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 작성일2020/03/05 16:52
- 조회 588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향후의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왜 농업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지, 왜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들이 ‘나는 모든 것을 농업에 투자하겠다‘ 이렇게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이번 기회에 (우리) 농업을 우리 경제 수출의 효자산업으로 적극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국적 농약·농산물 수출회사들의 호구, 대한민국
세계 2차 대전 종료 후, 국지전 성격의 중동지역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큰 전쟁이 없어져 현대 무기 제조 판매시장은 한계를 보였다. 한편, 경제성장으로 전 세계 식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초국경 다국적 기업들은 농업과 식량의 상품화에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다국적 대기업 단위에서 종자개발과 농약 농자재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두에 선 몬샌토, 듀폰, 신젠타, 다우 등 다국적기업들은 GMO(유전자조작) 종자산업과 농약 등 화학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농업은 미래 성장 산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IT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메린다 게이츠 부부가 몬샌토의 종자와 제초제 사업에 20%가량의 주식투자를 감행한 배경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몬샌토 사(社)의 경우, 세계 GMO 종자 및 제초제 농약판매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벌써 세계 제2위의 GMO 종자, 농약, 농산 식품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들 다국적 화학기업들의 돈 밭이자 ‘봉‘이 됐다. 대한민국이 이른바 ‘다국적기업의 호구(虎口)‘가 된 셈이다. 이런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3%대로 떨어져 쌀 자급률은 86%대로, 세계 최고 식량 부족국이나 다름없다. 특히 농가 소득은 지난 9년 동안 2005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유착한 식품/화학기업은 날로 부익부하는데, 정작 3농(三農,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날로 낙후되고 있다.
최근 관·학·언론계로부터 2015년 쌀 완전개방 방침이라든지 한중 FTA와 TPP(태평양경제 동반자) 협정추진이 국익을 위한 대세인 양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개방체제의 마지막 대안인 "친환경 유기농업"마저 사방에서 무참히 공격받고 있다.
"농업문제만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길 수 없고…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던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을 주장하고 나서니, 그 의중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박근혜 정권의 정책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꽃이 피지 않고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
화학 독극물 농약과 화학 비료로부터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고, 각종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호하며, 사람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친환경 유기농업이 급속도로 범(凡) 세계화되기까지 한 여성 생태학자의 목숨을 건 농약피해 현장 고발이 있었다.
미국의 여류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 여사는 1962년 살충제와 제초제 등 유독물질로 꽃이 열매를 맺지 않고 새들조차 울지 않는 상황을 그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농약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화학 및 농약전문 다국적 기업의 음해성 반박과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카슨 여사를 직접 만나 격려하는 등 국회의원들을 추동해 미국 땅에서 살충제 DDT와 BHC의 제조, 판매, 무역 중단을 선언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 조치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농약 피해로부터 지구 생태계를 살리자는 뜻을 담아 ‘지구의 날(4월 22일)‘을 선포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이 지구 생태계와 생명 농업계에 극독물을 만연케 한 결과, 땅과 물과 강과 바다의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인간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성 보전에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린 실상이 낱낱이 고발된 <침묵의 봄>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서 네 번째에 올랐다. <타임>은 레이첼 카슨 여사를 20세기의 중요 인물 100인으로 꼽기도 했다.
증산은 됐으나, 흑색혁명으로 끝난 녹색혁명!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60년대 후반 박정희 군사정권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대통령의 특별 관심으로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녹색혁명‘ 깃발을 높이 들었다. 다비성(多肥性) 다수확 품종의 화학농사와 농약 과다 의존형 관행농법을 ‘녹색혁명‘이라 명명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군사독재 18년 동안 대망의 식량자급 달성 목표에 근접하게 됐으나, 산·하천·호수·바다는 화학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돼 후진국형 공업국가로 변신했다. 조국의 산하와 생태계 그리고 농업부문을 ‘흑색혁명‘으로 뒤덮은 것이다. 거기에 세계 제1의 단위면적당 농약 및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는 오명마저 떠안게 됐다.
