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농업편에서 살기, 참 어렵네요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14:45
- 조회 458
농민·농업편에서 살기, 참 어렵네요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우리나라에 광복 이후 현대 농업경제학을 새로이 일으키신 경제학계의 큰 별 김준보(金俊輔, 1915-2007) 선생께서는 그의 불후의 명저 ‘농업경제학 서설(1967)’에서 ‘한국의 농민·농업문제는 슘페터적 비전과 주체적 문제의식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식은 농민 농업문제, 특히 소농과 가족농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기라성 같은 농업경제학자들을 배출해 내신 선생께서는 구미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른바 신고전학파 또는 자유주의 학파 맹신도들이 많아질 것에 대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전남대학교 총장 재임 중 시작해 5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현재 전국 각대학 연구기관과 정부부처에 종사하고 있는 후진들 중에 요즘말로 아주 난해한 이 책을 얼마나 읽었고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농업·농촌문제 인식 인사 없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하 한국의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지도층 중에 농민·농업·농촌문제의 본질은커녕 그 중요성을 뼈아프게 느끼고 해결해 보려는 인사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밥벌이에만 눈이 어둡다. 하다못해 이번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후보자 공천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을 빼놓고는 구 한나라당(새누리)이나 구 민주당(민주통합당) 어느 정당도 진정한 농민대표를 단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 그것을 문제시하는 메이저 언론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하위권인 식량자급률(25%)이라든지 농업 농민 황폐화는 관심도 없다. 옛 어른들의 말씀대로 ‘조선 놈들은 이마박이 터져서 피가 나 봐야 정신 차릴런지’ 그 마저도 미덥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MB) 정권이 들어선 다음, 쇠고기 협상이나 FTA와 관련해 농민·농업 문제를 농민 입장에서 주장을 할라치면 영락없이 ‘좌파’ 취급을 당했다. 좀 더 세게 주장하고 행동하면 그 앞에 ‘친북 이니 종북’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인다. 한 술 더 떠 극우 보수언론이 이를 부추킨다. 농민 농업문제는 아예 기피대상이 되었거나 폄훼한다. MB정부와 극우보수언론, 재벌, 한나라당, 이들의 합작품이 한·미 FTA고 미국산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재임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IMF(외환위기) 기간 이른바 ‘어깨 보증’으로 전국 방방곡곡 농촌 마을마다 농민들이 연대보증의 빚 사슬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대통령의 용단으로 국가가 신용보증제도를 농어업에 도입하여 농어촌의 줄도산 현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때 대통령께서 농림장관을 불러 남기신 말씀이 지금도 유언처럼 생생이 기억난다. “김 장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 살면서 농어민의 고통과 참상을 뼛속깊이 보고 느껴온 사람이요. 그러나 다음에 올 대통령들은 아무래도 도시출신의 비교적 젊은 층에서 나올 것이므로 농촌문제나 농민생활에 관심이 적을 것이요 그러니 내가 있을 때 어지간한 농업문제를 개선하도록 힘 쓰세요. IMF 하에서라 우선 돈이 크게 들지 않는 제도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박차를 가한 것이 농조·농조연·농업진흥공사의 축소 통폐합으로 수세를 폐지했다. (참고로 현재 지구상에 수세를 걷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로는 우리나라 뿐이다.) 그리고 1단계로 농협·축협·인삼협 중앙회 축소 통폐합으로 금리를 연 18%에서 5%로 내리는 일이었다. 수입개방에 대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려는 친환경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하고 친환경농산물 직접지불제, 논농업 직접지불제도 도입했다. 밭작물 직불제도 준비했다. 전국에 17만 농가에게 정보화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전국 읍면 지역에 정보화 기반구축용 케이블 또는 전화선을 깔았다. 1만호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온라인 직거래 유통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북한에 비료보내기, 나무심기, 금강산 소나무 혹벌레 퇴치등도 결행했다. 그러다가 필자는 치아가 처음엔 5개, 다시 9개가 연달아 빠져서 도저히 업무와 건강을 양립해 지탱하기 어려워 두 번째 사표를 내고 대학 강단으로 복귀했다.
그러한 무지막지한 개혁업무를 평생 농민운동 시민운동만 해오던 샌님 대학교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강이 회복되고 지방대학총장을 맡아 4년간 친환경·유기농 녹색대학을 전국 최초로 만든 다음, 나이 70세에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다만 환경시민운동과 유기농 전도사 역할은 지금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러한 필자가 요즘 갑자기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언론과 지인들로부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대상에 올라 있느냐’라는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위 청와대(BH) 하명에 의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대상에 내 이름과 내 재산상태가 조사보고됐다고 한다.
