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와 안전한 밥상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 작성일2020/03/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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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와 안전한 밥상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도대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요?” 안전한 밥상과 Whole Food(온전한 식품), GMO(유전자조작식품) 등에 관한 글을 자주 발표해오는 과정에서 요즘 공사석에서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데자뷰(旣視感)라 할까. 장관 초임시절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림장관, 무엇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가?”라며 꾸짖듯 질문해 나를 당황케 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친환경농업 정책의 계기
어리둥절 하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당일의 조간신문 사회면의 톱기사, “가락동 도매시장, 깻잎 등 채소류에서 맹독성 농약 검출”이었다. 엉겹결에 “예, 무농약 유기농업을 정책적으로 적극 권장, 지원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정에 없던 즉문즉답은 “그럼, 그렇게 하시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결말이 났다.
그리하여 1998년 11월11일 제3회 「농민의 날」에 대통령과 총리가 참석한 행사장에서 대한민국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이 선포됐다. 그 후속조치로 친환경유기농 판매를 전문하는 생협법(소비자협동조합법)이 입법 제정되고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 인증 지원을 골자로 하는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령이 실시됐다. 농림부 조직 안에 친환경농업정책과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설립됐으며 정부 인증 친환경농업에 대한 직접지불(소득보조) 제도가 최초로 도입 실시됐다. 정부가 친환경 유기농업을 제도적으로 공식 뒷받침하는 첫 사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십수년동안 우리나라에 다시 친환경농법 시대가 열렸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Whole Food(온전한 식품=안전성 및 면역력 증강) 유기농 식품에 대한 국민 소비자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그때까지는 칼로리 양으로만 식품의 가치를 판단해 왔는데, 최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잇단 신형 질병사태에 임하여 새삼 먹거리의 가치를 안전성과 면역력 그리고 자연치유 및 복원력의 입장에서 찾게 된 것이 ‘온전한 식품’ 개념이다. 칼로리 영양가치 차원을 넘어서 생명, 건강, 안전, 환경생태계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면역력을 증강시켜 주는 Whole food (온전한 식품)
필자는 언제부터서인지 스스로 ‘도시농부’ 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은근히 자랑삼아 도시농부라고 자기소개를 종종 한다. 20년 전부터 그럭저럭 주말농장 또는 텃밭농사 그리고 아파트 옥상 상자화분농사에 이르기까지 비록 내 사유의 농지가 없지만 농사일을 놓지 않고 살다보니 꽤 이력이 붙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8층 옥상에서도 6년 전부터 화분상자 40여개에 각종 채소농사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유기농 퇴비는 괴산의 흙살림연구소 것을 사서 쓴다. 처음에는 110개 상자 농사로 제법 규모를 키웠으나 재작년 폭우사태를 맞아 혼쭐이 나서 규모를 대폭 줄였다. 지금은 42상자에 상추, 쑥갓, 고추, 부추, 깻잎, 토마토, 오이, 고구마를 심고 뽕나무, 두릅나무, 블루베리 나무도 기른다. 물론 주민들에겐 누구나 자유로이 솎아들 수 있음을 공지하고 있다. 나는 기본 묘종과 재료 조달을 하고, 심고 가꾸고 하루 두 차례 물을 주는 수고를 자원할 뿐이다.
그런데 막상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이 메르스에 걸리고 쓰러져 간다는 소식이 알려짐에도 나는 끄떡하기는커녕 전혀 염려를 하지 않았다. 옥상 유기농산물 온전한 식품으로 단련이 됐고 길 건너 한 살림 생협에서 나머지 친환경 식품재료를 조달해 온 덕분인지 몇 년째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내심 건강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 있다. 내가 아는 내 주변의 도시농업인들과 대부분 농촌의 유기농부들 역시 면역력이 자신만만한 듯 의연한 행동거지를 보여줬다. 유기농 흙에서 유기농업으로 자라면서 각종 병충해와 변덕스런 날씨에 내성이 강화된 Whole Food(온전한 식품) 그 자체가 면역력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수확을 더 내고 돈을 더 벌려고 각종 농약과 극독성 제초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남용하다 보면 식물의 면역력과 자생 복원력이 쇠퇴하고 환경생태계가 망가져 흙속의 유용 미생물을 죄다 죽여 그 대신 내성이 강화된 수퍼 잡초, 수퍼 벌레를 불러들여 더 독한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에 내몰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 관행농업이 안타깝게도 이 지경이 되어 있다.
