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쌀 지키기’ 우루과이 라운드(UR)의 추억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 작성일2020/03/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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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쌀 지키기’ 우루과이 라운드(UR)의 추억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정부의 쌀 수입관세화 개방 계획에 반대하는 3000여명의 농민들이 상경, 3보1배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쌀 시장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목청껏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1만여명의 시민, 대학생, 여성, 노동단체 회원들이 합세하여 ‘의료·철도 민영화 반대, 노동기본권 쟁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그야말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만천하에 성토하는 범국민적인 시국대회였다.
최초 쌀 개방을 운명 짓던 UR협상
이 날의 행사를 지켜 본 필자는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데자뷰(dejavu, 旣視感)에 빠져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1993년 12월15일의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전후하여 1992년 단군이래 최초로 187개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 학계가 연합하여 「우리 쌀 지키기(UR 반대) 범국민 비상대책회의」를 꾸리고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이었던 필자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주지하다시피,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란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세계적 휴양지 푼타 델 에스테에 세계 각국의 통상무역 정부대표들이 모여 무역을 통한 세계 평화증진이라는 미명하에, 1948년 발족이후 여덟 번째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규범을 개정하는 모임이다. 2차 대전 후 유럽, 일본, 아시아 개도국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제조공산품 분야에서 미국의 비교우위성이 크게 위협받자 미국은 주로 공산품 분야에 한정되어 있던 동 협정에 농산물과 서비스(금융 등) 분야, 그리고 지적 재산권 분야까지 포함시키고자 했다. 특히 미국의 카길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앞장 서 UR 협상에서 ‘예외 없는 관세화(시장개방)’와 ‘농업 등 취약산업에 대한 정부지원 중단(de-coupling)’ 등의 원칙을 규범화하려 주도하였다. 수출 주도의 급속한 공업발전을 추진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농산물시장의 국제경쟁력이 지극히 낙후되어 UR 협상 타결로 인한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였다. 그 우려가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어 쌀과 14개 기초농산물을 지키자는 대의에 공감한 187개 시민단체들이 똘똘 뭉친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무르익어 갈 무렵은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치의 계절이 왔다.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대선 캠페인 중에 “쌀 개방만은 대통령직을 걸고 절대 막아 내겠다”고 연설하며 10대 공약과 200여 항목의 정책약속을 담은 「나의 신농정 구상(92. 12.8)」을 발표하여 농어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모았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듯 최종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제네바로 향하는 김포비행장에서 허신행 농림부장관은 목을 걸고 쌀 개방만은 막아내겠노라는 비장한 인터뷰를 하였다. 그 당시 우리 쌀 지키기 비대위는 학계 및 정관계 엘리트들과도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였다. 예컨대 청와대의 최양부 박사와 농림부의 조일호 차관보와도 수시 대화하였다. 그리고 비대위에는 미국 정부, 미 상하원, 제네바 가트 등의 협상 동향과 전략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와 인적 연락망이 있었다. 언제나 비대위의 성명서가 정부 발표를 앞섰고 정부는 이를 부정하기에 급급하다가 나중에야 수긍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였다.
구체적으로 비대위는 일본이 UR 최종 타결 전에 미국과 암묵적으로 농업협정에서 부분개방(최소시장 의무개방)을 한 다음, 5-6년 후 고율관세로 개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문화 예술(영화) 분야의 시장자유화는 UR 협상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사활을 걸고 반대한다는 정보도 입수하였다. 심지어 발라뒤르 프랑스 총리는 “고립을 피하기 위해 나쁜 협상인줄 뻔히 알면서도 대세라고 하여 받아들이려는 것은 거짓 용기(93. 12.1)”라고 대국민 연설까지 하였다. 그래서 비대위는 정부당국에 대하여 UR 협상에서 ‘예외없는 개방’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주지시키려 발버둥 쳤다. 우리는 “쌀이야말로 곧 우리 민족의 피요 살이요 혼이며 문화이니, 결코 개방할 수 없다”고 버틸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집요한 통상압력에 굴복하여 그나마 MMA로 쌀시장 부분개방(관세화개방은 10년 유예)만 하고 나머지 모든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를 받아들였다. 국민 여론은 최악의 상태로 악화됐고 황인성 총리를 비롯한 농림, 상공 두 장관이 사퇴하는 ‘문민정부’ 최초의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총리와 두 장관의 사퇴를 불러 온 UR 협상 타결은 그로써 끝난 것이 아니었다. 비대위는 미국과 유럽국가 등이 1994년 2월25일로 예정된 최종 실행 이행계획서 제출을 결정짓는 말라케쉬 협상(1994년 4월 타결)에 즈음하여 UR 농업협정문 내용과 일부 내용이 다른 실행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수퍼 301조가 UR 협정에 우선한다고 확신하는 국회의 권유에 따라 일부 이행스케줄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이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UR 이행 관련 법률안(초안)을 준비 중이었다.
