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n & Green Life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장관
- 작성일2020/03/05 10:31
- 조회 406
Clean & Green Life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장관
서양 속담에 “인생살이는 가볍게, 먹을거리는 올바르게 하라(Live Light, Eat Right)”는 말이 있다. 깨끗하고 푸르른 인생살이(Clean & Green Life)의 지침이다. 그 뜻을 인생 70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하니 되도록 삶의 짐을 가볍고 간소하게 견지해야 세상을 떠날 때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회한(悔恨)이 덜하다. 바로 연전에 박경리 선생이 불후의 명작 「토지」 등 주옥같은 글을 남기고 타계하시기 전 “버릴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그 분은 가셨다. 생전에 당신의 작품들로부터 거둬들인 인세수입금을 전부 털어 원주 매지리에 토지문화관과 작업실 숙소를 짓고 후대 문인들에게 개방하여 가난한 문인들이 대작을 집필할 산실(産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손수 텃밭을 가꿔 100% 자연산 유기농 야채를 친지들과 집필 중인 문인들에게 먹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떠나실 때 가지고 간 것이라곤 삼베 옷 한 벌 뿐이었다. 그보다 더 가뿐한 삶, 올바른 먹을거리의 인생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경북 청송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오며 살아온 배용진 선생(전 가톨릭 농민회장)은 농사 때문에 진 막중한 빚을 감당치 못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을 농촌공사에 잡히고 그러함에도 계속 그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해준 것에 대하여 특별 수혜라도 받은 양 행복한 웃음을 짓고 사는 분이다. 언제나 그는 자기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 온 것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어렸을 적부터 농약을 치지 않은 거친 음식만 먹고 살아 잔병에 걸리는 일도 없으며 추운 날씨에 두둑한 솜옷으로 황토벽 누옥에 살다보니 건강한 천연체질이 되었노라고 조상들께 감사드리는 글을 썼다. 간소한 삶, 올바른 정농(正農)의 식사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인 것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어서야 새삼 깨달은 것이다.
폐허에 세운 세계 최대의 꽃 정원
그런데 내가 초빙교수로 방문한 캐나다 밴쿠버의 UBC 대학시절에 직접 알게 된 밴쿠버섬 빅토리아의 부챠드 가든(Buchard Garden) 이야기는 배경과 환경이 조금 다르지만,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북아메리카 서부연안에서 황금 광맥이 발견되어 서태평양 해안 일대에 개발붐이 한창이던 무렵 시멘트 수요는 불티났었다. 그 때 빅토리아시 인근에서 석회석 광산을 경영한 로버트 핌 부챠드씨는 시멘트를 캐내어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데 마지막 석회석을 싣고 떠나가는 배를 환송하던 그의 부인 제니의 손에 누군가가 가만히 야생화 씨앗을 한 웅큼 쥐어 주었다. 그때 제니는 그 뜻을 바로 깨닫게 된다. 석회석을 캐어낸 광산의 해골 같은 폐허를 원래의 자연상태로 되살려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단 그렇게 결심을 한 부챠드 부부는 시멘트광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움푹 패인 광산 바닥 시멘트를 캐낸 자리에 흙을 다시 메우고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갖가지 꽃씨와 종묘들을 심고 커다란 정원을 가꾸었다. 190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 시작하여 현재 그의 손자 이안 로스 부부에 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부챠드가든은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 최대의 꽃 정원으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22만평방미터의 가든 가장자리에 아담한 저택을 짓고 이름을 이태리어로 모든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뜻의 ’벤비뉴토(Benvenuto)’라고 불렀다. 오늘날 시멘트를 빼먹고 황폐해졌어야 할 폐허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환생해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원예 및 화훼 기술로 1년 4계절 내내 기화요초들을 화사하게 피게 하여 한때나마 자연환경을 훼손했던 마구잡이 개발행위를 보상한 것이다. 입장료 수입은 전액 자연환경 복원과 식물연구 및 보급에 재투자한다.