불법사찰 대상이라니 날벼락
사연인즉 멀쩡히 한 주소지에서 1986년부터 살고 있던 집을 2003년 재건축해 다시 입주했는데 그 분양과정에서 비위가 있었는지, 그리고 꼭대기층 팬트하우스에 사는지 조사보고 된 문서가 터져나왔다. 다행인지 7층 건물의 5층에 살아 왔기 때문에 전혀 ‘해당사항’ 전무였다. 분양 중의 비위는커녕 해외체제중이라 재건축을 반대하지 못했지만 원 거주자로서 재분양 받은 것이다. ‘하명’을 내린 청와대나 ‘조사보고’한 총리실이 멋쩍게 되어 도리어 미안스럽다. 그리고 헤아려보니 BH(청와대) 이름으로 내가 맡고 있던 농림업 관련 비상근직 또는 자문직 자리를 임기도 끝나기 전에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내 개인 홈페이지도. 이메일도 해킹당했다. 집전화도 자주 감도가 떨어져 통화하기 불편해졌다. 은행거래도 조심하라는 귀띔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최초로 2005년부터 태양광렬과 지열에너지를 이용한 냉난방시설을 9개의 건물에 설치하고 유기농식당을 차리고 환경생태관련 과목을 전교생에게 의무화한, 말하자면 녹색운동 실천에 앞장을 섰다. 그런데 웬일인가. 총장을 그만둔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 초까지 경찰이, 검찰이, 교육부가, 감사원이 동일 안건에 대해 네차례나 총장의 비위사실이 없는가 조사, 심문이 계속됐다. 이런 것을 두고 ‘표적감사’라 하는지 몰라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언필칭 세계인들이 자기를 ‘녹색성장의 아버지’라고 한다는 MB의 정부가 할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생을 위해 할 일도 많고 바쁘실 청와대와 총리실 공직자들이 정치인도 아닌 민간인, 그것도 모든 공직에 물러나 있는 70 노객(老客)의 뒷조사나 하고 다니다니.
그중에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이번의 ‘BH 하명에 의한 총리실 조사사건’이다.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요 며칠간 곰곰이 지난 세월 살아 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이제까지 한 것이라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김준보 은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농민·농업 편에 서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써온 죄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천생이 심약하고 게을러서 데모 시위대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육체적 노동이라곤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농사를 짓고 있는 미안함 뿐인데 왜 내가 ‘민간인 불법사찰’ 대상이란 말인가.
MB 집권초기 광우병 발생의 97%를 차지하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위험물질(SRM)의 ‘수입’을 반대하는 글과 인터뷰를 자주했고, ‘한·미 FTA’가 되면 우리 농축산업과 중소상공업이 크게 위축될 것이 뻔해 이를 반대하는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린다고 전국의 산하를 파헤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고 그 대안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공개적으로 제기했고 그후 글을 몇편 써서 기고한 것이 괘씸죄에 걸렸단 말인가. 아니면 시민운동가로서 경제와 환경정의를 부르짖고 팔당지역 유기농살리기운동을 한 것이 찍혔을까.
그것이 죽을 죄라면, 아니 망신을 줘야 할 사안이라면 그렇게 판단한 측이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여 전화도청도 하고 가족 계좌추적도 했는지 안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소농 가족농 농민편이지 좌파도 ○○○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람을 개혁적인 농민·시민운동가라면 그건 맞는 말이다. 장차관직에서 물러나면 흔히 하는 산하 기관장 또는 위원장 자리 하나 맡아 한 적이 없고 관폐, 민폐가 될 것 같아 농업관련 모임이나 학회 또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지 않은 이 사람을 더 이상 건들지 말라. 곱게 늙어가고 싶다.
