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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 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5/02/09 13:54
    • 조회 13
    몇 년 전 지방의 어느 ‘귀농·귀촌인 교육’에서 있었던 얘기다. 강사가 ‘귀농·귀촌’은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국내 이민’이라 규정하고,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위해서는 농촌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참석자(귀농·귀촌 희망자)들에게 ‘농촌의 개념’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왔지만 대략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우 단순한 질문이고, 일반적으로는 크게 중요한 얘기도 아닐 수 있지만 때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농촌’이 정책의 대상이 될 경우는 더욱 그렇다. 가령 귀농·귀촌 자금의 지원대상은 ‘농촌 외 지역에서 농업 외 산업 분야에서 종사한(하는) 자’다. 때문에 농촌으로 오기 전 원래 살았던 곳이 ‘농촌’인가 아닌가는 정책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1차적인 기준이 된다. 따라서, 자금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살았던 곳이 ‘농촌’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대학입시에 ‘농(어)촌 특별전형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재학 중고등학교가 ‘농(어)촌’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입 전형을 앞두고 있는 학생에게 자신의 학교가 있는 곳이 농촌인가 아닌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농촌’을 단순히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정도로 이해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제3조 제5항에 ‘농촌’의 개념을 정의해 두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농촌’은 ‘①읍·면의 지역, ②읍·면 외의 지역 중 그 지역의 농업, 농업관련 산업, 농업인구 및 생활여건 등을 고려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고시하는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행정단위가 ‘읍·면 지역’이 곧 농촌이다. 때문에 읍면 지역에 살다가 귀농·귀촌하는 경우는 관련 정책자금을 받을 수 없고, 읍면 지역이 아닌 곳의 고등학교를 졸업할 경우는 농어촌 특별전형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 12월 말 기준, 경남 양산시 물금읍의 인구는 11만6836명이고,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은 11만2518명,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은 11만700명으로 모두 경북 상주시 인구(9만1815명)보다 많다. 그럼에도 이들 지역은 모두 ‘읍’지역이기 때문에 ‘농촌’이다. 그러므로 경기도 화도읍에서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귀농한 경우는 정책자금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농촌’에서 ‘농촌’으로 귀농했기 때문이다. 면 지역 간 인구 편차는 더 크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은 5만6263명, 경남 양산시 동면은 5만5030명, 충남 아산시 탕정면은 4만7874명이다. 반면에 철원군 근북면은 93명이고, 연천군 증면은 165명, 강진군 옴천면은 600명에 불과하다. 양산시 물금읍이나 남양주시 화도읍, 화성시 봉담읍은 대부분이 공단이나 아파트단지로써 더이상 농촌이라고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지난해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매년 40만명 이상의 도시민이 농어촌으로 귀농어·귀촌하고, 전체 청년인구(19~39세)의 15.5%인 232만명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읍면당 평균 479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0년 기준). 매년 40만명 이상의 도시민이 농어촌으로 들어가고, 읍면당 평균 479명이나 청년들이 있는데 왜 청년인구의 감소와 급격한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처한 농촌지역은 늘어나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농촌’의 개념 때문에 나타나는 통계와 현실의 불일치 현상이다. 즉,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여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서 밀려나 좀 더 저렴한 주거공간을 찾아 물금읍이나 화도읍으로 튕겨져 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귀농·귀촌으로 간주되고, 그곳에 사는 청년도 모두 농촌 청년으로 잡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과 다른 공허한 통계가 만들어지고, 그 통계에 기초한 정책이 실행된다면 그러한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농업과 농업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고, 정책당국에서는 관련 용역도 시행한 바 있다. 정책 대상이 되는 ‘농업인’의 자격 문턱이 너무 낮아 ‘진짜 농업인’을 가려내기 어려워서 정책적 누수가 우려되고, 정책 추진의 기초가 되는 통계자료에서도 농가수·농가인구와 농업경영체·농업인등록 수치에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과 정책의 괴리는 ‘농촌’도 마찬가지다. 인구 93명인 근북면이나 12만명에 가까운 물금읍은 똑같은 ‘농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곳을 대상으로 동일한 ‘농촌정책’을 추진한다면 그러한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겠는가? 구체적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 성공할리 만무하다. 우리의 농촌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농촌의 개념에 대한 재정의가 시급한 이유이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https://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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