다국적 기업의 맹독성 농약은 이들과 유착한 재벌이 앞장서 수입판매를 하고, 농업 관련 정부 기관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 무성히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고자 발암성 제초제(고엽제) 남용이 보편화되고 병해충 박멸을 위해 매해 고독성 농약이 살포됐다. 또한 정부 연구기관은 유전자 형질을 원천적으로 조작해 더 독한 제초제인 독극물을 무제한 불러들이는 화학 농법을 도입하는데 열을 올렸다. 역대 군사정권과 추진 강도는 약간 다르지만 화학물질 의존형, 이른바 관행농업이 이 땅에 뿌리내린 후과(後果)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마다 800만 톤에 가까운 GMO 콩과 옥수수를 수입 중이며,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표시도 없다. 그저, 몇백만 톤의 GMO 가공식품이 대기업 식품회사에 의해 범람하고 있다.
21세기형 친환경·친자연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새 시대‘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사태, 즉 종(種, species)과 생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마실 물, 숨 쉴 공기, 생명의 땅이 오염돼 사람을 비롯한 각종 생물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에 중대 위기가 닥치고 있다. 대신 경제발전에 따라 의식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먹을거리 안전과 삶의 질 개선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에서 지적한 국민적 각성, 즉 살충제와 제초제(고엽제) 같은 화학 독극물로부터 환경 생태계와 가족의 건강 및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는 의식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정부 단위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포
국내외 사조(思潮)가 이처럼 변화하는 가운데, 1997년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외환위기인 IMF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에 대한 대통령의 섬세한 독려에 따라 1998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했다. 이는 문민정부 말, 국회에서 ‘환경농업육성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시행령을 만들고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농림부 산하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농업정책과를 신설하였다. 제초제의 배제를 기본으로 하는 저농약·무농약·유기농(전환기 포함) 농산물 등급인증제에 차등의 직접지불 소득보상제도도 도입됐다. 동시에 먹을거리의 안전한 유통경로 확보를 위해 소비자협동조합법(일명 ‘생협법‘)도 제정 공포됐다.
참고로,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유기농 원년 선포가 이뤄지기 20여 년 전부터 농촌 사회 곳곳 약 2000여 농가 단위로 착한 농민·정직한 농민들이 ‘바른 농업(正農會, 정농회)‘과 ‘유기 농업 협회‘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활동해 왔다. 그때만 해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증산 정책에 위배된다며 적지 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대적 유기 농업, 즉 생물과학 기술과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결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선구자적인 생명 농업을 꿋꿋하게 해오고 있다. 원경선, 류달영, 오재길, 홍순명, 정상묵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연맹, 주부클럽, 주부교실 등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소비자 단체의 호응도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맨 먼저 농업 생산자, 소비자 대표, 정부 대표를 중심으로 ‘농·소·정 위원회‘를 꾸려 친 환경 정책의 추진 단계부터 진행 과정, 소비자 홍보, 도농 연대에 앞장서도록 했다. 이들은 ‘친환경 유기농 5개년 발전 계획‘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립했다.
다만,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와 각종 병해충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다스리며 선의의 농민이 죄인이 되지 않게 할지는 정책 당국의 친환경농정 추진에 영원한 과제이다.
화학·농약 물신주의의 발호와 정책의 모호성
‘친 환경 농업 원년 선포‘ 이후 16년, 친환경 인증 농가가 수적으로, 품목·면적·생산량 면에서 10%를 넘는 괄목할 성장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IFOAM 총회)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남양주 양평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정도다. 소비자의 인식과 관심도 선진국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져 친환경 농업인들의 지적 기술수준과 각오를 크게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 농정으로 국내 일반 농업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으며, 고령 부녀자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외세(주로 화학·농약·유전자조작(GMO) 초대형 다국적 기업)가 활짝 열린 신자유주의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 대한민국의 관·학·재·언론계를 자본과 권력으로 유착시키고 있다. 식품(가공)산업도 외국 자본 및 기술과 제휴해 대재벌 회사의 주도 하에 국내산 원료를 멀리하고, 75% 이상의 재료를 값이 싼 GMO 포함 수입농축산물로 충당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은 친 환경 농정의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채 이를 과시할 숫자 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자재 생산자 등 업체들은 친환경 농민들이 받게 될 보조금을 가로채는데 눈독을 들일 뿐이다. 또 민간 인증 기관들은 얄팍한 수수료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 보니, 묵시적으로 이들 삼자가 연대해 애꿎은 고령화·부녀화 된 농가에까지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도록 끌어들이는 사례마저 빈번해졌다. 중앙 정부는 어떤 정권, 어떤 대통령과 어떤 농림부 장관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친환경 유기 농업 정책의 강도에 있어 질적 차이가 커졌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은 증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근혜 정부는 친 환경 유기 농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유기 농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을 짓밟고 4년 동안 끊임없이 박해했다. 농업 문제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친환경 유기농업과 관련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 순환 원리에 따라 친환경 유기농업이 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에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저가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농산물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친환경 농정에 유난히 냉담하다. 예산도, 정책 프로그램도, 대(對) 농민 소통도 제자리 걸음이다.
