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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어머니의 땅, 맛의 대 향연” | 김성훈 슬로우푸드 문화원 명예이사장, 전 농림부장관 
    • 작성일2020/03/06 09:14
    • 조회 607
    “어머니의 땅, 맛의 대 향연”
    | 김성훈 슬로우푸드 문화원 명예이사장, 전 농림부장관 


    세계 130여개국 1000여 대표단과 수만명의 참관자(농부, 어부, 요리사, 식품명인, 와인 및 미식 전문가, 각국의 슬로푸드 운동가와 소비자 시민)들이 지난 10월 23-27일 닷새동안 이태리의 토리노에 모여들어 친환경 유기농업에 기반을 둔 국제 슬로푸드(Slow food) 대회장을 들끓게 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국제 음식/맛의 방주”가 이곳에 닻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2000번째 품목으로 정읍의 먹시감 식초가 등재돼 주목을 받았다.

    맛의 방주, 토리노에 닻을 내리다

    국제연합(UN)이 선포한 ‘세계 가족농의 해’에 발맞춰 참가국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대표적인 슬로푸드를 매장에서 선보였다. 특히 100여명의 한국 대표단 중에는 선재, 탄원스님 등 11명의 사찰음식 전문스님들이 참가해, 매일 한국의 사찰음식을 1인1식 35유로(약 5만원)를 받고 공양했으며, 오후에는 무료로 한차례씩 발우공양을 베풀어 이 대회장에서 단연 한국관이 돋보였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식문화와 나눔정신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 대회에 즈음해 주 이태리대사관(대사 배재현, 농무관 이은정)과 한국슬로푸드회(회장 김종덕)가 공동으로 개최한 “아시아 오세아니아 식문화의 풍성함”이란 주제의 워크숍은 각국의 대표들이 참여해 세계의 5대 성인(聖人)인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노자 등 성인의 출생지라는 사실과 결부하여 식문화의 오묘함과 풍성함을 과시하는 열띤 토론과 발표장이 되었다. 한결같은 결론은 지난해 남양주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맛의 향연’ 축제를 홀수해인 내년 2015년에도 한국에서 개최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점이다.
    그 저변에 깔린 이유인즉, 한국이 비록 서구문명(엄격히 말하여 햄버거, 피자, 핫도그 등 미국 식문화)의 급격한 침투로 인해 시장경제적으로는 상업화하는데 뒤처졌지만, 한국의 전통식품과 음료수 대부분이, 그리고 국민들의 일상 밥상에는 가장 오래된 미래식품, 발효음식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여가지의 김치류와 된장, 간장, 고추장, 수십가지의 젓갈류, 식혜, 막걸리 등등. 한국음식 중 발효음식이 아닌 것이 없고, 그중에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우리 말, 우리 조리방식 그대로를 세계 표준으로 인정한 김치(Kimchi)와 고추장(Gochujang)이 이미 세계화되어 있을 만큼 발효식품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세계에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선 치즈와 포도주 등이 보편화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거의 모든 곡류와 채소류, 어류 등의 식품을 발효시켜 제2의 천연식품으로 그 일상성을 오랫동안 애호해 온 곳은 흔치 않다. 말하자면 슬로푸드의 원조가 이탈리아가 아니라, 발효식품 강국, 한국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발효식품의 최강국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2012년 광주직할시 주최의 세계김치문화축제에 참석한 세계의 식품대통령 격인 카렌 휼베크 CODEX 의장이 남도 일대를 순행한 다음 세계 김치연구소 주관의 학술외의 기조연설에서 준비해온 연설문을 읽다말고, 자기가 세계 각국, 특히 동남아시아 일대의 젓갈 발효식품을 살펴보고 시식도 해보았지만 “생선 머리와 창자를 발효시켜 애용하는 경우는 한국에 와서 처음 보았노라”고 고백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대가리와 창자까지 발효시켜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해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였다. 그녀는 그 비결을 한국의 특수한 기후조건(대륙성+해양성 기후의 만남) 하의 좋은 미생물이 풍부한 점과 이를 자극하고 북돋는 천일염(天日鹽, Heaven & Sun-made Seasalt)의 효능 때문이 아닌가 본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세계 식품사회에 내놓은 이 자랑스런 전통 발효식품이 바야흐로 병들어 가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제초제에 찌들고 불임성이 가미된 GMO 콩과 GMO 옥수수, GMO 카놀라 유채유, 등 식품재료 농산물들과 GMO 덩어리인 식품 첨가제 아스파탐, 올리고당, 성장호르몬제등이 물밀듯이 우리 식품산업계에 밀려 들어와 연간 70조원의 가공식품 매출액을 자랑하는 미국계 또는 재벌 식품업체들이 한국가공식품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용으로만 연간 180여만톤의 GMO 콩과 옥수수, 별도의 수십만톤의 수입산 시리얼과 과자 및 식품, 그리고 막대한 수량의 식품 첨가물이 GMO 유전자조작 원료들에 의해 만들어져 수입되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인체에 각종 종양과 유방암, 대장과 췌장의 이상현상을 야기하고 심지어 자폐증 환자들과 불임성 신혼부부를 양산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GMO 농산식품을 직접 임상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실 쥐, 돼지 등 포유류 동물에 실험한 결과가 프랑스의 셀라리니 교수팀 등 선진 각국의 독립실험 결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EU 국가들에선 0.9% 이상의 GMO가 함유될 경우 특별관리 된다. 동유럽국가들과 러시아에선 GMO를 생산도, 수입도, 판매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중국에선 그 안전성이 입증된 GMO만 수입이 허용된다. 일본 역시 GMO 사료도입에는 관대하지만 음식류에 대해선 2중 경계를 한다. 얼마전엔 한국의 모 라면회사가 터키에 유명 라면을 수출하였다가 GMO 분말이 함유된 것이 문제되어 반송조치 당했을 만큼 우리나라는 무감각증이 너무 심하다.