“협정문, 1자1획도 못고친다” 고집
그래서 범국민 비상대책위는 우리 정부 역시 UR 농업협정상의 쌀 및 기초농산물 관련 이행계획서를 우리 사정에 맞게 수정/재협상 하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격렬히 시위도 벌렸다. 그러자 신임 이회창 총리가 국회에 나와 UR 농업협정문은 120여개국이 합의해 타결한 것이므로 ‘일자 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김영삼 대통령도 곧이어 기자들에게 같은 취지로 말씀하였다. 그러던 중 제2기 YS 내각은 뒤늦게 여러 나라들이 이행계획서를 수정하여 제출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우리 정부도 부랴부랴 일부 항목을 수정했는데, 곧바로 가트 본부에 제출하지 않고 농림부 고위관료를 보내 미국의 의중을 먼저 타진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안된다’는 조항 등을 삭제하다보니 형식적인 이행계획서를 맹탕으로 제출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말라케쉬 UR 실행 이행계획서 파동’이다. 이번에는 뿔이 난 언론들이 대서특필하여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였다. 그 결과는 채 100일이 될가말까한 총리의 사과와 사퇴 및 농림수산부 장관의 교체를 불러왔다. 순수 민간단체 모임인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보다 못한 정부의 정보수집 능력, 무지와 무능과 오판은 두고두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농업 통상업무는 다시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초보들의 조직으로 되돌아 와 있다. 현 정부의 방침인 ‘쌀의 관세화 개방’만 밀어붙이려 한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인지 의중인지도 분명치 않다.
UR 농업협정문 중 쌀 관련 조문 자체가 미국과 일본의 밀약(설)에 의해 작성되다보니 UR 타결 전에 쌀을 한 번이라도 수입한 적이 있는 일본이나 대만은 그때의 국내외 가격차이 만큼의 고율관세(500-800%)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관세화 개방이 가능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입한 적이 없어 높은 관세율을 매길 근거가 모호하다. 관세화로 개방을 하려해도 고율관세의 근거가 아주 미약하다. 오로지 미국 등 수출국들의 선심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래서 장차 TPP(태평양 동반자 협정)와 DDA(도하개발협정)의 타결을 앞둔 시점에서 지금 관세화 개방 방침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요컨대,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400-500%의 관세율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 논리적, 사실적 근거가 지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정부가 타결했던 2015년의 관세화 유예기한이 끝났을 때 반드시 관세화로 개방해야 한다는 아무런 규정도, 근거도 없다. 오로지 제2 UR인 DDA 협상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때까지의 경과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상유지 상태의 유예화 여부는 쌀 수출 관련국들과의 협상 여하에 달려있다.
되풀이 되는 정부의 ‘무능과 오판’
그러니 무조건 Standstill(현상유지) 관세화 개방 유예화를 목표로 협상을 밀어붙이고 볼 일이다. 협상하다가 결렬되면 또 협상해야 한다. 중단, 또는 결렬도 협상과정의 하나다. 통상협상에서 반드시 두 개 이상의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로인해 기한이 지났다고 WTO에서 쫓겨나거나 쫓아 낼 법률적 근거도 없다. 그래서 지난달 내한한 WTO 사무총장마저 모든 것이 관련국가들간의 협상 결과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이다. 쌀 현상유지 유예화가 어려울 경우 그 다음 일본수준의 고율 관세(800%)를 얻어내도 늦지 않다. 그런데 대한민국 농림부는 협상을 해볼 생각을 지레 포기하고 먹히지도 않을 고율 관세화 개방 방침만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중국 태국 등과 standstill(현상유지 유예화) 협상을 해볼 생각도 않는다. 도리어 국내 협상만 열심이다.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와 농민단체장들의 회유에 여념이 없다. 농민단체 간의 반목을 조성하여 농림부가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사 그런 공작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장차 식량자급률이 23%(쌀 자급율 86%)인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앞날에 무슨 이익이 돌아올 것인가
이 글은 2014년 7월 4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정부의 쌀 수입관세화 개방 계획에 반대하는 3000여명의 농민들이 상경, 3보1배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쌀 시장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목청껏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1만여명의 시민, 대학생, 여성, 노동단체 회원들이 합세하여 ‘의료·철도 민영화 반대, 노동기본권 쟁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그야말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만천하에 성토하는 범국민적인 시국대회였다.
