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유감 - 지역 그 곳에 사람이 산다‘ | 박진도(충남대교수/지역재단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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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 유감 - 지역 그 곳에 사람이 산다‘
| 박진도(충남대교수/지역재단 이사장)
6.4 지방선거는 야당의 완패로 끝났다.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를 두고 무승부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야당의 실질적 패배라는데 토를 달 이유가 없다. 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총선 그리고 2012년 대선 그리고6.4 지방선거에서 모두 야당은 승리를 기대하였지만 패배했다. 세 선거의 공통점은 야당이 ‘정권 심판론’으로만 선거를 치른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MB정권 심판’, 2012년 대선에서는 ‘이명박근혜 심판’, 그리고 6.4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야당의 심판론에 대해서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이냐’고 냉소를 보낸 사람이 적지 않다. 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가운데서 심판론은 한계가 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당은 스스로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2012년 대선 상황을 되돌아보자.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내세울 때,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시대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의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통합 등의 약속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박근혜 정부를 ‘먹튀 정부라고 한다’. 말하자면 당선을 위해 진보진영에서 주장해오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선점해서 공약하고, 당선 후에 완전히 뭉개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학자 Accemoglu 등의 포퓰리즘 연구에 의하면 불평등도가 높고 정치제도가 취약한 사회일수록 중도 좌파적 포퓰리즘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선거 전략일 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공약이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포퓰리즘적 편향이 더 커진다고 한다. 보수정권의 이런 야바위 전략에 야당과 국민이 농락을 당한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공약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폐지 공약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때, 순진한(?) 안철수씨는 이 공약에 매달려 야당의 기초자치단체 선거 전략에 대 혼란을 초래하였다.
‘심판론’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심판할 것은 심판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을 위해서 우리가(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과 전략 없이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세월호 심판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직접 이용하지 않았다. 최근의 신문 인터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방선거는 지역의 책임자를 뽑는 선거다. 제 입장에서 보면, 내가 4년 동안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기회를 주겠느냐고 묻는 거 아닌가.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잘했느냐 못했느냐고 심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유권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심판하기보다는 ‘감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 등 시민의 삶을 깨알처럼 챙긴 것, 안희정 지사가 ‘3농 혁신’과 사회적 경제 등으로 도민의 행복을 챙긴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좋은 정책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보교육감의 당선을 보수진영의 분열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올해 17개 시도에서 치른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은 모두 13명이다. 이 가운데 4년 전인 2010년 교육감 선거에도 진보 후보가 나선 지역은 모두 11곳인데, 진보 교육감의 지지율은 2010년 33.4%에서 42.7%로 9.3%나 상승하였다. 이는 지난 2010년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의 정책인 혁신학교와 무상급식, 고교 평준화, 학생인권, 민주시민교육, 부패척결 등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부자들은 위한 자립형사립학교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들어나면서 경쟁보다 협력을 통한 창의적 학습을 강조하는 혁신학교에 대해 국민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어설픈 중도 노선이 아니라, ‘평등, 복지,인권, 생태, 연대, 평화’ 등 진보적 가치를 선명히 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여 중도층을 견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먹튀∙불통∙독선∙무능 정부’라도 스스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번 선거에서 왜 진보정당이 몰락하였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3.1%의 득표율에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화려하게 의회에 진출한 것에 고무되어 2012년 집권 플랜을 세운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민주노동당의 고위 당직자 지인에게 “나는 지금이 민주노동당의 최고 전성기가 아니길 바란다.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민주노동당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그런데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도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6.4 지방선거도 중앙정치와 지역주의에 휘둘려 지방자치의 본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월호 심판론’과 ‘박근혜 구하기’라는 중앙정치의 쟁점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주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중요한 이슈들은 실종되었다. 더욱이 중앙언론이 서울 시장선거에 집중하면서 다른 지역의 선거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는 경기도에 사는데 경기도지사 후보가 누군지 몰라도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안다. 보통 노인들처럼 우리 어머니도 보수적인데, 선거일 직전에 만났더니 “정몽준이는 왜 자기가 뭘 하겠다는 얘기는 안 하고, 박원순 욕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또 대전에 사는 내가 박원순과 정몽준 후보의 TV 토론을 보아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여당후보들은 한결같이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중앙에서 돈을 많이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여 지방자치를 스스로 중앙정치에 예속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지방분권이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지방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시장이 국장 하나를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중앙정부가 세금의 8할 거두고 지방이 2할을 거두는 반면에 사무는 중앙 4, 지방 6의 비율이다. 대부분의 광역도의 재정자립도가 30%를 밑돈다. 중앙에 목을 매는 ‘진정정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이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만 쳐다보고 중앙의 위임사무만 처리하는 것이 지방자치가 아니다. 지방이 자기 힘으로 주민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본연의 역할이다. 중앙정부에 돈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닌데, 너도 나도 중앙정부에서 돈을 끌어온다고 하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나. 여당 후보들은 돈을 끌어온다고 할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여당후보들이 힘을 모아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어야 했다.