선진국에 번지는 ‘수목장 운동’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지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는 죽어서 흙이 되어 꽃과 나무로 환생하자는 수목장(樹木葬) 운동이 한창이다. 아예 기존의 묘지를 꽃밭으로 만들어 그곳에 묻히자는 화목장(花木葬) 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시신을 화장한 분골을 종이나 나무상자에 담아 나무나 꽃밭 밑에 심는 장례방식이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 꽃과 숲이 되자는 정신이다. 삶의 방식도 친자연 친환경적이고 하루 세끼 먹고 자는 것도 친환경적이다. 그러자니 자연히 인생살이는 되도록 가볍고 가뿐하게 살고 죽어서도 사회에 환원하려는 Clean and Green Life가 인생의 목표이며 가치(價値)가 된다.
가뿐하게 살다가는 게 ‘참살이’
바야흐로 우리나라 산과 들에 2000만기의 무덤 봉분이 가득하다. 전국의 주택면적을 1.2배나 넘게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해마다 20만기의 새로운 봉분이 들어서 산지를 깎아 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넓은 면적에 갖가지 석축물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큰 봉분들이 이제는 오히려 혐오시설물로 지탄받고 있다. 인생은 누구나 저 세상으로 가는데 죽어서까지 후손들과 사회에 공해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미 있었던 봉분을 헐어 그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는다면 전국 산하 곳곳이 꽃밭과 푸른 정원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죽어서 화장하겠다는 인구가 자꾸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맞춰 국가기관들과 지자체, 종교단체들이 지난 20일 산림청처럼 수목장림, ‘하늘 숲 공원’을 조성하거나 기존의 묘지를 꽃과 나무정원으로 바꾸어 가꿨으면 한다.
이왕에 버리고 갈 것을 잘 가꾸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고상한 인간의 품성이며 진짜 성공적인 삶의 방식이 아닐까. 자식들은 그들 방식대로 그들의 인생을 새로이 개척하여 성공할 기회를 스스로 갖게 하는 것이 참살이(Well being)이다. 올바른 음식을 먹으며 가뿐하게 살다 가는 삶이야말로 참살이 인생인 것을 사람들은 왜들 모른 채 할까.
-부챠드 가든에서.
*2009년
출처: 한국농어민신문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장관
서양 속담에 “인생살이는 가볍게, 먹을거리는 올바르게 하라(Live Light, Eat Right)”는 말이 있다. 깨끗하고 푸르른 인생살이(Clean & Green Life)의 지침이다. 그 뜻을 인생 70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하니 되도록 삶의 짐을 가볍고 간소하게 견지해야 세상을 떠날 때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회한(悔恨)이 덜하다. 바로 연전에 박경리 선생이 불후의 명작 「토지」 등 주옥같은 글을 남기고 타계하시기 전 “버릴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그 분은 가셨다. 생전에 당신의 작품들로부터 거둬들인 인세수입금을 전부 털어 원주 매지리에 토지문화관과 작업실 숙소를 짓고 후대 문인들에게 개방하여 가난한 문인들이 대작을 집필할 산실(産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손수 텃밭을 가꿔 100% 자연산 유기농 야채를 친지들과 집필 중인 문인들에게 먹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떠나실 때 가지고 간 것이라곤 삼베 옷 한 벌 뿐이었다. 그보다 더 가뿐한 삶, 올바른 먹을거리의 인생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경북 청송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오며 살아온 배용진 선생(전 가톨릭 농민회장)은 농사 때문에 진 막중한 빚을 감당치 못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을 농촌공사에 잡히고 그러함에도 계속 그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해준 것에 대하여 특별 수혜라도 받은 양 행복한 웃음을 짓고 사는 분이다. 언제나 그는 자기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 온 것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어렸을 적부터 농약을 치지 않은 거친 음식만 먹고 살아 잔병에 걸리는 일도 없으며 추운 날씨에 두둑한 솜옷으로 황토벽 누옥에 살다보니 건강한 천연체질이 되었노라고 조상들께 감사드리는 글을 썼다. 간소한 삶, 올바른 정농(正農)의 식사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인 것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어서야 새삼 깨달은 것이다.
