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토종 종자 회복, 우리 하기에 달렸다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 작성일2020/03/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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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토종 종자 회복, 우리 하기에 달렸다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고사성어에 ‘일립만배(一粒萬倍)’라는 말이 있다. 한 알의 곡식을 심어서 가꾸면 만 알이 된다는 뜻으로, 주로 작은 것도 쌓이면 많아진다는 의미의 예로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런 비유가 아니라 낱말 자체가 지닌 의미, 즉 ‘한 톨의 벼를 뿌리면 만 톨의 쌀이 된다’는 의미를 곱씹어본다. 벼 한 톨이 뿌려져 성장하면 분얼(가지치기)을 해서 10개 이상의 줄기가 생긴다. 또 그 줄기(이삭) 마다에는 약 100개의 낱알이 열린다. 그렇다면 ‘일립만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립천배’라는 말은 성립된다.
이처럼 벼 한 톨을 심으면 천 톨 이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를 다음해 농사용 종자로 남겨두고 99.9%는 식용으로 돌릴 수 있다. 벼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이나 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배수는 다를지라도···. 이렇게 이 땅에서 살아온 농부들은 대를 이어 물려오고 심고 거두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토종 종자 보존을 통한 토종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다. 이것은 이 땅에서 제터먹이를 지키고 살아온 제터지기들의 극히 보통의 일상이었다.
초국적 농기업의 불임씨앗 득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지속될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농부들이 이 땅에서 끈질긴 노력과 돌봄을 통해 보존해온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가 절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오늘날 초국적 농기업들이 종자를 독점하면서 이 땅에 뿌려지는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린 종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종자는 농부들이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상품이 된지 오래다. 일찍이 종자에 대한 농부들의 고유 권한이랄 수 있는 자가채종 권리가 박탈되고 말았다.
농부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진화 및 도태 과정을 통해 유전적으로 안정된 고정종(固定種)이 아니라 작물에서 씨앗을 받아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 한다. 종자에 대한 특허권 주장과 육종자의 권리 보장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토종 종자를 꿋꿋이 지켜온 농부들은 점점 주무대에서 밀려나고 있다. 현재 겉모양을 바꾼 성형수술 종자만이 아니라 디엔에이를 교체한 형질전환 종자, 이른바 유전자변형 종자도 실용화 및 상업화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종 종자·먹을거리 절멸 위기
우리에게 토종 종자가 없다면 결국 초국적 농기업 주도의 일방통행적인 종자산업 시스템에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대대로 이어 물려온 토종 종자를 되살린다는 의미는 전래의 고정종을 찾아서 보존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초국적 농기업들이 독점 판매하는 일회성의 불임씨앗이 아니라 매년 자기가 심은 종자를 갈무리해서 자가채종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을 확대하는 의미다. 종자가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미래지향적인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의 절멸에 따른 세상의 변화는 이것을 먹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이 땅에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지속가능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종 종자의 재생산 체계와 권리가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토종 종자의 본래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사라진 토종 종자를 회복시키는 다각적인 노력과 시도를 서둘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종자주권과 식량주권을 되찾고 지속가능한 생명문화를 형성해가는 길이기도 하다.
의지 있다면 오래지 않아 회복 가능
앞서 말한 ‘일립만배’나 ‘일립천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립백배’만 되더라도 2년이면 1만배, 3년이면 1백만배, 4년이면 1억배가 된다. 정말 지수함수적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만 있다면 사라진 토종 종자를 오래지 않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다. 정말 우리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이 일을 생산이나 연구 영역만의 노력으로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생산자’라는 소비자의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를 보존하고 확대하는 데 지혜와 의지를 모아야 한다. 최근들어 아직 모색단계이기는 하지만, 전여농, 흙살림, 슬로푸드, 한살림 등을 중심으로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를 되살리고 지키려는 자발적인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힘있게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 살림 운동’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먼저 생산자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토착 지식을 계승하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재’라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소비자는 생산자들과 두텁고 폭넓게 관계하면서 토종 농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동참해야 한다. 정부도 고정종의 절멸이라는 비참하고 절박한 현실을 직시하고 토종 종자 및 농산물을 지키고 살릴 수 있는 필요한 정보 제공과 연구 지원, 그리고 법률(제도) 정비와 정책 마련에 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토종 종자과 먹을거리(농축산물 및 그 가공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도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면 토종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수준과 지불의사가격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4.06.09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고사성어에 ‘일립만배(一粒萬倍)’라는 말이 있다. 한 알의 곡식을 심어서 가꾸면 만 알이 된다는 뜻으로, 주로 작은 것도 쌓이면 많아진다는 의미의 예로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런 비유가 아니라 낱말 자체가 지닌 의미, 즉 ‘한 톨의 벼를 뿌리면 만 톨의 쌀이 된다’는 의미를 곱씹어본다. 벼 한 톨이 뿌려져 성장하면 분얼(가지치기)을 해서 10개 이상의 줄기가 생긴다. 또 그 줄기(이삭) 마다에는 약 100개의 낱알이 열린다. 그렇다면 ‘일립만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립천배’라는 말은 성립된다.