이 번 선거에서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 것도 크게 아쉬운 점이다. 광역단체장 선거의 당선자는 동서로 분할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주의는 이 번 선거에서도 전혀 깨지지 않았다. 대구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가 선전한 것이 지역주의에 균열을 가져온 것처럼 보는 시각도 있으나 껍질을 한 겹만 벗겨보면 냉엄한 지역주의에 부딪친다. 부산시와 대구시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보면 대구시는 전원이 그리고 부산시는 16명 중 15명이 새누리당 후보이고 한명만 무소속이다. 뿐 만 아니라 광역시의원 선거 당선자를 보면 부산시 42명 그리고 대구시 27명 전원이 새누리당 후보들이다. 사정은 경상북도에도 마찬가지다. 경상북도는 기초자치단체장 23명 중 새누리당 후보이고 3명이 무소속이고, 광역의원 선거 당선자 54명 중 48명이 새누리당 후보이고 6명이 무소속이다. 무소속 당선자도 거의 대부분 곧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 사정은 전라도 지방에도 다르지 않다. 광주시에서는 기초단체장 당선자 5명 전원과 광역시 의원 당선자 19명 전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다. 전라남도는 22명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14명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이고, 8명이 무소속이며, 광역도 의원 52명 중 4의 무소속을 제외한 48명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이다. 전라북도의 경우에는 14명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7명이 새정치민주연합이고 7명이 무소속이지만, 광역의원 당선자 32명 가운데 30명이 새정치민주연합이고 2명이 무소속이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서는 막대기를 꽂아도 민주당 후보면 당선된다고 지독한 지역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무소속 후보들도 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라는 점에서 한계는 명백하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일당 독재 체제가 행정과 의회에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정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지역이 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지방분권이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중앙정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방자치제도의 개선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볼만 하다. 광역선거와 기초선거를 분리하는 방안도 좋다. 그리고 기초선거는 이번에 무산되었지만 정당추천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면 중앙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방안도 좋다. 그런데 제도를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유권자, 사람의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노무현 대통령). 지역의 운명을 중앙정부나 외부자본에 맡기지 않고,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지역의 학습모임을 조직하여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좋은 단체장을 뽑은 지역에서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즉 경제, 사회문화 그리고 환경의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는 내발적 발전의 사례를 만들어보자.
2014년 6월 16일 국민농업포럼에 실린 칼럼입니다.
칼럼 제목이 ‘백성은 여의도나 청와대가 아니라 지역에 산다‘에서 ‘6.4지방선거 유감 - 지역 그 곳에 사람이 산다‘로 수정되었습니다.
| 박진도(충남대교수/지역재단 이사장)
6.4 지방선거는 야당의 완패로 끝났다.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를 두고 무승부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야당의 실질적 패배라는데 토를 달 이유가 없다. 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총선 그리고 2012년 대선 그리고6.4 지방선거에서 모두 야당은 승리를 기대하였지만 패배했다. 세 선거의 공통점은 야당이 ‘정권 심판론’으로만 선거를 치른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MB정권 심판’, 2012년 대선에서는 ‘이명박근혜 심판’, 그리고 6.4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야당의 심판론에 대해서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이냐’고 냉소를 보낸 사람이 적지 않다. 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가운데서 심판론은 한계가 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당은 스스로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2012년 대선 상황을 되돌아보자.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내세울 때,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시대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의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통합 등의 약속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박근혜 정부를 ‘먹튀 정부라고 한다’. 말하자면 당선을 위해 진보진영에서 주장해오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선점해서 공약하고, 당선 후에 완전히 뭉개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학자 Accemoglu 등의 포퓰리즘 연구에 의하면 불평등도가 높고 정치제도가 취약한 사회일수록 중도 좌파적 포퓰리즘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선거 전략일 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공약이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포퓰리즘적 편향이 더 커진다고 한다. 보수정권의 이런 야바위 전략에 야당과 국민이 농락을 당한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공약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폐지 공약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때, 순진한(?) 안철수씨는 이 공약에 매달려 야당의 기초자치단체 선거 전략에 대 혼란을 초래하였다.
