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협약,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고 속도 조절할 때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1/04/13 13:17
- 조회 523
농촌협약,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고 속도 조절할 때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국비 1조 가까이 들어가는 ‘농촌협약’
중앙정부 강한 입김 등 문제점 발생
지자체 자율성·창의성 존중 취지 무색
새 정부에 들어와 새롭게 도입된 농촌협약이란 제도는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협약(New Deal)을 통해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예산 지원방식을 바꾸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지자체 스스로 농촌발전을 위한 종합적, 통합적 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하여 개별 사업 단위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발전방향에 맞게 투자를 집중하여 공동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자치분권 시대에 맞추어 지역사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자체의 권한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지역이 주도하는 발전방향을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20년에 9개 지자체(별도 예비 3개)를 선정하였고 올해 새로 20개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자체는 농촌공간 전략계획 및 생활권활성화계획, 농촌공간정비계획을 제출하고, 농식품부 심의를 거쳐 협약을 체결하는 지자체에게는 5년간 국비 기준으로 최대 3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2020년에 선정된 지자체와는 올해 5월중에, 그리고 올해 새로 선정을 희망하는 지자체는 올해 5월 12일까지 관련 계획을 모두 제출해야 하고 6월중에 선정하여 12월중에 협약을 체결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다. 올해 예정중인 협약이 모두 체결된다면 국비만 1조원 가까운 대규모 정책인 셈이다.
처음에 이 제도 도입이 논의될 당시에는 지자체의 계획 전문성과 역량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프랑스의 계획협약 제도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고,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자치농정을 강화하고, 지자체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인 것만은 맞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는 분위기였다. 추진과정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는 예상되었지만 ‘농정 틀 전환’ 차원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전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고제도가 도입되는 취지와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무엇보다 농식품부와 지자체의 협약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상호대등한 신뢰관계를 전제로 해야 함에도 ‘또하나의 공모사업’처럼 ‘줄서기’를 강요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국비 300억원 지원이란 ‘당근’ 앞에서 지자체는 불평불만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었다는 용역기관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상황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하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큰 틀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정부(농식품부)의 주도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란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개별 사업으로 축소되어 버리고, 개방적인 토론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가이드라인(사업지침)을 준수하도록 요구만 하고 있다. 계획 수립의 주도권을 지자체에 이양한다는 취지와 달리 분석방법론과 사업내용까지 지나치게 세세하게 통제하고 있다. 작년에 선정된 9개 지자체가 시범지구(테스트베드)라 본다면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토론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고 근본인 셈이다. 여기에 농식품부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지자체의 문제제기를 억누르기만 한다는 비판이다.
둘째, 일부 전문가가 주도하는 폐해도 심각하다. 왜 생활권을 분석해야 하는지, 생활권 분석의 방법론이 타당한지, 중복투자되는 시설은 무엇이고 어떻게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인지, 한때 지자체였던 읍과 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런 등등의 논쟁은 사라지고 실효성 낮은 통계분석만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다. 중앙계획지원단의 내부 토론이 있었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실태분석만 300 쪽이나 되는 계획서이고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한 내용인지 검증도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또 지자체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 내용을 보면 지역(행정)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무지한 해석도 많이 보인다. 일부 전문가의 일정에 맞추고, 해석도 일임하다보니 가이드라인은 수시로 바뀌고 너무 늦게 전달되는 등 추진과정의 미숙함이 더해져 지자체 비판은 고조되고 있다.
셋째, 제도 도입의 부작용이나 역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일단 현재 작성중인, 또 앞으로 작성될 계획서는 지역사회의 참여와 합의 과정을 반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냥 용역기관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자체 심사가 아니라 용역기관 심사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3~6개 읍면을 포괄하게 되는 생활권 선정과정이 타당한지 그 정치적 결과에 대한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농촌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지방의회가 예산을 통과시켜줄 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생활권에 선정되지 못한 읍면은 빨라야 5년, 늦으면 10년 동안 농촌개발사업 기회가 사라진다. 더구나 중심지활성화(기초생활거점육성) 사업은 신청도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속사정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지금 그대로 생활권 개념이 확정된다면 지자체 내 다른 읍면과의 불균등발전은 더욱 강화될 역효과도 명확히 보인다.
이외에도 세세하게는 여러 문제점들이 보인다. 이번 정책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몸이지만 지자체의 원성은 적지 않게 듣고 있다. 각종 가이드라인과 질의응답서 등의 자료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도 있고, 제도 도입 취지와 동떨어진 방향과 해석도 많다. 논쟁도 없고 비판이나 문제제기도 못하게 하니 농식품부에 대해 ‘불통의 대명사’란 소리도 나온다. 결국 농촌협약 제도를 둘러싸고 지금 상황은 현장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국비 300억원을 지렛대로 시군과 용역기관을 ‘입막음’하는 형국이다.