이처럼 벼 한 톨을 심으면 천 톨 이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를 다음해 농사용 종자로 남겨두고 99.9%는 식용으로 돌릴 수 있다. 벼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이나 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배수는 다를지라도···. 이렇게 이 땅에서 살아온 농부들은 대를 이어 물려오고 심고 거두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토종 종자 보존을 통한 토종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다. 이것은 이 땅에서 제터먹이를 지키고 살아온 제터지기들의 극히 보통의 일상이었다.
초국적 농기업의 불임씨앗 득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지속될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농부들이 이 땅에서 끈질긴 노력과 돌봄을 통해 보존해온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가 절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오늘날 초국적 농기업들이 종자를 독점하면서 이 땅에 뿌려지는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린 종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종자는 농부들이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상품이 된지 오래다. 일찍이 종자에 대한 농부들의 고유 권한이랄 수 있는 자가채종 권리가 박탈되고 말았다.
농부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진화 및 도태 과정을 통해 유전적으로 안정된 고정종(固定種)이 아니라 작물에서 씨앗을 받아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 한다. 종자에 대한 특허권 주장과 육종자의 권리 보장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토종 종자를 꿋꿋이 지켜온 농부들은 점점 주무대에서 밀려나고 있다. 현재 겉모양을 바꾼 성형수술 종자만이 아니라 디엔에이를 교체한 형질전환 종자, 이른바 유전자변형 종자도 실용화 및 상업화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종 종자·먹을거리 절멸 위기
우리에게 토종 종자가 없다면 결국 초국적 농기업 주도의 일방통행적인 종자산업 시스템에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대대로 이어 물려온 토종 종자를 되살린다는 의미는 전래의 고정종을 찾아서 보존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초국적 농기업들이 독점 판매하는 일회성의 불임씨앗이 아니라 매년 자기가 심은 종자를 갈무리해서 자가채종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을 확대하는 의미다. 종자가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미래지향적인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의 절멸에 따른 세상의 변화는 이것을 먹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이 땅에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지속가능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종 종자의 재생산 체계와 권리가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토종 종자의 본래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사라진 토종 종자를 회복시키는 다각적인 노력과 시도를 서둘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종자주권과 식량주권을 되찾고 지속가능한 생명문화를 형성해가는 길이기도 하다.
의지 있다면 오래지 않아 회복 가능
앞서 말한 ‘일립만배’나 ‘일립천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립백배’만 되더라도 2년이면 1만배, 3년이면 1백만배, 4년이면 1억배가 된다. 정말 지수함수적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만 있다면 사라진 토종 종자를 오래지 않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다. 정말 우리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이 일을 생산이나 연구 영역만의 노력으로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생산자’라는 소비자의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를 보존하고 확대하는 데 지혜와 의지를 모아야 한다. 최근들어 아직 모색단계이기는 하지만, 전여농, 흙살림, 슬로푸드, 한살림 등을 중심으로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를 되살리고 지키려는 자발적인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힘있게 ‘토종 종자 및 먹을거리 살림 운동’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먼저 생산자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토착 지식을 계승하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재’라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소비자는 생산자들과 두텁고 폭넓게 관계하면서 토종 농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동참해야 한다. 정부도 고정종의 절멸이라는 비참하고 절박한 현실을 직시하고 토종 종자 및 농산물을 지키고 살릴 수 있는 필요한 정보 제공과 연구 지원, 그리고 법률(제도) 정비와 정책 마련에 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토종 종자과 먹을거리(농축산물 및 그 가공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도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면 토종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수준과 지불의사가격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4.06.09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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