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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먹을거리 정책의 선진화 절실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4 18:33
    • 조회 371
    먹을거리 정책의 선진화 절실
    정영일 |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국회를 통과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과 식품산업진흥법은 식품산업을 농정의 범위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고, 식품산업 진흥기반 조성의 법적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식품산업진흥과 농업과의 연계 강화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번의 입법조치가 오랜 현안인 부처 간 업무영역 다툼에 대한 무원칙한 타협의 산물일 뿐 ‘먹을거리 정책(food policy)’의 최종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미흡하고 실망스러운 결과에 머물고 만 데 대해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주요 선진국들은 1990년대 이래 광우병을 비롯한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사건의 빈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농장에서 식탁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괄하는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다양하게 확보하고,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갖추기 위해 먹을거리 정책의 근본적 개편을 추진해오고 있다.

    먼저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은 식품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갖춘 위험평가, 실효성 있는 위험관리 등을 포함하는 위험분석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위험평가 업무의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위험관리를 위해 생산·제조·유통 등 각 단계에 대한 일관성 있는 조치, 국경검역과 가축방역을 포함한 관련기관의 신속한 공동대응 체계를 갖췄다.

    둘째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식생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선진국의 경우 영양섭취의 불균형과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의 증가, 남은 음식물 찌꺼기나 식품폐기물 증가로 인한 환경부하 문제 등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은 식품 안전성, 식사와 질병 간 관계, 식품 함유 영양소의 작용 등에 대한 이해를 높여 국민 각자가 스스로 건전한 식생활을 실천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 성별·연령별로 식생활 지침을 제공하고 학교급식을 식생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로 국제 곡물 수급의 변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는 수급 불안정에 대비한 식량안보 체계의 확립을 먹을거리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최근 개정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 자급목표를 5년마다 설정해 중장기 정책지표로 활용토록 하는 규정이 도입됐다. 그러나 이 조항이 식량안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시책의 구체화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식량 정세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식료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그 장래에 관한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국제 곡물 수급 불안정화와 가격등락에 대비한 위기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선진제국의 먹을거리 정책의 흐름과 우리의 현주소를 대비해 볼 때 정책공급자인 정부 부처 간 무원칙한 타협의 산물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이, 우리 국민들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해준다는 국가경영의 기본을 이루는 농정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에 얼마나 미흡한 정책 틀에 머물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식품산업의 육성뿐 아니라 과학적인 체계에 입각한 안전성 확보, 건전한 식생활 양식의 정착, 국내 생산 잠재력의 확충을 주축으로 한 식량안보의 확보를 내용으로 한 먹을거리 정책의 틀을 올바로 세우는 일은 곧 출범할 새 정부 농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돼야 할 것이다.

    *농민신문 2007년 12월 19일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