물론 농식품부도 말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 예산 신청과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그 예산 절차에 맞추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고 ‘마감시간’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자체와 소통이 부족하고 신뢰관계가 무너진 상황이 되면 모두가 ‘핑계’로 들릴 수밖에 없다. 작년 초부터 아무리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하지만 토론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 수립은 현장 가까이에 밀착할수록 실효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역사회의 참여와 합의 수준이 높을수록 잘 작동되기 때문이다. 농촌협약이 도입된 취지도 여기에 있다.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할 때가 잠시 쉬거나 돌아 갈 때’다. 지금의 농촌협약은 제도 도입 취지에서 보자면 지역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고 너무 멀리 왔다. 농촌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서 기존 방식을 되풀이 하는 ‘패키지 사업’에 불과하다. 이제는 제도 도입의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350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국비 1조 가까이 들어가는 ‘농촌협약’
중앙정부 강한 입김 등 문제점 발생
지자체 자율성·창의성 존중 취지 무색
새 정부에 들어와 새롭게 도입된 농촌협약이란 제도는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협약(New Deal)을 통해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예산 지원방식을 바꾸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지자체 스스로 농촌발전을 위한 종합적, 통합적 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하여 개별 사업 단위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발전방향에 맞게 투자를 집중하여 공동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자치분권 시대에 맞추어 지역사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자체의 권한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지역이 주도하는 발전방향을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20년에 9개 지자체(별도 예비 3개)를 선정하였고 올해 새로 20개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자체는 농촌공간 전략계획 및 생활권활성화계획, 농촌공간정비계획을 제출하고, 농식품부 심의를 거쳐 협약을 체결하는 지자체에게는 5년간 국비 기준으로 최대 3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2020년에 선정된 지자체와는 올해 5월중에, 그리고 올해 새로 선정을 희망하는 지자체는 올해 5월 12일까지 관련 계획을 모두 제출해야 하고 6월중에 선정하여 12월중에 협약을 체결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다. 올해 예정중인 협약이 모두 체결된다면 국비만 1조원 가까운 대규모 정책인 셈이다.
처음에 이 제도 도입이 논의될 당시에는 지자체의 계획 전문성과 역량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프랑스의 계획협약 제도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고,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자치농정을 강화하고, 지자체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인 것만은 맞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는 분위기였다. 추진과정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는 예상되었지만 ‘농정 틀 전환’ 차원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전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고제도가 도입되는 취지와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무엇보다 농식품부와 지자체의 협약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상호대등한 신뢰관계를 전제로 해야 함에도 ‘또하나의 공모사업’처럼 ‘줄서기’를 강요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국비 300억원 지원이란 ‘당근’ 앞에서 지자체는 불평불만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었다는 용역기관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상황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하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큰 틀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정부(농식품부)의 주도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란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개별 사업으로 축소되어 버리고, 개방적인 토론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가이드라인(사업지침)을 준수하도록 요구만 하고 있다. 계획 수립의 주도권을 지자체에 이양한다는 취지와 달리 분석방법론과 사업내용까지 지나치게 세세하게 통제하고 있다. 작년에 선정된 9개 지자체가 시범지구(테스트베드)라 본다면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토론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고 근본인 셈이다. 여기에 농식품부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지자체의 문제제기를 억누르기만 한다는 비판이다.
둘째, 일부 전문가가 주도하는 폐해도 심각하다. 왜 생활권을 분석해야 하는지, 생활권 분석의 방법론이 타당한지, 중복투자되는 시설은 무엇이고 어떻게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인지, 한때 지자체였던 읍과 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런 등등의 논쟁은 사라지고 실효성 낮은 통계분석만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다. 중앙계획지원단의 내부 토론이 있었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실태분석만 300 쪽이나 되는 계획서이고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한 내용인지 검증도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또 지자체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 내용을 보면 지역(행정)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무지한 해석도 많이 보인다. 일부 전문가의 일정에 맞추고, 해석도 일임하다보니 가이드라인은 수시로 바뀌고 너무 늦게 전달되는 등 추진과정의 미숙함이 더해져 지자체 비판은 고조되고 있다.
셋째, 제도 도입의 부작용이나 역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일단 현재 작성중인, 또 앞으로 작성될 계획서는 지역사회의 참여와 합의 과정을 반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냥 용역기관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자체 심사가 아니라 용역기관 심사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3~6개 읍면을 포괄하게 되는 생활권 선정과정이 타당한지 그 정치적 결과에 대한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농촌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지방의회가 예산을 통과시켜줄 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생활권에 선정되지 못한 읍면은 빨라야 5년, 늦으면 10년 동안 농촌개발사업 기회가 사라진다. 더구나 중심지활성화(기초생활거점육성) 사업은 신청도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속사정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지금 그대로 생활권 개념이 확정된다면 지자체 내 다른 읍면과의 불균등발전은 더욱 강화될 역효과도 명확히 보인다.
이외에도 세세하게는 여러 문제점들이 보인다. 이번 정책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몸이지만 지자체의 원성은 적지 않게 듣고 있다. 각종 가이드라인과 질의응답서 등의 자료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도 있고, 제도 도입 취지와 동떨어진 방향과 해석도 많다. 논쟁도 없고 비판이나 문제제기도 못하게 하니 농식품부에 대해 ‘불통의 대명사’란 소리도 나온다. 결국 농촌협약 제도를 둘러싸고 지금 상황은 현장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국비 300억원을 지렛대로 시군과 용역기관을 ‘입막음’하는 형국이다.
물론 농식품부도 말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 예산 신청과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그 예산 절차에 맞추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고 ‘마감시간’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자체와 소통이 부족하고 신뢰관계가 무너진 상황이 되면 모두가 ‘핑계’로 들릴 수밖에 없다. 작년 초부터 아무리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하지만 토론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 수립은 현장 가까이에 밀착할수록 실효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역사회의 참여와 합의 수준이 높을수록 잘 작동되기 때문이다. 농촌협약이 도입된 취지도 여기에 있다.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할 때가 잠시 쉬거나 돌아 갈 때’다. 지금의 농촌협약은 제도 도입 취지에서 보자면 지역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고 너무 멀리 왔다. 농촌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서 기존 방식을 되풀이 하는 ‘패키지 사업’에 불과하다. 이제는 제도 도입의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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