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보듬고 서민 살리는 진보라야 | 김형기 지역재단 자문위원, 경북교 교수
- 작성일2020/03/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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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보듬고 서민 살리는 진보라야
김형기 | 지역재단 자문위원, 경북교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를 두고 “선거 한 두 번 진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원래 선거는 바람에 좌우되고 우연한 사건으로 판이 뒤집어지기도 하는, 매우 정세 의존적인 속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사가 바뀔지도 모르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를 친북좌파·무능정권이라 몰아붙이고 정권심판을 외쳤던 한나라당에 국민들이 압도적 승리를 안겨줬다.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내세웠던 민주노동당은 기초단체장을 한 사람도 못 냈다. 노동자 밀집지역으로 민주노동당 강세지역인 울산에서조차 두 구청장 자리를 잃었다.
탄핵받은 대통령을 구출하고 2004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의석 과반수의 압승을 안겨줬으며 신생 민주노동당을 일약 제3당으로 만들어줬던 민심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차떼기·웰빙·불임 정당으로 조롱당하던 한나라당이 전국을 거의 싹쓸이하게 만든 민심의 소재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민심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떠났다. 노심(노동자 마음)도 민주노동당을 떠났다. 민주당은 광주전남 민심만을 잡았다. 민심은 한나라당에 갔는가? 표심이 한나라당에 쏠렸다고 해서 민심의 진정한 소재가 한나라당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나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민주노동당은 대안이 아니라서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왜 민심을 잃었나?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한다면서 서민을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하고, 편협하고 오만한 인물들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외교적으로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좌파적 경향을 보이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과 노동자와 빈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신자유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데도 손에 잡히지 않는 장기 경제구조 개혁정책에 치중하여 피부에 와 닿는 단기 민생경제 정책을 소홀히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왜 노심이 떠났고 민심은 오지 않았나? 현실성 없는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전투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배타적 노동자 중심주의에 빠져 민중의 실생활과 거리가 먼 이념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낡은 진보 틀에 갇혀 대중을 사로잡을 새로운 진보 비전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심이반의 배경에는 국민의 신망을 잃은 진보적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이 민주노총이고 참여정부 안에는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이 적잖게 요직에 배치되어 있는 까닭이다.
노동의 인간화와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해 온 노동운동은 나라 경제의 장래와 소비자와 시민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당하고 있다. 낡은 진보이념에 집착하여 노·사·정 사이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파업투쟁 일변도로 나아가는 운동노선 때문에 국민한테서 고립당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은 대다수 중소기업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도 유리되어 있다.
민주화·인간화·투명화에 기여한 진보적 시민운동은 공평성만 지향하고 효율성을 무시하며, 민주화만 주장하고 사회질서는 고려하지 않으며, 환경보전만 중시하고 경제성장을 소홀히하는 균형감각 없는 태도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데는 드세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취약한 시민운동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5·31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진보개혁 세력 전체에 대한 민심 이반을 통감하게 됐다. 진보개혁 세력에 큰 위기가 닥치고 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일대 격전이 벌어질 2007년 대선 이전까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주개혁 세력이 주도하던 10여년의 역사가 보수 회귀로 바뀔지 모른다.
이 큰 위기를 극복하려면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 “진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구체적 정책대안으로 응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고통받는 중산층과 서민이 왜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을 찍는지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정책과 복지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속 불가능한 고비용·저효율의 낡은 진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고효율·저비용의 새로운 진보로 나아가는 일대 혁신을 해야 한다.
진보개혁 세력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집권세력으로서 이런 위기 극복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개개편과 같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그동안의 실패를 깊이 성찰하고, 이를 바탕 삼아 획기적인 정책전환과 인사쇄신을 통해 민심을 다시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민심 흐름을 읽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민심에 겸허히 따르고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을 쓰다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2006년 06월 0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형기 | 지역재단 자문위원, 경북교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를 두고 “선거 한 두 번 진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원래 선거는 바람에 좌우되고 우연한 사건으로 판이 뒤집어지기도 하는, 매우 정세 의존적인 속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사가 바뀔지도 모르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를 친북좌파·무능정권이라 몰아붙이고 정권심판을 외쳤던 한나라당에 국민들이 압도적 승리를 안겨줬다.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내세웠던 민주노동당은 기초단체장을 한 사람도 못 냈다. 노동자 밀집지역으로 민주노동당 강세지역인 울산에서조차 두 구청장 자리를 잃었다.
탄핵받은 대통령을 구출하고 2004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의석 과반수의 압승을 안겨줬으며 신생 민주노동당을 일약 제3당으로 만들어줬던 민심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차떼기·웰빙·불임 정당으로 조롱당하던 한나라당이 전국을 거의 싹쓸이하게 만든 민심의 소재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민심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떠났다. 노심(노동자 마음)도 민주노동당을 떠났다. 민주당은 광주전남 민심만을 잡았다. 민심은 한나라당에 갔는가? 표심이 한나라당에 쏠렸다고 해서 민심의 진정한 소재가 한나라당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나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민주노동당은 대안이 아니라서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왜 민심을 잃었나?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한다면서 서민을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하고, 편협하고 오만한 인물들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외교적으로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좌파적 경향을 보이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과 노동자와 빈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신자유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데도 손에 잡히지 않는 장기 경제구조 개혁정책에 치중하여 피부에 와 닿는 단기 민생경제 정책을 소홀히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왜 노심이 떠났고 민심은 오지 않았나? 현실성 없는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전투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배타적 노동자 중심주의에 빠져 민중의 실생활과 거리가 먼 이념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낡은 진보 틀에 갇혀 대중을 사로잡을 새로운 진보 비전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심이반의 배경에는 국민의 신망을 잃은 진보적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이 민주노총이고 참여정부 안에는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이 적잖게 요직에 배치되어 있는 까닭이다.
노동의 인간화와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해 온 노동운동은 나라 경제의 장래와 소비자와 시민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당하고 있다. 낡은 진보이념에 집착하여 노·사·정 사이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파업투쟁 일변도로 나아가는 운동노선 때문에 국민한테서 고립당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은 대다수 중소기업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도 유리되어 있다.
민주화·인간화·투명화에 기여한 진보적 시민운동은 공평성만 지향하고 효율성을 무시하며, 민주화만 주장하고 사회질서는 고려하지 않으며, 환경보전만 중시하고 경제성장을 소홀히하는 균형감각 없는 태도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데는 드세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취약한 시민운동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5·31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진보개혁 세력 전체에 대한 민심 이반을 통감하게 됐다. 진보개혁 세력에 큰 위기가 닥치고 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일대 격전이 벌어질 2007년 대선 이전까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주개혁 세력이 주도하던 10여년의 역사가 보수 회귀로 바뀔지 모른다.
이 큰 위기를 극복하려면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 “진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구체적 정책대안으로 응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고통받는 중산층과 서민이 왜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을 찍는지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정책과 복지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속 불가능한 고비용·저효율의 낡은 진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고효율·저비용의 새로운 진보로 나아가는 일대 혁신을 해야 한다.
진보개혁 세력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집권세력으로서 이런 위기 극복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개개편과 같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그동안의 실패를 깊이 성찰하고, 이를 바탕 삼아 획기적인 정책전환과 인사쇄신을 통해 민심을 다시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민심 흐름을 읽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민심에 겸허히 따르고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을 쓰다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2006년 06월 0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