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협동조합의 해, 그리고 농협 |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농정전문기자,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5/01/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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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유엔이 2012년에 이어 13년 만에 다시 2025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이 인류 사회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제적 인식의 반영이다.
2025년 유엔 국제 협동조합의 해의 주제는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Cooperatives Build a Better World)’이다. 이에 따라 UN과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2025년 한 해 동안 △협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인식제고 △협동조합의 성장과 발전 촉진 △협동조합 리더십 고취 및 청년들의 협동조합 운동 참여를 집중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 농협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각국의 농업협동조합을 초청해 한국의 우수 모델을 홍보한다고 한다. 농협은 1960년대부터 정부와 협력해 식량 증산을 통한 쌀 자급을 일궈냈고, 농산물 생산과 유통발전에 기여한 결과 1960년대 100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농가소득은 이제 4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세계 협동조합의 일원으로서 협동조합의 가치 확산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다만 농협은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계기로 과연 농협이 세계 협동조합 운동의 리더를 자임할 만큼 협동조합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농협은 그동안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농협은 2024년 자산총액 780조원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순위 10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것은 농협중앙회와 54개 계열사만 집계한 것이다. 지역 농축협과 품목농협 등 1,111개(조합원 205만명) 조합이 있고, 전국에 2272개의 하나로마트, 5907개의 금융점포가 있다. 농협 전체의 자산, 조직, 사업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재벌 그 이상의 엄청난 규모다.
전 세계 협동조합을 놓고 비교해도 농협은 농업·식품 분야에서 매출액 기준 2위, 국가경제력 대비 매출액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ICA 이사기관이고, ICA 농업분과기구인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의 의장기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농협이 이처럼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그 주인인 농민 조합원의 형편도 좋아졌을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농협의 목적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상기하기 위해서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 달성됐는지는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애초 농협은 농민의 자주적 조직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농협의 전신인 금융조합과 산업조합은 일제 식민통치의 수단이었고, 5.16 군사쿠데타 이후 출범한 현재의 농협은 농촌지역에서 정부의 개발 독재를 뒷받침하는 조직이었다.
그 탄생부터 농협은 농민 조합원이 아니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 하향식으로 만들어졌고, 농민 조합원은 주인의 자리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후 한국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조합장은 조합원이, 농협중앙회장은 조합장이 뽑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일 뿐, 여전히 조합은 조합원 위에, 중앙회는 조합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 조합원을 위한 경제사업에는 소홀히 하고 신용사업에 치중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농협 개혁과 법 개정을 거쳤지만, 근본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2011년에는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하는 방식으로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방식의 농협법이 시행되면서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은 더욱 훼손됐다.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 개편의 목표가 경제사업 활성화와 이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라고 했지만, 그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주식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조합과의 경합과 갈등은 커지고, 중앙회와 조합, 그리고 농민조합원간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을 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0년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구조개편에 대한 만족도는 2018년 기준 농민조합원 56.7점, 조합은 51.8점으로 낙제점이었다. 단적으로 농가들이 농사를 지어 얻는 농업소득은 1994년 이후 1000만원 내외에 머물고 있고, 실질소득으로 치면 오히려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농협 덕분에 농가소득이 향상됐다는 자화자찬은 낯을 뜨겁게 한다. 농협은 양적 성장을 자랑하기 앞서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ICA의 협동조합 원칙을 준수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형평성, 연대라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따르고 있는가? 협동조합 7대 원칙에 충실한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성과 독립성, 교육훈련과 정보, 협동조합 간 협력,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등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농협은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농민 조합원이 주인인 조합, 조합원과 조합의 농협중앙회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는 협동조합의 해가 되길 바란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103)
2025년 유엔 국제 협동조합의 해의 주제는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Cooperatives Build a Better World)’이다. 이에 따라 UN과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2025년 한 해 동안 △협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인식제고 △협동조합의 성장과 발전 촉진 △협동조합 리더십 고취 및 청년들의 협동조합 운동 참여를 집중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 농협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각국의 농업협동조합을 초청해 한국의 우수 모델을 홍보한다고 한다. 농협은 1960년대부터 정부와 협력해 식량 증산을 통한 쌀 자급을 일궈냈고, 농산물 생산과 유통발전에 기여한 결과 1960년대 100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농가소득은 이제 4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세계 협동조합의 일원으로서 협동조합의 가치 확산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다만 농협은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계기로 과연 농협이 세계 협동조합 운동의 리더를 자임할 만큼 협동조합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농협은 그동안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농협은 2024년 자산총액 780조원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순위 10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것은 농협중앙회와 54개 계열사만 집계한 것이다. 지역 농축협과 품목농협 등 1,111개(조합원 205만명) 조합이 있고, 전국에 2272개의 하나로마트, 5907개의 금융점포가 있다. 농협 전체의 자산, 조직, 사업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재벌 그 이상의 엄청난 규모다.
전 세계 협동조합을 놓고 비교해도 농협은 농업·식품 분야에서 매출액 기준 2위, 국가경제력 대비 매출액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ICA 이사기관이고, ICA 농업분과기구인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의 의장기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농협이 이처럼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그 주인인 농민 조합원의 형편도 좋아졌을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농협의 목적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상기하기 위해서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 달성됐는지는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애초 농협은 농민의 자주적 조직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농협의 전신인 금융조합과 산업조합은 일제 식민통치의 수단이었고, 5.16 군사쿠데타 이후 출범한 현재의 농협은 농촌지역에서 정부의 개발 독재를 뒷받침하는 조직이었다.
그 탄생부터 농협은 농민 조합원이 아니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 하향식으로 만들어졌고, 농민 조합원은 주인의 자리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후 한국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조합장은 조합원이, 농협중앙회장은 조합장이 뽑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일 뿐, 여전히 조합은 조합원 위에, 중앙회는 조합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 조합원을 위한 경제사업에는 소홀히 하고 신용사업에 치중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농협 개혁과 법 개정을 거쳤지만, 근본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2011년에는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하는 방식으로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방식의 농협법이 시행되면서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은 더욱 훼손됐다.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 개편의 목표가 경제사업 활성화와 이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라고 했지만, 그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주식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조합과의 경합과 갈등은 커지고, 중앙회와 조합, 그리고 농민조합원간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을 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0년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구조개편에 대한 만족도는 2018년 기준 농민조합원 56.7점, 조합은 51.8점으로 낙제점이었다. 단적으로 농가들이 농사를 지어 얻는 농업소득은 1994년 이후 1000만원 내외에 머물고 있고, 실질소득으로 치면 오히려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농협 덕분에 농가소득이 향상됐다는 자화자찬은 낯을 뜨겁게 한다. 농협은 양적 성장을 자랑하기 앞서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ICA의 협동조합 원칙을 준수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형평성, 연대라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따르고 있는가? 협동조합 7대 원칙에 충실한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성과 독립성, 교육훈련과 정보, 협동조합 간 협력,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등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농협은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농민 조합원이 주인인 조합, 조합원과 조합의 농협중앙회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는 협동조합의 해가 되길 바란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