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OP

재단칼럼

2025년, 농민권리 회복하는 원년으로ㅣ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5/01/01 16:28
  • 조회 67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기상 관측 역사상 유례없는 기후 비상상태가 지속됐다. 봄장마, 기습적인 폭우, 폭염과 이상 고온 현상, 첫눈 폭설 등으로 농민들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자연재해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이상기후로 인해 여러 차례 모종을 다시 심어야 했고, 외래 병해충인 뿔나방의 창궐에 천연 방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돌발 상황도 겪었다. 소비자들 역시 수확량 감소와 유통구조 왜곡으로 인한 가격 불안정 사태에 노출됐고, 멀리서 수송해온 열대과일로 사과를 대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에 의존한 석유 문명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결과로 바다에는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성장을 위해 온실가스는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농식품 체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량의 31%(16Gt CO2eq)를 차지한다. 거의 대부분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농식품 체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2019년 기준으로 전체 배출량의 약 16%에 달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오늘날의 산업적 먹거리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방식을 바꾸고, 현재의 농식품 체계를 지역먹거리체계로 전환한다면 전 세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식량 생산과 운송, 긴 유통 과정과 먹거리 폐기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지역먹거리 운동은 물을 보호하고 토양을 살리는 생태계 회복과 가까운 먹거리 소비로 도시와 농촌의 대립을 극복하고, 먹거리 공동체를 통한 석유 문명의 폐해를 벗어나는 전환 운동이다.

먹거리 시민들은 2023년 12월 31일 기준 경기도 87개소 로컬푸드 직매장을 포함해 전국 907곳에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먹거리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얼굴이 보이는 생산자와 신뢰를 쌓아가는 먹거리체계에 참여할 수 있다. 생태의 순환과 자연의 속도에 맞춘 농사의 가치를 알고 제철에 맞는 자연스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먹거리 시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유기농업과 생태농업은 일반 재배 방식보다 34% 더 많은 식물, 곤충, 동물종을 부양하고, 벌과 나비와 같은 수분 매개종이 50% 더 많아서 자연생태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소비자들은 유기농이 기후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류의 건강과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식단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식품소비, 텀블러와 에코백 사용만으로는 먹거리체계를 전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일본의 ‘식료·농업·농촌기본법’ 개정(2024년)과 중국의 ‘먹거리보장법’ 제정(2023년)을 비롯해 최근 각국 정부들은 다중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식량 생산 자급률 향상과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회복력 있는 먹거리체계 구축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EU 정책위원회는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탄소중립 실천방법이 유기농업 확대라고 선언했고, 프랑스는 에갈림법을 통해서 공공급식의 20%를 유기농으로 공급하도록 제도화하는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공공조달을 통한 유기농 소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이후 추진되는 국가와 지자체의 지역먹거리계획(푸드플랜)은 지역먹거리 운동으로 다져온 식량주권 운동을 확산하고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윤석열정부에서 폐기된 임산부친환경농산물꾸러미 사업, 미래세대를 위한 건강과일 사업 예산을 복원하고, 지역먹거리 계획에서 먹거리 공공성 강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를 위한 전략이 강화돼야 한다.

2025년 새해에는 농업·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지역먹거리 계획을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윤석열정부가 거부한 법안들을 다시 상정해 농민권리를 회복하는 원년이 되도록 하자. 기후 농정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 기후 친화적 농업과 먹거리체계로의 전환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중요한 동인이며 소비자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계엄 선포에 농민들이 트랙터를 앞세워 새로운 역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드높일 때, 남태령과 사당역으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한 연대의 힘을 친환경농업 확대와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로의 전환에서도 펼쳐 나가자.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s://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5944)
  • 첨부파일1 이효희.jpg (용량 : 43.8K / 다운로드수 : 16)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