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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선진국의 ‘텃밭 가꾸기‘ 열풍 의미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0:39
    • 조회 417
    선진국의 ‘텃밭 가꾸기‘ 열풍 의미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지역재단 이사장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최근 ‘텃밭 가꾸기’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정원협회는 올해 미국 내 텃밭이 지난해보다 19%쯤 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씨앗판매 회사인 ‘랜드레스시드’사의 봄 매출은 지난해 대비 75%가 늘었다고 한다. 영국의 한 대형 소매점은 채소씨앗판매가 지난해보다 27% 늘었고, 미국 뉴욕식물원이 지난달부터 열고 있는 ‘식용식물정원’ 행사도 최근의 텃밭 가꾸기 붐을 반영해 기획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여사가 지난 3월 인근지역 초등학생들과 백악관에 100㎡(약 30평)가량의 텃밭을 일군 후 지난달 이들과 함께 상추·콩·오이를 수확한 것이 화제다. 백악관 뜰에 텃밭을 가꾼 것은 2차대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여사가 만들었던 ‘승리의 정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최근 버킹엄궁전 뒤뜰에 33㎡(10평) 규모의 텃밭을 만들었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승리를 위한 경작’ 운동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영국신문 〈더타임스〉는 백악관과 버킹엄궁전에 등장한 텃밭의 의미를 ‘시대정신의 발현’이라고 평가했다. 2차대전 당시의 텃밭이 전시 식량공급을 위한 캠페인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텃밭의 메시지는 먹을거리의 안전성 내지 질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셸 여사는 백악관 텃밭을 만들면서 패스트푸드 대신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는 것이 아이들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아이들을 통해 아이들의 가족을 가르치고 미국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살모넬라땅콩’ 사건으로 시장판매 식재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졌다. 또 탄소배출 억제를 위한 ‘로컬푸드’ 운동과 함께 화학비료와 수송용 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형 농장체제에 대한 반성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등 식품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과자·참치통조림의 이물질 검출, 이유식의 멜라민 검출 등 최근의 잇따른 식품안전사고 발생으로 인해 국민의 식품안전 요구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농촌지역을 포함한 전 국민의 과반수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파트공화국’의 열풍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우리들의 왜곡된 삶의 양식에 비해 텃밭을 가꾸어 자신과 가족의 먹을거리 안전성 문제에 실천적으로 대응하는 선진국들의 모습은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를 수입품을 포함한 불특정다수 생산자들과 정부의 정책에만 내맡기는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을 선진국들의 텃밭 가꾸기 열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 이슈로 등장한 식품 안전성 문제는 생산자나 정부의 노력에 못지않게 소비자들의 자구 노력 없이는 대응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얼굴 있는 먹을거리’ 공급체계 구축, 단체급식에서의 지역 농산물 소비확대, 패스트푸드와 전통음식에 대한 재평가, 내실 있는 식생활교육을 통한 국민의 인식수준 향상 등 소비자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전제가 될 때 비로소 식품안전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