‘심판론’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심판할 것은 심판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을 위해서 우리가(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과 전략 없이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세월호 심판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직접 이용하지 않았다. 최근의 신문 인터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방선거는 지역의 책임자를 뽑는 선거다. 제 입장에서 보면, 내가 4년 동안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기회를 주겠느냐고 묻는 거 아닌가.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잘했느냐 못했느냐고 심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유권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심판하기보다는 ‘감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 등 시민의 삶을 깨알처럼 챙긴 것, 안희정 지사가 ‘3농 혁신’과 사회적 경제 등으로 도민의 행복을 챙긴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좋은 정책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보교육감의 당선을 보수진영의 분열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올해 17개 시도에서 치른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은 모두 13명이다. 이 가운데 4년 전인 2010년 교육감 선거에도 진보 후보가 나선 지역은 모두 11곳인데, 진보 교육감의 지지율은 2010년 33.4%에서 42.7%로 9.3%나 상승하였다. 이는 지난 2010년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의 정책인 혁신학교와 무상급식, 고교 평준화, 학생인권, 민주시민교육, 부패척결 등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부자들은 위한 자립형사립학교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들어나면서 경쟁보다 협력을 통한 창의적 학습을 강조하는 혁신학교에 대해 국민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어설픈 중도 노선이 아니라, ‘평등, 복지,인권, 생태, 연대, 평화’ 등 진보적 가치를 선명히 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여 중도층을 견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먹튀∙불통∙독선∙무능 정부’라도 스스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번 선거에서 왜 진보정당이 몰락하였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3.1%의 득표율에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화려하게 의회에 진출한 것에 고무되어 2012년 집권 플랜을 세운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민주노동당의 고위 당직자 지인에게 “나는 지금이 민주노동당의 최고 전성기가 아니길 바란다.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민주노동당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그런데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도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6.4 지방선거도 중앙정치와 지역주의에 휘둘려 지방자치의 본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월호 심판론’과 ‘박근혜 구하기’라는 중앙정치의 쟁점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주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중요한 이슈들은 실종되었다. 더욱이 중앙언론이 서울 시장선거에 집중하면서 다른 지역의 선거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는 경기도에 사는데 경기도지사 후보가 누군지 몰라도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안다. 보통 노인들처럼 우리 어머니도 보수적인데, 선거일 직전에 만났더니 “정몽준이는 왜 자기가 뭘 하겠다는 얘기는 안 하고, 박원순 욕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또 대전에 사는 내가 박원순과 정몽준 후보의 TV 토론을 보아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여당후보들은 한결같이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중앙에서 돈을 많이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여 지방자치를 스스로 중앙정치에 예속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지방분권이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지방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시장이 국장 하나를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중앙정부가 세금의 8할 거두고 지방이 2할을 거두는 반면에 사무는 중앙 4, 지방 6의 비율이다. 대부분의 광역도의 재정자립도가 30%를 밑돈다. 중앙에 목을 매는 ‘진정정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이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만 쳐다보고 중앙의 위임사무만 처리하는 것이 지방자치가 아니다. 지방이 자기 힘으로 주민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본연의 역할이다. 중앙정부에 돈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닌데, 너도 나도 중앙정부에서 돈을 끌어온다고 하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나. 여당 후보들은 돈을 끌어온다고 할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여당후보들이 힘을 모아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어야 했다.
이 번 선거에서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 것도 크게 아쉬운 점이다. 광역단체장 선거의 당선자는 동서로 분할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주의는 이 번 선거에서도 전혀 깨지지 않았다. 대구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가 선전한 것이 지역주의에 균열을 가져온 것처럼 보는 시각도 있으나 껍질을 한 겹만 벗겨보면 냉엄한 지역주의에 부딪친다. 부산시와 대구시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보면 대구시는 전원이 그리고 부산시는 16명 중 15명이 새누리당 후보이고 한명만 무소속이다. 뿐 만 아니라 광역시의원 선거 당선자를 보면 부산시 42명 그리고 대구시 27명 전원이 새누리당 후보들이다. 사정은 경상북도에도 마찬가지다. 경상북도는 기초자치단체장 23명 중 새누리당 후보이고 3명이 무소속이고, 광역의원 선거 당선자 54명 중 48명이 새누리당 후보이고 6명이 무소속이다. 무소속 당선자도 거의 대부분 곧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 사정은 전라도 지방에도 다르지 않다. 광주시에서는 기초단체장 당선자 5명 전원과 광역시 의원 당선자 19명 전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다. 전라남도는 22명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14명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이고, 8명이 무소속이며, 광역도 의원 52명 중 4의 무소속을 제외한 48명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이다. 전라북도의 경우에는 14명의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7명이 새정치민주연합이고 7명이 무소속이지만, 광역의원 당선자 32명 가운데 30명이 새정치민주연합이고 2명이 무소속이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서는 막대기를 꽂아도 민주당 후보면 당선된다고 지독한 지역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무소속 후보들도 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라는 점에서 한계는 명백하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일당 독재 체제가 행정과 의회에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정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지역이 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지방분권이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중앙정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방자치제도의 개선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볼만 하다. 광역선거와 기초선거를 분리하는 방안도 좋다. 그리고 기초선거는 이번에 무산되었지만 정당추천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면 중앙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방안도 좋다. 그런데 제도를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유권자, 사람의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노무현 대통령). 지역의 운명을 중앙정부나 외부자본에 맡기지 않고,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지역의 학습모임을 조직하여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좋은 단체장을 뽑은 지역에서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즉 경제, 사회문화 그리고 환경의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는 내발적 발전의 사례를 만들어보자.
2014년 6월 16일 국민농업포럼에 실린 칼럼입니다.
칼럼 제목이 ‘백성은 여의도나 청와대가 아니라 지역에 산다‘에서 ‘6.4지방선거 유감 - 지역 그 곳에 사람이 산다‘로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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