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 인증제, 명확한 개념 정의부터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 작성일2020/03/05 17:05
- 조회 601
친환경농산물 인증제, 명확한 개념 정의부터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소비자 불만도 쌓이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가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을 막기 위한 민간인증기관의 지정기준이 강화됐다. 또 민간인증기관의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이런 내용을 담은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 시행규칙이 개정돼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본원적인 개선방안 모색 필요
이번 조치는 수익에 눈 먼 일부 민간인증기관의 엉터리 인증업무로 부실인증 사례가 다수 발생함에 따라 공공성·책임성이 담보되는 인증업무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존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증한 경우 1회 위반 시 업무정지 6개월, 2회 위반 시 지정취소를 했지만 이번 조치에서는 1회 위반 시 인증기관 지정을 바로 취소토록 했다.
이는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를 바로 잡아 소비자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나 마땅한 조치다.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민간인증기관 관리감독 강화라는 조치만으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에 대한 좀 더 본원적인 의미 해석과 개선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와 인증마크(도형)의 사용 및 표시를 전적으로 통제·관리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법으로 정한 도형을 표시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친환경농업 실천 농민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도형으로 표시하려면 반드시 법이 정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농민이 복잡한 인증받기 어려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는 허위표시나 유사표시에 따른 부정유통을 방지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친환경농산물의 언어나 도형을 국가의 것으로 하고서 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국가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농업 실천 농민들은 자율적으로 친환경농산물(유기, 무농약, 저농약)이라는 언어를 할 수 조차 없다.
현실적으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면허’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엄연히 인증과 면허의 개념은 다르다. 국어사전에는 인증은 어떤 행위 또는 문서의 성립이나 기재가 정당한 절차로 이뤄졌음을 공적 기관이 증명하는 일로서, 면허는 국가기관에서 특정의 행위나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일이나 특정 기관에서 어떤 기술 자격을 인정하는 일로서 정의돼 있다. 이런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두지 않고서는 친환경농산물 인증제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가 도입된지 14년이 다 돼 가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제대로 숙지하고서 인증을 받고 있을까?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논리적·과학적·합법적 검증철자를 거쳐야 하고, 또 충분한 지식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법제도나 사회교육으로부터 소외돼 온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정확히 따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증기관이 제멋대로 수익 목적의 인증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부실인증 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이 아닐까?
농민에게는 인증을 받지 않더라도 친환경농업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만약 어떤 농민이 농약이 싫어 농약없이 농사를 지었는데 복잡한 인증서류를 갖출만한 능력이 없다면 그에게 농약을 다시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증을 받지 않았으니 친환경농산물로 생산·판매할 수 없다는 것은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는 인증을 받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들로부터 이런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민간기관별 특성·개성 살려야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어디까지나 인증기관이 객관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는 표시로서 인식돼야 한다. 이를테면 인증기관의 품질보증 브랜드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런 표시로서 보기 쉽게 디자인된 인증마크를 사용하는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는 언어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마크를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자는 인증받은 친환경농산물과 인증받지 않은 친환경농산물 중에서 어떤 것을 구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또 그런 선택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 자율적인 질서를 형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 더욱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스위스 등 EU 국가들의 유기농산물 인증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경우 유기농산물 최저공통기준을 준용한 국가인증(EU인증)이 있는 반면, 민간인증기관별 각기 공통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메테르, 비오란트, 나투르란트, 비오크라이스 등의 민간인증이 있다. 인증기관 간의 선의의 경쟁도 벌이고 있다. 물론 인증기관별 인증마크(도형)도 각기 다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 이런 인증체계를 적극 도입해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를 극복하고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구멍 뚫린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는 정부의 친환경농산물 민간인증기관 부실지정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 정부는 법적 요건만 갖추면 민간인증기관을 지정해 왔다. 그 결과 민간인증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 현재 90개를 넘어서고 있다. 민간인증기관의 지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기존 민간인증기관의 과감한 통폐합을 통해 인증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인증의 대리점(?) 역할만이 아니라 민간인증기관별 각각 고유의 특성과 개성을 살리는 방향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
*한국농어민신문 2014년 10월 8일 게재 글 입니다.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소비자 불만도 쌓이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가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을 막기 위한 민간인증기관의 지정기준이 강화됐다. 또 민간인증기관의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이런 내용을 담은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 시행규칙이 개정돼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본원적인 개선방안 모색 필요
이번 조치는 수익에 눈 먼 일부 민간인증기관의 엉터리 인증업무로 부실인증 사례가 다수 발생함에 따라 공공성·책임성이 담보되는 인증업무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존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증한 경우 1회 위반 시 업무정지 6개월, 2회 위반 시 지정취소를 했지만 이번 조치에서는 1회 위반 시 인증기관 지정을 바로 취소토록 했다.