최초 쌀 개방을 운명 짓던 UR협상
이 날의 행사를 지켜 본 필자는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데자뷰(dejavu, 旣視感)에 빠져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1993년 12월15일의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전후하여 1992년 단군이래 최초로 187개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 학계가 연합하여 「우리 쌀 지키기(UR 반대) 범국민 비상대책회의」를 꾸리고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이었던 필자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주지하다시피,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란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세계적 휴양지 푼타 델 에스테에 세계 각국의 통상무역 정부대표들이 모여 무역을 통한 세계 평화증진이라는 미명하에, 1948년 발족이후 여덟 번째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규범을 개정하는 모임이다. 2차 대전 후 유럽, 일본, 아시아 개도국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제조공산품 분야에서 미국의 비교우위성이 크게 위협받자 미국은 주로 공산품 분야에 한정되어 있던 동 협정에 농산물과 서비스(금융 등) 분야, 그리고 지적 재산권 분야까지 포함시키고자 했다. 특히 미국의 카길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앞장 서 UR 협상에서 ‘예외 없는 관세화(시장개방)’와 ‘농업 등 취약산업에 대한 정부지원 중단(de-coupling)’ 등의 원칙을 규범화하려 주도하였다. 수출 주도의 급속한 공업발전을 추진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농산물시장의 국제경쟁력이 지극히 낙후되어 UR 협상 타결로 인한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였다. 그 우려가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어 쌀과 14개 기초농산물을 지키자는 대의에 공감한 187개 시민단체들이 똘똘 뭉친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무르익어 갈 무렵은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치의 계절이 왔다.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대선 캠페인 중에 “쌀 개방만은 대통령직을 걸고 절대 막아 내겠다”고 연설하며 10대 공약과 200여 항목의 정책약속을 담은 「나의 신농정 구상(92. 12.8)」을 발표하여 농어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모았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듯 최종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제네바로 향하는 김포비행장에서 허신행 농림부장관은 목을 걸고 쌀 개방만은 막아내겠노라는 비장한 인터뷰를 하였다. 그 당시 우리 쌀 지키기 비대위는 학계 및 정관계 엘리트들과도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였다. 예컨대 청와대의 최양부 박사와 농림부의 조일호 차관보와도 수시 대화하였다. 그리고 비대위에는 미국 정부, 미 상하원, 제네바 가트 등의 협상 동향과 전략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와 인적 연락망이 있었다. 언제나 비대위의 성명서가 정부 발표를 앞섰고 정부는 이를 부정하기에 급급하다가 나중에야 수긍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였다.
구체적으로 비대위는 일본이 UR 최종 타결 전에 미국과 암묵적으로 농업협정에서 부분개방(최소시장 의무개방)을 한 다음, 5-6년 후 고율관세로 개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문화 예술(영화) 분야의 시장자유화는 UR 협상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사활을 걸고 반대한다는 정보도 입수하였다. 심지어 발라뒤르 프랑스 총리는 “고립을 피하기 위해 나쁜 협상인줄 뻔히 알면서도 대세라고 하여 받아들이려는 것은 거짓 용기(93. 12.1)”라고 대국민 연설까지 하였다. 그래서 비대위는 정부당국에 대하여 UR 협상에서 ‘예외없는 개방’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주지시키려 발버둥 쳤다. 우리는 “쌀이야말로 곧 우리 민족의 피요 살이요 혼이며 문화이니, 결코 개방할 수 없다”고 버틸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집요한 통상압력에 굴복하여 그나마 MMA로 쌀시장 부분개방(관세화개방은 10년 유예)만 하고 나머지 모든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를 받아들였다. 국민 여론은 최악의 상태로 악화됐고 황인성 총리를 비롯한 농림, 상공 두 장관이 사퇴하는 ‘문민정부’ 최초의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총리와 두 장관의 사퇴를 불러 온 UR 협상 타결은 그로써 끝난 것이 아니었다. 비대위는 미국과 유럽국가 등이 1994년 2월25일로 예정된 최종 실행 이행계획서 제출을 결정짓는 말라케쉬 협상(1994년 4월 타결)에 즈음하여 UR 농업협정문 내용과 일부 내용이 다른 실행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수퍼 301조가 UR 협정에 우선한다고 확신하는 국회의 권유에 따라 일부 이행스케줄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이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UR 이행 관련 법률안(초안)을 준비 중이었다.