벌레 먹고 못생겨도 더 맛있고 더 안전해요!
도시농업 20년에 터득한 또 하나의 진실은 벌레들이 용케도 살충제건 살균제 제초제이건 농약을 친 농산물엔 접근을 기피하고 설사 범접하더라도 전혀 입을 대어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짓궂게 장난삼아 상추나 깻잎 한 쪽에 F킬러 해충퇴치제를 뿌려봤더니 눈도 없고 귀나 코도 없어 보이던 애벌레란 놈이 어디선가 다가와 쭈뼛거리다가 농약을 뿌리지 않은 딴 잎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긴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제까지 벌레도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관행농법의 화학오염 농산물을 예쁘게 잘 생겼다고 애호해 오지 않았던가.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붙이면, 우리 식구는 언제부터서인지 쌈 채소류 중에 깻잎을 제일 선호한다. 왜냐면 그 많은 친환경 채소류 중에 벌레가 제일 먼저 깻잎에 덤벼든다는 사실이다. 몇 밤만 지나면 곳곳에 구멍을 내고 야금야금 갉아 먹어버린다. 다 같은 쌈 채소류인데 벌레들이 깻잎을 제일 먼저 공략한다는 것은 필시 식도락 미식가(美食家)인 벌레의 취향에 딱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1998년 초임 장관 시절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원인 제공의 장본인도 맹독성 농약이 검출된 깻잎이었다. 미물인 벌레가 좋다고 덤벼드는 맛 좋은 채소 No. 1이 깻잎이라는 사실은 우리 식구들에게 함축하는 바가 대단히 컸다. 요즘엔 유기농업용 생물농약이 많이 개발돼 보급됐고 심지어 미생물 농약제제마저 개발돼 벌레 먹지 않은 유기농 깻잎과 채소류, 곡물들이 시장에 많이 출하되고 있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종종 벌레 먹고 구멍 난 못생긴 농산물이 아직 부지기수이다.
다시 한 번 자작 구호인 “벌레 먹고, 못 생겼어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라고 말할까, 게다가 면역력까지 잔뜩 품은 ‘온전한 식품 Whole Food’에 이르러서야. 그래서인지 최근엔 이 구호가 영어, 일어로 번역돼 캐나다와 일본 일부 지역에서도 불린다고 한다.
‘살림운동’의 선구자, 박재일 선생.
