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신명나는 판을 짜라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0/03/05 10:38
- 조회 456
‘농민‘이 신명나는 판을 짜라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지역재단 자문위원
최근 정부가 연일 쏟아 내는 수많은 정책들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당장 산지에 재고 쌀이 많아 쌀값이 하락하고, 금년 수확기에는 쌀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가 걱정이고, 비료가격, 연료가격, 농기계임대료 등 생산비는 줄줄이 올라 걱정이 태산인데, 무슨 기업농 20만명 육성이니 1만개의 법인을 육성한다느니 하는데 그러면 돈 없고 땅 없는 나는 뭐하라는 얘기인지 모르겠고, 알아서 나가라는 얘기로 밖에 안 들리니 야속하기 짝이 없다. 식품산업육성이니, 농식품 100억불 수출이니, 비빔밥이니, 떡볶이니, 한식세계화니 하는데 나완 무슨 상관이 있는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고 하는데 저건 또 누가 하는 건지 모르겠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한·EU FTA니 하여 46개국과 FTA를 맺겠다고 나서고 있고, 쌀시장도 하루 빨리 개방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현장 농민과는 동떨어진 농정
부채는 늘어나고,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마을엔 얘들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되었고, 보조금은 이것저것 폐지하고, 그나마 기업농이나 대규모 농가에게만 지불할 것이라는데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고, 늙은것도 서러운데 나이 많으면 빨리 은퇴하라고 닦달이고, 돈 버는 능력 없으면 관두라니 천직인지 알고 여태껏 버티어 왔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고, 평생을 몸 바쳐 일구어 놓은 유기농사 터전을 무슨 자전거 길을 만든답시고 싹 없애 버린다니 참말로 미치겠다는 것이다.
당장 코앞에 펼쳐지는 그림이 이건 아니다 싶은데, 이렇게 하면 하루아침에 경쟁력이 생기고 국가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무슨 소린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뭐하나 신나는 일이 없다.
요즘 대다수의 현장 농민들이 느끼는 소회라 생각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열심히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왜 다수의 현장 농민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먼 나라 얘기로만 느껴질까. 그것은 정부의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문제 인식과 농민이 생각하는 현장 인식과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정책의 목표와 비전은 대부분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돈 잘 버는 경쟁력 있는 농업이라는 산업을 추구하려 하는데 반해, 농민은 기본적으로 농업을 통하여 농촌이라는 지역 공간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현장 전체가 발전하고 나아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돈 벌면 하고 돈 못 벌면 관두는 식의 평면적이고 직선적인 삶이 아니라 돈 벌고 안 벌고 상관없이 그곳에서 삶을 온전히 영위해야 하는 총체적 삶의 생활공간이다.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괴리로 파악된다.
시장경제 논리만 앞세워서야
또한 현재의 농정은 외부자본을 끌어 들이고 해외에서 수입한 농산물을 원료로 이용하여서라도 농업이나 식품산업이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기만 하면 되고, 소위 경쟁력 있는 규모화 된 농민만 있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 농민들은 삶의 공간에서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외부자본이 농업 및 식품산업으로 진입한다면 과연 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게 된다.
기업은 돈벌이가 안 되면 사업을 집어치우면 된다. 그러나 농민은 그게 아니다. 돈 버는 해도 있고 돈 못 버는 해도 있을 수 있지만 농업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 당장 걷어치우고 다른 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자본의 논리만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며 자본의 속성처럼 돈 되는 업종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자본 위주의 시장경제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인식과 접근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농정은 초보적인 시장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이 정책의 대상일 뿐, 그 농업을 일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농민’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다수의 농민은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소수 엘리트 농민이나 돈 잘 버는 농민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능력 있는 소수 엘리트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것도 돈이라는 잣대만으로...
‘지속가능한 농정’ 다시 수립을
따라서 우리의 농정은 지금부터라도 시장경제 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돼서는 안 된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서부터 농정의 틀을 바로 잡아야 한다. 농촌현장의 소리를 겸허하게 들어야 하고, 당장의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해와 인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농정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일부 농민과 정부’만 신명이 날 것이 아니라 ‘모든 농민과 국민’이 함께 신명이 나는 판을 다시 짜야 한다.
