먹이고 처방하면 끝나는 공장의 노동자나 다름 아니게 됐다. 우리 모두 행복하자고 한 것인데 진짜농민은 온데간데없고 기업 자본 앞에 무릎 꿇고 있다. 불과 20년도 안됐다.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에 백화점에서 멜론을 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언제 우리가 백화점에서 과일을 사고, 마트에서 배추를 사게 될 줄 알았겠는가? 우리의 농업이 기업과 대형마트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이 현실들 또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소비자들이 배추 한포기를 세재나 다름없이 데면데면하게 카트에 담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이별도 보통 이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통합의 진짜농정을 기대한다

    진짜 농정은 둘을 하나로 묶어 내는 통합이 기본이다. 농정이란 그 개념만큼 범위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지만, 결국 농업·농촌·농민이 삼각뿔의 꼭지점에서 만날 수 있도록 물꼬를 잘 내는 일이 아닐까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헤어지게 된 데에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바탕을 둔 성장논리가 정중앙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며, 멀리 봐야 한다. 강이 아름다운 것은 흐르기 때문이고, 바다가 있는 것은 육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별은 끝나야한다. 슬픔은 끝나야한다. 우리는 만나야한다”로 끝나는 ‘직녀에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통합의 진짜농정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2014년 2월 17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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