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과 농지수탈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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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과 농지수탈
| 장상환 경상대 교수
식량안보가 나빠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쌀 자급률은 89.2%, 식량 자급률은 47.2%, 곡물 자급률은 23.1%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평가한 2012년 기준 한국의 식량안보 지표는 100점 만점에 32.2점에 불과했고, 일본의 44.9점에 비해서도 낮았다. 식량안보 지표가 낮은 것은 곡물의 생산·재고·교역을 나타내는 가용성 영역에서 최하위인데다 일본이 1위를 차지한 안전성·영양 영역에서도 중간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농업을 둘러싼 여건 변화에 따라 앞으로 식량위기가 더 심해질 것이다. 쌀 관세화 개방과 한·중 FTA 체결 등으로 농산물 수입이 증가해 국내 생산이 감소하면 식량자급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고, 머지않아 남북통일이 되면 식량부족 문제가 커질 것이다.
세계적 후진국 농지수탈 증가세
식량안보 위기에 대한 과거 이명박 정부와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응책은 해외 농산물 개발 및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해외농업개발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농지수탈(land grab)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2008년 국제 곡물가격 급등과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식량안보 혹은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농지수탈이 세계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랜드매트릭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971건, 3723만㏊가 계약을 체결했고 185건 1476만ha가 계약협의 중이다. 수탈 대상 농지는 아프리카,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 등 후진국의 농지다. 농지수탈에 나서는 주요 국가는 중국, 사우디 등 중동 국가, 일본, 한국 등 식량부족 국가이고 여기에 미국, 영국 등의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이 투기수익을 목적으로 농지수탈에 나선다.
해외자본에 의한 개도국 토지 수탈에 대해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은 세계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농업생산성이 낮은 개도국 농업부문에 외국자본이 유입되면 수리시설 등 농업기반 확충과 기술 보급에 의해 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고, 이는 식량자원 증가를 의미하므로 세계 식량안보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지수탈 자본이 자발적으로 준수할 투명성과 책임성 등의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갈등을 줄이려 한다.
투자국 식량위기를 수출하는 꼴
그러나 농지수탈은 기본적으로 투자 유치국의 식량주권을 해치는 것이다. 농지 수탈 자본은 유치국 농지를 해당국 국민의 식량 생산이 아니라 투자국으로 수출할 곡물을 재배하거나 이윤 목적으로 농산연료를 위한 대두, 팜유 등의 생산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와 유치국간의 투자협정에 따라서는 투자유치국이 자국의 식량위기 속에서도 식량을 수출할 의무를 지게 될 수도 있다. 이는 투자국의 식량위기를 수출, 즉 유치국에 전가하는 것이다.
해외농업개발, 즉 농지수탈은 한국의 식량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식량주권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농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서 생산조절, 생산비보장 가격 설정, 저소득층 식비 지원 등의 사업을 펼쳐야 농민과 국민들의 식량주권이 높아지는 것이다.
직접지불 늘리고 농협 개혁해야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해외농업개발에 따른 곡물수입 실적은 저조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25개 기업이 25개국에 진출, 6만6300㏊를 개발해 26만4000톤의 곡물(주로 옥수수)을 확보했으며 이 중 5.2%에 불과한 1만3976톤만 국내로 들여왔다. 해외농업개발업체는 사업자금의 70%를 정부로부터 융자받지만 생산 농산물을 국내에 반입해야 할 의무는 없다. 현지 가격과 생산비, 수송비 등을 고려해 세계시장 대상 판매냐 국내 반입이냐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식량사정을 또 하나의 영리기업체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식량안보는 취약하게 된다.
식량주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산비와 농업소득 보장을 통한 증산을 위해 직접지불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유통·가공 시장에서 국내외 자본의 지배에 대한 농민의 대항력을 높일 수 있도록 농협을 민주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14년 8월 2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장상환 경상대 교수
식량안보가 나빠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쌀 자급률은 89.2%, 식량 자급률은 47.2%, 곡물 자급률은 23.1%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평가한 2012년 기준 한국의 식량안보 지표는 100점 만점에 32.2점에 불과했고, 일본의 44.9점에 비해서도 낮았다. 식량안보 지표가 낮은 것은 곡물의 생산·재고·교역을 나타내는 가용성 영역에서 최하위인데다 일본이 1위를 차지한 안전성·영양 영역에서도 중간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농업을 둘러싼 여건 변화에 따라 앞으로 식량위기가 더 심해질 것이다. 쌀 관세화 개방과 한·중 FTA 체결 등으로 농산물 수입이 증가해 국내 생산이 감소하면 식량자급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고, 머지않아 남북통일이 되면 식량부족 문제가 커질 것이다.
세계적 후진국 농지수탈 증가세
식량안보 위기에 대한 과거 이명박 정부와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응책은 해외 농산물 개발 및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해외농업개발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농지수탈(land grab)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2008년 국제 곡물가격 급등과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식량안보 혹은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농지수탈이 세계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랜드매트릭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971건, 3723만㏊가 계약을 체결했고 185건 1476만ha가 계약협의 중이다. 수탈 대상 농지는 아프리카,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 등 후진국의 농지다. 농지수탈에 나서는 주요 국가는 중국, 사우디 등 중동 국가, 일본, 한국 등 식량부족 국가이고 여기에 미국, 영국 등의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이 투기수익을 목적으로 농지수탈에 나선다.
해외자본에 의한 개도국 토지 수탈에 대해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은 세계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농업생산성이 낮은 개도국 농업부문에 외국자본이 유입되면 수리시설 등 농업기반 확충과 기술 보급에 의해 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고, 이는 식량자원 증가를 의미하므로 세계 식량안보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지수탈 자본이 자발적으로 준수할 투명성과 책임성 등의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갈등을 줄이려 한다.
투자국 식량위기를 수출하는 꼴
그러나 농지수탈은 기본적으로 투자 유치국의 식량주권을 해치는 것이다. 농지 수탈 자본은 유치국 농지를 해당국 국민의 식량 생산이 아니라 투자국으로 수출할 곡물을 재배하거나 이윤 목적으로 농산연료를 위한 대두, 팜유 등의 생산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와 유치국간의 투자협정에 따라서는 투자유치국이 자국의 식량위기 속에서도 식량을 수출할 의무를 지게 될 수도 있다. 이는 투자국의 식량위기를 수출, 즉 유치국에 전가하는 것이다.
해외농업개발, 즉 농지수탈은 한국의 식량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식량주권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농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서 생산조절, 생산비보장 가격 설정, 저소득층 식비 지원 등의 사업을 펼쳐야 농민과 국민들의 식량주권이 높아지는 것이다.
직접지불 늘리고 농협 개혁해야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해외농업개발에 따른 곡물수입 실적은 저조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25개 기업이 25개국에 진출, 6만6300㏊를 개발해 26만4000톤의 곡물(주로 옥수수)을 확보했으며 이 중 5.2%에 불과한 1만3976톤만 국내로 들여왔다. 해외농업개발업체는 사업자금의 70%를 정부로부터 융자받지만 생산 농산물을 국내에 반입해야 할 의무는 없다. 현지 가격과 생산비, 수송비 등을 고려해 세계시장 대상 판매냐 국내 반입이냐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식량사정을 또 하나의 영리기업체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식량안보는 취약하게 된다.
식량주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산비와 농업소득 보장을 통한 증산을 위해 직접지불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유통·가공 시장에서 국내외 자본의 지배에 대한 농민의 대항력을 높일 수 있도록 농협을 민주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14년 8월 2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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