*2009년 글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지역재단 자문위원
최근 정부가 연일 쏟아 내는 수많은 정책들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당장 산지에 재고 쌀이 많아 쌀값이 하락하고, 금년 수확기에는 쌀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가 걱정이고, 비료가격, 연료가격, 농기계임대료 등 생산비는 줄줄이 올라 걱정이 태산인데, 무슨 기업농 20만명 육성이니 1만개의 법인을 육성한다느니 하는데 그러면 돈 없고 땅 없는 나는 뭐하라는 얘기인지 모르겠고, 알아서 나가라는 얘기로 밖에 안 들리니 야속하기 짝이 없다. 식품산업육성이니, 농식품 100억불 수출이니, 비빔밥이니, 떡볶이니, 한식세계화니 하는데 나완 무슨 상관이 있는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고 하는데 저건 또 누가 하는 건지 모르겠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한·EU FTA니 하여 46개국과 FTA를 맺겠다고 나서고 있고, 쌀시장도 하루 빨리 개방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현장 농민과는 동떨어진 농정
부채는 늘어나고,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마을엔 얘들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되었고, 보조금은 이것저것 폐지하고, 그나마 기업농이나 대규모 농가에게만 지불할 것이라는데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고, 늙은것도 서러운데 나이 많으면 빨리 은퇴하라고 닦달이고, 돈 버는 능력 없으면 관두라니 천직인지 알고 여태껏 버티어 왔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고, 평생을 몸 바쳐 일구어 놓은 유기농사 터전을 무슨 자전거 길을 만든답시고 싹 없애 버린다니 참말로 미치겠다는 것이다.
당장 코앞에 펼쳐지는 그림이 이건 아니다 싶은데, 이렇게 하면 하루아침에 경쟁력이 생기고 국가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무슨 소린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뭐하나 신나는 일이 없다.
요즘 대다수의 현장 농민들이 느끼는 소회라 생각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열심히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왜 다수의 현장 농민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먼 나라 얘기로만 느껴질까. 그것은 정부의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문제 인식과 농민이 생각하는 현장 인식과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정책의 목표와 비전은 대부분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돈 잘 버는 경쟁력 있는 농업이라는 산업을 추구하려 하는데 반해, 농민은 기본적으로 농업을 통하여 농촌이라는 지역 공간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현장 전체가 발전하고 나아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돈 벌면 하고 돈 못 벌면 관두는 식의 평면적이고 직선적인 삶이 아니라 돈 벌고 안 벌고 상관없이 그곳에서 삶을 온전히 영위해야 하는 총체적 삶의 생활공간이다.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괴리로 파악된다.
시장경제 논리만 앞세워서야
또한 현재의 농정은 외부자본을 끌어 들이고 해외에서 수입한 농산물을 원료로 이용하여서라도 농업이나 식품산업이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기만 하면 되고, 소위 경쟁력 있는 규모화 된 농민만 있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 농민들은 삶의 공간에서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외부자본이 농업 및 식품산업으로 진입한다면 과연 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게 된다.
기업은 돈벌이가 안 되면 사업을 집어치우면 된다. 그러나 농민은 그게 아니다. 돈 버는 해도 있고 돈 못 버는 해도 있을 수 있지만 농업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 당장 걷어치우고 다른 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자본의 논리만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며 자본의 속성처럼 돈 되는 업종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자본 위주의 시장경제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인식과 접근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농정은 초보적인 시장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이 정책의 대상일 뿐, 그 농업을 일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농민’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다수의 농민은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소수 엘리트 농민이나 돈 잘 버는 농민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능력 있는 소수 엘리트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것도 돈이라는 잣대만으로...
‘지속가능한 농정’ 다시 수립을
따라서 우리의 농정은 지금부터라도 시장경제 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돼서는 안 된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서부터 농정의 틀을 바로 잡아야 한다. 농촌현장의 소리를 겸허하게 들어야 하고, 당장의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해와 인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농정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일부 농민과 정부’만 신명이 날 것이 아니라 ‘모든 농민과 국민’이 함께 신명이 나는 판을 다시 짜야 한다.
*2009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