GMO, 제초제, 맹독성 농약이 판치는 세상
더욱이 서울에 진출한 몬샌토 등 프랑켄슈타인(괴물) GMO 종자 및 농산물 수출 다국적 회사와 고엽제 수준의 제초제 및 고독성 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기왕 EU 일부 국가와 북·남미 등의 국가에서 공작으로 일시 재미를 봤던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농약이 산다"라는 내부 방침을 공공연히 우리나라 관·학·언론계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유기농 식품에 등을 돌리게 하고 화학농업과 유기농업이 ‘오십보백보‘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관·학·언론계에 충실한 장학생을 다수 심고 막대한 자금 살포를 아끼지 않는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기관 공직자 중에서는 "농약은 과학이다" "GMO도 GAP도 친환경이다"라는 해괴한 이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상한 관료들이 등장하고, 일부 친 GMO 언론인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런 이상 기류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반응은 대통령의 수첩 지시가 없어서인지, 무관심과 방관 또는 일부 동조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드디어 공영방송이 ‘유기농 죽이기‘ 선봉에 나섰다. 한 PD가 1년 가까이 전국의 유명 유기농가를 찾아가 선진국에서는 과학적인 이유(흙 속 농약의 반감기 잔류 등)로 다루지 않는 화학 실험실 수준의 토양 중 농약 성분 찾아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농약 옹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유기농 토양 내 잔류 농약을 발견, 대단한 발견인양 유기농업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7일 방영된 KBS <유기농의 진실>(2부작) 역시 공작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오래된 미래 농업’인 친 환경 유기 농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참 유기농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죽이기‘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 성장 산업 육성 전략이 아닌지 의아해하면서….
이 글은 2014.08.05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일부 내용은 <한국농어민신문> 8월 4일 자 ‘농훈칼럼‘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필자 주)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향후의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왜 농업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지, 왜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들이 ‘나는 모든 것을 농업에 투자하겠다‘ 이렇게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이번 기회에 (우리) 농업을 우리 경제 수출의 효자산업으로 적극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국적 농약·농산물 수출회사들의 호구, 대한민국
세계 2차 대전 종료 후, 국지전 성격의 중동지역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큰 전쟁이 없어져 현대 무기 제조 판매시장은 한계를 보였다. 한편, 경제성장으로 전 세계 식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초국경 다국적 기업들은 농업과 식량의 상품화에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다국적 대기업 단위에서 종자개발과 농약 농자재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두에 선 몬샌토, 듀폰, 신젠타, 다우 등 다국적기업들은 GMO(유전자조작) 종자산업과 농약 등 화학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농업은 미래 성장 산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IT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메린다 게이츠 부부가 몬샌토의 종자와 제초제 사업에 20%가량의 주식투자를 감행한 배경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몬샌토 사(社)의 경우, 세계 GMO 종자 및 제초제 농약판매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벌써 세계 제2위의 GMO 종자, 농약, 농산 식품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들 다국적 화학기업들의 돈 밭이자 ‘봉‘이 됐다. 대한민국이 이른바 ‘다국적기업의 호구(虎口)‘가 된 셈이다. 이런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3%대로 떨어져 쌀 자급률은 86%대로, 세계 최고 식량 부족국이나 다름없다. 특히 농가 소득은 지난 9년 동안 2005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유착한 식품/화학기업은 날로 부익부하는데, 정작 3농(三農,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날로 낙후되고 있다.
최근 관·학·언론계로부터 2015년 쌀 완전개방 방침이라든지 한중 FTA와 TPP(태평양경제 동반자) 협정추진이 국익을 위한 대세인 양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개방체제의 마지막 대안인 "친환경 유기농업"마저 사방에서 무참히 공격받고 있다.
"농업문제만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길 수 없고…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던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을 주장하고 나서니, 그 의중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박근혜 정권의 정책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꽃이 피지 않고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
화학 독극물 농약과 화학 비료로부터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고, 각종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호하며, 사람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친환경 유기농업이 급속도로 범(凡) 세계화되기까지 한 여성 생태학자의 목숨을 건 농약피해 현장 고발이 있었다.