이는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를 바로 잡아 소비자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나 마땅한 조치다.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민간인증기관 관리감독 강화라는 조치만으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에 대한 좀 더 본원적인 의미 해석과 개선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와 인증마크(도형)의 사용 및 표시를 전적으로 통제·관리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법으로 정한 도형을 표시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친환경농업 실천 농민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도형으로 표시하려면 반드시 법이 정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농민이 복잡한 인증받기 어려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는 허위표시나 유사표시에 따른 부정유통을 방지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친환경농산물의 언어나 도형을 국가의 것으로 하고서 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국가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농업 실천 농민들은 자율적으로 친환경농산물(유기, 무농약, 저농약)이라는 언어를 할 수 조차 없다.
현실적으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면허’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엄연히 인증과 면허의 개념은 다르다. 국어사전에는 인증은 어떤 행위 또는 문서의 성립이나 기재가 정당한 절차로 이뤄졌음을 공적 기관이 증명하는 일로서, 면허는 국가기관에서 특정의 행위나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일이나 특정 기관에서 어떤 기술 자격을 인정하는 일로서 정의돼 있다. 이런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두지 않고서는 친환경농산물 인증제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가 도입된지 14년이 다 돼 가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제대로 숙지하고서 인증을 받고 있을까?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논리적·과학적·합법적 검증철자를 거쳐야 하고, 또 충분한 지식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법제도나 사회교육으로부터 소외돼 온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정확히 따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증기관이 제멋대로 수익 목적의 인증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부실인증 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이 아닐까?
농민에게는 인증을 받지 않더라도 친환경농업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만약 어떤 농민이 농약이 싫어 농약없이 농사를 지었는데 복잡한 인증서류를 갖출만한 능력이 없다면 그에게 농약을 다시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증을 받지 않았으니 친환경농산물로 생산·판매할 수 없다는 것은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언어는 인증을 받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들로부터 이런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민간기관별 특성·개성 살려야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어디까지나 인증기관이 객관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는 표시로서 인식돼야 한다. 이를테면 인증기관의 품질보증 브랜드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런 표시로서 보기 쉽게 디자인된 인증마크를 사용하는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는 언어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마크를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자는 인증받은 친환경농산물과 인증받지 않은 친환경농산물 중에서 어떤 것을 구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또 그런 선택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 자율적인 질서를 형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 더욱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스위스 등 EU 국가들의 유기농산물 인증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경우 유기농산물 최저공통기준을 준용한 국가인증(EU인증)이 있는 반면, 민간인증기관별 각기 공통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메테르, 비오란트, 나투르란트, 비오크라이스 등의 민간인증이 있다. 인증기관 간의 선의의 경쟁도 벌이고 있다. 물론 인증기관별 인증마크(도형)도 각기 다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 이런 인증체계를 적극 도입해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를 극복하고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구멍 뚫린 친환경농산물 부실인증 문제는 정부의 친환경농산물 민간인증기관 부실지정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 정부는 법적 요건만 갖추면 민간인증기관을 지정해 왔다. 그 결과 민간인증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 현재 90개를 넘어서고 있다. 민간인증기관의 지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기존 민간인증기관의 과감한 통폐합을 통해 인증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인증의 대리점(?) 역할만이 아니라 민간인증기관별 각각 고유의 특성과 개성을 살리는 방향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
*한국농어민신문 2014년 10월 8일 게재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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