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격리가 된 쌀 시장격리제 |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2/04/22 10:55
- 조회 487
‘자의적’ 격리가 된 쌀 시장격리제
|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필자는 지난 2월 <한국농어민신문>에 ‘최저가 입찰’ 방식의 쌀 시장격리는 양곡관리법과 하위 규정을 위반한 조치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법에 따라 추가적인 시장격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농업 관련 단체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추가 시장격리를 촉구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와중에 쌀값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 쌀 산지가격은 지난 4월 15일 기준 20kg당 4만7774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4.3%나 하락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4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시장격리를 하기로 한 2021년산 쌀 27만톤 중 아직 이행되지 않은 잔여물량 12.5만톤을 조속히 시장격리해 달라’고 요청했겠는가?
지금 쌀 시장격리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이 나라는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라 관료들이 주인이 된 나라인 것같다. 국회에서 2020년 1월 쌀 시장격리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을 통과시킬 때에는 일정한 요건만 되면 시장격리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자동 시장격리제’라고 불린 것이다.
법조문을 보더라도 양곡관리법 제16조 제2항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매년 10월 15일까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재량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기상 여건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해당 연도 생산량 예측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라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작년에 기상여건의 급격한 변화같은 것은 없었다. 통계청은 작년 10월 8일 ‘2021년 쌀 예상생산량은 382만7000톤으로 전년대비 9.1% 증가’할 것이라는 쌀 예상 생산량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작년 10월 15일 이전에 쌀 시장격리를 포함한 대책이 발표됐어야 한다.
2019년 11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논의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더라도 그런 취지로 입법한 것이 확인된다. 시기를 놓고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통계청의 쌀 생산량 예측조사가 나오는 시기를 감안해서 늦어도 10월 15일까지는 미곡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관리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 쌀 시장격리 시기를 고의적으로 늦췄다. 작년 12월 28일에야 당정협의를 거쳐 쌀 20만톤을 시장격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시기보다 2달이상 지나서야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재량권을 자의적으로 일탈·남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쌀 시장격리 대책을 작년 10월에 내놓았다면, 시장격리 가격도 당연히 ‘최저가 입찰’ 방식이 아니라,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에 따랐어야 했다. 공공비축미 매입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쌀 시장격리가 양곡관리법에 법제화되기 이전에도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 시장격리를 한 사례가 11차례 있다. 그 중 매입시기가 가을이었던 7차례의 경우에는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으로 매입을 했었다.
따라서 이 모든 정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쌀값 하락을 방치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의 규정을 무시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 뒤에는 기획재정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쌀 시장격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입법은 무력화되어 버렸다. 2019년 11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발의할 때, 분명히 “변동 직접지불제의 폐지에 따른 농가의 불안을 해소”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실상 농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변동 직접지불제 폐지의 대안으로 도입된 ‘자동 시장격리’가 관료들에 의해 ‘자의적인 시장격리’로 둔갑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시장격리를 조속히 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는 관료들의 자의성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양곡관리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관련된 양곡관리법 개정안 3개가 발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서삼석, 윤재갑, 김승남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들의 공통점은, 일정한 경우에는 정부의 시장격리조치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에 대해 국회가 신속하게 논의해야 한다. 쌀 시장격리제가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인 정책 결정의 소지를 없애고 말 그대로 ‘자동 시장격리’가 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891
|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필자는 지난 2월 <한국농어민신문>에 ‘최저가 입찰’ 방식의 쌀 시장격리는 양곡관리법과 하위 규정을 위반한 조치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법에 따라 추가적인 시장격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농업 관련 단체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추가 시장격리를 촉구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와중에 쌀값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 쌀 산지가격은 지난 4월 15일 기준 20kg당 4만7774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4.3%나 하락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4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시장격리를 하기로 한 2021년산 쌀 27만톤 중 아직 이행되지 않은 잔여물량 12.5만톤을 조속히 시장격리해 달라’고 요청했겠는가?
지금 쌀 시장격리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이 나라는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라 관료들이 주인이 된 나라인 것같다. 국회에서 2020년 1월 쌀 시장격리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을 통과시킬 때에는 일정한 요건만 되면 시장격리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자동 시장격리제’라고 불린 것이다.
법조문을 보더라도 양곡관리법 제16조 제2항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매년 10월 15일까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재량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기상 여건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해당 연도 생산량 예측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라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작년에 기상여건의 급격한 변화같은 것은 없었다. 통계청은 작년 10월 8일 ‘2021년 쌀 예상생산량은 382만7000톤으로 전년대비 9.1% 증가’할 것이라는 쌀 예상 생산량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작년 10월 15일 이전에 쌀 시장격리를 포함한 대책이 발표됐어야 한다.
2019년 11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논의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더라도 그런 취지로 입법한 것이 확인된다. 시기를 놓고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통계청의 쌀 생산량 예측조사가 나오는 시기를 감안해서 늦어도 10월 15일까지는 미곡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관리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 쌀 시장격리 시기를 고의적으로 늦췄다. 작년 12월 28일에야 당정협의를 거쳐 쌀 20만톤을 시장격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시기보다 2달이상 지나서야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재량권을 자의적으로 일탈·남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쌀 시장격리 대책을 작년 10월에 내놓았다면, 시장격리 가격도 당연히 ‘최저가 입찰’ 방식이 아니라,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에 따랐어야 했다. 공공비축미 매입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쌀 시장격리가 양곡관리법에 법제화되기 이전에도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 시장격리를 한 사례가 11차례 있다. 그 중 매입시기가 가을이었던 7차례의 경우에는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으로 매입을 했었다.
따라서 이 모든 정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쌀값 하락을 방치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의 규정을 무시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 뒤에는 기획재정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쌀 시장격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입법은 무력화되어 버렸다. 2019년 11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발의할 때, 분명히 “변동 직접지불제의 폐지에 따른 농가의 불안을 해소”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실상 농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변동 직접지불제 폐지의 대안으로 도입된 ‘자동 시장격리’가 관료들에 의해 ‘자의적인 시장격리’로 둔갑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시장격리를 조속히 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는 관료들의 자의성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양곡관리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관련된 양곡관리법 개정안 3개가 발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서삼석, 윤재갑, 김승남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들의 공통점은, 일정한 경우에는 정부의 시장격리조치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에 대해 국회가 신속하게 논의해야 한다. 쌀 시장격리제가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인 정책 결정의 소지를 없애고 말 그대로 ‘자동 시장격리’가 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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