미국의 여류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 여사는 1962년 살충제와 제초제 등 유독물질로 꽃이 열매를 맺지 않고 새들조차 울지 않는 상황을 그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농약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화학 및 농약전문 다국적 기업의 음해성 반박과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카슨 여사를 직접 만나 격려하는 등 국회의원들을 추동해 미국 땅에서 살충제 DDT와 BHC의 제조, 판매, 무역 중단을 선언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 조치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농약 피해로부터 지구 생태계를 살리자는 뜻을 담아 ‘지구의 날(4월 22일)‘을 선포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이 지구 생태계와 생명 농업계에 극독물을 만연케 한 결과, 땅과 물과 강과 바다의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인간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성 보전에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린 실상이 낱낱이 고발된 <침묵의 봄>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서 네 번째에 올랐다. <타임>은 레이첼 카슨 여사를 20세기의 중요 인물 100인으로 꼽기도 했다.
증산은 됐으나, 흑색혁명으로 끝난 녹색혁명!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60년대 후반 박정희 군사정권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대통령의 특별 관심으로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녹색혁명‘ 깃발을 높이 들었다. 다비성(多肥性) 다수확 품종의 화학농사와 농약 과다 의존형 관행농법을 ‘녹색혁명‘이라 명명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군사독재 18년 동안 대망의 식량자급 달성 목표에 근접하게 됐으나, 산·하천·호수·바다는 화학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돼 후진국형 공업국가로 변신했다. 조국의 산하와 생태계 그리고 농업부문을 ‘흑색혁명‘으로 뒤덮은 것이다. 거기에 세계 제1의 단위면적당 농약 및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는 오명마저 떠안게 됐다.
다국적 기업의 맹독성 농약은 이들과 유착한 재벌이 앞장서 수입판매를 하고, 농업 관련 정부 기관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 무성히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고자 발암성 제초제(고엽제) 남용이 보편화되고 병해충 박멸을 위해 매해 고독성 농약이 살포됐다. 또한 정부 연구기관은 유전자 형질을 원천적으로 조작해 더 독한 제초제인 독극물을 무제한 불러들이는 화학 농법을 도입하는데 열을 올렸다. 역대 군사정권과 추진 강도는 약간 다르지만 화학물질 의존형, 이른바 관행농업이 이 땅에 뿌리내린 후과(後果)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마다 800만 톤에 가까운 GMO 콩과 옥수수를 수입 중이며,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표시도 없다. 그저, 몇백만 톤의 GMO 가공식품이 대기업 식품회사에 의해 범람하고 있다.
21세기형 친환경·친자연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새 시대‘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사태, 즉 종(種, species)과 생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마실 물, 숨 쉴 공기, 생명의 땅이 오염돼 사람을 비롯한 각종 생물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에 중대 위기가 닥치고 있다. 대신 경제발전에 따라 의식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먹을거리 안전과 삶의 질 개선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에서 지적한 국민적 각성, 즉 살충제와 제초제(고엽제) 같은 화학 독극물로부터 환경 생태계와 가족의 건강 및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는 의식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정부 단위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포
국내외 사조(思潮)가 이처럼 변화하는 가운데, 1997년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외환위기인 IMF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에 대한 대통령의 섬세한 독려에 따라 1998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했다. 이는 문민정부 말, 국회에서 ‘환경농업육성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시행령을 만들고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농림부 산하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농업정책과를 신설하였다. 제초제의 배제를 기본으로 하는 저농약·무농약·유기농(전환기 포함) 농산물 등급인증제에 차등의 직접지불 소득보상제도도 도입됐다. 동시에 먹을거리의 안전한 유통경로 확보를 위해 소비자협동조합법(일명 ‘생협법‘)도 제정 공포됐다.
참고로,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유기농 원년 선포가 이뤄지기 20여 년 전부터 농촌 사회 곳곳 약 2000여 농가 단위로 착한 농민·정직한 농민들이 ‘바른 농업(正農會, 정농회)‘과 ‘유기 농업 협회‘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활동해 왔다. 그때만 해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증산 정책에 위배된다며 적지 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대적 유기 농업, 즉 생물과학 기술과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결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선구자적인 생명 농업을 꿋꿋하게 해오고 있다. 원경선, 류달영, 오재길, 홍순명, 정상묵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연맹, 주부클럽, 주부교실 등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소비자 단체의 호응도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맨 먼저 농업 생산자, 소비자 대표, 정부 대표를 중심으로 ‘농·소·정 위원회‘를 꾸려 친 환경 정책의 추진 단계부터 진행 과정, 소비자 홍보, 도농 연대에 앞장서도록 했다. 이들은 ‘친환경 유기농 5개년 발전 계획‘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립했다.
