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이 살 길이다 | 김성훈 상지대 총장 , 전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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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농이 살 길이다
| 김성훈 상지대 총장 , 전 농림부 장관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농업문제만 제기되면 마치 ‘기업농(Corporate Farm)’이 대안인양 정부정책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소수의 막강한 자본이 비행기와 대형 트랙터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공장식으로 농사짓는 모습이 아주 이상적인 영농형태로 식자들의 의식에 강렬히 각인된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농사를 공장 경영식으로 자동화, 분업화하고 가계와 기업회계를 분리 운영해 성공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같은 사례는 농업의 특성상 미국을 비롯 다국적 기업이 경영을 주도하는 단작농업(monoculture) 체제에서나 보이는 예외적 현상이다.
미국 농가 80~85% 소규모 가족농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전체 농가의 80~85%가 이른바 소규모의 가족농(Family Farm)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생산액면에서는 기업농의 비중이 85%로 가족농의 그것을 앞지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규모에 한정된 수치일 뿐, 농업 고유의 다원적 공익기능의 수행에 미치는 비중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오히려 환경생태계 효과와 아름다운 경관 유지, 전통 문화 및 지역사회 활성화에 대한 기여도는 아주 낮거나 부정적이다.
오랜, 아주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생태계 속에서 인류 문명을 영위해 온 나라들에게 농업은 바로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한 방식이며 공동체 유지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다. 농업이 없이는 상공업이 없고, 농촌이 없이는 도시가 없으며, 농민이 없이는 소비자 생활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환경생태계의 보전과 그 방어적 기능이 없이는 인류 생명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 지역사회 형성과 민족 국가의 유지 발전도 농업이 없이는 크게 기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농림축산업을 총망라한 광의의 농업이야말로 생명산업이며 환경산업이라 부른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와 국정의 기본철학이 흔히 말해져온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선진국가에서는 농업을 국가와 국민의 최소기본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기초단위는 가족농업임은 물을 필요가 없다.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국민총소득(GNP)상의 비중이나 국민 전체 인구중의 농민수의 비중을 가지고 따지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뿐이다.
“가족농은 (환경생태와 조화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농업시스템의 기초로서 농업ㆍ농촌 발전전략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세계농민헌장 전문(2006)이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농업을 순전히 재무경제적 비용ㆍ수익 관계로만 접근한다면 지구상엔 극소수 초대형 기업농만 살아남는다. 소농이 주축을 이루는 가족농은 마땅히 도태되고 대부분의 저개발국들은 농업을 포기해야 옳다. 그러면 가족농업이 수행하던 다양한 공익적 기능 역시 사라지고 만다. 농작물의 산소공급기능, 이산화탄소 등 환경정화기능, 홍수ㆍ가뭄조절기능, 지역사회 형성기능, 문화전통 유지발전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등도 함께 소멸될 것이다.
제대로 된 친환경 유기농업의 토대
다행히도 농업은 비록 비용ㆍ수익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품질 경쟁력과 안전성, 그리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이 탁월할 경우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고 보호 받는다. 그리고 이같은 공적기능에 대하여 국가와 소비자 국민들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해 왔다. 이른바 OECD와 WTO 그리고 모든 선진국가가 인정하는 농업직접지불제도(Direct Payment)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반 가족농의 소득중 40% 내외, 유럽 가족농의 60~80%가 정부와 국민이 직접 지불하는 농가 소득보상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국민의 정부 때부터 이 제도의 일부가 도입되었는데 2006년 현재 농가소득의 6~7% 안팎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친환경 유기농업은 가족농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정성을 크게 들여야 고품질 안전식품 생산도 가능하다. 이 또한 가족농 체제에서 활력을 나타낸다. 명품농업도 가족농 체제에서 가능하다. 건강과 맛과 환경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친환경 유기농 식품과 발효식품 문화가 양날개를 펼칠 수 있다. 한국 특유의 발효식품 문화도 가족농 체제하에서 지역별로 특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농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도 살리며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는 Local Food(地産地消)운동이 범세계적으로, 특히 소농체제 국가들에게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거기에 발효식품과 전통적인 조리식품이 주축이 된 Slow Food 운동이 맹렬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모두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지연(地緣)산업으로 농민, 소비자, 지역경제와 환경을 고루 살리는 21세기 지속가능한 농업의 주된 흐름이다.
농민·소비자·환경 모두 살리는 길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세계 가족농과 환경생태계를 위협했던 신자유주의의 망령인 비교우위생산비설, 농산물 시장의 완전 개방과 무역자유화론, 기업농 위주의 농정체제가 바야흐로 붕괴되고 있다. 그 자리에 다시 가족농 중심의 친환경, 친지역사회, 친인간적인 농정이 부활하고 있음에 모름지기 위정자들이 주목해야 할 때이다.
가족농업이야말로 국민의 식량안보주권과 환경주권을 지키는 핵심 요소이다. 가족농의 다각화와 전문화 그리고 협동화를 더욱 정교히 도모할 때이다.
