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월급제, 꿈이 아니다 | 유정규 좋은경제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 작성일2020/03/06 09:41
- 조회 614
농업인 월급제, 꿈이 아니다
| 유정규 좋은경제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농산물은 일반적으로 생산기간이 길고, 자연에 대한 의존성이 크기 때문에 수확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하우스와 같은 인공적인 시설을 이용하면 연중 생산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넓은 면적으로 필요로 하는 벼와 같은 농작물의 경우는 이러한 농업생산의 특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때문에 농업소득도 농산물수확이 완료되는 특정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 반면에 농업경영비와 가계비는 연중 고르게 지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농가에서는 필요한 비용을 먼저 빌려 사용하고, 가을에 수확 후에 소득이 발생하면 기존의 부채를 청산하는 경영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소득이 발생하는 시기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시기의 불일치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자금을 비축해 놓지 못한 농가에서는 부채의 발생이 필연적이다.
농가, 월급제 환영 "현실적 도움"
농가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도입하고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화성시에서 처음 도입한 ‘농업인 월급제’는 이후 순천시가 뒤를 이었고, 작년에는 나주시, 임실군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올해부터는 청주시에서도 도입키로 하였다. 각 지자체마다 약간씩은 차이가 있지만 이 제도는, 가을에 발생할 농업소득의 50~60%를 4~10개월로 나누어서 매월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미리 농가에 지급하고, 농가에서는 가을에 농산물 판매대금으로 이를 갚는 방식이다. 화성시에서는 작년부터 전체 농작물로 그 대상을 확대하였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벼농사를 중심으로 사전에 농가와 농협이 약정을 맺고, 약정한 금액의 범위 내에서 농협이 농가에 월급(?)의 형태로 지급한다. 행정에서는 연말에 농협에서 농가에 지급한 원금에 대한 이자를 농협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면 이 제도는 농업인 월급제가 아니라 ‘무이자 자금대출사업’이다. 다시 말해 농가가 농협에서 대출한 자금의 이자를 지자체가 지원하는 보조사업의 일종일 뿐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농협의 금융사업을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가, 혹은 농산물시장의 전면적 개방으로 인한 농가의 불만을 희석시키려는 지자체와 농협의 합작품으로써 그 명칭에서부터 마치 농업인이 월급을 받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지자체 의지에 좌우 ‘근본적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농가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본인이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금융통이 쉽지 않은 농가로서는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참여농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적은 예산을 사업대상자의 수혜 폭을 늘릴 수 있는 지원사업이라는 점이다. 청주시의 경우는 이자의 50%만을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50%는 농가부담이기 때문에 대상자를 농협과 벼 수매를 약정하는 4600가구로 확대할 수 있었다. 셋째, 저금리 시대에 자금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지역농협으로서는 지자체가 보증하는 안정적인 금융상품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농한기 농가의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대의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주시의 경우, 작년에는 관내 4개 농협만이 참여하였지만 올해는 13개 농협 전체로 사업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농가경제의 안정을 도모하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개별 지자체 단위에서 단체장의 의지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현행 제도는 한정된 농가에 대한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농가경영의 안정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농업농촌이 가진 공익적 기능에 근거하는 직불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농정예산에서 직불제 예산의 비중이 10.2%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이 논농업직불금 즉, 쌀농사를 지키기 위한 직불금이다. 반면에 일본은 34.2%, EU는 76%에 달한다. 농가가 준수해야 할 의무(cross-compliance)의 이행을 전제로 직불제도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농정의 흐름이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차원 기본소득 보장제 필요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39세 이하의 귀농인(300명)에게 2년간 월 80만원씩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리 농업을 이끌어 나갈 젊은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45세 미만의 신규취농자에게 연간 150만엔씩 최대 7년간 지급하는 ‘청년취농급부금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정책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일종의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농업인 뿐만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월 2500스위스 프랑(약 300만원)씩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지원방안을 놓고 올 6월 국민투표를 예정하고 있으며, 핀란드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화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월 100만원씩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우선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농업농촌이 갖는 공익적 가치를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어민신문 2016-02-19 게재 글입니다.