이번 논란 자초지종 밝혀주길
그래서 나는 이 난을 빌려 감히 이명박 대통령님께 공개 청원한다. 이 정부가 나를 불법 사찰하게 된 배경과 이유 주동자 등 그 진실을 소상히 밝혀주시기 바란다. 누가, 무엇 때문에 순수 민간인인 불초 70 노객을 불법사찰하고 뒷조사했는지 BH(청와대) 특명으로 그 자초지종을 밝힐 것을 특별지시해 주기 바란다. 직접 대통령이 시키지 않았다면…….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4월 제242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우리나라에 광복 이후 현대 농업경제학을 새로이 일으키신 경제학계의 큰 별 김준보(金俊輔, 1915-2007) 선생께서는 그의 불후의 명저 ‘농업경제학 서설(1967)’에서 ‘한국의 농민·농업문제는 슘페터적 비전과 주체적 문제의식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식은 농민 농업문제, 특히 소농과 가족농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기라성 같은 농업경제학자들을 배출해 내신 선생께서는 구미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른바 신고전학파 또는 자유주의 학파 맹신도들이 많아질 것에 대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전남대학교 총장 재임 중 시작해 5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현재 전국 각대학 연구기관과 정부부처에 종사하고 있는 후진들 중에 요즘말로 아주 난해한 이 책을 얼마나 읽었고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농업·농촌문제 인식 인사 없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하 한국의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지도층 중에 농민·농업·농촌문제의 본질은커녕 그 중요성을 뼈아프게 느끼고 해결해 보려는 인사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밥벌이에만 눈이 어둡다. 하다못해 이번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후보자 공천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을 빼놓고는 구 한나라당(새누리)이나 구 민주당(민주통합당) 어느 정당도 진정한 농민대표를 단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 그것을 문제시하는 메이저 언론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하위권인 식량자급률(25%)이라든지 농업 농민 황폐화는 관심도 없다. 옛 어른들의 말씀대로 ‘조선 놈들은 이마박이 터져서 피가 나 봐야 정신 차릴런지’ 그 마저도 미덥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MB) 정권이 들어선 다음, 쇠고기 협상이나 FTA와 관련해 농민·농업 문제를 농민 입장에서 주장을 할라치면 영락없이 ‘좌파’ 취급을 당했다. 좀 더 세게 주장하고 행동하면 그 앞에 ‘친북 이니 종북’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인다. 한 술 더 떠 극우 보수언론이 이를 부추킨다. 농민 농업문제는 아예 기피대상이 되었거나 폄훼한다. MB정부와 극우보수언론, 재벌, 한나라당, 이들의 합작품이 한·미 FTA고 미국산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재임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IMF(외환위기) 기간 이른바 ‘어깨 보증’으로 전국 방방곡곡 농촌 마을마다 농민들이 연대보증의 빚 사슬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대통령의 용단으로 국가가 신용보증제도를 농어업에 도입하여 농어촌의 줄도산 현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때 대통령께서 농림장관을 불러 남기신 말씀이 지금도 유언처럼 생생이 기억난다. “김 장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 살면서 농어민의 고통과 참상을 뼛속깊이 보고 느껴온 사람이요. 그러나 다음에 올 대통령들은 아무래도 도시출신의 비교적 젊은 층에서 나올 것이므로 농촌문제나 농민생활에 관심이 적을 것이요 그러니 내가 있을 때 어지간한 농업문제를 개선하도록 힘 쓰세요. IMF 하에서라 우선 돈이 크게 들지 않는 제도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박차를 가한 것이 농조·농조연·농업진흥공사의 축소 통폐합으로 수세를 폐지했다. (참고로 현재 지구상에 수세를 걷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로는 우리나라 뿐이다.) 그리고 1단계로 농협·축협·인삼협 중앙회 축소 통폐합으로 금리를 연 18%에서 5%로 내리는 일이었다. 수입개방에 대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려는 친환경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하고 친환경농산물 직접지불제, 논농업 직접지불제도 도입했다. 밭작물 직불제도 준비했다. 전국에 17만 농가에게 정보화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전국 읍면 지역에 정보화 기반구축용 케이블 또는 전화선을 깔았다. 1만호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온라인 직거래 유통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북한에 비료보내기, 나무심기, 금강산 소나무 혹벌레 퇴치등도 결행했다. 그러다가 필자는 치아가 처음엔 5개, 다시 9개가 연달아 빠져서 도저히 업무와 건강을 양립해 지탱하기 어려워 두 번째 사표를 내고 대학 강단으로 복귀했다.
그러한 무지막지한 개혁업무를 평생 농민운동 시민운동만 해오던 샌님 대학교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강이 회복되고 지방대학총장을 맡아 4년간 친환경·유기농 녹색대학을 전국 최초로 만든 다음, 나이 70세에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다만 환경시민운동과 유기농 전도사 역할은 지금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러한 필자가 요즘 갑자기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언론과 지인들로부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대상에 올라 있느냐’라는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위 청와대(BH) 하명에 의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대상에 내 이름과 내 재산상태가 조사보고됐다고 한다.