    부지불식 중 ‘GMO 천국’이 되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GMO 수출국가들처럼 우리나라 정부는 GMO 표시제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정부당국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25개 단체로 구성된 바이오 안전성 시민네트워크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GMO 원료가 분명히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산 콩 및 옥수수, 카놀라 가공식품 중 어느 한곳도 실제로는 GMO 함유표시를 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선 한국을 ‘GMO 천국’이라 부른다.
    시중에 판매되거나 식당에서 소비되는 콩나물, 두부, 두유, 콩기름, 옥수수 과자, 시리얼, 옥수수기름, 카놀라기름에 듬뿍 잠긴 참치 통조림, 단맛을 내는 GMO 아스파탐 등 첨가물 등이 버젓이 포함된 막걸리 등 음료수와 식품이 활개치고 판매 소비되고 있다. 우리 국민소비자들은 매일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자칫 ‘병들기 위해’ 먹는 사회로 바뀌어 질까 두렵다. 소비자시민모임 등 바이오 안전성 시민네트워크가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소비자의 84.6%가 GMO 함유식품의 완전표시제를 바라는데도 정부당국과 국회는 웬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광화문에 진출해 있는 GMO 종자 및 제초제 세계 제1 독과점 수출회사인 몬산토사와 거대 식품산업계의 로비력이 워낙 출중하기 때문인지, 정부·국회 당국자들의 무능 무위 무관심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2의 GMO 수입국으로서 십수년간 국민의 건강과 생명, 환경생태계 위협은 도외시 한 채 지금껏 GMO의 역기능에 대한 생체실험은커녕 실험실 안에서의 동물실험마저 제대로 해보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라”

    “어머니의 땅, 맛의 향연” 주제하의 토리노 국제 슬로푸드 대회의 백미(白眉)는 국제 슬로푸드운동 창시자 겸 협회회장 칼로스 페트리니의 개막연설이었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1991년 미국의 경제봉쇄에 즈음하여 유기농업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쿠바인들, 특히 여성지도자와 주부들에게 유기농운동에 적극 앞장설 것을 촉구한 명연설에 버금가는 기조연설이었다. 카스트로는 “쿠바의 여성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의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 젖과 정성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노라, 컸노라. 이제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서 여성 여러분이 다시 앞장서서 쿠바의 온 산과 들과 도시 공터를 젖과 꿀이 나오는 유기농업으로 바꾸어 달라. 다시 쿠바 국민들을 건강하게 먹여 살리자”고 연설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쿠바가 의료적으로 가장 우수한 ‘건강사회 신화’를 창조하였다.
    마찬가지로 페트리니 회장은 “전 세계의 소비자 국민, 농민, 어부, 요리사들이여, 깨어나 일어나라. 그리하여 우리 인류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대자연의 생태계를 짓밟는 다국적 대기업들의 프랑켄슈타인 식품에 의한 횡포와 장난을 막아내자. 패스트푸드와 GMO를 추방하고 유해색소와 첨가물을 몰아내자. 자연(어머니의 땅)이 준 천연음식의 맛을 해치는 기업 이윤최대화 조작과 인류 공통의 적들을 당당히 맞서 싸워 이겨내자”고 역설하였다. 국내외 기업 재벌 식품회사들과 결탁한 정부관료, 정치인, 언론, 학계에 즐비한 장학생들을 고발하고 소비자의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지켜나가자고 호소하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오늘 이 순간, 반 유기농, 친 GMO/패스트푸드 식문화에 쪄들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농어민신문 2014-10-31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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