다만,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와 각종 병해충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다스리며 선의의 농민이 죄인이 되지 않게 할지는 정책 당국의 친환경농정 추진에 영원한 과제이다.
화학·농약 물신주의의 발호와 정책의 모호성
‘친 환경 농업 원년 선포‘ 이후 16년, 친환경 인증 농가가 수적으로, 품목·면적·생산량 면에서 10%를 넘는 괄목할 성장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IFOAM 총회)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남양주 양평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정도다. 소비자의 인식과 관심도 선진국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져 친환경 농업인들의 지적 기술수준과 각오를 크게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 농정으로 국내 일반 농업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으며, 고령 부녀자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외세(주로 화학·농약·유전자조작(GMO) 초대형 다국적 기업)가 활짝 열린 신자유주의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 대한민국의 관·학·재·언론계를 자본과 권력으로 유착시키고 있다. 식품(가공)산업도 외국 자본 및 기술과 제휴해 대재벌 회사의 주도 하에 국내산 원료를 멀리하고, 75% 이상의 재료를 값이 싼 GMO 포함 수입농축산물로 충당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은 친 환경 농정의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채 이를 과시할 숫자 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자재 생산자 등 업체들은 친환경 농민들이 받게 될 보조금을 가로채는데 눈독을 들일 뿐이다. 또 민간 인증 기관들은 얄팍한 수수료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 보니, 묵시적으로 이들 삼자가 연대해 애꿎은 고령화·부녀화 된 농가에까지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도록 끌어들이는 사례마저 빈번해졌다. 중앙 정부는 어떤 정권, 어떤 대통령과 어떤 농림부 장관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친환경 유기 농업 정책의 강도에 있어 질적 차이가 커졌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은 증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근혜 정부는 친 환경 유기 농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유기 농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을 짓밟고 4년 동안 끊임없이 박해했다. 농업 문제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친환경 유기농업과 관련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 순환 원리에 따라 친환경 유기농업이 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에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저가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농산물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친환경 농정에 유난히 냉담하다. 예산도, 정책 프로그램도, 대(對) 농민 소통도 제자리 걸음이다.
GMO, 제초제, 맹독성 농약이 판치는 세상
더욱이 서울에 진출한 몬샌토 등 프랑켄슈타인(괴물) GMO 종자 및 농산물 수출 다국적 회사와 고엽제 수준의 제초제 및 고독성 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기왕 EU 일부 국가와 북·남미 등의 국가에서 공작으로 일시 재미를 봤던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농약이 산다"라는 내부 방침을 공공연히 우리나라 관·학·언론계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유기농 식품에 등을 돌리게 하고 화학농업과 유기농업이 ‘오십보백보‘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관·학·언론계에 충실한 장학생을 다수 심고 막대한 자금 살포를 아끼지 않는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기관 공직자 중에서는 "농약은 과학이다" "GMO도 GAP도 친환경이다"라는 해괴한 이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상한 관료들이 등장하고, 일부 친 GMO 언론인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런 이상 기류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반응은 대통령의 수첩 지시가 없어서인지, 무관심과 방관 또는 일부 동조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드디어 공영방송이 ‘유기농 죽이기‘ 선봉에 나섰다. 한 PD가 1년 가까이 전국의 유명 유기농가를 찾아가 선진국에서는 과학적인 이유(흙 속 농약의 반감기 잔류 등)로 다루지 않는 화학 실험실 수준의 토양 중 농약 성분 찾아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농약 옹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유기농 토양 내 잔류 농약을 발견, 대단한 발견인양 유기농업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7일 방영된 KBS <유기농의 진실>(2부작) 역시 공작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오래된 미래 농업’인 친 환경 유기 농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참 유기농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죽이기‘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 성장 산업 육성 전략이 아닌지 의아해하면서….
이 글은 2014.08.05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일부 내용은 <한국농어민신문> 8월 4일 자 ‘농훈칼럼‘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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