불법사찰 대상이라니 날벼락
사연인즉 멀쩡히 한 주소지에서 1986년부터 살고 있던 집을 2003년 재건축해 다시 입주했는데 그 분양과정에서 비위가 있었는지, 그리고 꼭대기층 팬트하우스에 사는지 조사보고 된 문서가 터져나왔다. 다행인지 7층 건물의 5층에 살아 왔기 때문에 전혀 ‘해당사항’ 전무였다. 분양 중의 비위는커녕 해외체제중이라 재건축을 반대하지 못했지만 원 거주자로서 재분양 받은 것이다. ‘하명’을 내린 청와대나 ‘조사보고’한 총리실이 멋쩍게 되어 도리어 미안스럽다. 그리고 헤아려보니 BH(청와대) 이름으로 내가 맡고 있던 농림업 관련 비상근직 또는 자문직 자리를 임기도 끝나기 전에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내 개인 홈페이지도. 이메일도 해킹당했다. 집전화도 자주 감도가 떨어져 통화하기 불편해졌다. 은행거래도 조심하라는 귀띔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최초로 2005년부터 태양광렬과 지열에너지를 이용한 냉난방시설을 9개의 건물에 설치하고 유기농식당을 차리고 환경생태관련 과목을 전교생에게 의무화한, 말하자면 녹색운동 실천에 앞장을 섰다. 그런데 웬일인가. 총장을 그만둔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 초까지 경찰이, 검찰이, 교육부가, 감사원이 동일 안건에 대해 네차례나 총장의 비위사실이 없는가 조사, 심문이 계속됐다. 이런 것을 두고 ‘표적감사’라 하는지 몰라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언필칭 세계인들이 자기를 ‘녹색성장의 아버지’라고 한다는 MB의 정부가 할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생을 위해 할 일도 많고 바쁘실 청와대와 총리실 공직자들이 정치인도 아닌 민간인, 그것도 모든 공직에 물러나 있는 70 노객(老客)의 뒷조사나 하고 다니다니.
그중에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이번의 ‘BH 하명에 의한 총리실 조사사건’이다.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요 며칠간 곰곰이 지난 세월 살아 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이제까지 한 것이라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김준보 은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농민·농업 편에 서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써온 죄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천생이 심약하고 게을러서 데모 시위대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육체적 노동이라곤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농사를 짓고 있는 미안함 뿐인데 왜 내가 ‘민간인 불법사찰’ 대상이란 말인가.
MB 집권초기 광우병 발생의 97%를 차지하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위험물질(SRM)의 ‘수입’을 반대하는 글과 인터뷰를 자주했고, ‘한·미 FTA’가 되면 우리 농축산업과 중소상공업이 크게 위축될 것이 뻔해 이를 반대하는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린다고 전국의 산하를 파헤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고 그 대안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공개적으로 제기했고 그후 글을 몇편 써서 기고한 것이 괘씸죄에 걸렸단 말인가. 아니면 시민운동가로서 경제와 환경정의를 부르짖고 팔당지역 유기농살리기운동을 한 것이 찍혔을까.
그것이 죽을 죄라면, 아니 망신을 줘야 할 사안이라면 그렇게 판단한 측이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여 전화도청도 하고 가족 계좌추적도 했는지 안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소농 가족농 농민편이지 좌파도 ○○○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람을 개혁적인 농민·시민운동가라면 그건 맞는 말이다. 장차관직에서 물러나면 흔히 하는 산하 기관장 또는 위원장 자리 하나 맡아 한 적이 없고 관폐, 민폐가 될 것 같아 농업관련 모임이나 학회 또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지 않은 이 사람을 더 이상 건들지 말라. 곱게 늙어가고 싶다.
이번 논란 자초지종 밝혀주길
그래서 나는 이 난을 빌려 감히 이명박 대통령님께 공개 청원한다. 이 정부가 나를 불법 사찰하게 된 배경과 이유 주동자 등 그 진실을 소상히 밝혀주시기 바란다. 누가, 무엇 때문에 순수 민간인인 불초 70 노객을 불법사찰하고 뒷조사했는지 BH(청와대) 특명으로 그 자초지종을 밝힐 것을 특별지시해 주기 바란다. 직접 대통령이 시키지 않았다면…….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4월 제242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첨부파일1 김성훈.jpg (용량 : 8.9K / 다운로드수 : 103)