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지상주의를 경계한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8:22
- 조회 427
경쟁력 지상주의를 경계한다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6월의 마지막 날(30일), 한미FTA 협정문이 양국 대표에 의해 서명되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전대미문의 농산물시장 개방안을 담고 있는 협정문의 서명에 앞서 정부는 서둘러 농업분야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요지는 이렇다. “별 볼일 없는 농민들은 빨리 농업을 떠나는 게 좋다. 그래도 굳이 농사를 짓겠다면 단기적으로는 피해의 85%까지는 보전해주겠지만, 장기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짓지 마라. 농촌 활성화는 도시자본을 끌어들여서 하겠다.”
농기업만으로 농업 유지 안돼
이것은 대책이 아니라 농민들에 대한 ‘협박’처럼 들린다. 이른바 개방화 시대의 농정 기조인 경쟁력 지상주의가 한미FTA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농업은 100% 개방시대에도 국제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의 민승규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사양화의 길’과 ‘산업으로서 경쟁력 있는 농업 만들기’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고, 농산물 개방시대를 맞이하여 한국농업이 나아갈 길은 산업으로서의 경쟁력 회복이며, 이는 ‘농업경영’의 확산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농업경영을 통해 “10년 후 우리 농업은 더 이상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갖춘, 돈 되는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 박사의 ‘농업경영’론의 두 축은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통한 ‘상품차별화’와 경영자적 자질을 갖춘 ‘농기업가의 양성’이다.
민박사의 이러한 ‘농업경영’론은 논리 정연하고 우리 농업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런데 민 박사의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선진국 수준 농업 보조금 지원
첫째, 민 박사는 ‘농업경영’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농정기조를 ‘생산성 향상 및 소득보전’에서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시장지향’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도 일방적인 주장이다. 세계 최대의 농업 수출국인 미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자국 농민에게 지불하고 있고, 이것을 못 줄이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결렬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해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시장지향 농정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 많은 돈을 농업보조금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담을 좀 줄여보자는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들 나라 수준으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려면 보조금을 줄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국제경쟁이 될 게 아닌가.
둘째, 민 박사는 ‘장생도라지’나 ‘청매실농원’같은 농기업가가 우리 농업의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한 농기업가는 많이 생길수록 좋고, 우리는 그들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농기업만으로 한국농업이 유지될 것인가. 과연 100% 개방압력 하에서 얼마나 많은 장생도라지와 같은 농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 수가 수천 아니 수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만으로는 안전한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농업 본래의 역할을 다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선진국에서 중요시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환경 및 국토자원의 보전 및 관리, 지역사회의 유지, 역사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인간교육의 장 등)을 발휘할 수 없다.
대다수 농민의 삶을 고민해야
민 박사의 ‘농업경영론’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 혹은 천재 제일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10만 명을 먹여 살릴 1명의 천재’의 육성에만 매달리고 10만 명의 보통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회사의 미래는 없다. ‘농업경영’론이 대다수의 농민을 농업에서 쫓아내고, 농촌 주민의 대부분을 도시로 내모는 한미FTA와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을 합리화시켜주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면, 극소수 농기업의 육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대다수 농민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품질향상과 기업가적 마인드로 농업경쟁력을 키워가자는 ‘농업경영’론이 국제 경쟁력 있는 농기업만이 희망이라는 경쟁력 지상주의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7월 0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6월의 마지막 날(30일), 한미FTA 협정문이 양국 대표에 의해 서명되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전대미문의 농산물시장 개방안을 담고 있는 협정문의 서명에 앞서 정부는 서둘러 농업분야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요지는 이렇다. “별 볼일 없는 농민들은 빨리 농업을 떠나는 게 좋다. 그래도 굳이 농사를 짓겠다면 단기적으로는 피해의 85%까지는 보전해주겠지만, 장기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짓지 마라. 농촌 활성화는 도시자본을 끌어들여서 하겠다.”
농기업만으로 농업 유지 안돼
이것은 대책이 아니라 농민들에 대한 ‘협박’처럼 들린다. 이른바 개방화 시대의 농정 기조인 경쟁력 지상주의가 한미FTA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농업은 100% 개방시대에도 국제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의 민승규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사양화의 길’과 ‘산업으로서 경쟁력 있는 농업 만들기’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고, 농산물 개방시대를 맞이하여 한국농업이 나아갈 길은 산업으로서의 경쟁력 회복이며, 이는 ‘농업경영’의 확산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농업경영을 통해 “10년 후 우리 농업은 더 이상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갖춘, 돈 되는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 박사의 ‘농업경영’론의 두 축은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통한 ‘상품차별화’와 경영자적 자질을 갖춘 ‘농기업가의 양성’이다.
민박사의 이러한 ‘농업경영’론은 논리 정연하고 우리 농업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런데 민 박사의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선진국 수준 농업 보조금 지원
첫째, 민 박사는 ‘농업경영’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농정기조를 ‘생산성 향상 및 소득보전’에서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시장지향’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도 일방적인 주장이다. 세계 최대의 농업 수출국인 미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자국 농민에게 지불하고 있고, 이것을 못 줄이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결렬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해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시장지향 농정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 많은 돈을 농업보조금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담을 좀 줄여보자는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들 나라 수준으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려면 보조금을 줄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국제경쟁이 될 게 아닌가.
둘째, 민 박사는 ‘장생도라지’나 ‘청매실농원’같은 농기업가가 우리 농업의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한 농기업가는 많이 생길수록 좋고, 우리는 그들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농기업만으로 한국농업이 유지될 것인가. 과연 100% 개방압력 하에서 얼마나 많은 장생도라지와 같은 농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 수가 수천 아니 수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만으로는 안전한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농업 본래의 역할을 다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선진국에서 중요시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환경 및 국토자원의 보전 및 관리, 지역사회의 유지, 역사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인간교육의 장 등)을 발휘할 수 없다.
대다수 농민의 삶을 고민해야
민 박사의 ‘농업경영론’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 혹은 천재 제일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10만 명을 먹여 살릴 1명의 천재’의 육성에만 매달리고 10만 명의 보통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회사의 미래는 없다. ‘농업경영’론이 대다수의 농민을 농업에서 쫓아내고, 농촌 주민의 대부분을 도시로 내모는 한미FTA와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을 합리화시켜주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면, 극소수 농기업의 육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대다수 농민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품질향상과 기업가적 마인드로 농업경쟁력을 키워가자는 ‘농업경영’론이 국제 경쟁력 있는 농기업만이 희망이라는 경쟁력 지상주의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7월 0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