◆농업이란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며 사람이 자라게 한다. (茶山)
◆좁쌀 한 알 안에도 우주가 있다. (장일순)
◆예수님께서 마른 생선, 빵 몇 조각으로 수많은 구도자들을 나눠 먹었듯이, 콩 한쪽이라도 배고픈 이들과 나눠 먹으며 살아야 한다. (원경선)
◆농부는 자연을 돌보아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인(工人)은 이를 물건으로 만들며, 상인은 이를 널리 유통시켜 만인에게 닿게 한다. (한농훈)
◆생산자 농민은 소비자의 생명을 보장하고, 소비자 국민은 생산자 농민의 생활을 보장하자! (박재일)
이와 같은 삶의 원리를 가장 충실히 수행하다가 가신 사람들이 금세기에 원경선, 장일순, 박재일 선생들이시다. 2010년 8월 18일에 작고하신 한살림운동의 선구자 박재일 선생은 평생 하늘과 대자연을 섬겨 친자연 유기농법을 충실히 수행했고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 —어렵거나 부자이거나 누구나에게 골고루 닿게 하자는 ‘죽임’운동이 아니라 ‘살림’운동을 꾸준히 묵묵히 실천해 오신 분이다. 그는 농민생산자들을 공손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사대부중도 겸허히 받들어 모시었다. 그 위대한 섬김의 도구가 다름 아닌 ‘안전한 밥상’이었다. 생산한 사람, 먹는 사람, 하늘과 땅이 두루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한 살림 운동으로 결실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메르스 사태에 임하여 절실히 깨달은 진리는 지구상의 인류는 안전한 먹거리 생산-유통-소비를 통해 각종 질병과 맞서 스스로 강한 힘(自强力)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모든 번민과 나약함과 사악함이 인간의 끝없는 탐욕(貪慾)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생명체인 인간의 자강력을 떨어뜨리는 번민과 스트레스는 안전한 밥상 앞에서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돈, 그놈의 돈 욕심 때문에 땅속의 유용 미생물까지 죽여 가며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농사를 지어야 하나 ,그 욕심 때문에 어엿한 생명체인 축생들을 좁은 공간에 빽빽이 가둬놓고 선진 양돈, 선진 양계, 선진 축산이라고 뻔뻔히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먹거리 농산물과 사람과 축생과 미물 등 모든 생명체들을 지폐로 확대재생산하려드는 산업적 농업, 공장식 축산, 화학농법을 어찌 선진 과학기법이라 말할 것인가. 더욱이 멀쩡한 생명체의 유전자마저 이종(異種) 물질로 바꿔쳐 돈만 더 벌려고 달려드는 유전자조작(GMO) 식품을 버젓이 세상에 내다 팔면서 완전표시제(라벨링) 실시를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 죽임의 화학농 산업과 대기업 식품산업들을 어찌 구국안민의 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박재일 선생은 ‘죽임’의 생산을 청산하고 ‘살림’의 밥상을 이 땅에 확고히 정착시킨 선구자이시다. 그런 분이 오고 또 올 우리 후손들 가운데서 바야흐로 제2, 제3의 박재일로 더 많이 탄생할 날을 대망해 본다.
*한국농어민신문 2015-08-04 게재 글입니다.
|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전 농림부장관)
“도대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요?” 안전한 밥상과 Whole Food(온전한 식품), GMO(유전자조작식품) 등에 관한 글을 자주 발표해오는 과정에서 요즘 공사석에서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데자뷰(旣視感)라 할까. 장관 초임시절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림장관, 무엇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가?”라며 꾸짖듯 질문해 나를 당황케 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친환경농업 정책의 계기
어리둥절 하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당일의 조간신문 사회면의 톱기사, “가락동 도매시장, 깻잎 등 채소류에서 맹독성 농약 검출”이었다. 엉겹결에 “예, 무농약 유기농업을 정책적으로 적극 권장, 지원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정에 없던 즉문즉답은 “그럼, 그렇게 하시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결말이 났다.