폐허에 세운 세계 최대의 꽃 정원
그런데 내가 초빙교수로 방문한 캐나다 밴쿠버의 UBC 대학시절에 직접 알게 된 밴쿠버섬 빅토리아의 부챠드 가든(Buchard Garden) 이야기는 배경과 환경이 조금 다르지만,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북아메리카 서부연안에서 황금 광맥이 발견되어 서태평양 해안 일대에 개발붐이 한창이던 무렵 시멘트 수요는 불티났었다. 그 때 빅토리아시 인근에서 석회석 광산을 경영한 로버트 핌 부챠드씨는 시멘트를 캐내어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데 마지막 석회석을 싣고 떠나가는 배를 환송하던 그의 부인 제니의 손에 누군가가 가만히 야생화 씨앗을 한 웅큼 쥐어 주었다. 그때 제니는 그 뜻을 바로 깨닫게 된다. 석회석을 캐어낸 광산의 해골 같은 폐허를 원래의 자연상태로 되살려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단 그렇게 결심을 한 부챠드 부부는 시멘트광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움푹 패인 광산 바닥 시멘트를 캐낸 자리에 흙을 다시 메우고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갖가지 꽃씨와 종묘들을 심고 커다란 정원을 가꾸었다. 190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 시작하여 현재 그의 손자 이안 로스 부부에 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부챠드가든은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 최대의 꽃 정원으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22만평방미터의 가든 가장자리에 아담한 저택을 짓고 이름을 이태리어로 모든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뜻의 ’벤비뉴토(Benvenuto)’라고 불렀다. 오늘날 시멘트를 빼먹고 황폐해졌어야 할 폐허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환생해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원예 및 화훼 기술로 1년 4계절 내내 기화요초들을 화사하게 피게 하여 한때나마 자연환경을 훼손했던 마구잡이 개발행위를 보상한 것이다. 입장료 수입은 전액 자연환경 복원과 식물연구 및 보급에 재투자한다.
선진국에 번지는 ‘수목장 운동’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지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는 죽어서 흙이 되어 꽃과 나무로 환생하자는 수목장(樹木葬) 운동이 한창이다. 아예 기존의 묘지를 꽃밭으로 만들어 그곳에 묻히자는 화목장(花木葬) 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시신을 화장한 분골을 종이나 나무상자에 담아 나무나 꽃밭 밑에 심는 장례방식이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 꽃과 숲이 되자는 정신이다. 삶의 방식도 친자연 친환경적이고 하루 세끼 먹고 자는 것도 친환경적이다. 그러자니 자연히 인생살이는 되도록 가볍고 가뿐하게 살고 죽어서도 사회에 환원하려는 Clean and Green Life가 인생의 목표이며 가치(價値)가 된다.
가뿐하게 살다가는 게 ‘참살이’
바야흐로 우리나라 산과 들에 2000만기의 무덤 봉분이 가득하다. 전국의 주택면적을 1.2배나 넘게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해마다 20만기의 새로운 봉분이 들어서 산지를 깎아 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넓은 면적에 갖가지 석축물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큰 봉분들이 이제는 오히려 혐오시설물로 지탄받고 있다. 인생은 누구나 저 세상으로 가는데 죽어서까지 후손들과 사회에 공해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미 있었던 봉분을 헐어 그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는다면 전국 산하 곳곳이 꽃밭과 푸른 정원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죽어서 화장하겠다는 인구가 자꾸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맞춰 국가기관들과 지자체, 종교단체들이 지난 20일 산림청처럼 수목장림, ‘하늘 숲 공원’을 조성하거나 기존의 묘지를 꽃과 나무정원으로 바꾸어 가꿨으면 한다.
이왕에 버리고 갈 것을 잘 가꾸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고상한 인간의 품성이며 진짜 성공적인 삶의 방식이 아닐까. 자식들은 그들 방식대로 그들의 인생을 새로이 개척하여 성공할 기회를 스스로 갖게 하는 것이 참살이(Well being)이다. 올바른 음식을 먹으며 가뿐하게 살다 가는 삶이야말로 참살이 인생인 것을 사람들은 왜들 모른 채 할까.
-부챠드 가든에서.
*2009년
출처: 한국농어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