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농민, 그리고 인문학 | 전희식(농부. 녹색당 농업먹거리특위 위원장)
- 작성일2020/03/05 16:34
- 조회 557
세월호 참사와 농민, 그리고 인문학
| 전희식(농부. 녹색당 농업먹거리특위 위원장)
지난 스승의 날에 1천 5백여 명의 선생님들이 실명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교사선언’을 했는데 고맙고 부러웠다. 스승의 참 모습을 교직까지 걸고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 고마웠고 경제적 이해와 직업의 한계를 넘어 나라의 문제, 겨레의 고통에 담대하게 발언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농민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43명의 교사들이 역시 실명으로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정권 퇴진운동을 벌인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시국선언 확산
교사 뿐 아니라 노동자나 교수, 변호사, 의사들이 시국선언으로 나라와 겨레의 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이 부러운 것은 우리 농민들도 농업보조금이나 직불금, 벼 수매가 인상과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뿐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나 밀양의 핵발전 송전탑 문제에 독자적인 발언과 선언을 할 수 있었으면 해서다.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그동안 식품의 안전과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 전 시민적 이해를 제기하지 않은 건 아니나 어디까지나 농업·농민의 이해에 바탕해서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참사가 벌어지고 난 뒤인 2012년 7월에 본인을 포함한 19명의 발기인과 250여명의 서명으로 <핵발전 없는 세상을 위한 귀농자 선언>이 있었지만 이것이 농민선언으로까지 추진되지는 못했다.
나라·민족문제 최선두였던 농민
120년 전의 갑오년에도 그랬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우리 농민은 나라와 민족문제의 최선두를 지켰었다.
개개인이 삶의 조건을 뛰어 넘어 인류의 문제나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것은 인류지성의 보편적 양식이다.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촛불을 드는 것을 정치 편향이라고 헐뜯고 깎아 내리는 것은 역사적 색맹들이나 하는 짓이다. 16살 어린 여학생인 류관순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고 정치색에 물든 것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4.19 혁명 때는 185명 희생자의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다. 수유리 4.19 묘역에 가면 나란히 걸린 초롱초롱한 학생복 차림의 10대 청소년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을 민주주의를 지켜 낸 고귀한 희생자라 부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거나 재미가 있는 경우에 행동으로 나선다, 개별 인간관계나 제도화된 집단관계에 있을 경우에도 역시 사람들은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데도 세월호 참사에 밥줄을 걸고 시국선언을 하는 교사들은 높은 수준의 사명감과 시대정신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인본중심의 역사의식과 사명감은 지성인의 원형이다. 생태·생명·평화·물리·정치·역사·경제·철학·문학·수학 등에 대한 우주적 사고가 지성인의 바탕이다. 이를 인문과학, 줄여서 인문학이라 부른다. 우주적 사고와 지역적 행동이 요구되는 요즈음에 농민인문학이 그리운 이유다.
최근에 순환과 공생을 강조하는 ‘지역재단’에서 학습조직운영 지원 사업 공모를 하고 있다. 지역문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협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우고자 하는 사업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갈등관계를 협동하는 관계로 바꾸어 내는 힘은 사물과 상황을 깊이 통찰 할 수 있는데서 나온다.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올 초에 설립된 우리 지역의 ‘(사)장수지역 활력센터’에서도 소모임 지원 사업을 한다. 각종 연구모임과 건강, 에너지, 농업분야 모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연구를 지원하기보다 소모임을 지원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른바 다중지성을 도모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문적 소양 넓히는 노력 필요
안토니오 네그리는 명저 <다중>에서 계급, 민족, 대중, 민중을 넘어서는 ‘다중’개념을 도입했고 이것이 다중지성으로 발전했다. 다중지성은 우리나라의 생명주의 물리학자 장회익선생의 ‘온생명철학’과 맞닿아 있다. 물질에서 생명으로, 우주로, 다시 인간으로 이어지는 현대 과학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필생의 과제로 삼아 온 노학자의 강의를 이번 달 말에 장수에서 마련했다.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농민생활인문학>에서 마련하는 자리다. 이미 자연건강, 대안에너지, 동학혁명, 지방자치, 차 문화 등의 강좌를 진행해 왔다.
