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논의에 즈음하여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 작성일2021/06/15 17:11
- 조회 473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논의에 즈음하여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특정그룹 주도 ‘농어업회의소 구성’ 탓
‘옥상옥’ ‘관변화’ 등 법제화 우려 나와
농어업인 의견 반영 시스템도 갖춰야
국내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 10년, 그동안 농어업회의소 설립 필요성과 법제화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글쎄’인 듯하다. 그 원인은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시 로컬푸드생산자 조직화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시 농업회의소 의장은 “로컬푸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농업회의소 회원 대부분이 대농이어서 로컬푸드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군 한 면지역 이장단회의에 이 지역 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이 참여하여 농업회의소를 소개하며 회원 참여를 요청했다. ○○군에서는 농업회의소가 생겼고 수시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지 몇 달 되었다. 지난해 ○○시 농업회의소 창립총회에서는 지역농업인들이 정관 비공개, 회장의 간접선출 등 비민주적인 추진절차와 내용 등을 문제 삼아 총회가 파행으로 이어졌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 226개 지자체 가운데 농어업회의소가 설치된 지자체는 16개,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충남이 유일하다.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법제화를 주장하는 전문가와 정부, 법안에 담긴 내용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올해 2월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발의된 농어업회의소법안은 모두 4개로 신정훈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0432호), 홍문표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5687호), 위성곤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6753호), 이개호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7709호)이다.
4개 농어업회의소 법안이 제안된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동안 우리나라 농어업정책 수립과 결정이 정부주도 하향식으로 이뤄짐에 따라 농어민 당사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현실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 둘째, 시장개방 확대, 고령화 등 급변하는 농정환경 속에서 농어업인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을 대변할 대표기구 부재. 셋째,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협치농정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며, 협치기구 필요. 마지막으로 프랑스·일본·독일·오스트리아 등 해외의 경우 농업회의소를 설립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10년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근거 법률 부재로 농정 참여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유럽의 농정변화를 살펴보며, 우리도 농업회의소 같은 농업계를 대변할 대의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진행되고 있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논의과정을 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농어업·농어촌을 대변할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시범사업 추진과정과 발의된 4개 법안에서도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4개 농어업회의소 법안을 살펴보면, 기초 농어업회의소 설립요건은 30명 이상 발기, 농어업인 5% 이상 또는 500명 이상의 동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또는 해양수산부장관의 인가(신정훈·홍문표·위성곤 의원안), 30명 이상 발기, 농어업인 10% 이상 또는 1,000명 이상의 동의, 시장·군수의 인가(이개호 의원안) 2가지로 제안되었다.
지역농업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영농규모와 기간, 영농형태 등 유사하게 보이지만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다.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란 지역농업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특정그룹(연령대, 성별, 영농규모와 형태, 기존 농어업단체 등)이 주도하는 농어업회의소가 구성되면서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은 현상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고,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대해 ‘옥상옥’, ‘관변화’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농어업회의소 설치를 주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농어업인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시스템이 불분명하다. 대의원총회에서 의장을 선출하는 간선제이며, 대의원총회에서 주요안건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농어업인과 단체들의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들을 것인가?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 ‘주민주권’강화, 기존 대의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직접참여를 확대하는‘자치분권 2.0시대’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여전히 대의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어업회의소 법안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대표’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대표란 “조직이나 집단을 대신하여 일을 하거나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농어업회의소를 주도하는 그룹은“내가 농어업회의소 설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몰라준다. 농어업회의소는 농어업인들을 위한 기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농어업인(여성, 고령농, 청년농부, 소농, 맨손어업 종사자 등)은‘나’의 입장과 생각을 대신할 대표가 참여하고 있지 않는 농어업회의소가‘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어떻게 진행될지‘강 건너 불구경’이다.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다양한 농정주체들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기존 농어업단체들 간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지역농어업인의 직접 참여 가능범위와 대의제를 통해 운영되어야 할 범위와 내용 등 지역농업인들과 공론화 과정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823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특정그룹 주도 ‘농어업회의소 구성’ 탓
