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개방이 답인가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32
- 조회 588
쌀 관세화 개방이 답인가
| 장상환 경상대 교수
정부가 쌀 관세화 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국회 동의라는 요식을 거쳐 추진하려 한다. 현행유지가 가장 좋겠지만 WTO 협정에 재협상할 근거가 없고 내년부터는 자동으로 관세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쌀 관세화를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뿐으로, 관세화 외의 방법은 일시적 의무면제(웨이버) 밖에 없는데 필리핀의 경우 엄청난 양보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개도국이면서 식량 대량수입국이라는 처지에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쌀 수입개방을 유예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쌀 수입 늘지 않을 것” 주장 억지
정부는 쌀 관세화 개방으로 전환해도 쌀 수입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일본의 경우 1999년 관세화 개방 후 높은 관세율로 수입한 것은 미미했고, 2002년에 관세화 개방한 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관세화 개방 후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WTO 협정에서 농산물 관세화 수입개방 원칙을 왜 설정했는가. 또 2004년에 왜 쌀을 관세화 개방하지 않았는가. 왜 수출국들은 실속 없는 관세화 개방 보다는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최소시장접근 물량을 늘리는 과실을 더 좋아하지 않는가.
관세화 후에 FTA나 TPP 등으로 관세율이 점차 낮아질 것이고, 쌀 수입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쌀 관세화로 쌀 수입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인도는 2013년 제정된 식량보장법에 따라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이고 빈곤층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190억달러로 WTO 허용 보조금 총액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6일 발리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는 개도국이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보조한도를 초과할 경우, 영구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선진국들이 제소를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의 사례는 WTO 규정도 성역이 아니라 각국의 특수한 조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됨을 보여준다. 인도의 보조금 초과 허용은 개도국 우대 조치의 일환이다. 한국도 농업 개도국에 속하므로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인도·필리핀 사례 참고해야
필리핀의 쌀 협상과정도 참고 대상이다. 필리핀은 쌀을 매년 100만~200만톤 수입했다. 전체 생산량 1800만톤의 10% 내외에 달한다. 2008년 세계 식량위기 때 식량폭동 사태까지 벌어졌다. 수입제한과 국내증산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리핀은 2012년부터 일시 의무면제조항을 이용해 협상하면서 5년간 저율할당관세 물량을 35만톤에서 80만5000톤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4월 9일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 쌀과 관련된 조건은 잠정 합의됐다. 쌀 수출국들로서는 의무수입물량이 늘어나고 또 상업수입 물량도 상당하므로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계속 버티면 참여국들은 무리한 추가 조건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식량자급률이 26%에 불과하고 쌀을 제외할 경우 3%로 식량보장을 위협받고 있다. 관세화 유예협상에서 필리핀과 수출국간에 잠정 합의한 의무수입 물량은 생산량의 5%에도 못 미친다. 한국은 이미 8%에 달했으므로 결코 10%를 넘지 않도록 협상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쌀 관세화 섣부른 결정 경계를
논리적으로도 볼 때 쌀 관세화 개방은 DDA 협상이 끝날 때까지 유예할 수 있다. 선진국은 6년의 이행 기간 후 2000년, 개도국은 2004년에 이행기간이 끝나고 현재는 이행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2014년까지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왔다.
DDA 협상은 교착상태에 있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계 쌀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은 이미 쌀 대량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쌀 수출량은 30만~40만톤에 불과한 반면 수입량은 1998~2011년 평균 43만톤에서 2012년 290만톤으로 급증했고, 2013년 이후 300만톤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도 쌀 수출 증가보다는 쇠고기 수출 증대에 더 관심이 크다.
쌀 관세화를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관세화 유예협상을 요구하면 협상이 장기간 진행될 것이다. 그동안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DDA 협상 진행에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4월 28일에 실린 글입니다.
| 장상환 경상대 교수
정부가 쌀 관세화 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국회 동의라는 요식을 거쳐 추진하려 한다. 현행유지가 가장 좋겠지만 WTO 협정에 재협상할 근거가 없고 내년부터는 자동으로 관세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쌀 관세화를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뿐으로, 관세화 외의 방법은 일시적 의무면제(웨이버) 밖에 없는데 필리핀의 경우 엄청난 양보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개도국이면서 식량 대량수입국이라는 처지에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쌀 수입개방을 유예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쌀 수입 늘지 않을 것” 주장 억지
정부는 쌀 관세화 개방으로 전환해도 쌀 수입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일본의 경우 1999년 관세화 개방 후 높은 관세율로 수입한 것은 미미했고, 2002년에 관세화 개방한 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관세화 개방 후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WTO 협정에서 농산물 관세화 수입개방 원칙을 왜 설정했는가. 또 2004년에 왜 쌀을 관세화 개방하지 않았는가. 왜 수출국들은 실속 없는 관세화 개방 보다는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최소시장접근 물량을 늘리는 과실을 더 좋아하지 않는가.
관세화 후에 FTA나 TPP 등으로 관세율이 점차 낮아질 것이고, 쌀 수입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쌀 관세화로 쌀 수입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인도는 2013년 제정된 식량보장법에 따라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이고 빈곤층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190억달러로 WTO 허용 보조금 총액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6일 발리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는 개도국이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보조한도를 초과할 경우, 영구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선진국들이 제소를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의 사례는 WTO 규정도 성역이 아니라 각국의 특수한 조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됨을 보여준다. 인도의 보조금 초과 허용은 개도국 우대 조치의 일환이다. 한국도 농업 개도국에 속하므로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인도·필리핀 사례 참고해야
필리핀의 쌀 협상과정도 참고 대상이다. 필리핀은 쌀을 매년 100만~200만톤 수입했다. 전체 생산량 1800만톤의 10% 내외에 달한다. 2008년 세계 식량위기 때 식량폭동 사태까지 벌어졌다. 수입제한과 국내증산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리핀은 2012년부터 일시 의무면제조항을 이용해 협상하면서 5년간 저율할당관세 물량을 35만톤에서 80만5000톤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4월 9일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 쌀과 관련된 조건은 잠정 합의됐다. 쌀 수출국들로서는 의무수입물량이 늘어나고 또 상업수입 물량도 상당하므로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계속 버티면 참여국들은 무리한 추가 조건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식량자급률이 26%에 불과하고 쌀을 제외할 경우 3%로 식량보장을 위협받고 있다. 관세화 유예협상에서 필리핀과 수출국간에 잠정 합의한 의무수입 물량은 생산량의 5%에도 못 미친다. 한국은 이미 8%에 달했으므로 결코 10%를 넘지 않도록 협상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쌀 관세화 섣부른 결정 경계를
논리적으로도 볼 때 쌀 관세화 개방은 DDA 협상이 끝날 때까지 유예할 수 있다. 선진국은 6년의 이행 기간 후 2000년, 개도국은 2004년에 이행기간이 끝나고 현재는 이행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2014년까지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왔다.
DDA 협상은 교착상태에 있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계 쌀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은 이미 쌀 대량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쌀 수출량은 30만~40만톤에 불과한 반면 수입량은 1998~2011년 평균 43만톤에서 2012년 290만톤으로 급증했고, 2013년 이후 300만톤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도 쌀 수출 증가보다는 쇠고기 수출 증대에 더 관심이 크다.
쌀 관세화를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관세화 유예협상을 요구하면 협상이 장기간 진행될 것이다. 그동안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DDA 협상 진행에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4월 28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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