부지깽이도 따라나선다는 농번기에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서 <생명과 과학-온생명의 우주>라는 강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궁극을 향한 쉼 없는 관심과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 기득권층의 지배방식은 이데올로기적 지배다. 허상의 이데올로기를 뚫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길은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인문적 소양을 넓히고 집단지성 형성에 농민들이 나서는 것은 농업과 농촌의 뿌리를 바꾸어가는 대장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2014.05.19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전희식(농부. 녹색당 농업먹거리특위 위원장)
지난 스승의 날에 1천 5백여 명의 선생님들이 실명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교사선언’을 했는데 고맙고 부러웠다. 스승의 참 모습을 교직까지 걸고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 고마웠고 경제적 이해와 직업의 한계를 넘어 나라의 문제, 겨레의 고통에 담대하게 발언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농민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43명의 교사들이 역시 실명으로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정권 퇴진운동을 벌인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시국선언 확산
교사 뿐 아니라 노동자나 교수, 변호사, 의사들이 시국선언으로 나라와 겨레의 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이 부러운 것은 우리 농민들도 농업보조금이나 직불금, 벼 수매가 인상과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뿐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나 밀양의 핵발전 송전탑 문제에 독자적인 발언과 선언을 할 수 있었으면 해서다.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그동안 식품의 안전과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 전 시민적 이해를 제기하지 않은 건 아니나 어디까지나 농업·농민의 이해에 바탕해서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참사가 벌어지고 난 뒤인 2012년 7월에 본인을 포함한 19명의 발기인과 250여명의 서명으로 <핵발전 없는 세상을 위한 귀농자 선언>이 있었지만 이것이 농민선언으로까지 추진되지는 못했다.
나라·민족문제 최선두였던 농민
120년 전의 갑오년에도 그랬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우리 농민은 나라와 민족문제의 최선두를 지켰었다.
개개인이 삶의 조건을 뛰어 넘어 인류의 문제나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것은 인류지성의 보편적 양식이다.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촛불을 드는 것을 정치 편향이라고 헐뜯고 깎아 내리는 것은 역사적 색맹들이나 하는 짓이다. 16살 어린 여학생인 류관순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고 정치색에 물든 것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4.19 혁명 때는 185명 희생자의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다. 수유리 4.19 묘역에 가면 나란히 걸린 초롱초롱한 학생복 차림의 10대 청소년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을 민주주의를 지켜 낸 고귀한 희생자라 부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거나 재미가 있는 경우에 행동으로 나선다, 개별 인간관계나 제도화된 집단관계에 있을 경우에도 역시 사람들은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데도 세월호 참사에 밥줄을 걸고 시국선언을 하는 교사들은 높은 수준의 사명감과 시대정신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인본중심의 역사의식과 사명감은 지성인의 원형이다. 생태·생명·평화·물리·정치·역사·경제·철학·문학·수학 등에 대한 우주적 사고가 지성인의 바탕이다. 이를 인문과학, 줄여서 인문학이라 부른다. 우주적 사고와 지역적 행동이 요구되는 요즈음에 농민인문학이 그리운 이유다.
최근에 순환과 공생을 강조하는 ‘지역재단’에서 학습조직운영 지원 사업 공모를 하고 있다. 지역문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협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우고자 하는 사업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갈등관계를 협동하는 관계로 바꾸어 내는 힘은 사물과 상황을 깊이 통찰 할 수 있는데서 나온다.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올 초에 설립된 우리 지역의 ‘(사)장수지역 활력센터’에서도 소모임 지원 사업을 한다. 각종 연구모임과 건강, 에너지, 농업분야 모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연구를 지원하기보다 소모임을 지원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른바 다중지성을 도모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문적 소양 넓히는 노력 필요
안토니오 네그리는 명저 <다중>에서 계급, 민족, 대중, 민중을 넘어서는 ‘다중’개념을 도입했고 이것이 다중지성으로 발전했다. 다중지성은 우리나라의 생명주의 물리학자 장회익선생의 ‘온생명철학’과 맞닿아 있다. 물질에서 생명으로, 우주로, 다시 인간으로 이어지는 현대 과학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필생의 과제로 삼아 온 노학자의 강의를 이번 달 말에 장수에서 마련했다.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농민생활인문학>에서 마련하는 자리다. 이미 자연건강, 대안에너지, 동학혁명, 지방자치, 차 문화 등의 강좌를 진행해 왔다.
부지깽이도 따라나선다는 농번기에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서 <생명과 과학-온생명의 우주>라는 강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궁극을 향한 쉼 없는 관심과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 기득권층의 지배방식은 이데올로기적 지배다. 허상의 이데올로기를 뚫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길은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인문적 소양을 넓히고 집단지성 형성에 농민들이 나서는 것은 농업과 농촌의 뿌리를 바꾸어가는 대장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2014.05.19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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