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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도를 넘은 윤석열 정부의 농지 규제 완화 l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상임고문
    • 작성일2025/02/28 14:01
    • 조회 40
    [주장] 농촌과 식량안보의 근간을 위협하는 개발주의

    지난 25일 정부는 '농촌소멸 대응 추진 전략'의 일환으로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체류형 복합단지 3개소와 농촌자율규제혁신지구 10개소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체류형 복합단지는 쉽게 말하면 그동안 주말 체험 영농 등을 위해 농막 혹은 농촌체류형 쉼터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던 농지 전용을 단지 규모로 쉽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농촌체류형쉼터는 개인이 본인 소유의 농지에 설치할 수 있는 소규모 가설건축물로, 연면적 33㎡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반면, 농촌체류형 복합단지는 농업진흥지역 내에서도 최대 3헥타르(ha)까지 조성할 수 있고 임대도 가능하다.
    농촌자율규제혁신지구(이하 규제혁신지구) 사업은 농촌구조전환우선지역(농촌소멸 읍·면)을 대상으로 농지 소유와 임대, 활용에 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민간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도록 한다. 지구 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는 비농업인도 취득할 수 있고, 농업진흥지역이라도 주말 체험 영농 목적의 농지 취득을 허용하고, 지구 내 농지는 취득 즉시 임대차를 허용한다. 각종 시설물 설치도 전용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가능해진다.
    '자율규제'니 '혁신'이니 하는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핵심은 농지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과 비농업인이 농촌 지역에 더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말이다. '자율'이란 그동안 정부가 농지 전용을 엄격하게 규제했지만, 이제는 지자체와 기업이 더 자유롭게 전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혁신'은 기존의 농지 규제(예, 농업 외 다른 용도 사용 불가)를 완화하거나 없애서 개발을 더 쉽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책은 겉으로는 농촌소멸 대응을 내세우지만,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농지를 투기와 개발로 내모는 정책이 될 것인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농지 규제 완화가 농촌활성화보다는 농지투기, 난개발, 농업 기반 약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특히 규제혁신지구 사업은 읍·면 단위로 시행되므로 그 파급력 또한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복합단지 사업과 규제혁신지구 사업은 지금은 시범 사업으로 3개소와 10개소로 시작하지만 머지않아 전 농지로 확대되면 농업진흥지역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농지 규제 완화, 지속적인 흐름

    이 같은 정책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지속해서 농지 규제 완화를 추진해 왔다. 2024년 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 농지 내 수직농장 설치 허용 ▲ 3ha 이하 '자투리 농지' 정리 ▲ 농촌 체류형 쉼터 도입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농지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농지 규제 완화를 구체화했다. 2025년 1월에는 농지 임대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농업진흥지역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 흐름은 농지 규제 완화라는 명목 아래 농업과 농촌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개발주의 정책의 일환이다. 특히,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 1월 수직농장, 스마트팜, 주차장, 판매시설, 화장실 등을 농지에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발표하면서 "농업이라고 하면 흙(농지)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재배업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하지만 요즘은 20층짜리 건물을 지어 1층에서 쌀을 재배하고, 2층에서 돼지를 키우는 수직농장이 현실이 된 시대"라고 발언한 것은 농업의 본질과 식량안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농지 규제 완화, 농촌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투기 조장

    정부는 농지 규제 완화가 농촌소멸 대응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농지를 자본에 내어주는 정책이다.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은 위기와 재난 상황을 활용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고 하였다. 농촌소멸은 단순한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불평등이 만들어 낸 사회적 재난이다. 지방소멸(농촌소멸)의 원인은 말할 나위 없이 중앙과 대자본 중심의 성장주의 정책 때문이다.
    이런 중앙집권적인 성장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 없이 정부는 지방소멸이란 재난을 빌미로 끊임없이 자본에 새로운 돈벌이 기회를 만들어 준다.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철도, 도로 등 대형 SOC 개발 사업을 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언 발에 오줌 누듯이 각종 개발 사업을 이름만 바꾸어 시행한다.
    체류형 복합단지와 규제혁신지구는 과거 농촌관광단지 사업, 농공단지 사업, 농촌융복합산업지구 등의 이름을 달리한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대개 행정 주도로 추진되며, 정작 농촌 주민들의 삶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되면 농업인은 더 이상 농지를 구입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농업 기반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농지는 공공자산, 무분별한 전용을 막아야 한다

    농업은 농촌사회의 기간산업이고, 농지는 농업생산의 근간이다. 한 나라의 주권을 유지하고 안전한 수준의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농지보전이 필요하다.
    농지는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공공자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농지를 너무 가볍게 본다.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1970년 229만 8천ha에서 2022년 152만 8천ha로 30% 이상 감소하였다. 주된 이유는 농지 전용 때문이다. 최근에 올수록 농지 전용에 의한 경지 감소가 가팔라지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제도는 전용을 방지하고 우량농지를 보존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실효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전체 농지 가운데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매년 감소하고 있다. 우량농지는 2004년 92만 2천ha에서 2019년에는 77만 6천ha(49.1%)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매년 전체 전용 농지 면적의 20%에 달하는 2000~3000ha의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가 줄어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 전용의 70% 이상이 공용·공공·공익 시설의 명목으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새로운 농지정책으로 이제 민간에 의한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의 전용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와 농업 조건이 비슷한 일본은 농용지 면적의 89.6%를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농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전용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공익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엄격한 심사와 허가 절차를 거쳐 농지 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경지면적은 0.03ha로 세계 평균(0.24ha)은 물론, 일본(0.035ha)보다 적다. 곡물자급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2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지 전용을 쉽게 허용하는 것은 국가 식량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쌀 재배면적 감축, 식량안보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

    윤석열 정부는 쌀 과잉을 빌미로 벼 재배면적 8만ha를 줄이겠다고 발표하였다. 쌀값 안정을 위한 양곡법을 '농망법'이라고 거부하고 나온 대책이다. 이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과 재배면적은 농업노동력의 감소와 노령화로 꾸준히 심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서 논 면적을 줄이는 건 온당치 못하다.
    눈앞의 쌀 과잉을 피하려고 식량안보라는 국가 책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전환해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줄이면서 농지를 유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 유기농 벼를 재배하는 농민에게 지급하는 공익형직불금을 대폭 확대하여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최대 농정공약인 공익형직불금 5조 원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농지규제완화, 국회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

    농지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짓는 핵심 자원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농식품부는 마치 망나니의 칼춤을 추듯 농지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하고 있다. 이는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특히 언론은 오랫동안 건설업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농지 규제 완화에 앞장서 왔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불과 3년 전, LH 직원들의 농지투기 사태 이후 국회는 농지의 보존과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농지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인다. 현재 국회에는 농지 규제를 다시 완화하려는 13개의 농지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농지 규제 완화가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농업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농민들은 농지보전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농지의 절반 이상이 비농민 소유이며,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되면 농업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면 농지법 개정이 불가피하며,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갈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단기적인 표 계산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인 식량안보와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농지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농지 전수조사법'을 제정해 농지 소유 및 이용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고, 이를 보호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06979&CMPT_CD=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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