‘옥상옥’ ‘관변화’ 등 법제화 우려 나와
농어업인 의견 반영 시스템도 갖춰야
국내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 10년, 그동안 농어업회의소 설립 필요성과 법제화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글쎄’인 듯하다. 그 원인은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시 로컬푸드생산자 조직화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시 농업회의소 의장은 “로컬푸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농업회의소 회원 대부분이 대농이어서 로컬푸드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군 한 면지역 이장단회의에 이 지역 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이 참여하여 농업회의소를 소개하며 회원 참여를 요청했다. ○○군에서는 농업회의소가 생겼고 수시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지 몇 달 되었다. 지난해 ○○시 농업회의소 창립총회에서는 지역농업인들이 정관 비공개, 회장의 간접선출 등 비민주적인 추진절차와 내용 등을 문제 삼아 총회가 파행으로 이어졌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 226개 지자체 가운데 농어업회의소가 설치된 지자체는 16개,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충남이 유일하다.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법제화를 주장하는 전문가와 정부, 법안에 담긴 내용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올해 2월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발의된 농어업회의소법안은 모두 4개로 신정훈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0432호), 홍문표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5687호), 위성곤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6753호), 이개호의원 대표발의(의안번호 제2107709호)이다.
4개 농어업회의소 법안이 제안된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동안 우리나라 농어업정책 수립과 결정이 정부주도 하향식으로 이뤄짐에 따라 농어민 당사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현실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 둘째, 시장개방 확대, 고령화 등 급변하는 농정환경 속에서 농어업인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을 대변할 대표기구 부재. 셋째,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협치농정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며, 협치기구 필요. 마지막으로 프랑스·일본·독일·오스트리아 등 해외의 경우 농업회의소를 설립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10년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근거 법률 부재로 농정 참여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유럽의 농정변화를 살펴보며, 우리도 농업회의소 같은 농업계를 대변할 대의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진행되고 있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논의과정을 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농어업·농어촌을 대변할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시범사업 추진과정과 발의된 4개 법안에서도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4개 농어업회의소 법안을 살펴보면, 기초 농어업회의소 설립요건은 30명 이상 발기, 농어업인 5% 이상 또는 500명 이상의 동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또는 해양수산부장관의 인가(신정훈·홍문표·위성곤 의원안), 30명 이상 발기, 농어업인 10% 이상 또는 1,000명 이상의 동의, 시장·군수의 인가(이개호 의원안) 2가지로 제안되었다.
지역농업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영농규모와 기간, 영농형태 등 유사하게 보이지만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다.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란 지역농업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특정그룹(연령대, 성별, 영농규모와 형태, 기존 농어업단체 등)이 주도하는 농어업회의소가 구성되면서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은 현상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고,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대해 ‘옥상옥’, ‘관변화’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농어업회의소 설치를 주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농어업인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시스템이 불분명하다. 대의원총회에서 의장을 선출하는 간선제이며, 대의원총회에서 주요안건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농어업인과 단체들의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들을 것인가?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 ‘주민주권’강화, 기존 대의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직접참여를 확대하는‘자치분권 2.0시대’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여전히 대의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어업회의소 법안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대표’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대표란 “조직이나 집단을 대신하여 일을 하거나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농어업회의소를 주도하는 그룹은“내가 농어업회의소 설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몰라준다. 농어업회의소는 농어업인들을 위한 기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농어업인(여성, 고령농, 청년농부, 소농, 맨손어업 종사자 등)은‘나’의 입장과 생각을 대신할 대표가 참여하고 있지 않는 농어업회의소가‘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어떻게 진행될지‘강 건너 불구경’이다.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다양한 농정주체들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기존 농어업단체들 간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지역농어업인의 직접 참여 가능범위와 대의제를 통해 운영되어야 할 범위와 내용 등 지역농업인들과 공론화 과정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823
- 첨부파일1 서정민센터장.jpg (용량 : 52.2K / 다운로드수 :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