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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기후변화 대응은 농정영역 밖의 일인가? |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5 16:35
    • 조회 541
    기후변화 대응은 농정영역 밖의 일인가?
    |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 서울대 명예교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달걀(93%)·국수(96%)·우유(111%) 등 주요식품의 소비자가격이 거의 두 곱절이나 올랐다. 올봄 들어서는 돼지고기·닭고기 등 육류 값이 폭등한 반면 양파·배추·무 등 채소 값은 폭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생산농가를 비롯한 많은 경제주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농산물 수급과 가격의 격심한 변동은 대부분 국내외 산지의 이상고온이나 가뭄 같은 기상이변에서 비롯되는 결과다.

    세계적으로 볼 때 2000년 이전에 7~12년 정도였던 기상이변으로 인한 곡물파동주기가 2000년대에 들어서는 3년이 멀다 하고 반복될 만큼 빈번해지고 있다. 밀·옥수수가격 폭등으로 시작된 1차 곡물파동(2007~2008년)과 이어 밀·보리·호밀 등 가격이 동시에 오른 2차 곡물파동(2010~2011년)의 원인도 기상이변이었다. 1차 파동 때는 호주 등지의 가뭄, 2차파동 때는 러시아·남미지역의 가뭄 또는 이상한파 등이 주된 요인이었다.

    최근에는 미국 기상청의 ‘올여름 엘니뇨가 올 가능성이 50%’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3차 곡물파동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남미 인근의 태평양 해수면온도가 2~10℃ 높아지는 이상고온 현상이 일어나면 중남미지역은 엄청난 폭우를, 호주와 인도 등은 극심한 가뭄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기구인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지난해 9월 내놓은 보고서는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번 세기말(2081~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1986~2005년에 비해 평균 3.7℃, 해수면은 평균 63㎝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아열대화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0월 태풍이 잦아지고 남부 해안지방에서 망고·파파야 등 아열대과실이 재배되며, 근해에서 아열대어종이 서식하는 등의 새로운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아열대화가 급격히 진전되면 최대풍속이 초속 60m를 넘는 슈퍼태풍이나 가뭄·집중호우·폭염과 같은 극한기후의 발생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기상전문가들은 기온이 상승하면 건조한 지역은 더 바짝 마르고 습윤한 지역은 수증기가 늘어 폭우가 쏟아지는 ‘기상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의 공장’ 중국에 인접해 편서풍을 타고 유입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어 한반도 상공의 온실가스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 아열대화는 우리의 주식인 쌀밥과 김치를 포함한 국민 식탁의 구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벼품종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고 2090년이 되면 고랭지배추의 재배적지가 거의 사라지며 사과·배 등 주요 과실의 재배적지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예견되는 이런 엄청난 변화에 대한 중장기 정책대응 상황은 어떠한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2013~201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에 제시된 정책내용에는 ‘농축산물 유통구조개선을 위한 농업관측 강화’ 한 항목이 들어있을 뿐 글로벌 협력강화 영역에서조차 관련 시책과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농업관측 강화에 포함된 내용도 농진청이 담당하는 병충해·생육조사결과 및 농업기상분석자료 제공뿐이어서 우리 농정에 있어 지구온난화에 대한 중장기대응이라는 정책 자체는 실종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라도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미래창조’ 농정의 핵심과제를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눈앞의 가시적 성과를 넘어 미래세대에 대한 ‘안전한 농식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사려 깊은 정책비전이 구체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2014년 5월 21일 농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