| 유정규 좋은경제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농산물은 일반적으로 생산기간이 길고, 자연에 대한 의존성이 크기 때문에 수확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하우스와 같은 인공적인 시설을 이용하면 연중 생산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넓은 면적으로 필요로 하는 벼와 같은 농작물의 경우는 이러한 농업생산의 특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때문에 농업소득도 농산물수확이 완료되는 특정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 반면에 농업경영비와 가계비는 연중 고르게 지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농가에서는 필요한 비용을 먼저 빌려 사용하고, 가을에 수확 후에 소득이 발생하면 기존의 부채를 청산하는 경영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소득이 발생하는 시기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시기의 불일치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자금을 비축해 놓지 못한 농가에서는 부채의 발생이 필연적이다.
농가, 월급제 환영 "현실적 도움"
농가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도입하고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화성시에서 처음 도입한 ‘농업인 월급제’는 이후 순천시가 뒤를 이었고, 작년에는 나주시, 임실군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올해부터는 청주시에서도 도입키로 하였다. 각 지자체마다 약간씩은 차이가 있지만 이 제도는, 가을에 발생할 농업소득의 50~60%를 4~10개월로 나누어서 매월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미리 농가에 지급하고, 농가에서는 가을에 농산물 판매대금으로 이를 갚는 방식이다. 화성시에서는 작년부터 전체 농작물로 그 대상을 확대하였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벼농사를 중심으로 사전에 농가와 농협이 약정을 맺고, 약정한 금액의 범위 내에서 농협이 농가에 월급(?)의 형태로 지급한다. 행정에서는 연말에 농협에서 농가에 지급한 원금에 대한 이자를 농협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면 이 제도는 농업인 월급제가 아니라 ‘무이자 자금대출사업’이다. 다시 말해 농가가 농협에서 대출한 자금의 이자를 지자체가 지원하는 보조사업의 일종일 뿐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농협의 금융사업을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가, 혹은 농산물시장의 전면적 개방으로 인한 농가의 불만을 희석시키려는 지자체와 농협의 합작품으로써 그 명칭에서부터 마치 농업인이 월급을 받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지자체 의지에 좌우 ‘근본적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농가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본인이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금융통이 쉽지 않은 농가로서는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참여농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적은 예산을 사업대상자의 수혜 폭을 늘릴 수 있는 지원사업이라는 점이다. 청주시의 경우는 이자의 50%만을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50%는 농가부담이기 때문에 대상자를 농협과 벼 수매를 약정하는 4600가구로 확대할 수 있었다. 셋째, 저금리 시대에 자금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지역농협으로서는 지자체가 보증하는 안정적인 금융상품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농한기 농가의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대의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주시의 경우, 작년에는 관내 4개 농협만이 참여하였지만 올해는 13개 농협 전체로 사업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농가경제의 안정을 도모하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개별 지자체 단위에서 단체장의 의지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현행 제도는 한정된 농가에 대한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농가경영의 안정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농업농촌이 가진 공익적 기능에 근거하는 직불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농정예산에서 직불제 예산의 비중이 10.2%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이 논농업직불금 즉, 쌀농사를 지키기 위한 직불금이다. 반면에 일본은 34.2%, EU는 76%에 달한다. 농가가 준수해야 할 의무(cross-compliance)의 이행을 전제로 직불제도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농정의 흐름이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차원 기본소득 보장제 필요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39세 이하의 귀농인(300명)에게 2년간 월 80만원씩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리 농업을 이끌어 나갈 젊은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45세 미만의 신규취농자에게 연간 150만엔씩 최대 7년간 지급하는 ‘청년취농급부금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정책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일종의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농업인 뿐만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월 2500스위스 프랑(약 300만원)씩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지원방안을 놓고 올 6월 국민투표를 예정하고 있으며, 핀란드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화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월 100만원씩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우선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농업농촌이 갖는 공익적 가치를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어민신문 2016-02-19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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