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 앞 ‘시민’, 트랙터 ‘농민’, 우리 사회의 회복력을 묻다 | 황영모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4/12/2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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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일상이 무력 앞에 위협받을 때
‘더 큰 우리’로 위기 돌파하는 국민들
연대하는 농민과 시민이 ‘회복력’의 실체
올해의 마지막 한 달, 우리 사회는 가히 충격과 탄식의 연속을 겪고 있다. 늦은 밤 선포된 불법 계엄은 모든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일상을 봉쇄하고 ‘처단’하겠다는 포고령에 ‘탄식’했다. 시민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봉쇄되었다. 계엄군의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을 보며, 공포와 숙연함이 교차했다. 그날 밤, 비상을 감지하고 모인 시민의 힘으로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다. ‘시민’의 힘으로 엄혹한 공안 통치의 그림자를 걷어낸 ‘감동’의 서사를 만들었다.
AFP 통신 등 여러 외신들은 연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의 반동을 노린 정상적이지 못한 국가 권력의 시도를 중단시킨 ‘대한민국 시민의 힘’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고 회복력이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지상파 방송 뉴스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국민에겐 뽑을 권한도 있지만, 뽑아낼 권한도 있습니다. 지난 끔찍했던 내란 사태를 막아내고 결국 멈추게 만든 시민들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민주주의’와 ‘일상’이 총을 앞세운 무력 앞에 위협받을 때,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힘’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고 있다. 5.16과 12.12 군사 반란의 아픔을 이겨낸 우리이다. 아픔은 상처가 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으로 승화된다. 결국 단단한 ‘옹이’가 되어 2024년을 관통하고 있다. 세대와 계층을 넘어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 ‘촛불’이 ‘응원봉’이 되고, 젊은이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추운 겨울, 찬 바닥을 녹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지난 동짓날(21일),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의 ‘남태령’ 고개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국의 농민이 ‘계엄과 반란’에 맞서 나섰다.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전봉준 트랙터 대행진’이다. 땅을 갈고 농사짓는 데 쓰는 트랙터를 몰고 전국을 돌았다.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며 서울에서 열리는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100여명의 트랙터 농민들은 경찰의 차벽에 막혔다.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로 외세에 맞서던 1894년 동학 농민군의 행진이 일본군의 총칼에 멈추었던 ‘우금치’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러나 2024년 12월 남태령에서의 대한민국은 달랐다. 민주주의 회복, 사회대개혁, 농민헌법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행진에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밤을 새며 농민들과 함께 어깨를 걸었다. ‘농민들이 추운 곳에서 고립되어 있는데, 집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어 달려왔다’는 2030 청년들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고 힘을 얻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그날 밤, 시민들은 먹을거리와 몸을 데우는 물품을 서로 나누었다.
평생 농민운동을 해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농민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2030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울음을 전했다. 전국 곳곳에서 응원과 후원 물품이 줄을 이어 그 혹한의 밤을 견디어 냈다. 시민들이 농민들과 어깨 걸고 함께하자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굳건하게 세워진 차벽은 결국 28시간 만에 물려졌다. 농민들의 트랙터는 서울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엄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촛불+응원봉’과 만났다. 이들이 줄곧 요구한 것은 ‘사회대개혁, 민주주의 회복, 농민헌법 쟁취’였다.
우리는 ‘계엄’이라는 폭력적 상황에 맞서는 사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시민들의 절박한 행동을 다시 확인한다.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고, 장벽을 하나 둘 걷어내며 나아가고 있다. 남녀노소로 구분 짓지 않고 저마다 손을 맞잡는다. ‘더 큰 우리’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다중위기 복합위기 시대’라 진단하고 있다. 위기는 하나의 형태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거센 ‘타격’을 준다. 소위 ‘한방’ 얻어맞고 쓰러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의 성쇠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러한 ‘충격’에 맞서 쓰러지거나 쇠락하지 않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 힘은 단언컨대 바로 ‘회복력’이다.