그리하여 1998년 11월11일 제3회 「농민의 날」에 대통령과 총리가 참석한 행사장에서 대한민국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이 선포됐다. 그 후속조치로 친환경유기농 판매를 전문하는 생협법(소비자협동조합법)이 입법 제정되고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 인증 지원을 골자로 하는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령이 실시됐다. 농림부 조직 안에 친환경농업정책과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설립됐으며 정부 인증 친환경농업에 대한 직접지불(소득보조) 제도가 최초로 도입 실시됐다. 정부가 친환경 유기농업을 제도적으로 공식 뒷받침하는 첫 사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십수년동안 우리나라에 다시 친환경농법 시대가 열렸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Whole Food(온전한 식품=안전성 및 면역력 증강) 유기농 식품에 대한 국민 소비자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그때까지는 칼로리 양으로만 식품의 가치를 판단해 왔는데, 최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잇단 신형 질병사태에 임하여 새삼 먹거리의 가치를 안전성과 면역력 그리고 자연치유 및 복원력의 입장에서 찾게 된 것이 ‘온전한 식품’ 개념이다. 칼로리 영양가치 차원을 넘어서 생명, 건강, 안전, 환경생태계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면역력을 증강시켜 주는 Whole food (온전한 식품)
필자는 언제부터서인지 스스로 ‘도시농부’ 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은근히 자랑삼아 도시농부라고 자기소개를 종종 한다. 20년 전부터 그럭저럭 주말농장 또는 텃밭농사 그리고 아파트 옥상 상자화분농사에 이르기까지 비록 내 사유의 농지가 없지만 농사일을 놓지 않고 살다보니 꽤 이력이 붙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8층 옥상에서도 6년 전부터 화분상자 40여개에 각종 채소농사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유기농 퇴비는 괴산의 흙살림연구소 것을 사서 쓴다. 처음에는 110개 상자 농사로 제법 규모를 키웠으나 재작년 폭우사태를 맞아 혼쭐이 나서 규모를 대폭 줄였다. 지금은 42상자에 상추, 쑥갓, 고추, 부추, 깻잎, 토마토, 오이, 고구마를 심고 뽕나무, 두릅나무, 블루베리 나무도 기른다. 물론 주민들에겐 누구나 자유로이 솎아들 수 있음을 공지하고 있다. 나는 기본 묘종과 재료 조달을 하고, 심고 가꾸고 하루 두 차례 물을 주는 수고를 자원할 뿐이다.
그런데 막상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이 메르스에 걸리고 쓰러져 간다는 소식이 알려짐에도 나는 끄떡하기는커녕 전혀 염려를 하지 않았다. 옥상 유기농산물 온전한 식품으로 단련이 됐고 길 건너 한 살림 생협에서 나머지 친환경 식품재료를 조달해 온 덕분인지 몇 년째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내심 건강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 있다. 내가 아는 내 주변의 도시농업인들과 대부분 농촌의 유기농부들 역시 면역력이 자신만만한 듯 의연한 행동거지를 보여줬다. 유기농 흙에서 유기농업으로 자라면서 각종 병충해와 변덕스런 날씨에 내성이 강화된 Whole Food(온전한 식품) 그 자체가 면역력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수확을 더 내고 돈을 더 벌려고 각종 농약과 극독성 제초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남용하다 보면 식물의 면역력과 자생 복원력이 쇠퇴하고 환경생태계가 망가져 흙속의 유용 미생물을 죄다 죽여 그 대신 내성이 강화된 수퍼 잡초, 수퍼 벌레를 불러들여 더 독한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에 내몰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 관행농업이 안타깝게도 이 지경이 되어 있다.
벌레 먹고 못생겨도 더 맛있고 더 안전해요!
도시농업 20년에 터득한 또 하나의 진실은 벌레들이 용케도 살충제건 살균제 제초제이건 농약을 친 농산물엔 접근을 기피하고 설사 범접하더라도 전혀 입을 대어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짓궂게 장난삼아 상추나 깻잎 한 쪽에 F킬러 해충퇴치제를 뿌려봤더니 눈도 없고 귀나 코도 없어 보이던 애벌레란 놈이 어디선가 다가와 쭈뼛거리다가 농약을 뿌리지 않은 딴 잎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긴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제까지 벌레도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관행농법의 화학오염 농산물을 예쁘게 잘 생겼다고 애호해 오지 않았던가.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붙이면, 우리 식구는 언제부터서인지 쌈 채소류 중에 깻잎을 제일 선호한다. 왜냐면 그 많은 친환경 채소류 중에 벌레가 제일 먼저 깻잎에 덤벼든다는 사실이다. 몇 밤만 지나면 곳곳에 구멍을 내고 야금야금 갉아 먹어버린다. 다 같은 쌈 채소류인데 벌레들이 깻잎을 제일 먼저 공략한다는 것은 필시 식도락 미식가(美食家)인 벌레의 취향에 딱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1998년 초임 장관 시절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원인 제공의 장본인도 맹독성 농약이 검출된 깻잎이었다. 미물인 벌레가 좋다고 덤벼드는 맛 좋은 채소 No. 1이 깻잎이라는 사실은 우리 식구들에게 함축하는 바가 대단히 컸다. 요즘엔 유기농업용 생물농약이 많이 개발돼 보급됐고 심지어 미생물 농약제제마저 개발돼 벌레 먹지 않은 유기농 깻잎과 채소류, 곡물들이 시장에 많이 출하되고 있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종종 벌레 먹고 구멍 난 못생긴 농산물이 아직 부지기수이다.
