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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주민이 농정의 주체로 등장하는 지름길 |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1/02/10 15:46
    • 조회 582
    주민이 농정의 주체로 등장하는 지름길
    |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일상적 주민연대 가능한 읍면 기반
    주민자치회 조직, 지역농업분과 설치
    총회 통해 발전계획 결정토록 해야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 상황은 여전하다. 설 명절이 내일모레인데 작년 추석에 이어 또다시 고향 방문을 자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내려올 생각 말고 마음만 보내라”, “불효자는 옵니다”,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등 귀성 자제를 바라는 기발한 현수막도 곳곳에 걸려 있다. 고향 떠난 자식들이 돌아와 시끌벅적해야 할 농촌 마을은 이번에도 외롭게 견뎌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일상을 대면하면서 이를 버텨낼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는 기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새 정부 들어 농식품부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농촌정책은 여전히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활력플러스 사업은 목표했던 100개 지자체 중에서 80개를 이미 선정하여 추진 중에 있다. 이 사업은 농촌발전을 위한 ‘액션그룹(실천조직)의 발굴과 육성’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그래서 공동학습과 시범사업을 거쳐 사회적 경제조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방법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집합식 교육과 행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모든 지역마다 난관에 부닥쳐 있다. 농촌발전의 경로를 둘러싼 토론도 활발하지 않다. 비슷비슷한 애로사항과 불만이 넘쳐나는데 전체적으로 조정해 줄 중심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좋은 사례도 잘 전파되지 않고 있다. 그냥 지역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뿐이다.

    농촌협약도 강력하게 추진 중인데 곳곳에서 비판적인 소리가 들린다. 작년에 9개 지자체가 선정되었지만 아직도 계획 수립 초기단계에 있다. ‘국비 300억원’이라는 ‘당근’이 지자체에 강력한 ‘미끼’가 작용하여 올해 연구용역 예산을 편성한 지자체만 50여 곳이 될 정도로 과열 양상이다. 지자체 스스로 해야 할 추진체계 개편은 멀리 하고 공모사업 ‘따오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게다가 전략계획(20년)의 실효성이나 생활권의 구분 방법론, 계획관리 주체, 행정조직 구성 등 정리되지 못한 쟁점은 여전히 많다. 논쟁은 사라지고, 하향식의 일방적인 지시만 돋보인다. 지자체 공무원이나 용역사 연구원들은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셈이다.

    새 정부의 대표적인 농정 과제로 도입한 사회적농업도 2021년 신규 사업으로 30개소를 선정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정책은 농업이 본래부터 가진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 취지였다. 5년 연속 지원 사업이고, 거점농장처럼 중간지원조직 개념을 도입하는 등 상대적으로 세련되게 사업지침이 작성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농장이란 ‘점’ 단위에 집중되면서 체험농장의 다른 변형이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정책 칸막이’를 극복하고 농촌 지역사회의 연결망에 더욱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문이다. 주민자치회와의 협력관계를 시도하지 않고, 보건복지부의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정책과도 협력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새해 들어서도 농정을 둘러싼 변화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고 유쾌하지 않은 소식들이다. ‘농산어촌 유토피아’, ‘농촌 르네상스’란 큰 구상도 계속 논의 중에 있고, 그린뉴딜이나 2050 탄소제로란 정책도 농정에 큰 변화를 계속 요구할 것이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쏟아질 것이다. 벌써 농촌뉴딜이란 정책이 4월경에 발표될 것이라 한다.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대개 신문 보도로 접하게 되고, 큰 정책이나 구상이 수립되는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하다. 너무 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결국 지역과 주민은 여전히 정부 정책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고, ‘주체’로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가 수립하는 각종 중장기 종합계획에서도 마찬가지로 재현된다. 대개는 일부 전문가가 주도하는 것이고, 연구용역사의 ‘작품’이다. 물론 이렇게 큰 정책과 계획에 지역주민이 깊이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점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현재의 정책 시스템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다. 그럼에도 정책의 당사자가 빠진 계획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는 명확하다. 어디에서 문제가 꼬여 있을까?

    이번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농어업회의소 설치 법안’이 통과되면 조금 나아질까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행정의 정책 파트너로 인정되고, 상근자 인건비도 확보될 것이다. 그럼에도 농어업회의소의 구성이나 기능, 설치 단위 등을 고려할 때 농촌 주민(농민)의 의사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농어업인’이 아닌 ‘농촌 주민’은 참여 자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민수당이나 공익형직불제가 농촌사회를 ‘편가르기’할 우려가 있듯이 농어업회의소도 일부 농민의 대의조직에 국한될 우려가 높다. 농민단체협의회 내부의 합의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인데 행정과 정책 협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농촌의 읍면 단위로 내려가야 주민이 농정주체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민 공동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이웃 주민들과 일상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단위가 바로 읍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통제(자치)할 수 있는 생활세계 단위에서 비로소 실효성 있는 계획도 수립할 수 있다. 시군 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각종 위원회에 참가하거나 공청회에 동원되는, 혹은 지방의회를 통해 대리인이 감시하도록 하는 등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로만 작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기초자치단체의 규모가 너무 크고 생활인으로서 주민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읍면 단위로 주민자치회를 조직하고, 그 산하에 지역농업분과를 설치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또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 주도로 읍면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주민자치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주민도 농정의 주체로 비로소 등장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에 관심이 없는 농민단체는 지역사회의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것이 주민이 스스로 지역계획을 수립해보고 농촌정책의 전면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약간의 일시적인 우회로(迂廻路)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방향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