“협정문, 1자1획도 못고친다” 고집
그래서 범국민 비상대책위는 우리 정부 역시 UR 농업협정상의 쌀 및 기초농산물 관련 이행계획서를 우리 사정에 맞게 수정/재협상 하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격렬히 시위도 벌렸다. 그러자 신임 이회창 총리가 국회에 나와 UR 농업협정문은 120여개국이 합의해 타결한 것이므로 ‘일자 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김영삼 대통령도 곧이어 기자들에게 같은 취지로 말씀하였다. 그러던 중 제2기 YS 내각은 뒤늦게 여러 나라들이 이행계획서를 수정하여 제출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우리 정부도 부랴부랴 일부 항목을 수정했는데, 곧바로 가트 본부에 제출하지 않고 농림부 고위관료를 보내 미국의 의중을 먼저 타진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안된다’는 조항 등을 삭제하다보니 형식적인 이행계획서를 맹탕으로 제출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말라케쉬 UR 실행 이행계획서 파동’이다. 이번에는 뿔이 난 언론들이 대서특필하여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였다. 그 결과는 채 100일이 될가말까한 총리의 사과와 사퇴 및 농림수산부 장관의 교체를 불러왔다. 순수 민간단체 모임인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보다 못한 정부의 정보수집 능력, 무지와 무능과 오판은 두고두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농업 통상업무는 다시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초보들의 조직으로 되돌아 와 있다. 현 정부의 방침인 ‘쌀의 관세화 개방’만 밀어붙이려 한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인지 의중인지도 분명치 않다.
UR 농업협정문 중 쌀 관련 조문 자체가 미국과 일본의 밀약(설)에 의해 작성되다보니 UR 타결 전에 쌀을 한 번이라도 수입한 적이 있는 일본이나 대만은 그때의 국내외 가격차이 만큼의 고율관세(500-800%)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관세화 개방이 가능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입한 적이 없어 높은 관세율을 매길 근거가 모호하다. 관세화로 개방을 하려해도 고율관세의 근거가 아주 미약하다. 오로지 미국 등 수출국들의 선심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래서 장차 TPP(태평양 동반자 협정)와 DDA(도하개발협정)의 타결을 앞둔 시점에서 지금 관세화 개방 방침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요컨대,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400-500%의 관세율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 논리적, 사실적 근거가 지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정부가 타결했던 2015년의 관세화 유예기한이 끝났을 때 반드시 관세화로 개방해야 한다는 아무런 규정도, 근거도 없다. 오로지 제2 UR인 DDA 협상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때까지의 경과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상유지 상태의 유예화 여부는 쌀 수출 관련국들과의 협상 여하에 달려있다.
되풀이 되는 정부의 ‘무능과 오판’
그러니 무조건 Standstill(현상유지) 관세화 개방 유예화를 목표로 협상을 밀어붙이고 볼 일이다. 협상하다가 결렬되면 또 협상해야 한다. 중단, 또는 결렬도 협상과정의 하나다. 통상협상에서 반드시 두 개 이상의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로인해 기한이 지났다고 WTO에서 쫓겨나거나 쫓아 낼 법률적 근거도 없다. 그래서 지난달 내한한 WTO 사무총장마저 모든 것이 관련국가들간의 협상 결과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이다. 쌀 현상유지 유예화가 어려울 경우 그 다음 일본수준의 고율 관세(800%)를 얻어내도 늦지 않다. 그런데 대한민국 농림부는 협상을 해볼 생각을 지레 포기하고 먹히지도 않을 고율 관세화 개방 방침만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중국 태국 등과 standstill(현상유지 유예화) 협상을 해볼 생각도 않는다. 도리어 국내 협상만 열심이다.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와 농민단체장들의 회유에 여념이 없다. 농민단체 간의 반목을 조성하여 농림부가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사 그런 공작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장차 식량자급률이 23%(쌀 자급율 86%)인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앞날에 무슨 이익이 돌아올 것인가
이 글은 2014년 7월 4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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