다시 한 번 자작 구호인 “벌레 먹고, 못 생겼어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라고 말할까, 게다가 면역력까지 잔뜩 품은 ‘온전한 식품 Whole Food’에 이르러서야. 그래서인지 최근엔 이 구호가 영어, 일어로 번역돼 캐나다와 일본 일부 지역에서도 불린다고 한다.
‘살림운동’의 선구자, 박재일 선생.
◆농업이란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며 사람이 자라게 한다. (茶山)
◆좁쌀 한 알 안에도 우주가 있다. (장일순)
◆예수님께서 마른 생선, 빵 몇 조각으로 수많은 구도자들을 나눠 먹었듯이, 콩 한쪽이라도 배고픈 이들과 나눠 먹으며 살아야 한다. (원경선)
◆농부는 자연을 돌보아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인(工人)은 이를 물건으로 만들며, 상인은 이를 널리 유통시켜 만인에게 닿게 한다. (한농훈)
◆생산자 농민은 소비자의 생명을 보장하고, 소비자 국민은 생산자 농민의 생활을 보장하자! (박재일)
이와 같은 삶의 원리를 가장 충실히 수행하다가 가신 사람들이 금세기에 원경선, 장일순, 박재일 선생들이시다. 2010년 8월 18일에 작고하신 한살림운동의 선구자 박재일 선생은 평생 하늘과 대자연을 섬겨 친자연 유기농법을 충실히 수행했고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 —어렵거나 부자이거나 누구나에게 골고루 닿게 하자는 ‘죽임’운동이 아니라 ‘살림’운동을 꾸준히 묵묵히 실천해 오신 분이다. 그는 농민생산자들을 공손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사대부중도 겸허히 받들어 모시었다. 그 위대한 섬김의 도구가 다름 아닌 ‘안전한 밥상’이었다. 생산한 사람, 먹는 사람, 하늘과 땅이 두루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한 살림 운동으로 결실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메르스 사태에 임하여 절실히 깨달은 진리는 지구상의 인류는 안전한 먹거리 생산-유통-소비를 통해 각종 질병과 맞서 스스로 강한 힘(自强力)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모든 번민과 나약함과 사악함이 인간의 끝없는 탐욕(貪慾)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생명체인 인간의 자강력을 떨어뜨리는 번민과 스트레스는 안전한 밥상 앞에서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돈, 그놈의 돈 욕심 때문에 땅속의 유용 미생물까지 죽여 가며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농사를 지어야 하나 ,그 욕심 때문에 어엿한 생명체인 축생들을 좁은 공간에 빽빽이 가둬놓고 선진 양돈, 선진 양계, 선진 축산이라고 뻔뻔히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먹거리 농산물과 사람과 축생과 미물 등 모든 생명체들을 지폐로 확대재생산하려드는 산업적 농업, 공장식 축산, 화학농법을 어찌 선진 과학기법이라 말할 것인가. 더욱이 멀쩡한 생명체의 유전자마저 이종(異種) 물질로 바꿔쳐 돈만 더 벌려고 달려드는 유전자조작(GMO) 식품을 버젓이 세상에 내다 팔면서 완전표시제(라벨링) 실시를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 죽임의 화학농 산업과 대기업 식품산업들을 어찌 구국안민의 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박재일 선생은 ‘죽임’의 생산을 청산하고 ‘살림’의 밥상을 이 땅에 확고히 정착시킨 선구자이시다. 그런 분이 오고 또 올 우리 후손들 가운데서 바야흐로 제2, 제3의 박재일로 더 많이 탄생할 날을 대망해 본다.
*한국농어민신문 2015-08-04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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