출 처 : 한국농어민신문 2008년 9월 25일자 (제2083호)
| 김성훈 상지대 총장 , 전 농림부 장관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농업문제만 제기되면 마치 ‘기업농(Corporate Farm)’이 대안인양 정부정책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소수의 막강한 자본이 비행기와 대형 트랙터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공장식으로 농사짓는 모습이 아주 이상적인 영농형태로 식자들의 의식에 강렬히 각인된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농사를 공장 경영식으로 자동화, 분업화하고 가계와 기업회계를 분리 운영해 성공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같은 사례는 농업의 특성상 미국을 비롯 다국적 기업이 경영을 주도하는 단작농업(monoculture) 체제에서나 보이는 예외적 현상이다.
미국 농가 80~85% 소규모 가족농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전체 농가의 80~85%가 이른바 소규모의 가족농(Family Farm)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생산액면에서는 기업농의 비중이 85%로 가족농의 그것을 앞지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규모에 한정된 수치일 뿐, 농업 고유의 다원적 공익기능의 수행에 미치는 비중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오히려 환경생태계 효과와 아름다운 경관 유지, 전통 문화 및 지역사회 활성화에 대한 기여도는 아주 낮거나 부정적이다.
오랜, 아주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생태계 속에서 인류 문명을 영위해 온 나라들에게 농업은 바로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한 방식이며 공동체 유지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다. 농업이 없이는 상공업이 없고, 농촌이 없이는 도시가 없으며, 농민이 없이는 소비자 생활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환경생태계의 보전과 그 방어적 기능이 없이는 인류 생명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 지역사회 형성과 민족 국가의 유지 발전도 농업이 없이는 크게 기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농림축산업을 총망라한 광의의 농업이야말로 생명산업이며 환경산업이라 부른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와 국정의 기본철학이 흔히 말해져온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선진국가에서는 농업을 국가와 국민의 최소기본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기초단위는 가족농업임은 물을 필요가 없다.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국민총소득(GNP)상의 비중이나 국민 전체 인구중의 농민수의 비중을 가지고 따지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뿐이다.
“가족농은 (환경생태와 조화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농업시스템의 기초로서 농업ㆍ농촌 발전전략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세계농민헌장 전문(2006)이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농업을 순전히 재무경제적 비용ㆍ수익 관계로만 접근한다면 지구상엔 극소수 초대형 기업농만 살아남는다. 소농이 주축을 이루는 가족농은 마땅히 도태되고 대부분의 저개발국들은 농업을 포기해야 옳다. 그러면 가족농업이 수행하던 다양한 공익적 기능 역시 사라지고 만다. 농작물의 산소공급기능, 이산화탄소 등 환경정화기능, 홍수ㆍ가뭄조절기능, 지역사회 형성기능, 문화전통 유지발전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등도 함께 소멸될 것이다.
제대로 된 친환경 유기농업의 토대
다행히도 농업은 비록 비용ㆍ수익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품질 경쟁력과 안전성, 그리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이 탁월할 경우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고 보호 받는다. 그리고 이같은 공적기능에 대하여 국가와 소비자 국민들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해 왔다. 이른바 OECD와 WTO 그리고 모든 선진국가가 인정하는 농업직접지불제도(Direct Payment)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반 가족농의 소득중 40% 내외, 유럽 가족농의 60~80%가 정부와 국민이 직접 지불하는 농가 소득보상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국민의 정부 때부터 이 제도의 일부가 도입되었는데 2006년 현재 농가소득의 6~7% 안팎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친환경 유기농업은 가족농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정성을 크게 들여야 고품질 안전식품 생산도 가능하다. 이 또한 가족농 체제에서 활력을 나타낸다. 명품농업도 가족농 체제에서 가능하다. 건강과 맛과 환경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친환경 유기농 식품과 발효식품 문화가 양날개를 펼칠 수 있다. 한국 특유의 발효식품 문화도 가족농 체제하에서 지역별로 특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농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도 살리며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는 Local Food(地産地消)운동이 범세계적으로, 특히 소농체제 국가들에게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거기에 발효식품과 전통적인 조리식품이 주축이 된 Slow Food 운동이 맹렬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모두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지연(地緣)산업으로 농민, 소비자, 지역경제와 환경을 고루 살리는 21세기 지속가능한 농업의 주된 흐름이다.
농민·소비자·환경 모두 살리는 길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세계 가족농과 환경생태계를 위협했던 신자유주의의 망령인 비교우위생산비설, 농산물 시장의 완전 개방과 무역자유화론, 기업농 위주의 농정체제가 바야흐로 붕괴되고 있다. 그 자리에 다시 가족농 중심의 친환경, 친지역사회, 친인간적인 농정이 부활하고 있음에 모름지기 위정자들이 주목해야 할 때이다.
가족농업이야말로 국민의 식량안보주권과 환경주권을 지키는 핵심 요소이다. 가족농의 다각화와 전문화 그리고 협동화를 더욱 정교히 도모할 때이다.
출 처 : 한국농어민신문 2008년 9월 25일자 (제20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