국회 앞 계엄군의 장갑차 앞에 선 시민들, 사회대개혁을 위해 트랙터를 몰고 나온 농민들, 민주주의 위기에 맞서 온기를 나누며 어깨 건 청년들. 모두가 2024년을 살아 내는 우리 사회 ‘회복력’의 실체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회복력은 사회질서이다. ‘정치적 회복력, 사회적 회복력, 경제적 회복력’을 어떻게 갖춰 나가야 할지 다시 묻는다. 그 힘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남태령’ 고개에서 보여준 농민과 시민 연대의 힘은 위기의 농업ㆍ농촌 해법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364)
‘더 큰 우리’로 위기 돌파하는 국민들
연대하는 농민과 시민이 ‘회복력’의 실체
올해의 마지막 한 달, 우리 사회는 가히 충격과 탄식의 연속을 겪고 있다. 늦은 밤 선포된 불법 계엄은 모든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일상을 봉쇄하고 ‘처단’하겠다는 포고령에 ‘탄식’했다. 시민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봉쇄되었다. 계엄군의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을 보며, 공포와 숙연함이 교차했다. 그날 밤, 비상을 감지하고 모인 시민의 힘으로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다. ‘시민’의 힘으로 엄혹한 공안 통치의 그림자를 걷어낸 ‘감동’의 서사를 만들었다.
AFP 통신 등 여러 외신들은 연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의 반동을 노린 정상적이지 못한 국가 권력의 시도를 중단시킨 ‘대한민국 시민의 힘’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고 회복력이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지상파 방송 뉴스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국민에겐 뽑을 권한도 있지만, 뽑아낼 권한도 있습니다. 지난 끔찍했던 내란 사태를 막아내고 결국 멈추게 만든 시민들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민주주의’와 ‘일상’이 총을 앞세운 무력 앞에 위협받을 때,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힘’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고 있다. 5.16과 12.12 군사 반란의 아픔을 이겨낸 우리이다. 아픔은 상처가 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으로 승화된다. 결국 단단한 ‘옹이’가 되어 2024년을 관통하고 있다. 세대와 계층을 넘어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 ‘촛불’이 ‘응원봉’이 되고, 젊은이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추운 겨울, 찬 바닥을 녹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지난 동짓날(21일),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의 ‘남태령’ 고개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국의 농민이 ‘계엄과 반란’에 맞서 나섰다.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전봉준 트랙터 대행진’이다. 땅을 갈고 농사짓는 데 쓰는 트랙터를 몰고 전국을 돌았다.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며 서울에서 열리는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100여명의 트랙터 농민들은 경찰의 차벽에 막혔다.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로 외세에 맞서던 1894년 동학 농민군의 행진이 일본군의 총칼에 멈추었던 ‘우금치’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러나 2024년 12월 남태령에서의 대한민국은 달랐다. 민주주의 회복, 사회대개혁, 농민헌법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행진에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밤을 새며 농민들과 함께 어깨를 걸었다. ‘농민들이 추운 곳에서 고립되어 있는데, 집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어 달려왔다’는 2030 청년들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고 힘을 얻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그날 밤, 시민들은 먹을거리와 몸을 데우는 물품을 서로 나누었다.
평생 농민운동을 해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농민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2030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울음을 전했다. 전국 곳곳에서 응원과 후원 물품이 줄을 이어 그 혹한의 밤을 견디어 냈다. 시민들이 농민들과 어깨 걸고 함께하자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굳건하게 세워진 차벽은 결국 28시간 만에 물려졌다. 농민들의 트랙터는 서울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엄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촛불+응원봉’과 만났다. 이들이 줄곧 요구한 것은 ‘사회대개혁, 민주주의 회복, 농민헌법 쟁취’였다.
우리는 ‘계엄’이라는 폭력적 상황에 맞서는 사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시민들의 절박한 행동을 다시 확인한다.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고, 장벽을 하나 둘 걷어내며 나아가고 있다. 남녀노소로 구분 짓지 않고 저마다 손을 맞잡는다. ‘더 큰 우리’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다중위기 복합위기 시대’라 진단하고 있다. 위기는 하나의 형태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거센 ‘타격’을 준다. 소위 ‘한방’ 얻어맞고 쓰러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의 성쇠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러한 ‘충격’에 맞서 쓰러지거나 쇠락하지 않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 힘은 단언컨대 바로 ‘회복력’이다.
국회 앞 계엄군의 장갑차 앞에 선 시민들, 사회대개혁을 위해 트랙터를 몰고 나온 농민들, 민주주의 위기에 맞서 온기를 나누며 어깨 건 청년들. 모두가 2024년을 살아 내는 우리 사회 ‘회복력’의 실체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회복력은 사회질서이다. ‘정치적 회복력, 사회적 회복력, 경제적 회복력’을 어떻게 갖춰 나가야 할지 다시 묻는다. 그 힘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남태령’ 고개에서 보여준 농민과 시민 연대의 힘은 위기의 농업ㆍ농촌 해법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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